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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실한 가지치기 (요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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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송기현 목사

  지금은 과수원에서 마지막 가지손질을 하는 철입니다. 사실 지금 가지치기하는 것은 좀 늦은 가지치기일 것입니다. 입춘도 우수 다 지나갔습니다. 벌써 성급한 나무는 새순을 틔우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설교의 기본을 제공하고 있는 내용은 수주 전에 인터넷 싸이트 다음칼럼 송기현의 살림운동에 써서 올린 "가지치기"라는 제목의 칼럼입니다. 과수원을 하는 농부들은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가지가 확연하게 들어난 겨울철이나 이른 봄철에 가지치기를 합니다. 가지치기는 농부에게는 수고롭고 힘든 일이며, 나무에게 있어서는 잠시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가지치기는 역지나 죽은 가지, 병든가지나 불필요하게 무성한 가지 등을 골라 잘라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가지는 좋은 나무 모양을 형성하고 좋은 열매를 맺는데 방해거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과감하게 잘라내야 하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의 가정에 정원수나 과일나무가 심겨져 있다고 하면 착실하게 가지치기를 실시하시기를 바랍니다. 아깝다고 불필요한 가지를 남겨놓으면 오히려 나무에 장애만 일으킬뿐 좋은 일은 없습니다. 

  가지치기를 아니하면 나무의 성장에 사용되어야 하고 열매로 가야할 영양분이 불필요한 다른 가지로 가버립니다. 그리고 나중 무더운 여름날에 불필요한 가지와 무성한 잎사귀가 바람을 막고 빛을 가리기 때문에 병충해를 불러오기도 하고 가지를 고사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람을 못이겨 넘어져 버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무에 따라서는 수형이 그 열매와 상당한 연관성이 있는데 가지치기를 하지 아니하면 풍성한 열매를 맺는데 좋지 않는 영향을 줍니다. 또 하나는 적절한 무게 분배를 나무에게 해주지 아니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무의 크기와 모양을 조절하고 미적 가치를 높일 뿐만 아니라 건강한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수명을 연장시키고 거기다가 품질 좋은 열매와 풍성한 열매를 위해서는 가지치기란 좋은 과원지기가 나무에게 해야 할 불가피한 조처입니다. 가지키기는 반드시 해야할 수고인 것입니다. 

  우리 영혼도 생명 있는 나무와 같습니다. 그리고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할 영적 나무인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나무들입니다. 그런데 교만은 좋은 수형의 나무를 만들고 좋은 열매 맺는데 불필요한 가지일 뿐입니다. 우울한 마음의 가지 두려움의 가지, 공포의 가지는 자기를 찌르는 역지와 같습니다. 질투, 원망, 성급함 등은 좋은 수형의 나무를 만들고 좋은 열매 맺는데 불필요한 가지일 뿐입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영양만 빼앗아갈 뿐입니다. 이런 가지들은 그늘과 어둠을 만들어 낼 뿐입니다. 그래서 병충해를 일으키고 비젼을 고사시키고 꿈을 갈가먹어버리고 자신감을 상실하게 하며 수명을 단축하게 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영양만 빼앗아가고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나의 생각과 습관과 행동을 신실하게 가지치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징기스칸은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을 모두 없애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징기스칸이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과원지기였으며 가장 현명한 정원사였던 것입니다.

  야곱이 이전에 형의 낯을 피하여 도망갈때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께 서원했었습니다(28:20-22).'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제가 안전하게 저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 게 해주시면, 주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제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 중에 열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서원했었던 야곱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지켜주셨지만 세겜에 머물면서 벧엘에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세겜에서 야곱의 가정은 씼을 수 없는 환난을 만났습니다. 환난의 이유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약속한 장소로 가지 않고 세상 가운데 살려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야곱에게 환난 중에 "벧엘로 올라가라"고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야곱은 자기 가정을 정결케 하기 위하여 (35:2~ 12) 이방 신상을 다 버릴 것을 명합니다. 라헬은 친정집에서 훔쳐온 가정수호신 '드라빔' 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세겜 사람들에게 더럽혀지고 세속화 된 것을 다씻어내는 의미로 몸을 깨끗이 씻도록 했습니다. 옷도 갈아 입도록 하는데 이는 디나의 유별난 옷이 범죄를 유발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시내산 아래서 이스라엘도 옷을 빨고 삼 일을 기다렸습니다.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로 더렵혀 진 인격의 옷을 보혈에 빨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방 신상과 귀고리를 세겜 근처 상수리 나무 아래 묻었습니다. 성도들은 이와 같이 전에 귀하게 여기던 것을 이제는 배설물같이 여기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으로 강화된 야곱 일행을 추격하는 자는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을 때 공연히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약해지는 것입니다. 믿음이 강해지면 담대해지고 주변 사람들도 그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테네시주 체타누가 시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한 무리의 교인들이 진흙 구덩이를 깊이 파놓고 그 주위에 둘러서 있고 목사님은 창세기 35장 2절을 읽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이에 지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힌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이방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이 말씀이 끝난 후 모여 있던 성도들은 구덩이 속으로 여러가지 물건들을 던져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구덩이에 던져 넣은 것 중에는 시계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배시간 마다 예배가 얼마나 남았나 신경을 쓰며 에배에 태만한 교인들이 앞으로는 그렇지 않겠다는 약속이며 결심이었습니다. 계속해서 CD. DVD, 음난한 소설책들과 잡지, 티비수상기, 여인들은 짧은 치마와 바지와 의상들, 남자들은 담배갑, 술병 구덩이에는 금새 물건들로 수북이 쌓였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이 진기한 관경을 지켜보고 있던 신문기자들에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구덩이를 둘러싼 이 사람들은 음흉한 사람들도 아니고 정신이상자나 광신자들도 아니오 다만 믿음을 경주하는데 방해가 되는 자신들의 우상들을 버리고 시어 하는 평범한 교인들일 뿐이요"

  야곱과 그의 가족들은 벧엘에 올라가 제단을 쌓고 엘벧엘'이라 불렀습니다. 이때에 주께서 나타나셔서 복을 주셨습니다. 주는 네 이름이 이제부터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나는 전능자 하나님이다. 너는 생육하고 번성하리라. 여러 민족 여러 왕이 네게서 나오리라.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너와 네 후손에 게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이 신실하게 가지치기를 못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죽음의 냄세를 피우게 되었습니다. 환난을 끌어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실하게 가지치기를 했을 때 죽음의 냄세가 사라졌습니다. 환난은 물러갔습니다. 그리고 축복이 임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과원지기이며 어떤 정원사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내면의 정원과 과수원에 대해 어떤 과원지기, 어떤 정원사 노릇을 하고 있습니까? 과연 온유와 인내심을 가지고 신실하게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탐욕과 집착으로 혹은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무관심과 무지로 가지치기를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곧  새 봄이 닥쳐오고 있습니다. 새싹이 돋아나기 전에 가지치기를 마치셔야 합니다. 그래서 올해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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