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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환상의 예언자 (슥 4:6, 슥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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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필재 목사

오늘 성경말씀의 저자가 되는 스가랴는 전쟁 포로의 아들입니다. 바벨론에서 태어난 유대인 2세가 됩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의 역사를 거슬러 연구하고 17년 만에 준비과정을 끝마치고 예언자 활동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스가랴 예언자를 가리켜 별명이 하나 붙었는데 ‘환상의 예언자’라고 말을 합니다. 그 이유는 스가랴 성경 말씀 전체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덟 가지 환상을 보고 그 환상을 기초로 하나님의 뜻을 유대 백성들에게 선포했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습니다. 기원전 597년에서 539년은 유대 민족의 암흑기 역사라고 평가할 수가 있습니다. 바벨론의 식민 통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시대가 역사에서 사라지고 페르시아 시대가 새로 찾아와 유대인들은 또 새로운 페르시아 민족의 식민지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 속에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는 유대 민족의 해방 정책을 썼습니다. “바벨론 시대에 식민지로 이곳에 잡혀 와서 일하고 있는 많은 유대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가라. 자기 영토 귀환을 허용하겠다. 그리고 당신들의 소원인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성전 건축을 하고 하나님 섬기는 일을 나도 도와줄 테니 모두 고국 귀환을 허용하겠다.” 그렇게 새로운 역사가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벨로니아에서 고국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돌아와 보니까 희망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70년 가꾸지 아니한 터전이 폐허가 되어서 마치 도깨비 마을과 같이 되었단 말입니다. 찾아와 보니 당장 먹고사는 것조차 큰 문제가 됩니다. 사람이 고향이든 고국이든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어야 좋은 것이지 반가운 사람도 없고 먹을 것도 없으니 예루살렘에 돌아와도 좋을 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백성들이 짜증스러운 불만을 말하게 되었고 국민 여론이 총화를 이루지 못하는 어려운 시대가 왔습니다. 일부의 사람들은 아예 바벨론에서 끝까지 살겠다고 말합니다. “돌아가 봤자 좋은 것도 없고, 또 여기서 태어나 70년 이상을 살고, 거기다 유대인이지만 유대 문화도 모르고 바벨론 사람과 결혼해서 아기 낳고 생활 기반도 닦았는데 돌아가 봤자 고생할게 뻔하니 안 돌아가겠다.” 그래서 안 돌아가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 돌아가지 아니한 사람 가운데는 나중에 페르시아 제국의 왕후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에스더입니다. 그런데 예언자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명령은 “모두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라. 그래서 예루살렘에 가서 성전 재건을 하고 여호와를 섬기라!”였습니다. 이런 어려운 때에 유대 혈통으로 바벨론 시민권자로 태어난 사람이 오늘 말씀의 주인공인 스가랴라고 하는 예언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 선포를 하는데 ‘어떻게 이 어려운 작업을 해야 될 것인가? 민족에게 줄 수 있는 희망이 뭔가?’ 고민을 할 때 하나님이 그에게 여덟 가지 환상을 주셔서 그 환상을 기초로 예언자 활동을 하였던 사람이 스가랴입니다.

성경에 보면 환상에 대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로마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가 기도하다가 환상을 봅니다. 또, 같은 시간에 베드로도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또,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이 환상을 보고 유럽 전도를 떠나게 됩니다. 말세에는 젊은이들에게 환상을 줄 것이며 늙은이들은 꿈을 꾸겠다고 예언도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체험한 환상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이런 말을 한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에 환상은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비몽사몽간 환상이 있습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내가 분간하기 어려운 어떤 현상이 내게 나타남으로 환상 역사가 내보여지고, 또 하나는 완전한 꿈으로 나타나는 환상이 있고, 완전 생시적 환상 이렇게 3가지로 성경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이 환상은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잘못 보는 환상도 많습니다. 정신 주도적 환상이 있습니다. 과거 경험한 충격파가 잠재의식으로 내 머리에 남아있어서 그것에 항상 영향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악몽적 충격이 있다고 합시다. 사람이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 경험이 있잖아요? 지진 같은 것이 일어나서 건물이 무너졌는데 일주일씩 깔려 있다가 구조를 받은 사람도 있고, 해상사고를 만나서 바다에 며칠 동안 표류하다가 살아남은 사람도 있고, 험악한 산 속에서 길을 잃어 죽을 뻔하다가 깨어난 사람도 있고, 이런 충격이 정신에 영향을 계속 줌으로 말미암아 항상 이런 사람은 뭔가에 쫓기는 환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순간적으로 아주 식은땀을 흘리고 나중에는 그것을 생각하며 안도하는 그런 경우를 많이 만나게 됩니다. 