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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곱의 새출발 (창 2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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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양인 목사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인물들 가운데서 야곱처럼 독특하고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던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삭의 아들이었습니다. 이삭은 쌍둥이 아들을 낳았는데 장자는 에서이고 차자는 야곱이었습니다. 야곱은 철이 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자신이 차자로 태어난 사실이 너무나 불만스러웠습니다. 그것은 차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이삭을 계승하여 선민의 조상이 되는 장자권과 또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복을 차지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적에 하신 말씀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그리고 창세기 1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셔서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창 15:18-20)고 하셨습니다. 생각만 해도 영광스럽고 위대하고 복된 약속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장자가 받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애초부터 이 약속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인 셈입니다. 야곱은 장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고 억울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형 에서와 나이 차가 나는 것도 아니고 한 날 한 시에 태어나되 어머니의 뱃속에서 한 발 늦게 나온 것 때문에 이처럼 운명이 달라졌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살펴보면, 야곱에게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리브가가 쌍둥이를 잉태하였는데, 뱃속에서 두 아이가 서로 싸우는지라, `이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하나님께 여쭈웠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이르시기를 "두 국민이 네 태 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야곱이 에서보다 창대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에 대하여 말라기 1장 2절로 3절에는 하나님께서 그 둘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이미 야곱은 사랑하셨고 에서는 미워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일찍부터 야곱이 아브라함과 이삭을 계승하도록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리브가는 야곱에게 들려주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가만히 하나님의 작정하신 때가 되기만을 기다리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조급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하루는 야곱이 부엌에서 팥죽을 쑤고 있는데 사냥 갔던 에서가 돌아왔습니다. 에서는 심히 곤비하여 야곱에게 말하기를 "내가 너무 시장하니 그 팥죽을 좀 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야곱이 말하기를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야곱이 얼마나 장자권이 갖고 싶었으면 그래 팥죽 한 그릇에 팔라고 하였을까요? 아마 에서는 농담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에서가 말하기를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그러자 야곱이 말하기를 "오늘 내게 맹세하라"고 했습니다.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았습니다. 어쩌면 에서가 장자권을 판 것이나 맹세한 것은 다 장난끼로 한 것이라고 보아야겠지요. 정신이 나간 사람이 아니고서야 정말로 그런 거래를 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사건은 하나님의 복스러운 약속에 대한 야곱과 에서의 마음가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창세기 25장 34절에는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그토록 사모했으나 에서는 팥죽 한 그릇만 못한 것으로 경홀히 여겼습니다.

그 후에 세월이 흘러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맏아들 에서를 불러 말했습니다. "내가 이제 늙어 어느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노니 그런즉 네 기구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에서는 신이 나서 사냥하러 들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에서에게 하는 말을 리브가가 들었습니다. 즉시로 야곱을 불러 말하기를 "네 부친이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나로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염소의 좋은 새끼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부친을 위하여 그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가져 네 부친께 드려서 그로 죽으시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대답하기를 "내 형 에서는 털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그러자 리브가가 말하기를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이에 야곱이 염소를 잡으니 리브가가 그것으로 남편이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습니다. 또 에서의 좋은 의복을 꺼내다가 야곱에게 입히고 또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그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꾸몄습니다.

야곱이 별미와 떡을 가지고 이삭에게 나아가 "내 아버지여" 하고 불렀습니다.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청컨대 일어나 앉아서 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순간, 이삭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고 했습니다. 야곱이 대답하기를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삭이 말하기를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지려 하노라" 야곱이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말했습니다.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이삭은 능히 분별치 못하고 야곱에게 축복하였습니다.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고 그 앞에서 나가자마자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왔습니다.

에서는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른채 손수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이삭이 묻기를 "너는 누구냐?"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그러자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말했습니다.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그제야 에서가 상황을 파악하고 방성대곡하며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으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 일로 에서는 야곱을 미워하여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고 마음먹었습니다. 때에 리브가가 에서의 생각을 알고는 야곱을 불러 말하기를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하나니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 피하여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날 동안 그와 함께 거하라.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고 했습니다. 이리하여 야곱은 아버지 이삭에게 작별을 고하고 에서의 눈을 피하여 하란으로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명분과 그 축복을 가로챘을 때 이제는 다 되었다고 환호성을 질렀겠지만, 그 다음 순간 인생의 가장 처참한 형편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언제 형 에서에게 죽임을 당할는지 알 수 없어 전전긍긍하는 불안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만약에 에서에게 죽임을 당한다면 그토록 애써서 얻은 것이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야곱은 고향집과 부모님을 뒤로하고 형 몰래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야곱의 부도덕한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야곱의 인간적인 결함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야곱의 행동이 옳고 정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갈망했던 그의 믿음을 귀하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만도 못하게 여겼던 에서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하찮게 여기지는 않았습니까? 세상일에 바빠서 하나님 섬기는 데 나태한 적은 없었습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보다는 내 수단과 방법을 의지해서 살아오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 2:30)고 하셨습니다. 야곱은 비록 형과 아버지를 속인 비열한 행동을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는 그의 중심을 열납하셨습니다. 반면에, 에서는 인간적인 장점이 많은 사람으로서 아버지 이삭의 사랑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경홀히 여겼기 때문에 버림받고 말았던 것입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 있는 집을 떠나 머너먼 하란을 향하여 길을 가는데 한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졌습니다. 그곳은 인적이 드문 들판으로서 주막이 없었습니다. 야곱은 돌을 베개삼아 땅바닥에 누워 잠을 잘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계신 따뜻한 안식처를 떠나서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하늘을 이불 삼아 잠든 야곱의 처량한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멀리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바람이 스쳐 지나가면 겁에 질려 몸을 떨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몸이 곤해서 야곱은 곧 깊은 잠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꿈에 놀라운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가 보니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하고, 또 말하기를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하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하였습니다. 벧엘이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이 거기서 하나님께 서원하기를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고 하였습니다.

