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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무 것도 아닌 마귀가 (마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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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금성 목사

사 년 전에 경남 진주의 수산업자들이 활어차에 독성이 강한 마취제를 투여했다가 잡힌 적이 있었습니다. 활어차로 물고기를 나르다 보면 서로 부딪쳐 신선도가 떨어지거나 죽게 됩니다. 그래서 마취제를 넣어 물고기를 기절시킨 채로 운반한 것입니다. 그러나 약품 성분이 그대로 남아 그 물고기를 먹은 사람에게 해를 주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업자들은 물고기를 싱싱하게 운반하는 비결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물고기 양식장에서는 일본으로도 많이 수출합니다. 특히 광어나 우럭 같은 물고기는 인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광어를 수조통에 넣어서 보내면 일본에 도착하기 전에 거의가 죽습니다. 그래서 뱀장어를 한두 마리 함께 집어넣습니다. 그러면 광어가 뱀장어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쉴 새 없이 피해 다닙니다. 일본에 도착하면 물고기들이 모두 싱싱하게 살아 있습니다.

추어탕하면 전북의 남원이나 고창 지역이 유명합니다. 부천에도 남원 추어탕집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요즘에는 미꾸라지 소비량이 많다보니 자연산을 쓰는 집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꾸라지 양식장에서 키운 것을 사용합니다. 자연산과 비교하면 양식 미꾸라지가 영양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연산 특유의 감칠맛은 양식산이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미꾸라지를 양식할 때는 메기를 몇 마리 풀어 넣습니다. 그러면 미꾸라지들이 필사적으로 도피를 시작합니다. 자연히 움직임이 활발해져서 조직이 탄탄해집니다. 자연산과 같은 영양만점의 구수하고 얼큰한 추어탕 맛을 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천적을 함께 지내면 긴장이 유지되고 움직임이 활발해집니다. 수족관에 물고기를 키울 때도 응용하면 좋습니다.

이 세상에는 사단 마귀가 존재합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왜 이 사단의 악한 활동을 막지 않으실까요? 만약 이 세상에 사단이 없다면 어찌 될까요? 거꾸로 생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만약 우리의 삶 속에 걱정거리가 사라진다면 어찌될까요? 사고가 터지지도 않고 원수도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양식장에서 사는 물고기는 먹을 것 걱정 없고, 물 온도는 항상 기분 좋게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너무 편하게 지내다보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됩니다. 저항력이 떨어지고 근육도 물렁해집니다. 편하게 키운 물고기는 이내 죽고 맙니다.

애완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완동물은 자연 속에서 자란 동물보다 수명이 짧습니다. 동물원의 짐승들도 대부분 비만 때문에 각종 질병이 생깁니다.

그런 점에서 사단의 훼방과 시험들은 오히려 우리의 신앙을 굳건하게 다져줍니다. 고생을 겪은 사람의 심성이 강건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먼저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본문 바로 앞에서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 때에는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하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는 기가 막힌 체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신비로운 체험 뒤에 바로 마귀의 시험이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은혜를 받는 것을 시기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많이 받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 경계해야 합니다. 사단은 우리의 믿음을 식게 만듭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받은 은혜를 쏟아 버리게 만듭니다. 성령을 통해 받은 능력을 무용지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은혜 받을 때 조심하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0:12 말씀입니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는 능력의 사자였습니다.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사제 850 명과 맞서 겨뤘습니다. 어떤 신이 비를 내리는 신인가 대결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혼자이고 저쪽은 850 명입니다.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 바알과 아세라 사제들을 꺾었습니다. 엘리야는 승리에 취했습니다. 그러나 곧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오직 자기 혼자만 남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외로움과 절망감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이세벨에게 추격에 쫓겨 도망을 쳤습니다. 엘리야는 도망을 치다가 로뎀나무 아래 지쳐 쓰러졌습니다. 엘리야는 차라리 죽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엘리야는 무기력해졌고 싸울 힘을 잃었습니다. 능력의 엘리야는 그렇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사단의 목적은 우리의 구원을 빼앗는 것입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못 봅니다. 그래서 믿음을 약하게 만듭니다.

믿음을 흔들면 구원을 어렵게 만듭니다. 믿음에 의심의 바람을 불어넣습니다. 결국 믿음을 없앱니다.

또 사단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훼방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지 못하게 합니다. 이 세상을 사단의 권세 아래 두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단은 예수님의 일을 훼방합니다. 마귀는 집요하게 예수님의 사역을 훼방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귀의 시험은 상징적인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마귀는 예수님의 약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파고들었습니다.

모두 세 번의 시험이 지나갔습니다.

첫째는 돌을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 일 동안이나 금식하셨습니다. 영적으로는 충만했습니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몹시 시장하셨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압니다. 40 일 금식으로 돌이 떡으로 보일 때입니다. 가장 배고픔을 느낄 때, 정확한 시간에 유혹합니다. 이렇게 마귀는 영악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약점과 허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넘어질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가 공격합니다. 마귀는 함정을 파놓고 기다립니다.

지금 예수님은 금식하면서 기도 중입니다. 인내하며 참고 계십니다. 깊은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마귀는 이 기도를 멈추게 하려 합니다. 배고픔을 우선 해결하라는 마귀의 제안은 그럴 듯해 보입니다.
그러나 만약 예수님이 정말 돌을 떡이 되게 하셨다면 어찌됩니까? 우선 금식 기도는 거기서 중단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이 빵을 해결하기 위한 일로 전락하고 맙니다. 하늘의 것을 위해서가 아니고 땅을 것을 위해 일하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역을 망쳐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유혹을 성경 말씀을 가지고 물리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신명기 8:3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사람은 떡으로 삽니다. 떡을 먹어야 힘을 얻고 생명을 유지합니다. 그러나 양식은 떡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영혼의 양식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또 다른 양식입니다.