또는 내가 어떤 일을 성취하고 싶은 강한 욕망 같은 것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강하게 정신세계를 지배하게 되니까 정말 그렇게 되는 자신을 환상적으로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심해지면 착란 증세가 보이고 더 심해지면 환자가 됩니다. 만날 사람도 없는데 하루에 옷을 몇 번씩 갈아입고 그가 분명히 오늘 찾아온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그런 일을 심심찮게 만나게 됩니다. “목사님, 이런 일이 있는데 이걸 어떻게 판단하죠?” 어떤 총각이 자기에게 찾아와서 “하나님이 당신하고 결혼하라고 그랬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이것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하나님이 시킨걸 안 하면 벌 받을 거 같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목사님이 판단해 주세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에게도 똑같은 환상이 왔느냐?” 그랬더니 안 왔다고 합니다. “그러면 가짜다!” 강한 욕망의 지배 속에 빠져드는 환상의 세계를 정신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경우에 이런 환상이 있습니다. 저는 목회를 오래하다 보니까 경험하지 않은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이상하게 경험했는지 오래 전, 아마 13~14년 전의 일인 것 같습니다. 1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제가 예배 15분 전에 강대상에 나와서 설교 노트도 정리하고 메모할 것들을 전부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시간이 되면 교인들이 한 절반 정도는 나와서 미리 기도하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저도 강대상에서 설교 준비하고 이제 성가대와 함께 입당하려고 하는데 저 맨 뒤에 앉아있던, 평소에는 말도 별로 없으셔서 말을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모를 만큼 조용하신 여자 집사님 한 분이 그 날 저를 보시고는 뒤에서 벌떡 일어나서 중앙 통로로 군인이 사열을 하는 것처럼 씩씩하게 걸어 나오시는 겁니다. 그리고는 강대상 밑에서 나를 보고 소리를 지르시는 거예요. “이거 봐요!” 아무리 둘러봐도 강대상에 저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교인들이 이렇게 많잖아요? “뭘 보라는 말씀이십니까?” “왜 하나님의 영을 거역하고 있는 겁니까?” 이러시는 거예요. “지금 저에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그렇단 말예요!” 마치 분위기가 부부싸움을 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예배당에 나와서 조용히 기도하고 계시는 교인들이 이렇게 많으니 “이리 오세요!”하고 그 집사님을 사무실로 모시고 들어갔어요. “뭐가 어쨌단 말씀이십니까?” “왜 하나님의 영을 거역하는 겁니까?” “하나님의 영이 뭔데요?” “하나님이 이 목사보고 일본 대사로 가라고 명령하셨는데 왜 안가고 여기 있는 거요?” “이게 무슨 소리요?” 제가 순간 알아차렸어요. ‘어휴, 이게 또 이런 거구나!’ “거기 앉으세요.” 그럴 때는 영적으로 꾸짖어야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뒤쫓아 들어오셨어요. “목사님, 죄송합니다. 집에서 목사님 일본 대사 소리 100번도 더 했습니다. 자, 어서 일어나요!” 끌고 나가셨어요. 정신세계를 너무 강하게 지배하다 보니까 이게 하나님이 주신 영으로 생각이 된 겁니다. 제가 일본 대사로 갈 뻔 했다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를 않아요. 교인들에게 의구심이 생겨요. 그렇잖아요? “아니, 목사님과 저 집사님과 무슨 관계이기에 저렇게 이상하게….” 그러니 목사가 “저 여자는 지금 정신 착란증 증세입니다.” 이렇게 광고하겠습니까? 그 사람을 치료해 주어야지요. 나는 그것 때문에 몇 년을 고생했어요. 이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자기의 소원에 집착을 지나치게 하다보면 그런 정신 주도적 환상에 사건이 벌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영적 세계와 인간 세계가 맞는 특수 상황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나에게 주어지는 환상입니다. 성경의 예를 보면 고넬료에게 환상이 나타났죠? 베드로에게도 동시에 나타났죠? 하나님이 이방 세계로의 복음의 확산을 이루기 위해서 유대니즘에 사로잡혀있는 베드로! 유대 사람만이 구원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베드로에게 환상을 주어서 그 사상을 깨고 나가는, 그래서 이방 사람인 로마 군대 백부장 고넬료를 만나게 하심으로 그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고 이방 로마 세계로 복음이 확산되어져 나가는 기회를 환상을 통해 열게 해 주십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이 환상을 봅니다.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서 그에게 청하되 “마게도냐로 들어와서 우리를 도우라!” 그 환상을 보고 유럽 전도를 떠났잖아요? 사도행전 16장 10절을 보면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심을 인정함이니라.” 이런 특별한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서 특별한 사람에게 주신 환상이 있습니다. 바울 선생이 “말하기 아주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내가 부득불 내가 본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하면서 하나님의 목적이 자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환상적 꿈과 계시를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이런 것이 환상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제게 보여주시는 환상이 하나 있는데 하나님께서 꿈으로 제가 나타나신 경우가 제 목회 과정에서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먼저 있던 교회 건축 문제가 가장 큰 프로젝트가 되어 있어서 이민자를 통해 이러한 수백 억 짜리를 이루어야 되는데, 교인은 많아지고 미국 교회 빌려서 예배드리는 것도 한계가 있고 그래서 날마다 기도회를 하는 겁니다. 