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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구조조정 (행 4:33 -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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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성덕 목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글로리아 김(61, 한국명 김연응) 할머니는
매일 새벽 2시면 눈을 뜹니다.
부엌으로 가서 커다란 냄비에 감자와 토마토, 국수가락을 넣은 수프를 끓입니다. 비닐 봉지에 빵과 과일도 챙깁니다. 총 200인 분입니다. 20년이나 된 낡은 승합차에 음식을 싣고 거리로 나서
새벽 4시. 공원과 거리를 누비다가 노숙자를 찾아내면
클랙션을 빵빵 울리면서 "할렐루야"를 외친 뒤 음식을 건넵니다.
이것이 지난 18년간 변함없는 할머니의 일과입니다.
LA 노숙자들 사이에 "수호천사"로 통하는 김 할머니는
[ 내가 돕지 않으면 홈리스들이 굶어 죽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느냐 ] 며
노숙자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샤워장까지 딸린 휴식처를 마련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합니다.

숭의여고를 나와 1976년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간호사로 플로리다에서 일하면서 모셔온 어머니가 작고하면서
어머니 앞으로 나오는 연금을 꼬박꼬박 모아 불우이웃 돕기를 시작했습니다. 86년에 LA에서 "시온복음선교회"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노숙자 돕기에 나섰습니다.
이후 18년이 지나도록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김없이 끼니를 챙겨주는 할머니를 LA 거리 노숙자들은 사랑과 존경을 실어 할머니를 "마마"라 부릅니다. 할머니가 보살피는 홈리스는 백인, 흑인, 황인, 히스패닉계 등
피부색을 문제시하지 않습니다.
김 할머니의 선행은 현지 신문인 LA타임스에 여러 차례 기사화 되기도 했습니다. (이 글은 020810 자의 조선일보에서 인용되었습니다.)
글로리아 김 할머니는 한국인의 모습을 한 천사라고 합니다.
아니 작은 예수라 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은혜를 주신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선한 일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성령이 임했을 때 놀라운 사건과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을 합니다. 그러니 설교도 달라졌습니다. 성령이 임하니 비전이 생깁니다.
Ne plus ultra 의 삶이 plus ultra 의 삶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과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삶에 구조조정이 일어난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나타난 변화가 오늘 우리 교회에도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에 구조조정이 일어났다고 했는데
그 구조조정 즉 삶의 변화가 무엇인냐?

