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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의 깊은 강가로 (눅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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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서해원 목사

  3월이 시작되었습니다. 3월은 꿈과 희망과 약동을 심어주는 귀한 달입니다. 그래서 3월을 ‘march’라고 부르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계절적으로, 3월은 봄의 시작입니다. 요즘 꽃샘추위가 아직 한반도를 맴돌고 있지만 ‘경칩’이 지났고 이제 봄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올 것입니다.
교회적으로, 3월은 창립기념주일이 있기도 합니다. 다음 주가 우리 교회가 세워진지 31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함께 울고 웃으면서 지낸 세월이 어느새 이렇게 훌쩍 성년의 나이로 지나갔습니다. 정말 감회가 새로운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창립기념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 모두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새로운 비전을 품고 교회를 위해 충성을 다짐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앙적으로, 3월은 부흥사경회가 있는 달입니다. 이제 1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해마다 한번 갖는 사경회이지만 정말 하나님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때에 적절한 집회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교회를 다녀가신 여러 강사들이 은혜로운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이번에도 그런 집회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집회를 앞두고 저는 여러분 모두를 ‘은혜의 강가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은혜에 푹 잠겨, 평생에 잊지 못할 은혜로운 시간, 결단과 헌신이 있는 시간, 내 생애에 큰 변화를 이루는 시간, 그런 좋은 시간, 집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본문은 ‘베드로’라는 사람의 생애 은혜의 체험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평범하게 살던 베드로가 주님을 만나 생애 놀라운 전환점을 이루었던 사건입니다. 누가 보아도 베드로는 주님의 제자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입니다. 베드로를 통해 주님은 큰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한 평생 살면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참 귀한 인생을 살다가 간 사람입니다. 그에게서 이런 헌신의 삶을 이루었던 계기가 바로 본문에 나오는 사건입니다. 그는 은혜의 강가에서, 깊은 주님의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이 사건 없이 베드로가 베드로 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체험했던 은혜는 어떻게 임하게 된 것일까요? 본문을 보면, 그것을 몇 가지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선,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많이 반복하고 있는 것이 바로 주님의 말씀입니다. 1절에 보면,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절에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라고 말하고 4절에도 ‘말씀을 마치시고’ 라고 강조합니다. 5절에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고백하는 말중에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말합니다. 온통 여기에서 성경저자는 말씀을 강조하고, 실제로 베드로의 변화가 말씀과 관련해서, 말씀을 듣는 중에,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부름을 받는 장면을 기록한 복음서를 연구해 보면, 여기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요한복음에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찾아 간 것으로 되어 있고, 누가복음이나 마태,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차이를 두고 학자들은 많은 논쟁을 합니다. 하지만 제 나름대로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베드로는 제자가 되기 전에 주님을 한번 만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 번, 적어도 2번 이상은 만났다는 것입니다. 이런 몇 번의 만남에서 베드로의 변화에 가장 큰 계기가 되었던 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주님과의 만남에서는 자기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중에 감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을 대표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바로 본문입니다. 지난 몇 번의 만남을 통해 아직까지 움직임이 없었던 그의 마음을 열게 되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베드로의 생애는 말씀에 사로잡힌 생애였습니다. 말씀이 그를 떠나지 않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누구보다도 주님을 가까이 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이런 귀한 말씀이 선포되는데도 사람들이 안타깝게 떠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몹시 허탈해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제자들에게도 물었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갈 테면 가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아닌 다른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시간 허비하지 말고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의 고백이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했고 힘을 주었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여기 계시 오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이것이 베드로의 신앙이요, 삶이었습니다. 처음 말씀을 통해 은혜를 체험한 뒤부터 그는 평생 말씀이 가장 귀한 은혜의 통로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말씀과 더불어 삶에 커다란 변화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당시, 중세 기독교는 몹시 타락했습니다. 