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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택함받는 교회 (삼상 16: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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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곽주환 목사

요즈음에 재미있는 연구 중에 하나가 동물의 유전자 정보를 캐내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유전자 정보를 담고 있는 지도를 좀더 확실하게 알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발견된 것은 사람을 살찌게 하는 유전 인자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지난 1월에 미국에서 재미있는 책을 한권 발견하였다. 그 책의 제목은 그리스도 몸의 유전자 정보를 찾아라. 성경에도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말하고 있고, 요즈음 몸을 형성하는 유전자 정보에 관한 관심이 많다. 이 두 가지를 합해서 그리스도 몸인 교회의 유전자 정보를 캐낸다는 제목이 매우 관심을 끌었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교회가 새롭게 지어서 입당을 하게 되는데 교회를 좀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영적인 감동이 있어서 교회시리즈 설교를 부활주일까지 전하려고 한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유전자 정보는 무엇일까? 과연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함께 만들어 가기를 원한다.

본문의 말씀을 보라. 사울 왕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과 전쟁을 하게 된다.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어떤 것도 갖고 나오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전쟁에서 이기고 나니 너무나도 탐스러운 것이 많았다.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기름 진 것과 어린 양을 갖고 나왔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다. 그러자 하나님의 영이 사울 왕을 떠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 이새의 집으로 가라. 그곳에서 내가 왕이 될 사람을 정해 놓았으니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사무엘은 떨리는 마음으로 베들레헴 이새의 집으로 내려간다. 사무엘이 보기에 첫째 아들 엘리압을 보니 너무 마음에 들었다. 왕같아 보였다. 그에게 기름을 부으려고 하니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기를, 용모와 키를 보지 말아라. 사람은 외모를 보려니와 나는 중심을 보느니라. 그리고 막내아들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의 후보자로 세우셨다. 그러자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었다.” 택하신 다윗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별이 되게 하셨다. 그 후손을 통하여 예수님이 태어나셨다.

이 본문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 점이 있다. 하나님은 지금도 찾고 계신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를 지금도 찾고 계신다. 일할 만한 사람을 지금도 찾고 계신다. 찾으신 후에는 그를 택하셔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그에게 허락하신다. 찾으시고, 택하시고, 감당케 능력을 부어 주신다.
이것은 각 개인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이고, 교회에도 적용되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찾고 계시고, 택하시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부어 주신다. 예수님의 일하시는 방법을 보라. 수 많은 사람들 중에 제자들을 택하셨다. 열 두명의 제자들 중에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명을 택하셨다. 그 세 명 중에 한명 베드로를 택하셨다. 찾으시고, 택하시고, 능력을 부어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이다.

변화되는 이 시대에 하나님은 지금도 일할 사람을 찾고 계시는데 이 시대에 택함 받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 시대에 택함 받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각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맛있는 거 먹다가, 별 의미 없게 살다가 죽기 보다는, 평생을 살 빼려고 고민하다가 죽기 보다는, 하나님께 택함 받아서, 능력받아 주의 일을 감당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택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시는 분별의 기준이 무엇인가? 사람들 사이에서는 몸짱, 얼짱이 유행이다. 얼짱이 되려고 성형 수술을 하기도 한다. 웰루킹족까지 생겼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멋있게 보일까? 명품을 입고 성형수술을 해서 멋있게 보이려는 생각이다. 어떤 분은 성형 수술하다가 부작용이 일어나서 선풍기 아줌마가 되어 흉측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시는 기준은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중심을 보신다는 말씀이 무엇일까? 지난 올림픽 경기 때에 양궁을 보았다. 멀리서 활을 쏠 때에 정 가운데를 맞추기 위해서 활을 당긴다. 가운데 맞으면 10점이다. 우리의 마음을 양궁의 과녁으로 생각해보라. 내 마음에는 여러 층이 있다. 10점짜리에 해당하는 가운데가 있고, 마치 7점짜리도 있고, 5점짜리도 있듯이 우리의 마음에는 여러 층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 중심을 보신다는 말씀은 내 마음의 가장 중심을 보았을 때에 그 가운데 과연 하나님이 자리를 잡고 있는가? 그 가운데에 무엇이 자리를 잡고 있는가? 이것을 보신다는 말씀이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나는 과연 내 10점짜리에 해당하는 그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 어떤 때에는 예수님이 계시다가, 어떤 때에는 가족들이 있다가, 어떤 때에는 자녀들이 있다가, 어떤 때에는 물질이 있을 때도 있음을 솔찍하게 고백한다. 뭔가 조금이라도 잘 되면 내 중심에 교만이 자리를 잡을 때도 있다. 오바댜의 말씀에 “바위 틈에 거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중심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고 말은 하지만 내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말렉과 싸울 때에 어떤 것도 갖고 나오지 말아라. 사울왕이 그 말씀을 듣고 그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었다면 흔들림없이 돌아보지 않고 갖고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순간에 사울왕의 중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장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고 그 안에 좋은 것들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사울 왕에게도 나름 데로 이유가 있었다. 제사를 드리려고 좋은 것을 골라 갖고 나왔다. 하나님은 사울 왕의 중심을 보셨다. 좋은 것을 볼 때에 갖고 싶은 욕심을 가득찼기에 사울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사라지고 욕심이 남아있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다.

