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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창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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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충웅 목사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고향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 네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쳐 주는 이름이 될 것이다. 너에게 복을 비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내릴 것이다.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저주를 내리리라. 세상 사람들이 네 덕을 입을 것이다.”(창세기 12:1-3,공동번역)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거기는 특별히 주목할 만한 몇 가지 상황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을 때, 그 다음으로 떠나라고 지시했던 땅, 셋째로 가라고 명하셨던 땅 끝으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 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아버지 데라와 함께 갈데아 우르라는 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메소포타미아의 하란(Haran)이란 곳에 옮겨와 일흔 다섯 살까지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장사를 했습니다. 아브라함도 우상숭배자였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직 할례를 받지도 않았습니다. 그리 잘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라 하시는 대로 합니다. 제법 자리를 잡고 살만한데 떠나라 하십니다. 유브라데 강가라 농사도 짓고 짐승도 기르고 살기에 적당한 곳이었습니다. 여간해서 떠나기 어렵습니다. 요즈음처럼 이사하기 쉬운 것이 아닙니다. 아시하면 챙겨야 할 것이 많습니다. 차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껏 짐승을 의존해야 합니다. 또 이상한 것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릅니다. 다만 하나님만 믿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 데라를 보십시오. 너 무슨 꿈꾸는 말을 하느냐고 꾸짖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계속 살자고 우기지도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상한 행동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누구의 말도 따르지 못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좀 모자라는, 아니 한참 모자라는 시골 할아버지 같습니다. 이곳에 지진이 일어납니까? 태풍이 붑니까? 돌림병이 일어납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떠나라고 하십니다. 떠나라고 하시는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는다고들 말합니다. 떠나라 한다고 주섬주섬 이삿짐을 챙기는 아브라함이 더 이해가 되지 않지요. 죽을 고생하고 일군 살림 밑천을 그냥 두고 가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믿음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신앙생활 할 때 내 생각과 딱 맞아 떨어져야 믿으려고 합니다. 어디 “내”가 하나님입니까? 내가 뭡니까? 그리 잘났습니까? 그런데 언제나 “나”가 표준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럴만한 위인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해바라기형 신앙입니다. 멋지지요. 오늘 같은 시대에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입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를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 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1-3) 저도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란 말씀으로 같이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Ⅰ. 떠나라고 하십니다.

지금은 이사가 돈이 문제지 어려운 것이 별로 없습니다. 국내는 물론입니다. 외국도 그래요. 이삿짐센터에서 짐을 꾸려줍니다. 이사 가야 하는 곳까지 옮겨다 줍니다. 집에서 이삿짐을 내려 정리까지 해 줍니다. 얼마나 편리합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이 살던 그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 곳에 대대로 뿌리 내려 살았습니다. 그 당시 이사는 흉악범이라 동리에서 쫒아냅니다. 집안이 망해 도망을 칩니다. 그 외에 부득이한 사정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당시에 이사하는 사람은 저주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하면 욕을 합니다. 물을 퍼붓거나 흙을 뒤집어씌우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어느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떠나라 하신다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는 순종했습니다. 순종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하나님 무엇 때문입니까?” “어디로 가야 합니까?”라고 할 법도 합니다. 그는 따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왜 본토를 떠나야 합니까? 하나님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불확실한 것을 위해 확실한 것을 버려야 합니까?” 정말 아브라함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손에 있는 한 마리의 새는 날아다니는 열 마리의 새 보다 더 가치 있습니다. 다른 곳에 간다는 것은 모험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떠나야 하는 이유를 납득할 만큼 답을 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말씀 잘 아시지요.

