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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를 은혜로 아는 성도 (고후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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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양인 목사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잡혀 먹을 짐승이나 한 철 있다가 사라져버리는 벌레로 태어나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으로 태어난 것부터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또한 햇빛과 비와 바람을 주시고 마실 물과 양식을 주신 것 역시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지혜와 지식과 재능을 주셔서 문화와 기술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게 하신 것이나 가족과 사회를 이루고 살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는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신다’(마 5:45)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나 차별 없이 베풀어 주시는 이런 종류의 은혜를 일컬어 일반은혜 또는 일반은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들이 누리는 모든 혜택을 스스로의 공로로 돌리기를 좋아합니다. 성경은 그런 자들에 대하여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고전 4:7)라고 묻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으면 잘난 척할 것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그 재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합니다.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면 내가 수완이 좋아서 그런 거라고 으스댈 것이 아니라 재물 얻을 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합니다.

한편, 이 일반적인 은혜와 달리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특별한 은혜가 있습니다. 구원의 은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은혜는 아무나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은혜를 일컬어 특별은혜 또는 특별은총이라고 합니다. 누가 여기에 해당할까요? 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특별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시간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가 무엇이며, 이 은혜를 받은 자로서 성도들이 가져야 할 올바른 신앙의 자세가 무엇인지 말씀해 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구원의 은혜가 무엇인지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9절에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구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구원이란 영원히 멸망 받을 죄인이 그 형벌을 면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구원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설명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멸망 받을 죄인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그렇게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아담의 혈통을 타고 난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이라고 선언합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3장 10절로 12절에는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10)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사람이 죄인인 사실을 증명하는 데는 세상 법정에서처럼 무슨 복잡한 법적 공방이 필요치 않습니다. 성경이 인간의 타락을 증언하고 있으며, 인간들의 불의한 실상이 웅변적으로 그 사실을 말해줍니다. 매일같이 신문지상을 가득 메꾸고 있는 사건들은 대부분 사람들의 비리와 범죄 사실에 관한 것이지, 선행이나 미담에 관한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얼마 전에 군산 유흥주점에서 난 불로 젊은 여 종업원들이 무더기로 죽은 것에 대하여 신문 방송이 연일 대서특필하고 많은 사람이 분격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불법적인 인신매매를 묵인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얼마나 불의합니까. 그것은 그런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잘못이지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나라에 살고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공동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들 역시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불법한 행위입니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혁명이야 힘으로 단번에 뒤집어엎는 것이니까 힘이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개혁은 불의하고 불법한 제도를 고치는 것인데, 그러려면 먼저 사람이 개혁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도 그것을 지켜야할 사람들이 지키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그런데 개혁의 주체가 되는 사람들 자체가 타락한 본성을 가진 죄인들이다 보니 처음에는 하는 시늉을 하지만 며칠 못가서 그 자신이 불법을 일삼고 개혁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정권이나 정치인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실상이 그러함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 현주소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진리는 모든 죄는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죄뿐 아니라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말과 같은 죄도 멸망 받는 죄이기는 마찬가집니다. 자기에게 호흡을 주신 조물주 하나님이 계신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도 무서운 죄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니 악한 짓을 하면서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실로 모든 죄와 악은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시대에 무신론을 신봉하는 공산주의자들이 행한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보세요. 그들은 공산주의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은 천이든 만이든 상관없이 다 죽여버렸습니다. 스탈린에 의해서 죽임 당한 자가 5천만이 넘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들의 사상에 하나님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함부로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모든 죄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세상 법정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범행에 대해서만 처벌합니다. 사람을 죽인 자는 고발을 당하지만 마음으로 누구를 미워했다고 형사 고발되는 법은 없습니다. 또 실제로 간음을 행한 것은 죄로 인정하지만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것을 처벌할 법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정에서는 결과 뿐 아니라 동기에 관해서도 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1)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 27)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라고 말한 다윗처럼 자신의 죄인됨을 솔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득이 해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고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화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오리 새끼가 물을 보고 주저 없이 뛰어드는 것과도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유전 받고 태어나고 한 평생 살아가면서 지속적으로 죄를 짓습니다. 그 결과,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법에 의해서 모든 사람이 영원한 죽음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죄인들이 당하게 될 지옥이 어떤 곳인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43)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 45)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 47)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48)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막 9:)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요즘도 천당 지옥을 믿는 사람들이 다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니고 진리이신 우리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므로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습니다.