브엘세바를 떠날 때 야곱은 형과 아버지를 속인 사기꾼이 되어서 형 에서의 칼을 피하여 황급히 도망하는 가련한 도망자의 신세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나타나셔서 복을 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셨던 언약을 야곱과도 맺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야곱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황량하던 벧엘 들판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만나 뵙는 `하나님의 집`이 되었습니다. 그 날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베개하였던 돌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 서원하였습니다. 실로 벧엘의 경험은 야곱의 생애를 근원적으로 새롭게 바꾸어 놓은 전기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인생의 새 출발을 한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더 이상 혼자 겁에 질려 도망가는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를 지켜 보호해 주시는 가운데 담대한 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2002년도를 맞이하여 성도님들께서는 저마다 한 해를 어떻게 살아갈 것이며 또 무엇을 이룰 것인지 계획을 세웠을 것입니다. 새해 첫 주일에 우리는 자신의 계획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점검해 보도록 합시다. 과연 나의 한 해의 설계가 에서과 야곱 중 누구의 것과 가까운지를 말입니다. 에서는 성격이 호탕하고 활달하며 사냥을 즐겼습니다. 또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고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에 에서는 사람 좋고 유능하다는 평을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에서의 장점입니다. 성경은 에서의 성격이나 생김새나 취미 때문에 그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6절에 보니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에서를 가리켜 `망령된 자`라고 하였습니다. 망령된 자란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고 모독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장자의 명분이 얼마나 존귀한 것인데, 그것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은 것은 결국 하나님을 무시하고 깔 본 것입니다.

여러분의 올해 계획 중에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몇 번째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하나님 섬기는 일이 성도님들의 삶의 최우선 순위에 있다면 성도님들이 가시는 곳마다 그곳이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성도님들과 함께 계시며 복을 주시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하나님 섬기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긴급한 일이 있다면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의 길을 선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세상의 재물과 명예와 즐거움을 얻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신령한 복은 받지 못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7절에 이르기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에서가 정신을 차리고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고 했을 때에는 이미 기회를 놓친 후였습니다.

처음부터 신앙의 길에서 멀리 떠나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득이 주일 예배를 빠지는 일로부터 시작합니다. 처음에 예배를 빠질 때에는 신앙양심에 가책을 받고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똑같은 일이 반복되다보면 신앙양심이 마비가 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되고 맙니다. 그와 동시에 세상일에 솔솔 재미가 붙기 시작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심령에 은혜가 떨어져서 황폐해지고 맙니다.

성경에 "7)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8)고 하였습니다.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우리 모두 지난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나태했던 것을 회개하고 새해에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올해는 야곱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까닭은 그가 장점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를 살펴보면 야곱이 정직하고 부지런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경건되고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야비한 면도 갖고 있었습니다. 이삭이 에서에게 "네 아우가 간교하게 와서 네 복을 빼앗았도다"고 하자 에서가 대답하기를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그 이름처럼 `속이는 자`요 `사기꾼` 노릇을 해서 형과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비열한 범죄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허물을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너는 형과 아버지를 속인 사기꾼이니까 복을 줄 수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야곱에게 인간적인 약점과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간절한 믿음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도님들의 간절함과 진실된 믿음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시편 123편을 기록한 성도는 말하기를 "1)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2)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 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은혜를 주시지 아니하시면 저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기 전에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라면 다른 것은 다 포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이와 같은 간절함을 보시기 원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기 원하거든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거든 먼저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42편을 기록한 성도는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 42:1)고 하였습니다. 야곱에게서 우리가 배울 점은 바로 이 영적 갈급함입니다. 야곱은 자나깨나 장자의 명분을 사모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장자의 명분을 갖고 싶었으면 사냥하고 돌아온 에서가 "내가 배고파 죽겠으니 팥죽을 좀 다고" 했을 적에 이 말을 해도 될까, 앞 뒤 재지도 않고 불쑥 "형의 장자권을 나에게 팔라"고 하였겠습니까?

야곱이 축복의 기업을 얻은 일로 형의 복수를 피해 도망가는 처지가 되었듯이,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핍박을 받고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야곱이 빈들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든 것처럼, 외롭고 곤고한 형편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또는 경제적인 손실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차디찬 땅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던 그곳에서 하늘 문이 열리고 사닥다리가 그의 머리맡에서 하늘 꼭대기까지 닿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고 또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내려다보시며 위대한 약속을 주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성도님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베풀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핍박과 역경과 고난의 자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영광스럽고 복된 자리가 되고, 하나님께서 성도님들과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며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눈물을 흘리면서 잠든 그곳이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이 되었듯이, 성도님들의 눈물이 떨어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으로 벧엘로 화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님들의 가정이 벧엘이 되고, 성도님들의 직장과 사업장이 벧엘이 될 것입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새출발을 하였듯이, 오늘 이 설교를 경청하신 성도님들의 삶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셔서 벧엘의 복을 내려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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