I.M.F 이후 우리는 구조조정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너무 관습화 경직화된 구조로서는 도저히 변화에 대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분야에서 구조조정이 이뤄진 것입니다.
구조조정이란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권력의 중심이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신앙적으로 보면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즉 초대교회 신앙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구조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오순절 성령의 역사로 새롭게 태어난 공동체가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 속에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보여줍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 받아 성령공동체가 되니
삶의 형태가 이렇게 변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보니 32절에
[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 라고 합니다.
성령이 임하니 새로운 공동체가 이뤄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사회가 이뤄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입니다.
우리말에 잊혀져 가는 말 가운데 하나가 두레라는 말입니다.
김진홍 목사님의 두레 마을이 생겨
전혀 생소한 말 같이 듣기지는 아니하지만
두레 정신이 사라졌기 때문에 두레라는 말이 퇴색되어진 것입니다.
두레 정신이 무엇인가? 바로 공동체 정신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본래부터 태생적으로 서로가 돕고 이끌어주는 삶, 즉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귀한 전통이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약화돼버려
「두레 정신」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글자로만 남게 된 것입니다.
저희 어릴 적에 시골에 우물물을 퍼 올리는 바가지를 「두레박」이라 했지요
옛날에는 한 골짜기에 마을이 생길 경우 우물을 중심으로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섰습니다.
우물은 주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을사람이 같이 쓰는 공동우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물물을 뜨는 바가지도 공동으로 쓰기 때문에
「두레박」이라고 불렀지요.
그리고 여럿이 함께 둘러앉아 사용하던 둥근 상을 「두레상」이라 불렀으며, 농촌에서 농번기에 서로 돌아가며 품앗이하던 행위를
「두레 품앗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농촌 두레가 일제에 대한 저항운동의 온상임을 파악한 일본 헌병들이 두레 전통을 조직적으로 파괴하였다고 합니다.
제가 이 글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하~! 사탄이란 녀석도 오늘 교회안에 두레 정신 즉 공동체 정신을
깨트려 놓으려고 온갖 수단 방법을 강구하겠구나.
여기에 눈이 뜨여져야 합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게 하는 것
즉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이 되니
물건을 서로 통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통용했다는 말은 나누었다는 말입니다.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는 것은 서로의 필요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저는 제가 받은 선물 중 가장 큰 선물을 하나 자랑할까 합니다.
신학생 시절 주암산 수양관에서 투병생활을 하던 중
제 옆방에 위장병으로 고생하는 고신 교단의 임 전도사란 분
밤 12시쯤 되었는데 제 방에 찾아와서
바지 새끼 주머니에서 돈 700원을 끄집어내어 내게 건너 줍니다.
[ 아니 전도사님 나는 그래도 가족들이 있어 도움을 받는데
전도사님은 보니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이걸 나 주면 어떻게 합니까? ] 하니
[ 김 전도사 나는 돈이 있어도 못 먹는다 아이가
그러니 김전도사는 먹을 수 있으니 이것 가지고 맛있는 것 싸 먹어라 ]
생각만 하면 이 돈 700원은 늘 제 가슴을 따뜻하게 합니다.
비록 몸은 병들었다 해도 그 마음에 예수님이 계시니
자신의 형편보다 옆방의 김전도사가 더 불쌍히 보였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나눔은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인 분배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 그들은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며 다른 지체들과 열린 마음으로 교제하였고,
자기 소유를 함께 나누는 데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욕심, 다툼, 원망과 시비, 시기와 질투심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내 것이 주의 것으로 바뀐 사람들이었습니다.
주의 것을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삶은 바로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신학자 <본 훼퍼>는 성도교제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교제를 알기를 원하신다. ]
진정한 교제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가족이 되어 삶을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변화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2. 이러한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다고 말합니까?(33절)
33절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입어]
사도들이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교인들이 은혜를 받게되고
은혜를 받으니 삶이 달라진 것입니다.
나눔이 일어나고 구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 감동을 받으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 참 맞는 말입니다.
은혜받은 성도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회개를 합니다. 신앙고백을 합니다.
사랑의 고백을 합니다.
은혜 받은 성도의 마음도 닫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감사를 하고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특히 은혜받은 성도의 주머니도 닫혀 있을 수 없습니다.
은혜를 받고 보니 주머니가 열려
하나님 앞에 바칩니다. 특히 불쌍한 사람에게 구제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에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놀라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성령을 선물로 받으라 할 때도
베드로의 설교의 핵심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려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표적과 기사가 나타날 때도
베드로의 설교의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오늘 신앙생활의 변화의 중심에도
주 예수의 부활 즉 살아계신 주님이 계시니
사람들이 은혜를 받아 입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주머니가 열린 것입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로 믿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자라면
나의 신앙생활에도 이런 변화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이렇게 성령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에
성령의 구테타가 일어나니 삶의 구조조정이 된 것입니다.
삶의 구조조정이 되면 꼭 나타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물질관이 정립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물질관은 어떠합니까?

