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전능하신 하나님 (히 11:1~7)

  • 잡초 잡초
  • 371
  • 0

첨부 1


- 설교 : 박세종 목사

할렐루야!
지난주간으로 그동안 계속되어왔던 동계수련회를 모두 마치었습니다.
살렘 수련회, 청년부 동계 수련회, 학생부동계수련회 그리고 지난주에 있었던 여선 교회 임원 수련회까지!
이번 수련회를 통해 은혜 받으셨으면 아멘!
주신 은혜 잘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큰 은혜를 사모하시다가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서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남선 임원 수련회 위에도 하나님께서 커다란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은 히 11:1-7의 말씀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이미 교독 하신 말씀 가운데서 히 11:6을 제가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신앙의 첫 출발은 하나님을 믿느냐? 이것이 확실해야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계심을 믿습니까?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와 같은 교단이 우리나라에만 하더라도 2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각 교파마다 신앙고백서가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부터 오늘까지 우리 개신 교회나 천주교회를 막론하고 다같이 받아들이는 신앙고백서가 딱 하나있는데 바로 매주일 고백하고 있는 사도신경입니다.

이 사도신경은 A.D 4세기에 루키너스라는 학자가 사도신경에 대한 주석을 썼습니다.
매우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사도신경이 해석되어졌고 설교되어졌습니다. 그럼 그토록 강조되고 오래 동안 설교되어진 이 사도신경이 제일 먼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사도 신경의 첫마디가 무엇입니까?
바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신앙의 기초요, 신앙의 뿌리요 핵심입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며 부인을 합니다. 이거 왜 그래요? 정말 하나님이 안 계신 겁니까?
시 14:1에 보면 "어리석은 사람은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하였습니다.

이 세대를 보세요!
·성경에 기록한 대로 어리석은 사람은 더 많은 세상입니다.
·히터를 틀지 않는다고 운전기사를 두들겨 패는 세상입니다.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왜 내 딸을 왕따 시키느냐고 따지는 학부모의 머리칼을 쥐어뜯고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세상입니다.
·할아버지와 닮은 노인을 이용해서 인감을 위조하고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서 연예인이 되려는 손녀가 붙잡혔습니다.
·기독교 정신 위에 세워진 대학교마저 시험지를 유출해서 사회를 문란케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의 답안지를 대필해 주는 신종 대소서가 과연 한군데뿐일까요?
정말 이런 세상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오늘도 변함 없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사람만이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첫째>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성이 있으므로 사람은 생각을 합니다.
어떤 목적을 놓고는 연구를 합니다.
그래서 발명도 하고 발견도 합니다.
창조적인 활동을 합니다.
바로 인간만 이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짐승에게는 이성이 없습니다.

까치를 보세요.
나뭇가지 심지어 철사 줄까지 입으로 물어다가 나뭇가지 사이에 둥그런 집을 짓습니다.
신기할 정도입니다. 기가 막힙니다.
그러나 50년 전이나 100년 전이나 짓는 것이 언제나 똑같습니다.
발전이 없습니다.
왜 그래요?
짐승에겐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서커스단에서 재주를 부리는 동물을 보세요
어떤 분은
야! 사람보다 낫다 하시는데 거 머리로 생각을 해서 재간을 부리는 게 아닙니다.
이건 순전히 반사작용을 이용하여 사람이 훈련을 시킨 대로 움직일 뿐입니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은 하나님께로 받았다.
이게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지 모릅니다.
시계를 보세요!
긴바늘이 있고 작은 바늘은 아주 천천히 돌아갑니다.
뚜껑을 열고 보면 이 모든 바늘들이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서 돌아갑니다.
얼마나 질서 있게 돌아갑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도 커다란 시계와 같습니다.
유성이 항성을 싸고 돌아갑니다. 태양계가 정확하게 움직입니다.
도대체 이렇게 큰 시계를 만드신 분이 누구일까요?
한번도 틀림없이 아침과 저녁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움직이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창 1:1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렇게 큰 시계를 정확하게 움직이시니 우리는 그 하나님을 보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롬 1:20에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창세 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 곧 그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할 수 없느니라"
생각할 수 있다면 하나님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핑계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이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습니다.
이 양심이 있다는 것이 동물과 전혀 다른 점입니다.
양심이 뭐예요?
이것은 하라
이것은 절대로 하지 말라
이것은 꼭해야 한다
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해선 안된다.
이것이 바로 양심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양심이 사회나 문화의 요인 때문에 생겨난다고 합니다.
물론 산 속에서 원숭이와 함께 자라난 아이와 좋은 환경 안에서 성장한 아이에게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근본적인 양심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유명한 철학자 에픽테투스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음악이나 기하학의 지식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면 누구나 다 그 마음속에 양심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양심이 무엇입니까?
내 속에서 지금도 들리고 있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롬 2:15에서는 "양심은 우리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율법"이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에게 주신 돌에 개신 십계명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 속에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새겨주신 것입니다.
마 6:22에서는 양심을 "마음의 눈"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3:21에서 "착한 양심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가르쳐 준다" 하였습니다.

