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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빌 2: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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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정필도 목사

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 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빌립보서 2:25-30)

  존귀라는 말은 높고 귀하다는 것입니다. 가장 존귀한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느 9:5) 하나님은 너무 존귀하신 분이기 때문에 이름도 존귀합니다. 요한계시록 4장에 하나님은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너무 존귀하신 분이기시에 영광과 존귀를 돌리는 것이 합당함을 믿습니다.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계 4:8)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계 5:12) 예수님을 찬양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너무 존귀하시기 때문에 이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이 세상의 다이아몬드든 무엇이든지 다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비교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치 있다고 하는 것을 모아서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상 숭배하는 사람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기 전에 우상 숭배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저의 친척들이 잘 살게 해달라고 무당, 점쟁이들을 찾아다니면서 우상 숭배를 많이 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아침마다 꼭 문 앞에 소금을 뿌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우상을 만들지도 절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가장 존귀한 분인 줄 알고 존귀히 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의 날을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너무 존귀하셔서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이 다 존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날, 주의 날은 정말 존귀합니다. 그래서 하루를 아름답게 열심히 섬겨서 잘 보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날을 잘 보내는 것은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사 58:13-14)

  저는 어렸을 때부터 주의 날은 내 날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시험을 쳐도 토요일에 공부하다가 밤 12시 사이렌 소리가 나면 덮고 기도하고 잤습니다. 그리고 주일은 온전히 주님을 섬기고 공부할 것이 많으면 저녁예배 마치고 자다가 또 사이렌 소리가 나면 일어나서 공부하고 학교에 갔습니다. 그러니까 남들보다 공부를 많이 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공부를 잘 못 했지만 시험을 치면 떨어진 적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언제나 합격이 되었지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 친구들 중에 서울대에 가려고 주일에도 학원을 갔던 친구들은 재수하고 삼수했습니다. 떨어지고 안 떨어지고의 여부는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어떤 집사님께서 장사를 하시는데 주일에 해야 잘 되는 장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일에 문을 닫으셨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날을 위해서 손해 볼 것을 각오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보다 더 좋은 물건을 팔고, 정직하고 친절하니까 나중에는 토요일과 월요일에 손님이 두 배나 더 많이 오게 되었습니다. 축복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저도 성수 주일해서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도 존귀히 여깁니다. 우리가 앉아 있는 보통 나무로 만든 책상도 하나님을 위해 만든 것이므로 성구라고 합니다. 성구에 장난치지 않도록 자녀들에게도 교육시키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일도 잘 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일이 존귀한 줄 알고 정성껏 해야 할 줄 믿습니다.

[예배를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 중에 제일 소중한 것은 예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봉사하다보면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교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에서 해야 될 일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집에서부터 미리 준비해서 지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솔로몬도 처음 왕이 됐을 때 얼마나 바빴겠습니까! 그러나 매일 아침 기브온 같이 먼 곳까지 가면서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시고 솔로몬에게 구하는 대로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존귀히 여기기 바랍니다.

[성직, 직분을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직분, 성직도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장로나 집사 등의 직분을 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초량교회에 양장로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농림부장관이셨습니다. 그 때 총회에 문제가 되었는데 그분께서 장관은 그만 둘 수 있지만 하나님이 주신 장로는 포기할 수 없다는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것보다 하나님의 직분이 귀하다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빌 2:29)

[우리 자신을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존귀하시므로 하나님의 백성도 존귀합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시 16:3)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들은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함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또 자신의 몸을 함부로 굴리지 않습니다.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의 몸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자기 몸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주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므로 우리 몸이 정말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자기 몸을 천하게 여겨 행동하는 사람은 천한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을 천하게 여깁니다. 그렇게 할수록 자신은 더 천해지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설교를 잘 하시는 것 같지만 말을 참 함부로 하시는 것을 봅니다. 제가 설교를 들으면서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존귀한 자가 어떻게 천한 말을 하겠습니까! 누구나 하나님을 멀리하면 사단과 가까워집니다. 하나님의 집을 점점 멀리 하다 보면 세상에 깊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면 누구나 다 마귀의 밥이 되고 맙니다. 그러다가 보면 마귀가 시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먹게 되고 죄 가운데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죄를 범하면 죄책감과 수치, 두려움과 번민, 절망감이 들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그저 멸망할 짐승처럼 살다가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존귀하므로 자신도 존귀함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도 존귀하게 여깁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수가성의 야곱의 우물에서 과거에 남편이 5명이나 있었고 지금도 자기의 남편이 아닌 남자와 살고 있는 여인을 만나는 주님을 봅니다. 그 여인은 부끄러워서 사람들이 안 다니는 시간에 나와서 우물가에 왔다가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은 그 곳에서 여인을 만나기 위해 기다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자신이 메시야임을 말합니다. 그러자 여인은 동네사람들에게 뛰어가서 말합니다.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요 4:29) 이제는 부끄러운 것도 잊게 된 것입니다. 메시야는 한 마디로 인간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인주 앎이니라 하였더라』(요 4:39-42) 이 여인은 자신을 천하게 여겼고 모든 남자들을 천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인을 천하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거룩하신 분이 이 여인을 존귀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인을 통해서 수가성 사람들이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세상 사람들이 천하게 여긴 여인을 들어서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데에 사용하셨습니다.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할 때 예수님은 죄가 없는 자가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에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고 멸시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것입니다.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 49:12)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 49:20)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은 원래 존귀한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그런 특별하고 사람보다 더 존귀한 존재가 없을 정도의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이후 자신이 참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잊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생명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도 긍휼히 여겨주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37-40)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 10:27-30)

