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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마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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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임윤빈 목사 (늘푸른교회)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주는 최고의 찬사였습니다. 왜냐하면 귀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세상의 소금 같은 사람이라' 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은 소금이 흔하지만 예수님 당시에 소금은 몹시 귀했습니다. 당시 로마의 격언 중에 '태양과 소금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고 할 정도로 소금은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유대 땅의 소금은 땅속에서 캐내는 바윗덩이와 같은 암염이었습니다. 세상에 필요하고 좋은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는 우리를 금덩이나 보석으로 비유하지 않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소금은 평범한 겁니다. 그러나 참으로 소중합니다. 왜냐하면 설탕은 안 먹어도 삽니다. 금, 은, 보화는 없어도 삽니다. 그러나 소금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소금은 평범한 식품입니다. 이와 같이 제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에 흔히 있는 너희들이지만 너희는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가치 있는 존재라고 인정해 주었던 겁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소금처럼 소중한 존재임을 선언해 주신 겁니다.

소금의 역할 -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할 때 몇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1. 소금은 썩지 않는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소금은 음식물이 변질해서 부패하지 않도록 보호하는데 사용했습니다. 냉장이나 냉동 시설이 없는 그 시대에는 고기를 소금으로 절이지 않으면 금방 썩고 오래 보관을 못했습니다. 당시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생선을 소금에 절여서 오래 두고 먹었습니다. 소금은 고기를 보존하고 신선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소금을 죽은 고기에 불어넣어 주는 새로운 영혼이라'고 했습니다.

바닷물은 0.4(2.8%)의 염분 때문에 항상 신선합니다. 그래서 육지의 오염된 더러운 물을 아무리 흘러보내도 그것을 다 정화해 냅니다.
당시 로마 사회의 지극히 적은 소수의 크리스챤들은 로마 사회를 정화했습니다. 비록 비천한 노예들과 나약한 부녀자들이었지만 당시 로마의 타락하고 부도덕한 사회를 변화시켰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세상의 소금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한국 사회의 25%나 되는 기독교 인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개혁이 일어나지 못하고 함께 부패하고 있는 현실을 눈으로 보면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이 말씀은 세상을 썩지 않도록 방부제 역할을 하라는 주님의 선언입니다. 썩고 타락한 세상에서 소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소금이 되라'는 말은 이 세상은 썩고 있기 때문에 썩는 사회에 들어가서 정화하는 존재가 되라는 겁니다.

2. 소금은 맛을 냅니다.

소금은 원래 짠맛이지만 음식물 속에 들어가면 음식 맛을 내 줍니다. 맛이 없는 것을 맛있게 만들어 줍니다. 기독교인은 소금처럼 맛을 내야 합니다. 가정에 들어가면 더욱 화목한 가정을 만들고, 직장에 들어가면 더욱 좋은 직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살려놓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소금처럼 맛을 내서 가정을 살려놓고, 남편을 살려놓고, 자녀를 살려놓고, 들어가는 곳마다 살려놓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맛을 내는 사람들은 세상의 소금과 같습니다. 이와 반대로 살려놓지 못하고 더 나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기쁨을 빼앗아버리고, 마음에 상처를 내면서 마음을 어둡게 만들어주는 부정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불평하고, 험담하고, 부정적인 분위기로 다른 사람들을 낙심시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공중에 나는 새를 보면 두 종류의 새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비둘기는 창공을 날며 평화를 노래하고,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며, 그 모습이 순결하고 깨끗한 음식을 먹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주인집 가까이 삽니다.
까마귀는 슬픈 소리를 지르면서 창공을 나릅니다. 용모가 어둡고 침침합니다. 더러운 것을 먹으려고 들 가운데 있습니다. 까마귀는 사람만 보면 도망칩니다. 까마귀가 소리지르면 동네에 초상난다고 불길한 새라고 말합니다.
죄송하지만 신자 중에는 비둘기 신자와 까마귀 신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비둘기 신자는 성령 받은 신자의 모습으로 평화를 창조하고, 순결하고, 하나님의 집에 드나들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까마귀 신자는 침침합니다. 웃음이 없습니다. 입을 열면 불평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은혜를 꺼버립니다. 이상한 말만 듣고 다니며 덕스럽지 못한 말로 다른 사람의 심령을 초상집으로 만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비둘기 신자입니까? 까마귀신자 입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 4:6)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
소금을 쳐서 부드러운 맛을 나게 하듯 우리의 마음이 언제나 소금을 쳐서 부드러운 말로 다른 사람에게 은혜가 되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느 곳에 들어가든지 맛을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소금은 순결합니다.