1) 32절 제 것이라 하는 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지금 까지 내 것인 줄 알았는데
성령충만 즉 하나님의 주권적인 질서가 세워지니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질서가 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해서 말씀드립니다.
401반 은사배치 사역 교제에 보면 특히 구제의 은사에 대해 이렇게 정의합니다.
[ 하나님의 사역에 필요한 돈과 물질을 기쁘고 후하게 드릴 수 있도록 하나님이 부여해 주신 능력 ]
이 사람들은 [ 하나님께 얼마나 드려야 할까?를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기 이해 꼭 얼마나 필요한 돈은 얼마인가? 묻는다 ]
이게 무슨 말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소유권 인정 문제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 하나님의 사역을 확장시키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돈을 버는 특별한 능력을 소유하기도 한다 ]
저는 우리 교회에 구제의 은사가 많은 사람에게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중에서-
[ 이 세상 모든 것은 잠시 내 안에 머물다 가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모두 내 것이란 이름으로 붙잡아두면 스스로 불행해집니다.
게다가 더 불행한 것은 베풀 대상을 나의 잣대로 감히 저울질하는 마음입니다. 대상을 고르지 않고 베푸는 자연으로부터 우린 깨달아야 합니다.
주는 것의 행복, 주는 마음의 평온함을 아는 자연스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2) 32절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물질은 남을 위해 쓰라고 맡겨 준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청지기 정신입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청지기 정신이 투철한 사람에게 많은 것을 맡기십니다.
눅12:41절 이하에 신실한 청지기 비유를 들면서
[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
성경의 배경이 되고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지형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특히 복음서의 배경이 되는 갈릴리 호수는
동북쪽으로부터 요단강 물을 받아서
그 물을 서남쪽으로 흘려보내는 살아 있는 호수입니다.
이스라엘 전체 물 공급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호수에는 여러 종류의 물고기가 살고 있습니다.
연간 어획량도 5000톤에 달한다고 합니다.
1964년 완공된 파이프라인을 통해 이스라엘 전역에 물을 공급함으로써 불모의 땅을 초지와 농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사해는 요단강으로부터 매일 많은 양의 물을 받아들이지만
어느 곳으로도 물을 나누지 않습니다.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양열에 물이 증발해서 염분이 쌓여
죽음의 바다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물에서는 생명체가 살 수 없습니다.
똑같은 요단강 물을 받으면서 갈릴리 호수는 살아있는 호수지만
사해는 죽은 호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물을 받아들이고 난 다음 그것을 자꾸 흘려보내고 나누는
갈릴리 호수는 살아있지만 받아만 들이고 나누지 않는 사해는 소금바다, 죽음의 바다가 되고 만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 신자가 되시렵니까? 아니면 사해 신자가 되시렵니까?
그리고 이스라엘의 풍습 가운데도
이스라엘에서는 밭에서 곡식을 거둘 때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떨어진 이삭을 줍지 않도록 했습니다.
포도원의 열매를 딸 때에도 다 따지 않게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연명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것은 아주 중요한 규례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돈 벌어 선한 일에 사용하는 선한 물질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천국에 쌓아두는 물질이 되어야 합니다.
집 팔아 밭 팔아 사도들 발 앞에 두었다는 것은
바로 교회에 바쳤다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에 바쳤다는 것은 하나님께 바쳤다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쌓아둔 물질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갔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 그래, 그러면 네 재물 문제에 대해서 들어보자꾸나 ]
이 사람이 자신만만하게 대답을 합니다.
[ 제가 가지고 있었던 부동산이 시가로 200억 원은 될 겁니다.
유가증권과 현찰을 모두 합하면…] 하나님이 말을 막으셨습니다.
[ 야, 나는 네가 모은 재산이 얼마인지에는 관심이 없단다.
네가 재테크를 얼마나 잘했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간단하게 한 가지만 말하면 된다.
네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쓴 것이 얼마나 되느냐? ]
천국에서 재산을 계산하는 방식은 이와 같습니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쓴 것만이 ‘내 돈’입니다.
내가 쓴 돈 중에서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고 나눈 것이
참된 의미에서 내 재물입니다.

위와같이 성령공동체인 초대교회는
바로 사랑의 공동체, 나눔 공동체인 것입니다.

필요를 따라 나눠주는 공동체 - 나눔 공동체
이런 공동체가 이 땅에서 이뤄진다는 것 보통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않고는 절대로 이뤄질 수 없는 공동체입니다.

김 진홍 목사님이 이런 목표를 세우고 시작한 두레마을을 시작했는데 실천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합니다.
모인 가족 모두가 공동체 생활에 뜻을 품은 대단한 크리스천들이었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온갖 갈등이 여전히 나타나더라는 것입니다.
한 번은 식사시간에 갈치요리가 나왔습니다.
무를 숭숭 썰어 넣고 갈치를 지진 요리 접시가 상위에 올랐습니다.
공동체 상인 「두레상」에 두레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시작하는데
호남에서 온 한 주부가 『우리 집 애가 갈치를 좋아한다』며
갈치 접시를 끌어다 자기 아들 앞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렇게 하니 경상도에서 온 아줌마가 팔을 걷어붙이며 말합니다.
[ 와 이러노. 누 집 애는 갈치 싫어하는 줄로 아는 갑제 ]
경상도 아줌마는 갈치 접시를 끌어다 자기 아이 앞에 갖다 놓았습니다. 그러니 호남 아줌마가 가만 있을 턱이 없습니다.
[ 왜 이런 디어. 그 집 애는 숱하게 먹어버렸어야.
오늘만큼은 우리 앨 멕여야겠당게 ]
[ 야, 이 예팬네야, 언 눔은 인삼 묵고 언 눔은 배추뿌리 묵나 ]
이렇게 실랑이를 하며 갈치 접시를 서로 자기 아이 앞으로 끌어당기는 과정에 국물이 쏟아지고 무 토막과 갈치 토막들이 온 상에 엎질러졌습니다. 그런 광경을 보며 공동체 안의 남자들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합니다. <8>
[ 참말로 공동체는 여자들이 망치는구먼.
공동체가 되려면 여자들은 빠져야 해.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여자를 창조한 것은 큰 실수야 ]
남자들이 이런 말을 하며 공동체의 장래를 염려했습니다.
그러나 몇 달 후에는 남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는데
여자들의 다툼은 그야말로 봄 날씨에 불과했습니다.
여자들의 다툼은 기껏해야 반찬그릇 엎는 정도였으나,
남자들의 싸움은 아예 두레마을을 뿌리까지 흔들리게 하는 큰 다툼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두레마을 가족들은 뜻을 품고 모인 사람들이기에
열심히 일하며 터를 닦아 집을 짓고 우물을 파고
양계장을 지어 병아리를 길렀다.
땀을 모아 잘 사는 공동체를 이룩하겠다고
그야말로 밤낮 구별 없이 일하고 그렇게 하여 닭과 돼지를 기르고 농사를 지어며 오늘의 공동체를 이뤘다고 합니다.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는 교회, 은혜 받은 교회의 특징인 것입니다.
저도 근간에 와서 목회 고민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한 가지가
어떻게 하면 이웃 교회와 나눌 수 있는 목회를 할 수 있나? 입니다.
1) 성주 달성 고령 군에 있는 미자립 교회를
우리 내일교회가 책임지게 하옵소서
2) 이웃의 개척교회 목회자들에게 목회 비전을 나누게 하옵소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세상이고 교회고 간에 점점 이기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안 그래야지 하면서 점점 속물근성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형제와 나누고 이웃교회와 나누는 내일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 받은 초대교회 성령공동체가 이뤄지면서
삶의 구조조정이 일어나 사랑의 공동체 나눔의 공동체
나아가 구제하는 일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서 초대교회 안에 한 인물을 소개하는 데
바로 바나바라는 인물입니다.