기독교의 본질에서 멀리 이탈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이탈은 성경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교회의 박해가 끝나고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면서부터 성경은 라틴어로 번역되었습니다. 로마가 멸망하면서 라틴어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지만, 성경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그것이 중세시대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그 시대에 사제들은 성경을 다른 말로 번역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평신도에게는 성경을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평민들은 지도자가 말을 지어내어도 그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판단할 기준이 없었습니다. 성경을 읽을 줄도 모르고, 가르쳐주지도 않았기에 그냥 그 말이 다 성경에 있으려니 하고 따라 간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성경을 모든 사람에게 주지 않고, 말씀대로 가르치지 않으니까 많은 왜곡과 타락이 온 것입니다. 더욱이 말씀으로 은혜를 받지 못하니까 기독교는 형식화되었고, 본질은 사라지고 빈 껍데기만 남게 된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을 모든 독일인들이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각국의 종교개혁자들도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성경을 갖게 했습니다. 그때부터 성경만이 진리인 것을 알게 되었고, ‘오직 성경으로’ 라는 구호아래 개신교가 시작되었고, 오늘 우리도 성경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인 성경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진리이고, 말씀에 힘이 있고, 말씀만이 우리를 깨우치는 확실한 도구입니다. 이번 집회는 바로 그런 말씀의 은혜를 사모하는 집회여야 합니다. 옛날 사무엘과 같이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종이 듣겠나이다’하며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은혜와 깨달음이 올 줄로 믿습니다. 말씀으로 은혜 받는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순종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또 유의하여 보아야 할 것이 바로 베드로의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5절에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베드로는 주님께 어떤 토를 달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을 봅니다. 기적과 은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베드로가 누구입니까? 그는 어부입니다. 이것을 지금까지 직업으로 해온 사람입니다. 갈릴리바다는 누구보다도 베드로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목수였습니다. 베드로가 이미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베드로와는 전공이 다른 것입니다. 얼마든지 베드로가 거부할 수 있었습니다. 무슨 말이든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 앞에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을 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날 따라 그가 고기를 잡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는 뜻입니다. 밤새도록 고기잡이를 했는데 허탕을 친 것입니다. 이런 날이 그의 생애에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만큼 그날은 갈릴리 바다를 뒤집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지쳤겠습니까? 고기가 잡히면 힘이 생기겠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 경험을 우리가 종종 하지 않습니까? 무엇을 하다가 잘 되면 신나서 힘드는 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잘 안되면 조금만 일해도 몹시 피곤하고 지칩니다. 만사가 귀찮고 신경질을 냅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지금 베드로의 상황입니다. 고기잡이는 누구보다도 그가 전문이고, 그날은 밤새도록 갈릴리 바다를 다 휘저었고, 지치고 힘들어서 다시 그물을 내리는 것은 정말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이 떨어질 때, ‘다시 하겠습니다’ 하고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큰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순종이 바로 은혜체험의 통로라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기독교 저술가중에 ‘존 비비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대표적인 책 중에 ‘순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말로도 번역되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순종이란 ‘말을 듣는 힘이요, 그것을 실천하는 용기와 결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은혜를 위하여 우리가 순종해야 합니다.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하고, 다짐과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 은혜가 충만히 임합니다. 무엇을 다짐할 것입니까? 적어도 이번 집회를 위해 우리 모두 다짐할 것이 있습니다. 우선, 집회에 가능하면 빠지지 말고 참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은혜의 강가로’ 나와야 합니다. 천국잔치를 배설해 놓고 사람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도 이것을 안타까워하시며 비유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오라고 초대하는데 장가가야겠다고, 소를 사야겠다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오지 않는 사람을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바쁘고 분주하겠지만 꼭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심정으로 주님을 찾고, 하나님께 나올 때,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또한, 내 마음이 옥토와 같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와 같고, 우리 마음은 밭과 같습니다. 동일한 말씀이 어떤 사람에게는 길가와 같은 곳에 심어지고, 어떤 사람에게는 옥토에 심어집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씨’가 아니라 ‘밭’입니다. 