소금은 반짝이는 색깔이 순결합니다. 소금은 순수합니다. 당시 로마 사람들은 소금은 순수한 태양과 바다에서 왔다고 믿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제사를 드릴 때 소금을 뿌렸습니다.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레 2: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이 말은 '너희는 순결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은 날마다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해야 합니다(롬 12:3).

그리스도인은 진실해야 합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양심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한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해야 합니다.
소금의 기능 중에 신기한 것이 있는데 소금은 갈증을 나게 합니다. 음식을 먹고 나서 물을 자꾸 먹으면 짜게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소금이 진할 때는 우리 속에 갈증을 일으킵니다. 짠맛이 강렬하면 갈증이 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내 안에 예수님으로 진해져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강렬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천국에 대해서 갈증을 일으키게 해야 합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찾아와서 '당신의 사는 모습을 보니 예수님을 알고 싶소' 하는 열정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당신이 믿는 예수를 알려주시오.'라는 소리를 들어보셨습니까 이것이 바로 갈증나게 하는 겁니다. 내가 소금이라고 한다면 내 존재가 들어가는 곳마다 다른 사람에게 갈증을 일으켜야 합니다.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내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는 사회적으로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바라볼 때마다 영생에 대한 갈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다른 사람의 심령을 갈증나게 해야 합니다. 안 믿는 남편이 비록 현재 교회를 나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부인을 보면서 믿는 것에 대한 갈증을 일으켜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갈증을 일으켜야 됩니다. 나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진리에 대하여,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천국에 대하여 갈증을 일으키는 존재가 되시기 바랍니다.

소금이 맛을 내려면

1. 소금은 녹아야 합니다.

소금이 자기 역할을 하려면 소금이 녹아 없어져야 합니다. 소금이 덩어리로 있으면 모양은 소금이나 맛이 없습니다. 만일 소금이 자기 모습을 그대로 가지면 자기 구실을 못합니다. 아주 녹아 없어져야 소금이 소금 노릇을 하게 됩니다.
소금이 녹는다는 것은 자기 존재를 희생하는 겁니다. 자기를 죽이고, 포기하고, 다른 존재 속에 스며든다는 겁니다. 이것은 내가 죽고, 내 고집이 죽고, 내 교만이 죽고, 내 자존심이 죽고 자기는 없어지는 겁니다. 만약에 내가 살고, 내 고집이 살고, 내 교만이 살고, 내 자존심이 살고, 내 명예를 살리고 있는 한 소금 맛을 내지 못합니다. 녹아지는 봉사, 희생,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기 존재를 깨뜨리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교회에 가도 거침돌이 되고, 가정에 가도 거침돌이요, 세상에 가도 거침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친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시고 만일 그 소금이 맛을 잃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시골의 어느 동네에 예수 믿는 처녀가 버스 통학을 하다가 안 믿는 총각과 눈이 맞아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안 믿는 시아버지, 시어머니 뜻 맞추고 살기가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교회에 간다고 얼마나 구박을 하는지 나중에는 교회도 못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좋아서 결혼했지만 남편 된 사람도 부인을 구박하고, 술 먹고 오면 부인을 때리기까지 합니다. 시어머니는 남들 다 잘 낳는 아들도 못 낳고 딸만 낳는다고 얼마나 구박을 하는지 도저히 살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밤중에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여 성도는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목사님! 이제는 제가 떠나야겠습니다. 이렇게 구박받느니 떠나야겠는데 친정으로는 못 가겠고 서울로 가야겠습니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목사님은'얘들은 어떻게 하고 떠날려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할머니가 기르겠죠."하면서 극구 떠난다고 했습니다.

이 말에 목사님이 그 부인에게"서울에 가서 뭘 하시려구요."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하는 말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신학교를 다녀서 전도사를 하렵니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에서도 못사는 사람을 누가 전도사로 오라고 한답니까 여기에서 잘해야 전도사도 하는 것이지 여기에서도 못하는 사람이 무슨 전도사를 합니까 당신이 여기에서 소금처럼 녹아지시오. 완전히 녹아져서 이 가문에 맛을 내고 그때 나에게 와서 서울로 간다고 하면 내가 장학금을 주겠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된다고 했으니 여기에서 완전히 죽었다 하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시오. 그리고 나를 만나러 오시오."

