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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치유 받아야 할 마음 (시 3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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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윤정현 목사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곳에 아담을 지으셨습니다. 그 때의 아담의 마음은 마치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행복한 파라다이스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따라서 인간은 타락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고 한번 타락한 인생들은 그 후로 겉잡을 수 없는 죄의 늪으로 추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타락한 인생들의 모습이 로마서 1장에 자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타락하여 망가지기 시작한 인생들을 하나님께서 그대로 내어 버려 두셨다고 하셨습니다.(롬1:28)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도하시는 바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가며, 합당치 못한 일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죄악들을 열거하여 보면 이렇습니다.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1:29-31) 인간의 죄악을 어떻게 다 열거하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은 다 사형 감이라고 하셨으니 너무나 우리의 모습이 참담하기만 합니다.(롬1:32) 이런 상태의 인간을 한 마디로 평가한다면 병든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흔히들 사람들은 육신만 건강하고 돈만 많으면 걱정이 없다고 하는 소리를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육체의 질병보다도 더 심각한 것이 있습니다. 정신적이며, 심리적인 질병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심각한 병이 있으니 그것이 곧 영혼의 병입니다. 육신의 병과 심리적이며 정신과적인 병을 치료받아야 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영혼의 병을 치료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의 병들이 어떤 것들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앞서 열거해 드린 그런 것들입니다. 이런 병들 중에 사회적으로! 또는 공동체적으로 막대한 악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원망이라는 병입니다. 이것은 마치암세포와 같습니다. 무섭게 주변을 병들게 하고 공동체를 무너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 원망 병이 치료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먼저 원망이란  무엇입니까? 원망이라고 하는 것은 주어진 환경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했을 때, 생기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어떤 심리학자는 말하기를 "기억해야 할 것을 망각하고 망각해야 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원망이다."라고 정의했습니다. 이런 원망의 병은 불신자들이나, 신자라도 불신앙에 빠지게 되면 이 병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이 원망의 병에서 치료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범죄와 잘못이 이 불평과 원망의 병을 치료받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 될 때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원망의 병을 어떻게 어떠한 방법을 통해 치유함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1. 지난날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을 늘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현재 우리에게 다소의 불만이나 불평이 있더라도, 그 모든 불평불만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이스라엘을 여러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으로부터 그들을 건져내셨습니다.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해 주셨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때에 그들이 얼마나 기뻐하고 감사하고 즐거워했습니까? 미리암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고 치며 춤추며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찬송하고 감격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먹을 것이 없고, 마실 것이 없는 광야의 생활 40년 동안에 그들은 굶어죽지 아니했습니다. 옷이 헤어져 벌거벗지 않았습니다. 만나를 날마다 주셨습니다. 고기를 대신하여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반석에서 생수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대적들이 그들을 치러 오면 한 길로 왔던 적이 일곱 길로 도망가게 하시는 승리를 누리게 해 주셨습니다.

이 때 만나를 본 그들이 무엇이라 했습니까? 꿀맛이라고 했습니다. 아니 꿀 섞은 과자와 같다고 했습니다.(출16:31) 얼마나 그  만나의 맛이 좋았으면 꿀맛이라고 했겠습니까? 그런데 민11:8절에 넘어가서 보니 만나를 보고 말하기를 이제는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와 같다"라고 합니다. 꿀맛이 기름 맛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원망 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민21:5절에 보면 만나를 "이 박한 식물..."이라고 악평을 합니다. 꿀맛의 만나가 기름 섞은 과자로 변하고, 이제는 박한 식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원망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축복을 주셨건만, 우리가 그런 축복의 삶을 계속해서 누리다보니까, 이제는 그것이 더 이상의 감사의 조건이 되지 못하고 원망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처음에는 좋았다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든지, 아니면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어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돌변하고 원망의 대상으로 삼고 시비하지 않습니까?
어떤 분이 너무나 생활이 구차해서 사과 상자를 뜯어서 판잣집을 만들어 그 위에 비닐을 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사를  했습니다. 하늘이 보이는 판잣집에 살던 그 사람이 단칸방이나마 새로운 사글세 집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몇 평되지 않는 스레트 집이지만 집 같은 집으로 이사했을 때, 그 분은 세상이라도 다 얻은 듯이 기뻐하셨습니다. 그 후에 2층 양옥집을 지어서 이사를 했습니다.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날아갈 것 같고, 더 이상 아무 소원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감사하고 감격해하던, 그 마음의 상태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해졌습니다. 그 분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옵니다. "단독주택이라 너무 추운 것 같아!" "아무래도 아파트가 좋은 것 같아!, 너무 불편해, 너무 좁아....!" 이런 푸념과 원망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혹시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더 좋은 것, 보다 더 나은 것을 바라고 욕심을 부리다보니 이런 원망의 병이 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원망의 병을 치료하려면, 과거의 우리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지금 현재의 삶이 축복인 줄 알고 감사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도 일년에 한 번씩 초막절을 지킵니다.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이 장막에서 거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하며 살던 그 시절, 그 신앙을 배우겠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옛날을 추억하며 오늘을 감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그런 교훈이 아니겠습니까? 지나간 날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치유방법입니다.