배고프면 밥을 지어 먹으면 됩니다. 돌을 떡이 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금식은 스스로 자원하는 것입니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허겁지겁 급하게 광야에서 돌을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뇌물을 받아 챙기다가 걸려듭니다. 발각되면 정치 생명이 끝납니다. 그 땐 돈을 받아먹은 것이 아니라 돌멩이를 받아먹은 것이 됩니다.

이 첫 번째 시험은 물질에 대한 욕심을 참는 것입니다. 돈이 좋기는 하지만 하나님보다 좋지는 말아야 합니다. 돈 때문에 하나님을 뒤로 제쳐 두지는 말아야 합니다. 돈을 벌려고 주일 예배를 빼먹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돈 벌 기회가 생겨도 예배하고 맞바꾸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시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것입니다.

이 성전은 헤롯이 20 미터의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웅장하게 지은 성전입니다. 높이가 60 미터 정도의 경이로운 건축물이었습니다. 성전 꼭대기에 올라섰으니까 20 층짜리 빌딩의 옥상 높이 정도 되겠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그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려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천사가 받아서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날개가 달렸습니까?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몸은 박살이 납니다. 그런데 왜 마귀는 무모하게도 뛰어 내려 보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위대한 사명을 맡겨서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사역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렇게 죽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뛰어 내리면 망설일 시간이 없습니다. 즉각 천사를 보내서 일단 받아내고 봐야 합니다. 분명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왜? 사랑하는 외아들이니까.

이 헤롯성전은 축대로 조성한 4 만평의 대지 위에 지어졌습니다. 우리 교회 아래 중앙공원 만한 넓이입니다. 성전 아래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그 아래로 뛰어내리고, 상처 하나 없이 착지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지상 최대의 쇼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역의 시작을 슈퍼맨 같이 화려하게 등장할 수 있습니다. 이 쇼는 단번에 사람들을 모을 수 있습니다.

아주 확실하게 하나님의 아들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뛰어 내리는 순간 하나님을 얼마나 놀라게 하는 것입니까? 또 하나님이 안 받아 주시면 어찌됩니까? 마귀 좋은 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시 말씀으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물리치셨습니다.

요즘 개척한지 몇 년 만에 수천 명씩 모이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뛰어난 목사님이라는 소문이 퍼져서 전설 같은 교회가 세워집니다. 이런 교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목사님이 쓴 책이 베스트셀러로 뜨면서 유명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목회를 브랜드 목회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우선 히트 칠만한 책을 먼저 써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쓴 책이 대박이 나면 교회는 저절로 부흥할 것입니다.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쓸데없는 짓이겠지요?

예수님은 기적을 베풀고 그것으로 유명세를 얻어서 전도에 이용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병자를 고치고 나서도 쉬쉬 하셨습니다. 자칫 사역이 본질이 변질될까봐 그리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이용해서 유명해지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마귀의 술책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앉아서 저절로 교회가 부흥되기를 바란다면 그것도 마귀의 장난입니다.

세 번째 시험은 천하만국의 영광을 얻기 위해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마귀는 미혹하는 자입니다. 마귀의 말에는 거짓이 담뿍 발려져 있습니다. 천하만국의 영광이 누구의 것입니까? 혹시 마귀의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천지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하의 권세를 마귀에게 넘겨주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런데 마귀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마치 자기 것인 양 천하만국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어찌 마귀에게 절할 수 있습니까? 터무니없는 사기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이런 사기가 통합니다. 홀리기 때문입니다.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이면 그만 취하고 맙니다.

그러나 자기 영혼을 팔아서 세상 영광을 얻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사단이 보여주는 영광은 거짓입니다.

사단에게 경배하는 순간 하나님과의 관계는 파괴됩니다. 사단의 노리개가 되고 맙니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세상 자랑거리에 취해서 하나님을 버릴 수 있습니까? 세상 명예가 주를 섬기는 것보다 중요합니까?

아담은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가서 그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것으로 하나님께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를 깨끗하게 물리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입니다.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예수님이 마귀를 물리치셨듯이 우리도 마귀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는 물러갑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로 우리는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마귀는 예수의 이름 앞에 벌벌 떠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선교 현장에서 이것을 체험했습니다.

누가복음 10:17입니다.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바울도 빌립보를 전도하다가 귀신들린 여자를 만났습니다. 사도행전 16:18입니다.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오늘 설교제목이 ‘아무 것도 아닌 마귀가’입니다. 과연 마귀는 예수의 이름 앞에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마귀의 시험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십시오. 귀신은 벌벌 떨며 항복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는 물러갑니다.

예수님도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마 8:16>

성경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합니다. 진리처럼 말하나 성경 말씀을 묘하게 바꿔놓습니다. 진리인 것처럼 속입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으면 마귀는 우리를 어찌하지 못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하고 외치는 순간 마귀는 떠날 것입니다.

셋째, 성령 충만하면 마귀는 떠나갑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 12:28>

마귀는 쉴 곳을 찾아 허약한 사람에게 들어옵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모신 사람에게는 감히 들어 올수 없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은 성령을 모시지 못한 사람입니다. 내 삶의 주인으로 주님을 모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마귀는 가까이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빛이고 마귀는 어두움이기 때문입니다. 어둠은 빛이 임하면 쫓겨 갑니다.

세상에는 마귀의 시험거리들이 많습니다. 마귀는 함정을 파놓고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귀의 유혹에 걸려 넘어지면 우리의 영혼은 파괴되고 맙니다.

마귀는 우리 영적 생활의 천적입니다. 그러나 깨어 있다면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능히 마귀를 능가하는 주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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