  하나님 외의 모든 존재를 합한다고 해도 하나님보다 작습니다. 이 우주는 하나님과 비교하면 정말 작은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무 존귀하신 분이시므로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천국에서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고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시고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달려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절대로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사 43:4) 하나님이 우리를 존귀히 여기시는 것처럼 우리 자신을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특히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 존귀한 모습으로 서기 위해서 존귀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고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롬 2:6-10)

[우리가 주님 앞에 존귀한 자의 모습으로 서려면]

  우리는 주님 앞에 섰을 때 존귀한 자의 모습으로 서야 합니다.

1. 그러기 위해서 첫째로 참고 선을 행해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악해도 7절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악하게 살지 않기 바랍니다. 선을 행하면서 살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의도적으로 악하게 살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본래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2. 두 번째로 믿음의 시련을 잘 견뎌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6-7) 세상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믿음의 시련입니다. 정금으로 만들기 위해서 용광로에 집어넣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믿음의 시련을 잘 견디다 보면 정금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서 칭찬을 받게 되고, 영광과 존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세 번째로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 중 큰 것이 교만입니다. 그러므로 존귀한 자가 되려면 철저히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작은 자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하는 고백같이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 15:33) 『죽은 파리가 향기름으로 악취가 나게 하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로 패하게 하느니라』(전 10:1) 우매란 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운 것을 말합니다. 교만한 것을 말합니다.

4. 네 번째로 거룩하게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살전 4:3-8) 여기에서 철저하게 강조하는 것이 절대로 거룩을 저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렇게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4절은 정말 귀한 말씀입니다. 우리의 거룩을 깨뜨리는 것 중 쉬운 것이 음란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아차 하면 음란죄를 저지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룩하시므로 우리도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도 음란죄를 범하는 자가 있으므로 4절을 잘 봐야 합니다.

  우리는 존귀하게 여기는 만큼 존귀함을 받습니다. 어떤 남자들은 아내를 종같이 여겨 함부로 말하곤 하는데 그것은 둘 다 천하게 하는 것입니다. 애들이 봤을 때 부모가 천한 부모로 보이는 것입니다. 부부는 일심이기 때문에 내가 내 아내를 천하게 여기면 나도 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존귀한 자가 되고 고귀한 자가 되려면 내 아내를 존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존귀하게 여기고 여러분도 저를 그렇게 대하면 서로 존귀해지는 것이고 그만큼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교회에 나오면 천국에서 누릴 영광과 즐거움을 예행 연습해야 합니다. 존귀함을 잃어버리는 것은 우리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긴 다윗을 하나님은 존귀하게 해주셨습니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리라』(대상 17:8) 하나님께서 다윗을 축복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약속대로 이스라엘 민족뿐 아니라 우리도 다윗을 정말 존귀한 자로 여기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작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대하여 먼 장래까지 말씀하여 주셨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를 존귀한 자 같이 여기셨나이다』(대상 17:16-17) 다윗 왕이 하나님께 하는 감사의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바브로디도도 참 존귀한 자입니다. 이 사람은 빌립보 교회의 지도자입니다. 감옥에 있는 사도 바울을 도와주기 위해 교회에서 모은 돈 등을 가지고 감옥에 가서 정성을 다해 섬기다가 죽기에 이를 정도로 섬겼습니다. 사도 바울이 볼 때 자신을 돕기 위해 죽게 된 이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걱정하는 성도들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사람을 존귀하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 에바브로디도처럼 존귀히 여기는 사람으로 살다가 하나님 앞에서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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