산으로 데리고 가서 밤 12시, 새벽 1시까지 모두들 기도하고 내려오는 것을 한 달에 한번씩 계속 100번 이상의 기도회를 실시했습니다. 하루는 그렇게 기도회를 마치고 새벽에 잠깐 잠이 들었는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보여주시는 겁니다. “너희 교회가 앞으로 이렇게 될 것이다.” 그때 보니까 사람이 얼마나 많이 모여 있는지 몰라요. 거기에 건물도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지 건물 옆에는 부대시설이 많은데 새파란 잔디밭이 끝없이 있고 너무나 아름다운 환상을 제게 보여주셨어요. ‘틀림없이 내 믿음의 결정으로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교인들에게 발표했어요. “앞으로 이 교회는 이렇게 될 것입니다.” 잔디밭 이야기를 하면서 “교회가 정말 아름답게 비취는데요, 그런 교회가 어디 있는지 어디 붙었는지 잔디밭이 어디 있는지 전 알지도 못해요. 하지만 제가 본 환상 그대로 될 것이니까 그런 줄 알고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그런데 그렇게 안 되었을 경우 어떻게 되는 거죠? 나는 목회자로서 ×표란 말입니다. 왜? 거짓 영을 보고 환상을 말한다고 그렇게 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내가 발표한 환상 그대로 똑같이 되었단 말이에요. 윌슨 공원이라고 하는 토렌스에서 제일 아름다운 공원이 있는데 다 잔디밭이에요. 바로 그 아름다운 잔디 옆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큰 건물이 있어서 그 건물을 사 가지고 교회를 아름답게 잘 짓고 그렇게 짓자마자 교인들이 10배로 늘었어요. 그래서 발표한 대로 되었단 말이에요. 그 다음부터는 교인들은 내가 기침만 해도 “아멘” 그러더라고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게 있단 말입니다. 하지만 함부로 말하면 안 됩니다.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말해야 됩니다. 잘못 보는 환상도 많다는 말입니다.

스가랴가 본 환상이 무엇인가? 첫 번째는 “홍마를 탄 사람이 골짜기에서 화석류 나무 가운데 있다!” 지금 그것을 봤어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어두운 골짜기 속에 있습니다. 그러면 이 화석류 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절, 초막절에 사용하는 향내 나는 상록수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처소, 말 탄 자가 있다는 것은 “장차 하나님의 아들이 이 어두운 세상에 나타나서 향내 나는 교회를 세워서 세상을 구원하게 되리라.” 이 환상을 봤어요. 그래서 발표했어요. 두 번째는 네 뿔이 있는데 네 뿔을 꺾을 네 명의 전문 공들을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환상! 이것은 뭐냐? 그때까지 유대 백성은 그 백성을 지배해온 네 가지 세력이 있었습니다. 애굽과 바벨론과 앗시리아와 파사 제국입니다. 이게 네 뿔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세상의 모든 마귀의 세력이 있는데 그 네 뿔을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사명자들에 의해서 모두 멸망 받게 되리라.” 그런 환상을 발표했어요. 세 번째 환상은 척량줄 환상입니다. 이 척량줄이란 땅이나 모든 건물을 정확하게 척량할 수 있는 그런 재료입니다. 인간 세계에서는 모든 계획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척량줄 즉, 인간 세계의 모든 계획을 손에 잡은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계획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아 모두에게로 돌아갑니다.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세상의 모든 계획은 주께서 손에 잡으신 척량줄을 당겨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그 권세의 척량줄을 메시아가 잡고 계시다.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서 이 세상이 다 운영될 것이다.” 이것도 발표했어요. 네 번째 환상은 재판 환상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재판관이고 사탄이 검사 역할을 하고 죄인으로 끌려온 자는 대제사장인 그런 환상을 또 이 스가랴가 본 겁니다. 왜 대제사장이 죄인으로 끌려왔나? 대제사장은 백성의 대표자입니다. 그런데 그 대제사장이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고 했습니다. 뭘 말하느냐? 백성의 죄입니다. 대표자가 백성의 모든 죄를 가지고 나타난 겁니다. 재판 결과는 재판관이 그의 더러운 옷을 벗기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었다고 그랬습니다. “의의 흰옷을 입혀 주었다. 그렇게 될 것이다.” 다섯 번째 환상은 “감람나무 두 그루가 있다.” 순금 등대, 일곱 등잔, 일곱 관을 봤어요. 예수님은 두 가지 모습으로 세상에 오십니다. 초림 예수는 말구유간에 가난한 고난의 종으로 오십니다. 재림 예수는 심판의 주로 구름 타고 만왕의 왕으로 오십니다. 그게 두 감람나무란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순금 등대같이 고귀하며 일곱 등잔의 불을 밝혀 세상을 비추실 것이다.” 여기서 일곱 등잔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한 빛! 완전 숫자에 의한 구원의 빛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오시면 이렇게 될 것이다. 여섯 번째 환상은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 이 두루마리가 뭡니까? 성경책입니다. 