바나바를 여기서 소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는 사도는 아니였지마는 저는 사도못지 않게
하나님 나라의 유익하고 유능한 일군입니다.
성경에 평신도로서 가장 본이 되는 인물이 바나바입니다.
사도행전이 전개되면서
성령의 역사가 베드로를 통해 시작을 하면서
바울을 통해 사도행전의 막을 내립니다.
그 중간에 바나바라는 인물이 없었더라면
사도행전의 역사 어떻게 바뀌어졌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는 이름 그대로 돕는자의 사명을 잘 감당한 일군인 것입니다.
바나바의 행적에 대해서는 다음 말씀드리기로 하고
오늘 본문에 바나바를 소개하면서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36절 [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하니
번역하면 권위자라 ] 고 합니다.
이 말은 바나바는 성령 받아
1. 변화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요셉이란 이름은 뛰어난 자란 뜻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즉 돕는 자라고 했다는 것은
변화된 일군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측면에서 보면
하나님이 교회에 필요한 인물은 똑똑한 사람보다
남 도울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산 장기려 박사(1911-1995)는 평생을 가난한 환자들에게
인술을 베푸느라 가난한 생활을 면치 못했습니다.
어느 해 정월 초하룻날 아침이었습니다.
그 집에 머물고 있던 제자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세배를 드렸습니다
세배를 받은 박사님은 덕담을 해 주였습니다.
[ 금년에는 나처럼 살아보게. ]
깊은 감동을 받았지만 제자는 모르는 척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 선생님처럼 살면 바보 되게요? ]
박사님은 껄껄 웃음을 그치고는 제자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습니다.
[ 그렇지. 바보 소리 들으면 성공한 거야.
바보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아나? ] 하더랍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똑똑해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바보들이 그립습니다.
똑똑한 바보들이 절실히 필요한 교회요 세상인 것입니다.
바로 이 글 제목이 똑독한 바보인 것입니다.
예수 믿고 변화되어 진정 똑똑한 바보들 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에게 꼭 필요한 바나바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집 팔아 밭 팔아 바친 사람이 어디 한 두 사람입니까?
그런데 왜 여기서 바나바를 소개합니까?
2. 그것은 하나님이 들어 쓰는 일군은
헌신을 각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생명과 같은 귀중한 것을 바쳐본 경험이 있는 사람
최상의 것을 바칠 수 있는 자만이 수준있는 복을 누릴 줄 압니다.
세상에 제일 겁나는 사람 -각오한 사람입니다.
헌신이 없으면 축복도 없고 행복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헌신해야 행복할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헌신해야 사람도 얻고, 행복도 얻고, 성공도 얻습니다.
사람에게 있는 공허감은 헌신하라는 하나님의 싸인입니다.
나로부터 나가는 것이 없으면 내 안에 꽉 차는 느낌이 없는 것입니다. 외로움도 헌신하라는 싸인입니다. 헌신해야 진정한 친구도 생깁니다.

은혜 받아 하나님께 헌신되어진 일군
남을 위해 헌신하는 일군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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