구원의 은혜란 지옥 불에 떨어질 운명에서 우리가 건짐 받은 것을 말합니다. 범죄한 우리가 무슨 수로 지옥 형벌을 면할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는 어떻게 나타난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복음 3장 16절로 17절에는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죄로 인해 멸망당할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으며,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며 죽었습니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고 많은 돈을 들여서 받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것이 구원 받을 공로가 될 수는 없습니다.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기로 뜻을 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므로 당연히 죄인들이 구원받은 공로는 하나님의 몫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은혜가 믿음보다 먼저요 믿음을 있게 만든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에는 구원받기 이전과 구원받은 이후의 인간들의 실상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합니다. “1)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6)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8)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만약에 대가를 지불하고 받은 것이라면 선물이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선물이란 누군가가 나에게 호의를 나타내려고 거저 준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이유에 대하여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나에게 무슨 사랑 받을 아름다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무슨 사랑 받을 의로움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다니?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놀라울 뿐입니다. 여러분,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무슨 이유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는지를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기이한 것은, 로마서 5장 7절로 8절 말씀과 같이,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위하여 하나뿐인 독생자를 죽는 데까지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왜 죄 많은 우리를 사랑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비록 우리가 범죄하고 불의함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독생자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겨주셔서 의인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는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지불해야 할 죄의 값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갚아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힙 입어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구원의 은혜에는 더욱 놀랍고 영광스러운 은혜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복음 1장 12절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사이였던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은혜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단지 법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 보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출생 곧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스스럼없이 부를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양자의 영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 속에 와 계신 성령께서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십니다, 우리 안에 성령께서 와계신 것은 곧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입니다.

빌립보 3장 20절에 보니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하였고, 베드로전서 2장 9절로 10절에는 “9)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0)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을 기업으로 상속받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토록 왕노릇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한 대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는 말로 다할 수 없이 영광스럽고 풍성합니다. 아무쪼록 매일같이 구원의 은혜를 되새기며 생활 가운데 누리면서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가져야 할 올바른 신앙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한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늘 자기 엄마에 대하여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왜냐하면 엄마의 얼굴이 너무나 흉하게 일그러진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제 친구들의 엄마를 보면 예쁘고 세련되어 보이는 것이 자기 엄마와 너무나 비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늘 흉하게 생긴 엄마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길에서 만나도 외면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는 큰마음을 먹고 조용히 딸아이에게 엄마의 얼굴에 숨겨진 비밀을 말해주었습니다. “얘야, 네가 갓난아이였을 때였단다. 하루는 너를 잠재워 놓고 잠시 가게에 갔다 왔는데 그만 집에 불이 났단다. 소방차가 오고 불길이 치솟아 오르는데 나는 집안에 있는 너를 구출하기 위해 불속으로 뛰어들었단다. 다행히 너를 무사히 구해냈지만 나는 화상을 입어서 이런 보기 흉한 모습이 되었단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딸의 눈에는 말없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딸은 엄마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면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를 부끄러워하다니, 너무나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그 때부터 이 딸은 자기 엄마의 일그러지고 번질거리는 얼굴이 그처럼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서든지 친구들에게 자기 엄마를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높였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왜 세상일은 재미가 나고 즐거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어렵게만 생각되고 힘이 드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다는 말을 귀가 아프도록 들었지만 별로 마음에 와 닿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로 생각될 리가 없습니다. 은혜를 은혜인줄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다가오는 핍박을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에베소서에 보면 사도 바울이 평소에 에베소 신자들을 위해서 드린 기도가 나옵니다. “1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19)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 우리 역시 우리 자신을 위해서 또한 믿음의 형제들과 우리 가족을 위해서 이같이 기도해야 할 줄 압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시고 우리 마음눈을 밝혀주셔서 구원의 은혜를 올바로 알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주 자주 회개를 통해서 굳어진 우리 마음 밭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세상 염려와 재리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서 우리 마음이 길가와 같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맙니다. 