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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결혼과 영성 (창 2: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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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김형준 목사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는 동안 중요한 결정 세 가지를 한다고 합니다. 첫째 누구와 일생을 살아갈 것인가, 즉 배우자에 대한 문제입니다. 둘째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직업에 대한 문제이며, 셋째 누구를 섬기며 살 것인가, 종교에 대한 문제를 결정합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선택이 인생 방향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어떻게 살 것인가’는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만남 안에서 인간의 복된 삶은 어떻게 사느냐가 좌우합니다. ‘어떻게’에 관해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며 사는 삶이 복되고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지난 시간 ‘어떻게’의 부분을 점검해보려면 그 사람의 물질 사용, 성에 대한 개념 그리고 권력을 사용하는 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영성학자인 리차드 포스터도 지금까지 역사상 이 세 가지와 인간의 삶은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는 문제였고, 신앙인들이 문화적인 변혁기에 있어 분명한 해답을 가장 듣기 원했던 주제였으며, 나아가 지금까지 모든 부흥운동들은 이에 대해 분명하고 대담한 응답을 수반해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 경험이 있을 때 사회를 근본적으로 갱신할 수 있는 분야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성에 관해서 결혼이라는 제도와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강단에서 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기는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결혼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것입니다. 어떤 자세로 이 문제를 살피고 나누어야 할지 기본적이고도 본질적인 가치들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현재 해결해야할 우리나라의 많은 문제 중 하나는 돈, 경제의 위기입니다. 10년 새에 돈 문제가 원인이 되어 이혼한 것이 거의 7배 가까이 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돈 문제보다 더 심각하면서도 알려지지 않은 문제가 성 문제가 아니겠는가 많은 전문가들이 이야기합니다. 가정파탄의 주원인이면서 경제문제와 얽혀 결혼과 가정에 대한 가치관을 근본부터 위협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아름다움이 인간이 소유하고 누려야할 물질적이고 비인격적인 것으로부터 침식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정을 지키기 어려운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삶의 가치들을 중요시하며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할까요? 

성경말씀에 비추어 볼 때, 먼저 우리가 가져야 될 가장 중요한 생각 중 하나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라고 말씀합니다. 창세기 2장 7절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흙이라는 물질과 하나님의 생기라는 비 물질 요소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지으시고’ 라고 번역된  ‘와이체르’ 는 기술자가 자기 기술과 주권적인 권위로 정성스럽게 만드는 모습을 표현한 단어입니다. 또 ‘불어 넣는다’ 라고 번역된 ‘아이파흐’ 는 아주 따스한 인격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친근하게 입맞춤 하듯 코에 생기를 불어넣는 행위를 묘사한 단어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흙으로 빚어졌지만 하나님께서 생령, 생기를 불어넣으신 영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에게 주어진 명령은 1장 28절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문화명령이라고도 일컬어지는 명령입니다. 곧 이어 2장 15절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하셨습니다. 라고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또한 하나님께서 위임해주신 일들을 성실하게 수행할 때에 진정 인간다울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땅에서 인간의 삶은 육체적인 본능과 욕구를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인간이 죽으면 썩어 흙으로 돌아갈 육체를 따라 살 수밖에 없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육체의 만족을 충실히 좇는다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또 다른 부분인 하나님의 생기가 담긴 영적인 존재로서 하나님과 교제 없이는 진정한 행복과 인간다움을 추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너무나 현상적이고 육체의 욕구를 맞추는데 비중이 큰 곳이기에, 우리 삶도 세상을 좇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한정되어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또 인간관계에서도 너무 단편적이고 세상적인 가치관에 기초한 것은 아닌지 점검하지 않으면 세상에 휩쓸리기가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당신과 교제하는 가운데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기를 원하십니다. 육체의 욕구를 이루기 위한 삶이 분명 존재하지만 한편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말씀과 능력을 힘입어 삶의 현장을 조절하며 통제해야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육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형상으로 창조된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 20절 이하에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이끌어 아담에게 보이시니 아담이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하여 그 이름을 ‘여자’라 붙입니다.