양심은!
우리가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에 위험 신호를 보여줍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는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지만 나무 뒤에 숨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게 뭐예요?
바로 양심의 가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왕입니다.
그 누가 감히 도전하겠습니까?
그랬다가는 "이거 막가자는 거죠?"
그러나 그 누구도 아무소리도 안했는데 아니 감히 못했지만 시 32편에 보면 "내가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다"하였습니다.
그가 범죄 한 후에 양심이 마치 여름 가뭄 타듯이 바짝 바짝 탔다는 것입니다.
왜 가롯유다가 어둔 밤에 스스로 나가서 목을 매어 죽었습니까?
바로 양심의 가책 때문입니다.
이렇게 양심은 우리의 죄를 책망합니다.
죄지은 우리의 가슴을 짓누릅니다.
불안하게 합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그러나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바른 길을 가면 양심은 우리를 칭찬해 줍니다.
우리에게 상을 줍니다. 요셉이 그 많은 유혹을 잘 이겼더니 감옥 안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 하였습니다.
몸은 감옥에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양심은 우리 속에서 지금도 들리고 있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 음성을 듣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 계심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습니다"
양심의 소리에 순종하다가 "내 마음 내 마음 편안해"라고 찬송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인간에게만 영혼이 있습니다.
짐승이 아무리 영리해도 우리처럼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을 보셨나요?
쥐가 자기 몸 만한 달걀을 어떻게 훔쳐 가는지 아십니까?
굴려서 가져 간다구요? 그럴 듯 하지만 그러면 깨지죠!
어떻게 하느냐면 쥐들이 서로 협동을 합니다.
한 마리는 누워서 달걀을 가슴에 안고 있으면 또 다른 한 마리는 달걀을 안고 있는 쥐의 고리를 끌고 간다고 합니다.
쥐도 합력하면 이런 일을 이루는데 영혼을 가진 우리 사람들이 서로 합력만 한다면 선을 이룰 줄 믿습니다.

왜 사람만 예배를 드릴까요?
그건 갓 태어난 어린아이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어머니의 젖을 빨 듯이 사람에만 하나님의 찾을 수 있는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키케골은 "인간에게만 종교적 본능이 있다"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이 영혼의 만족은 어디서 옵니까?
지식도 아닙니다.
그 돈도 아닙니다.
미모도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나님을 찾고, 예배할 수 있는 영혼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왜? 주여 주여 믿습니다! 하고 외칠 수 있습니까?
그건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찾도록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갈까요?
하나님아 안 계시기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멀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죄입니다. 죄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멀게 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영혼이 살아 있으면 신앙생활을 잘하면! 죄를 멀리하게 됩니다.
죄를 멀리하는 청결한 마음은 우리의 눈을 밝게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눈은 "다시는 눈물이나 곡함이나 애통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면서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봄과 여름, 가을, 겨울 아침과 저녁을 바라보면서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미하고 수많은 소리 중에서도 잘했다. 칭찬하시며 상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천굴 중에서도 최고의 천국인 심령 천국을 소유하고 죄악을 물리쳐 이겨내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