우리 마음에서 의심과 불신앙과 나태함의 잡초를 부지런히 뽑아내지 않으면 얼마 있지 않아 곡식이 자랄 수 없는 황무지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호세아 10장 12절에 보니 “…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우리가 회개를 통해서 정결한 마음, 겸손한 마음이 될 때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올바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몰라서 그렇지 한번 제대로 깨닫기만 하면 아무리 완악한 사람이라도 새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율법의 의로 흠이 없는 자라고 자타가 인정하던 바리새인으로서 나사렛 예수를 이단의 괴수로 알고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가 신성 모독죄로 돌에 맞아 죽을 때 가표를 던졌고, 처형 현장에서 증인으로 입회하여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 자들의 옷을 지켰습니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내친김에 대제사장에게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보내는 공문을 받아가지고 살기가 등등해서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러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다메섹 성에 가까이 갔을 때였습니다. 때는 정오쯤 되었는데 갑자기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그와 그의 동행들을 둘러 비추었습니다. 그 순간 그 강렬한 빛의 충격으로 모든 사람이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엎드려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하시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주여, 뉘시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이후로 핍박자 사울이 이방인의 사도 바울이 되었고 순교의 제물이 되기까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 바쳤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기 전에 사울은 자기 딴에는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을 낸다고 했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후로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고마워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파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디모데전서 1장 12절 이하에서 이렇게 간증합니다. “12)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17)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그는 자기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에 대하여 감격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핍박자 사울을 불러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던 주님께서는 오늘 저와 성도님들을 불러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괜히 이곳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자체로서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혹 억지로 이 자리에 이끌려 나왔다고 할지라도 마찬가지로 은혜의 자리로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자리로 인도하신 것은 은혜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시은좌 곧 은혜의 보좌입니다.

구원의 은혜가 값없이 주시는 은혜라고 해서 무시하거나 경홀히 여기면 안 됩니다. 값없이 주신 은혜라고 값이 없는 은혜가 아닙니다. 사실은 값을 매길 수 없으리만치 크고 귀하기 때문에 값없이 주신 것입니다. 값을 받는다면 한 사람도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귀한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1)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원하는 때에 언제든지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실 때가 있습니다. 언제가 은혜 받을 때입니까? 보라 지금이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그리고 지금이 은혜 받기에 가정 적합한 때입니다.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내일은 여러분의 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일이면 때가 늦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은혜 받을만한 때에 마음껏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지 아니한 사람이 있다면 지금 예수 믿을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내일로 미루지 말고 곧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십시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전 3:1)고 하였습니다. 친구 만나는 일은 오늘 못 만나면 내일 만나면 됩니다. 오늘 가족 중 누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면 만사를 제쳐놓고 병원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부모 형제가 죽었다면 사업장도 잠시 문을 닫고, 직장도 쉬고, 빈소를 지킬 것입니다. 죽은 자들을 위해서도 그처럼 한다면, 하물며 영원히 죽을 자리에서 건짐 받을 기회를 가볍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생활 가운데 바쁜 일이 많이 있지만 구원의 은혜를 받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구원 받을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이를 하찮게 여겨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값이 나가는 최상품 진주를 손에 쥐어 주었는데도 그 가치를 알지 못하여 쓰레기통에 내던지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말씀은 이미 구원 받은 성도들에게 주신 권면이기도 합니다. 간혹 보면, 기왕에 구원은 받은 것이니까 너무 극성맞게 신앙생활을 할 것이 어디 있느냐, 적당히 하면 돼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더 늦기 전에 주님의 경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씀하시기를 “15)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받았으니 은혜 받은 자답게 살아가라고 명하십니다. 목에 걸고 다니는 십자가 목걸이처럼 은혜를 하나의 악세사리로 여기면 안 됩니다. 신앙생활을 여가 선용하는 것 정도로 여기면 안 됩니다. 다른 일 다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예배에 참석하는 식으로는 하나님의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받은바 은혜에 대한 감사가 넘쳐야 합니다. 하나님 섬기는 일이 생활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를 올바로 아는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나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하기 위한 봉사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으며 교회에도 덕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봉사는 구원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몸과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드리는 봉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돌들을 명하셔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도 있는 능력 있는 분이십니다. 나 같이 부족한 사람을 귀히 여기셔서 직분을 맡기셨구나, 그렇게 늘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헌신할 때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고 또한 상급을 준비하는 일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간에 쫓겨 반쪽짜리 봉사를 할 것이 아니라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라고 고백한 성도처럼 주의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드려 헌신하기를 소원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은혜의 가치는 변함이 없지만 그 은혜가 우리 자신에게 은혜가 되려면 은혜를 은혜로 알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오늘 설교를 들으신 성도님 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를 깊이 깨달아 감사함으로 받아 누림으로 은혜를 은혜로 아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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