신학자 바르트는 남성과 여성인 인간의 성이 하나님 형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남성과 여성을 따로따로 생각해서는 도무지 완성된 인간의 의미를 말할 수 없고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통해서 인간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남자처럼 흙으로 짓지 아니하시고, 머리도 발도 아닌 아담의 갈빗대로 지으신 것은 아담과 하와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합일체이며 여자는 남자에게 있어서 마땅히 소중히 여김 받아야할 존재이자 인격적으로 동등 됨을 나타낸 것입니다. 창세기 2장의 말씀 자체가 남성우위 문화 속에서 주어진 것이라 생각할 때 굉장히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주신 사명은 남자를 돕는 배필로서의 역할입니다. 서로 다른 존재이지만 보완하면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여자 없이 남자를 설명할 수 없고, 남자 없이 여자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보통 돕는다고 하면 열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돕는다 할 때 쓰인 히브리어 단어 ‘에젤’은 시편 46편 1절 ‘하나님은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 에서 사용된 단어와 같습니다. 강하고 힘 있는 자만이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남자를 돕는 배필인 여자를 누가 데려오느냐 하느냐 인데 본문에 따르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인도해 오신다 하셨습니다. 남자의 옆구리에서 취한 갈빗대로 만들어진 존재라고 해서 남자에게 속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성들이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존재로 보는 건강한 눈을 갖는 것이 무척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창조의 질서와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여성에게 있어서도 남성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존재, 돕는 배필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생각과 마음이 창조 질서 속에서 남자와 여자를 바라보기보다, 육체적인 관점에서 자기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하나의 비인격적인 목적물로 보는 병든 가치관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자기 성의 정체성을 지키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역할을 감당하기에 점점 어려워지는 성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 질서가 무너질 때에 인간은 또 다른 비극과 고통 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의 연합을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 24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결혼과 가정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연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인간이 서로 교제하며 연합하여 공동체를 이루기 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형상에서 나왔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할 때 ‘함께’ 는 단순히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움직이며 교제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당신과 교제하기를 원하시면서 동시에 인간 서로도 교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공동체성의 신학적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서로의 안에서 교제를 나누듯이 남자와 여자가 가정이라는 곳에서 함께 교제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만들어 가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24절에 나타난 연합의 3대 원리(결혼의 원리)는 무엇보다 책임을 지닌 성숙한 존재로서 부모로부터 떠나는 독립성, 동등한 두 인격체가 만나는 연합성 그리고 두 몸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합일성으로, 이러한 원리에 따라 가정은 경제적인 결합이나, 육체적인 결합, 조건의 결합이 아니라 영적 결합까지 이르러 함께 성숙하고 성장하며 이루어져야 됩니다. 이렇게 가정 안에서 사랑을 배움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이루고 약속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 먼저 부부가 서로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하지 않으면 건강한 사랑을 나눌 수 없습니다. 믿음 안에서 바로 서야 됩니다. 육체적으로 강건해야 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며 성경적 가치관 위에 믿음으로 굳게 서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남을 도울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상황과 마음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연합을 말할 때 어려운 질문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독신의 문제 혹은 이혼의 문제인데, 이에 대해 성경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가장 궁극적이고 핵심적인 것이라 말씀하며 반드시 모든 경우에 있어 가정을 통한 연합을 이루어야한다고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룰 수 있다면 독신으로 있어도 좋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우리가 가정을 단순히 육체적이고, 경제적이고, 혈연적인 관계에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성숙함을 이루어 가는 작은 천국으로서 소중히 가꿔 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가정의 사귐을 위해 오늘도 주님은 돕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태초에 계획해놓으신 가정의 모습을 회복하고 누리는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제가 2년 전에 한 교인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은 적이 있는데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어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결혼 18주년을 기뻐하면서…….)

세상에서 제일 예뻤던 신부였습니다.
18년 전 오늘, 1985년 10월 12일, 그 기뻤던 날이 생각납니다.

18년을 지내면서 점점 더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집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더 많아 집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싫증 날만도 한데 여전히 예쁘고, 사랑스러운 당신입니다.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은 내가 죽을 때 까지 따라갈 수 없는 마음입니다.
남편을 존중하고 위해주는 마음도 모든 아내들이 본받아야할 마음 같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세심한 배려도 아무나 가지는 마음은 아닌 거 같습니다.
시부모님을 대하는 태도는 성경 이야기 같습니다.
고맙고, 감사하고, 기쁘고, 자랑스럽고…….

결혼기념일 카드마다 적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가장 귀한 선물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만나 결혼한 것이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입니다.
살아갈수록 그 진가가 더해갑니다.

당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남편이 돼야 한다는 것이 내가 가진 가장 큰 소망입니다.
당신의 그 귀한 사랑의 마음을 본받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나의 가장 부족한 부분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돕는 배필로 당신을 예비하셨습니다.
18년을 살면서 내가 이만큼이라도 근사해진 것은 당신 때문입니다.
고맙다는 이야기를 쓰고 또 씁니다.

동안교회에서 가장 이상적인 가정을 꾸미고 싶은 욕심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우리 부부가 좋은 가정을 잘 꾸미어 오고 있는 것에 관하여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자녀가 바르게 잘 자라서 자녀 양육에 있어서도
모범적인 가정이 되기를 소원하는 마음이 많습니다.
우리의 남은 삶이 하나님 주신 귀한 가정을 잘 꾸며 가는데 쓰여 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한 사람이, 그 한 가정이 우리 가정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2003년 10월 12일
사랑하는 남편이…….

참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10년 살고 나면 어떤 아내들은 남편이 싫증나서 예비군 훈련도 받으러 안가냐며 불평한다는데, 서로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과 축복으로 알고 감사하는 마음, 여기에 진정한 연합의 아름다움이 있고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서로를 지켜줄 신뢰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수많은 유혹 앞에 노출되어 있고 유혹 앞에 넘어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러한 때에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성경적인 가치관을 다시 찾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아무렇게나 버려진 존재, 이 땅에 육체로 남겨질 존재가 아닙니다. 육체를 넘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그 분의 자녀라는 사실을 확인하시고, 나뿐만이 아니라 나와 더불어 사는 아내와 남편 또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걸작품임을 그래서 함께 연합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삶 가운데 간직하며 믿음의 가정을 만들어 갈 때에 세상의 어떤 어려움에도 여전히 하나님 나라를 세워 나가고 있는 여러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작은 천국으로서 가정의 축복과 연합함의 아름다움이 여러분과 여러분 자녀들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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