그 부인은 그 때부터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새벽마다 나와 기도하면서 자기 존재를 완전히 깨뜨렸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때리면 맞고, 시어머니가 뭐라고 구박하면 "어머니 마음을 불편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고 울면서 웃으면서 자기는 죽었다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1년 동안 이렇게 사니까 시어머니가 그리스도에게 갈증을 느껴서 교회에 나왔고 나중에는 시아버지와 남편까지도 예수님에 대해서 갈증을 느껴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자신을 살펴보십시다. 나는 세상의 소금으로 살고 있는가, 나 한 사람 때문에 이 세상 어느 곳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요. 내 가정이 나 때문에 변화되고 직장이 변화되고 있는지요. 우리는 나 때문에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변화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어느 곳에 들어가든지 소금으로 녹아지기를 바랍니다.

맛 잃은 소금

그런데 예수님이"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맛 잃은 소금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맛을 내지 못하는 소금은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소금이 아닙니다. 소금은 소금 맛을 내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의 심판을 받게 될 때 롯의 처가 뒤를 돌아보아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왜 소금기둥이 되었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소금 노릇을 못해서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자기 가정에서 자기가 사는 곳에서 소금처럼 녹아지지 않았습니다. 썩는 사회에 방부제 역할을 못했습니다. 맛을 내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갈증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세상 것에 취해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과 함께 짝지어 살다가 롯의 처는 녹아지는 소금이 아니라 소금기둥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됐습니다. 마땅히 맛을 내야하는데 맛을 내지 못하면 롯의 부인처럼 소금기둥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천국에 가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직장과 사회에서 소금기둥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녹아서 맛을 낼지언정 소금기둥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믿는 사람 중에 세상 사람보다 자신감도 없고, 용기도 없고, 세상 사람보다 기쁨도 없고 행복도 없다면 참으로 비참한 겁니다.
예수를 믿었으면 믿는 맛으로 살아야지 믿으면서 세상맛으로는 못삽니다. 믿으면서 세상맛으로 살려고 하면 더 괴롭기만 합니다. 괴로운 예수 믿고 천당 갈지 안 갈지도 모르는 예수를 믿으면 안됩니다. 기왕에 믿었으면 믿는 맛으로 살아야 합니다. 롯의 처는 예수 믿으면서도 세상맛으로 살려고 했던 맛 잃은 그리스도인의 표본이요, 버림받은 자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은 이 소금과 빛의 말씀을 하시기 전에 팔복에 대한 말씀을 미리 하셨습니다. 소금이 맛이 있듯이 그리스도인은 맛이 있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심령이 가난한 맛은 전적인 하나님 의존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자기 죄에 대해서 애통하고, 진실하게 살려고 애통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려고 애통합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맛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맛은 하나님을 찾는 마음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맛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맛으로 하나님을 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맛으로 세상의 화목제물이 됩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정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이 소금의 맛입니다.
예수님은 이 팔 복의 말씀을 마친 후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우리에게 이런 맛이 없으면 맛을 잃은 겁니다. 오늘 말씀의 포인트는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여기에 있습니다. 소금은 맛을 잃지 않으면 소금입니다. 그러나 소금이 맛을 잃으면 소금이 아닙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두 군데서 버림을 당합니다. 주인이 버리고 세상 사람들이 밟습니다.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이 세상 어떤 것도 한 가지 이상 가치가 있습니다. 나무도 열매가 없으면 땔감으로 씁니다. 그런데 소금이 맛을 잃으면 쓸 곳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맛을 잃으면 안 믿는 사람만도 못합니다.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구실을 제대로 못하면 나도 죽고 남도 죽게 합니다. 나도 괴롭고 남도 괴롭게 합니다.
초대교회의 문헌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만일 유대인들이 배교했다가 다시 돌아오면 그가 참회하는 의미에서 회당 문에 가로누워 사람들로 하여금 들어갈 때에 밟고 지나가도록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나는 맛 잃은 소금이니 나를 밟고 지나가시오' 하게 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려면 똑똑히 믿어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서 예수 맛도 없고, 세상맛도 못보고 사는 사람은 오히려 더 불쌍하게 보일 뿐입니다. 맛 잃은 소금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으면서 예수 맛도 없고 세상맛도 못보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라의 주권을 일제에 빼앗겼을 때 독립을 외쳤던 독립운동가들은 예수 맛을 가지고 살았던 세상의 소금이었습니다. 작금의 한반도의 현실을 보면 썩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맛을 잃어 버렸습니다. 도 순결을 잃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주님은 우리들을 향하여 세상에서 소금이 되라고 부르셨습니다. 방부제가 되라고 부르셨습니다. 맛을 내라고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맛을 가지고 소금처럼 살아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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