2. 나보다 더 어려운 형편에서 감사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어려운 일을 만나면 왜 나만 이 고생을 해야 하느냐고 원망을 하는 습관과 버릇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까? 나보다 못한 상황 속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그런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는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말 할 수 없었던 삼중고의 고통 속에서도, 기적과 감동의 삶을 살았던 헬렌켈러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갖고도 감사하지 못하며 불평과 원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할 수 있다면, 이런 사흘을 주었으면 좋겠다. 하루는 나처럼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눈먼 채로 살도록 하고, 또 하루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자로 살도록 하고, 또 하루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고 벙어리처럼 살게 한다면, 사람들은 감사의 의미를 알 것이다."

그는 그의 자서전에서 "내가 한 번만 저 무지개를 볼 수가 있다면, 내가 단 한 번만 저 떨어지는 낙엽의 아름다움을 목격할 수 있다면, 단 한 번만 이 산 속에 흐르는 시냇물을 바라볼 수 있다면, 나에게 이 아름다운 가르침과 자상한 친절을 베푸시는 설리반 선생님의 그 아름다운 미소를 내 눈으로 단 한번만이라도 볼 수만 있다면, 내가 단 한 번만 아름다운 음을 발하는 저 오케스트라와  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내 눈으로 볼 수가 있다면, 나에게 이 귀한 설교 말씀을 들려주었던 필립 목사님의 그 얼굴을 단 한 번만 볼 수가 있다면, 이렇게 내 삶을 바꾸었던 감동적인 이 성경을 내가 단 한번만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저녁놀이 붉게 물든 석양을 단 한 번만 내 눈으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얼마나 안타깝고 간절한 소원입니까?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송명희 시인이 생각이 납니다. 그녀는 출생 할 때에 의사가 아기의 뇌를 집게로 잘 못 건드리는 실수로 소뇌를 다쳤습니다. 뇌성마비가 된 것입니다. 일곱 살까지 누워만 있어야 했습니다. 어느 지체 하나 자기 힘으로 가늘 수 없었습니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얼굴과 몸이 따로따로 입니다. 말 몇 마디 하는 것도 온 몸에 진땀을 흘려야 합니다. 무엇 하나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생각은 정상인과 같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아니합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16살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후로 하나님의 음성이 그에게 들려옵니다. 상한 질그릇 같은 송명희에게 주님이 찾아 오셔서 그에게 은혜를 주시는데 수많은 시를 섰습니다. 그 중에 "나"라고 하는 시입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갖고 있지 않은 것 가졌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우리 하나님이 너무나 공평하신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원망과 불평으로 분노와 한을 품어야 할 것 같은데 그 하나님은 너무나 공평하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이런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우리가 어떻게 원망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너무나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이 여인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날마다 찬양하고 기뻐해야 할 제목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불평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치유 할 수 있습니까?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원망과 불평을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3. 끝으로 궁극적인 치유는 역시 우리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아마도 저와 여러분은 다 원망, 불평을 한 전과가 있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생전에 이 세상에서 사역하실 때에 원망하신 일이 있으신가 찾아보았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한번도 원망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육신을 가지신 분이 신데 말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항상 하늘나라이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계시면서 마음은 하늘나라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 하늘나라는 생각만 해도 좋습니다. 얼마나 좋았으면 변화산의 세 제자들은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했겠습니까? 장차 누릴 영광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멸시와 천대의 십자가를 지시면서도 그의 입에서 불평과 원망이 없었던 것은 장차 누릴 영광스러움을 바라보셨기 때문입니다. "1)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 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1-3)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이 보고 정신을 빼앗겼던 천국의 영광이 저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마17:1-8) 이렇게 가장 좋은 것을 나를 위하여 준비해 놓으신 것을 생각하면 원망이 우리를 오염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오늘은 좀 답답하지만 가장 좋은 것을 주실 내일을 바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이 폭풍우와 비바람 건너편에 있는, 내일 새벽의 찬란한 평화와 그 영광을 바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슬픔 저 건너편에 우리를 기다리는, 내일의 기쁨을 기대하시며 오늘을 감사로! 기쁨으로 채워 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원망의 삶이 말끔하게 치유되어질 줄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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