그러나 다윗을 보라. 이스라엘 백성과 블레셋의 골리앗과의 전쟁이 일어났다. 일대 일로 싸우자고 제안하였다. 어느 누구도 나가지 않는다. 사울 왕이 제안하기를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 많은 재물을 주고, 그의 딸을 주어 왕의 사위로 삼고, 이스라엘 중에서 세금을 면제하여 주리라. 신분 상승의 가장 좋은 기회이었다. 그래도 어느 누구도 골리앗과 싸우려 나가지 않는다. 바로 이 때에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간다. 나가는 이유는 달랐다. 다윗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셨다. 다윗의 중심에 계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그냥 눈으로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다윗의 눈에 불이 났다. 다윗에게는 왕의 사위가 되는 관심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에 “온 땅에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리라.”

다윗이 왕이 되어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싶었다. 사람들을 모아서 성전 건축할 돌을 다듬고, 못까지 준비하고 백향목까지 준비해 놓았다. 이렇게 준비해 놓았는데 하나님께서 다윗의 손을 통하여 성전 짓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왜냐면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다윗을 생각해 보라. 막강한 권력이 있고, 성전지을 준비까지 다 되었는데 왕이 얼마든지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윗 마음의 가장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셨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심을 깨닫고 솔로몬을 통하여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잘 준비해 주었다. 얼마나 멋있는가? 만일 다윗의 마음 중심에 자신의 권력과 욕심이 있었더라면 말씀을 어기고 마음데로 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택하시는가? 마음의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발견되는 사람을 택하신다. 하나님이 중심을 보신다는 말씀이 무엇인가? 양궁의 과녁에 10점에 해당하는 가장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 바로 가장 중심에 하나님이 계신가? 아니면 가운데에 계신 하나님이 곁으로 밀려나가고 있는가?

하나님에게 회개하는 것도 그렇다. 시편 34편 18절 말씀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마음의 중심에 진심으로 회개가 일어날 때에 하나님이 그를 구원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입술로만 하는 회개가 아니라 내 마음의 중심에 일어나는 회개를 주님이 원하신다. 왜 그런가? 내 마음의 중심이 어떤가를 주님은 지금도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찾으시고, 택하시고, 택함 받은 자에게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잘 짓고, 입당을 앞에 두고 있는데 이 시대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 분명한 대답을 가르쳐 주고 있다. 먼저 담임목사를 비롯한 모든 교역자들의 마음 가운데에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 특별히 장로님들의 마음 가운데에 다른 것이 자리 잡지 말고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 이렇게 될 때에 온 성도들의 마음 가운데에 하나님이 계시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점이 있다. 사울 왕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을 때에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사울 왕에게서 떠났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 가운데에 하나님이 계신 것이 확인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영이 다윗에게 임했다. 얼마나 분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가? 이것은 지금도 똑같이 일어난다. 내 마음의 가운데에 하나님이 계시면 성령의 능력이 임하게 된다. 그러나 내 마음의 가운데에 다른 것으로 채워지면 성령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게 된다. 반대로 말하자면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내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면 된다.

지난 한 주간을 지나면서 내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놓치지 않으려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영적인 긴장감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 짐을 느꼈다.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고 계심을 더욱 분명하게 느끼게 되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우리 교회가 이러한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 교회의 가장 중심에는 사랑하는 우리 주님이 계시고, 우리 교역자들과 모든 성도들의 마음 중심에도 역시 주님이 계시고, 그래서 하나님께 택함받아 능력있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요즈음에 많은 사람들이 멋지게 보이려는 웰루킹족이 생겼다. 분명한 것은 명품을 걸쳤다고 멋있게 보이는 웰 루킹족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그릇도 그 안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서 다르다. 고추장을 담으면 고추장 그릇이고, 개밥을 담아 놓으면 개밥그릇이다. 내 속에, 내 마음의 가장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정말로 멋진 사람이다. 웰루킹이 된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택하신다.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신다.

이렇게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신앙생활하게 된다. 더욱 열심히 하게 된다. 얼마 전에 마사이 족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 책의 저자는 아프리카 마사이족으로 태어나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미국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지금도 방학마다 고향으로 달려가 전통 복장에 몽둥이를 차고 마사이 전사로 돌아간다. 원시적인 생활에서 첨단 문명을 한 몸에 지니고 살아간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경제 수단은 소이다. 좋은 소를 소유한 주인은 존경을 받지만, 소가 없는 사람의 말에는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런데 좋은 소를 평가하는 기준은 소가 얼마나 큰가? 무게가 얼마나 나가는가? 여기에 달려 있지 않다. 소를 풀어 놓고 움직임을 본다고 한다. 항상 뒤처지는 소가 있는가 하면 어떤 소는 항상 소 떼의 맨 앞에 선다. 책을 보면서 습관적인 지각은 사람에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소도 지각하는 소, 게으름 피우는 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면서 우리의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실까? 세상에서는 소의 크기나 무게를 중시하듯 우리가 소유한 재물이나 위치나 외모를 중시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소 떼의 맨 앞에서 달려가는 마사이의 좋은 소처럼, 하나님을 아는 일에,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에 가장 앞장 서는 것이 그 비결이다. 마음 가운데에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사랑하는 성도여! 하나님은 지금도 찾고 계시고, 택하시고, 택한 자에게 능력을 주신다. 우리 교회가 이 시대에 택함 받는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 우리 모두의 마음 가운데에 주님을 모시고 살자. 택함 받아 쓰임 받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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