옛날에는 성경책이 다 두루마리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날아갔다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침내 온 세상으로 날아갈 것이요, 전하여질 것이요.” 일곱 번째 환상은 “에바 속의 여인이라.” 이 에바는 우리나라 문화로 쌀을 팔고 살 때 사용하는 됫박이나 말과 같은 생활 도구입니다. 왜 여인이 그 속에 들어있나?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남편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여인으로 성경에 비유되어 있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께서 강림하시는 손에는 들고 나갈 등불 빛이 밝으며 또, 호세아서에서 하나님을 남편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처녀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이 환상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에바 속의 하나님의 백성이 들어있는 즉, “하나님의 백성의 죄와 값어치를 내가 재어보겠다.” 다니엘서에도 나타나잖아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세어보고 달아보니 부족하다.” 그렇게 하나님이 환상을 주셨습니다. 여덟 번째 환상은 뭐냐? 많은 말을 봤습니다. 홍마, 흑마, 백마, 어룽진 말을 봤습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쟁과 슬픔과 기근과 재앙이 찾아와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데 마지막에는 백마를 탄 자가 나타난다. 승리의 상징이 나타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세상 종말적 심판의 때를 가리킨다.”

하나님이 주신 여덟 가지 환상을 스가랴가 가지고 나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결국 이러한 스가랴 선지자의 환상은 메시아의 왕국 건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 구체적 예언의 말씀이 오늘 성경 스가랴 9장 9절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주로 이 땅을 찾아와서 온 세상을 구원하실 것을 예언하기 위해서 이 많은 환상을 주시고 마침내는 “메시아 추론이 이렇게 될 것이다.” 스가랴는 메시아 탄생을 예언한 예언자로서의 특징입니다. 이 예언의 환상은 그 후에 550년이 지난 후 마태복음 21장에 와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두 마리의 나귀 즉 어미 나귀와 새끼 나귀가 함께 있는데 그 중에 예수 그리스도는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이런 기록이 550년 후에 나타나지 않습니까? 스가랴 11장 12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은 삼십에 몸값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스가랴가 예언을 해놨는데 마태복음 27장에 와서 가룟 유다가 은 삼십을 받고 예수를 인신매매 하는 그런 성취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스가랴 13장 1절에 보면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고 했는데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의 모든 죄를 씻는 샘이 될 것을 벌써 예수 그리스도 오시기 전 550년 전에 스가랴 예언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예언해 놓으셨단 말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항상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환상을 보아야 합니다. 그 환상이란 반드시 신비적 사건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앞으로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이러이러한 삶을 살리라. 나는 하늘나라 가기 전에 이러한 약속을 주님과 한 것을 실행하리라. 내게 꿈이 있다면 이런 일을 하는 것이다.’ 기도하면서 그 환상을 향해서 앞으로 되어질 세대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왜 환상이 없는가? 주님으로부터 환상이 내게 올까봐 내 영이 미리 도망을 가고 있으니까 성령님과 교통이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환상을 꿈꾸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내 영 속에는 항상 원망과 불평과 시기와 질투와 비방과 죄 된 것과 옳지 아니한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환상이 없는 그러한 삶을 지루하게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환상적 삶이 가능한가? 오늘 말씀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그랬습니다. 성령님과의 교통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이제 또다시 우리는 성탄의 달인 12월을 맞이합니다. 주변은 스가랴 시대 같은 어려움이 우리에게 있지만 성령님 인도에 의한 믿음의 환상을 가지고 말씀이 육신으로 화하여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영접하시는 성탄 계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는 말씀 안에서 믿음의 환상을 보고자 합니다. 나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마치며 훌륭하게 창조적으로 순례자의 길을 걸을 것인가를 믿음 안에서 아버지가 주시는 환상을 보면서 그 길을 따를 수 있는 아버지의 자녀들이 되게 하옵소서. 550년 전 스가랴가 선포한 여덟 가지의 환상이 550년 후 마태의 시절에 와서 확실하게 이루어진 예언의 성취를 우리가 바라보면서 우리도 성령님에 의해서 내게 주어지는 환상적 삶의 순례자의 길을 갈 수 있게 하시고 다가오는 성탄의 계절에 나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믿음의 환상 속에서 살고 승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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