어느 날 예수님은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다 사래질을 하면서 주님을 따르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한 사람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니 장례를 치르게 해 달라(마 8:21) 합니다. 다른 한 사람은 밭을 샀으니 가 봐야겠다고 합니다. 또 한 사람은 소 다섯 마리를 샀으니 소가 밭가는 훈련을 시켜야 한다고 합니다.(마 14:18-20) 어떤 사람은 장가들었으니 신혼이어서 가족을 두고 떠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모세나 예레미야를 보세요. 그들은 기독교 역사에 걸출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처음 부름 받을 때 못 가겠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저는 어느 약국에서 기다릴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여성잡지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귀한 아들이 30대입니다. 그는 때로는 남편 같습니다. 때로는 연인 같습니다. 때로는 아버지 같은 그의 목숨이자 자랑이었습니다. 그의 태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사고로 죽었습니다. 어머니의 가슴이 어떻겠습니까? 그 사람이 텔레비전 드라마에 3개나 출연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는 드라마에서 푼수처럼 떠들고 웃는 역도 있습니다. 그 아들이 죽고 장례 치른 이틀 만에 능청스럽게 수다를 떠는 연기를 했답니다. 우리나라의 코미디언의 대부인 모씨는 아버지가 세상 떠난 그날 밤에도 세상 사람의 배꼽을 쥐는 웃는 연기를 했답니다. 이게 프로정신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대꾸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지는 것 아닙니다. 어떤 이유도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명령에 이유 없이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만일” “그리고” 라는 말을 하나님께는 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된다고 하는 믿음 뿐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안목에서 보면 말이 안 됩니다. 세상에 이런 멍청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 맹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맹목적이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누구와 함께 가고 있는지는 압니다. 그를 이끄시는 분은 분명히 올바른 길로 이끄신다고 믿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외국에서 특수한 목회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꼭 필요한 돈이 엄청 모자랍니다. 그래서 그는 아는 사람들에게 “내가 한국에 돈 받으러 갑니다. 기도해 주세요.”하고 미국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누구에게도 받을 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목사님이 빌려주었거나 맡겨놓은 돈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는 한국에 왔습니다. 아는 장로님, 집사님에게 가서 “하나님이 맡겨 놓으신 돈을 좀 돌려 주셔야겠습니다. 그 액수는 얼마입니다.” 놀라겠지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처음은 당황했습니다. 성령님이 감동을 주셔서 어떤 이는 몇 억을, 어떤 이는 수 천 만원을, 어떤 이는 몇 백 만원을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국민일보에 실린 내용입니다. 부산 수영로 교회 김oo장로님, 그는 한국 법률구조협회 회장입니다. 돈이 없어 변호사를 사지 못하는 사람을 무료로 변론해 주는 일을 하는 변호사입니다. 그는 자기 부인의 권유에 따라 교회를 나갔습니다. 그가 남전도회에 가입을 했습니다. 어느 날 예배당을 짓는다고 (지금 서울이남 제일 큰 교회) 하기에 선뜻 자기가 사는 아파트를 팔아 헌금했답니다. 매주 감림산 기도원에 가서 철야 기도를 합니다. 그는 목사님의 목회 방침에 거침없는 순종형 입니다. 그 기사가 (2005.2.11) 국민일보에 크게 났습니다. 그는 따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Ⅱ.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답니다.

위대한 약속이 있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순간입니다. 위대한 삶은 위대한 약속에 의해 단련됩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보상을 약속하십니다.

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정말 이는 아브라함에게는 눈에 빛이 나는 약속입니다. 그는 지금 일흔 다섯 노인입니다. 아들이 없습니다. 당시 다산(多産)이 큰 부(富)이며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큰 민족을 이룬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도 또한 현실적으로는 믿기 쉬운 것이 아닙니다. 어느 천 년에 큰 민족을 이루겠습니까? 그는 믿었습니다. 그는 고향을 떠납니다. 다 잃는 것 같습니다. 약속을 믿었습니다.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된다 하시면 된다고 믿었습니다. 지금 피 붙이 하나 없지만 큰 민족을 이룬다 하시니 그저 좋을 뿐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토 달지 않았습니다. 믿고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아들 하나만 주셔도 감사한데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다니 보통 일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삶의 위안을 주십니다. 그러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통이 크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약속을 하시면서 이 곳을 떠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더딜 때가 있습니다. 더디다고 떼를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 계산법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② 네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고 하십니다. (12: 1-3에)
Now the Lord said to Abram
"Go forth from your country,
And form your relatives
And form your father's house,
To the land which I will show you :
And you will make you a great nation,
And I will bless you,
And make your name great.
And so you shall be a blessing
And I will bless those who bless you,
And the one who curses you I will curse,
And in you all the families of the earth shall be blessed.
그는 별로 알려진 인물이 아닙니다. 그가 세계의 유명인사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또 그가 복의 근원이 된다.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람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축복을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만하면 떠날 마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아무 것도 약속하지 않으셔도 떠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재목됨을 아셨습니다. 그의 그릇을 아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만 좋은 것 아닙니다. 그의 인간됨이 대단합니다. 그는 늘 긍정적입니다. 적극적입니다. 순종형입니다. 실천(행동)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고향 떠나는 것쯤은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고향 사람들은 이런 아브라함을 측은히 여겼습니다. 앞뒤가 꽉 막힌 대화가 안 되는 푼수 정도로 보았습니다. 이렇게 자리 잡고 살다가 신들린 사람처럼 이삿짐을 꾸리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생각이 인간적인 각도에서 보면 맞는 말입니다.

맺는 말 :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아브람이 이곳에서 자리 잡고 걱정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옮기라 하십니다. 이유도 말씀 하시지 않으십니다. 어디로 가라고도 말씀이 없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를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 12:1-3)하셨습니다. 이런 엄청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가 됩니다. 그는 그를 인하여 모든 사람과 나라가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이렇게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설령 이런 복을 약속하지 않으셔도 뚜벅 뚜벅 실천할 위인입니다. 그는 말보다 순종(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 주 안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5.3.6 -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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