내 마음이 옥토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잘 박힌 못처럼 새겨져서 백배의 결실이 임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물론 사람이 전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입을 사용하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13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이런 믿음과 태도와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이런 순종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비하신 놀라운 은혜를 모두 깊이 체험하고, 큰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주님의 역사입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를 부르셔서 앞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헌신된 일군으로 쓰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느 날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면서 베드로를 마음에 두고 계셨습니다. 그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를 생각하셨습니다. 주님의 계획에 따라 찾아오신 것입니다. 주님에게는 오직 그를 부르시겠다는 강력한 의지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주님에게는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베드로의 어떤 상황도 문제나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님에게는 베드로라는 한 사람의 영혼만이 보았던 것입니다. 주님은 강권적으로 역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를 압도하는 놀라운 힘으로 그를 이끄셨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기적적인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이런 주님의 놀라운 힘이 표출된 것을 8절에서 찾습니다. 여기에 보면 베드로는 주님 앞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상황에서 맞지 않는 대답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이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이렇게 되었으면 당연히 그 다음의 말은 ‘주님 감사합니다’로 나와야 합니다. 아니면 ‘당신은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해야 문맥상 맞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오히려 주님에게 자기를 떠나달라고, 자기가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무엇을 우리에게 알려줍니까? 이것은 주님의 강권적인 역사가 베드로에게 임한 증거입니다. 지금 이것은 단순한 물고기를 잡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마음에 주님이 강력하게 심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에 어떤 역사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로 주님이 이렇게 일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강력한 역사가 베드로의 속을 보게 했고, 그 순간, 주님 앞에 죄인인 것을 고백하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베드로는 은혜를 체험한 것입니다. 주님의 강력한 역사가 그를 깨닫게 했고, 눈물나게 했고, 엎드리게 했고, 결국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게 하신 것입니다.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말씀’과 ‘순종’은 객관적인 도구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모두에게 골고루, 풍성하게 임하는 일반적인 은혜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나를 향한 주관적인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강력한 역사가 임해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를 체험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를 향한 은혜인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2월 13일에 미국의 유명한 과학자로 조지아대학의 교수인 헨리 쉐퍼 박사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지금까지의 탁월한 업적을 인정받아 다섯차례나 노벨상 후보에 오른 인물입니다. 그는 이번에 한국 창조과학회의 초청으로 방문하여 ‘과학과 기독교’ ‘빅뱅 이론과 스티븐 호킹 그리고 하나님’이란 주제의 강연을 통해 크리스천에게는 과학적 도전을, 무신론자에게는 과학적 양심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는 ‘과학자가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과학자일수록 정교하게 조종되는 우주가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주의 지적 요소들이 강권적인 창조주 하나님을 예시하고 있으며 누군가에 의하지 않고는 삼라만상이 그처럼 합리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는 것이 과학자들로 하여금 기독교인이 될 수밖에 없도록 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는 곧 하나님의 강력한 주권을 말한 것입니다. 그는 주님의 역사를 믿었습니다. 이 세상은 바로 그렇게 만들어졌고, 지금도 세상은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강력한 힘이 존재하기에 그것을 믿고 추구하면 반드시 누구라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임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남긴 한마디가 아주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가 한국교회와 크리스천에게 깊은 감동을 받은 계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1976년 이스라엘의 갈릴리 호숫가에서 통성 기도하는 200여명의 한국인을 보면서 하나님은 살아있고, 하나님은 한국을 축복하고, 하나님은 한국 땅에 큰 역사를 일으켜 기적을 행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그가 목격한 것은 성지순례를 떠난 한국 성도들이 갈릴리 바다를 보고 감격하여 기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갈릴리 호수가 어떤 곳입니까? 바로 본문에서 베드로가 은혜를 체험한 곳입니다. 강력한 주님의 역사가 임한 곳입니다. 우리가 만약 믿음을 갖고, 사모하며 기도한다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 우리를 위해 예비한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은혜가 임하면 믿어지지 않는 것이 믿어집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알 수 없던 것이 알아지고, 들려오지 않았던 것이 들려옵니다. 이제 우리 모두 이런 기대감을 가지고 나를 위해 예비한 은혜의 강가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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