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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잃은 양을 찾으라 (눅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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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홍인덕 목사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스스로 나는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나는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자리가 의롭다고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들도 같이 이롭게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 보기에 의롭지 못한 사람들을 멸시하고 외면하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스스로 죄인이라 생각하기에 그 죄의 길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주 자포자기해 버리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어떠한 자인지조차 모른 채 다른 사람을 향해 멸시와 조롱을 퍼부어 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무리들을 보면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서로 수군거리며 말합니다.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구나”
세리들과 죄인들로 표현된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를 알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몰려들고 있는데 자신은 의롭다고 생각하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이들을 기특하게 생각하기는커녕 오히려 비아냥거리고만 있습니다. 아니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려고 다가가고 있는 예수를 향해서조차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고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그 수군거림이 바로 자신들이 더 큰 죄인임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한 생명이 얼마나 귀한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잃은 양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마리가 보이지를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 잃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흔 아홉 마리를 두고 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보통 양들은 목자의 인도를 따라 길을 가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먹기도 합니다. 목자의 뒤를 따르는 동안은 다른 염려를 할 것이 없습니다. 목자가 지켜주기 때문이요 먹을거리가 있는 안전한 곳으로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보통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서 자기 목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갑니다. 한 마리가 앞장서서 목자의 뒤를 따르면 그 뒤를 다른 양이 계속 꼬리를 물고 따라갑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양들이 지나간 자리가 마치 한 줄로 쭉 줄을 그은 것처럼 자국이 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 마리가 사라진 것입니다. 앞서 가는 목자의 뒤를 양 한 마리가 그리고 그 뒤를 다른 양들이 계속 따르는 모습으로 볼 땐 양을 잃어버릴 수가 없는데 감쪽같이 한 마리가 없어졌습니다. 그런 것으로 보아서는 이 양은 아마도 맨 뒤에 있던 양일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중간에 한 마리가 딴 길로 갔다면 그 뒤를 따르던 양들도 다 딴 길로 갔을 것이기 때문이요 그렇다면 쉽게 목자의 눈에 띄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지팡이와 막대기로 길을 잡아 주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마리만 잃은 것으로 보아 맨 뒤에 처져 따르던 양이 그만 길을 잃었을 가능성이 제일 큽니다. 맨 뒤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약하다는 뜻도 되고 그만큼 어리다는 뜻도 됩니다. 어느 쪽이든 이 양은 아마도 한 눈을 팔았을 수도 있습니다. 문득 길을 가던 중에 길가의 풀 한 포기가 눈에 띄어 그것을 먹고자 하는 마음에 앞에 있는 양을 따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몸에 어떤 이상이 생겨서 미쳐 앞의 양을 따르지 못하고 놓쳤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만 발을 헛디뎌 굴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미 양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목자가 그 양을 건져주었겠죠. 그런 점에서는 이 양이 한눈을 팔았거나 어떤 풀을 보고 그것을 먹으려다 앞서 가는 양을 놓쳤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할 것입니다.

무리에서 이탈된 양은 목숨이 아주 위태롭습니다. 양을 노리는 맹수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목자의 돌봄을 받지 못한다면 이 양은 이제 죽은목숨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아니 맹수에 잡아먹히지 않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먹거리를 찾을 능력조차 없습니다. 그러니 굶주려 죽거나 맹수에게 잡아먹히거나 아니면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그만 지쳐서 쓰러져 버릴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목자 없이는 더 이상 양은 살 길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은 다 양 같아서 주님의 품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다고 이사야 선지자는 말씀합니다. 각기 제 길로 갔다는 것은 길을 잃었다는 뜻입니다. 양이 목자의 뒤를 따라가야지 제 길로 가다니요? 그런데 우리 성도들의 모습이 바로 이렇게 각기 제 길로 가는 양과 같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잃어버린 바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교회를 잘 다니다가, 주님을 믿다가 실족하여 교회를 떠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는 주님의 뒤를 잘 따르고 있기에 이 자리에도 있는 것이요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한 것뿐이지만 교회보다는 밖의 일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이미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밖의 일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앞서 인도하는 주의 사자의 이끄심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든가, 감사와 찬양보다는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한 사람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 칭찬하기보다는 판단하고 비난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처럼 긍정적인 눈으로 보지 못하고 괜히 비아냥거리는 사람들,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의 이끄심보다는 현실적인 상황에 더 매이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로 어디서 길을 잃게 될지 모릅니다. 이미 교회를 떠나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 주님을 까맣게 잊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잃은 양이 아니고 누구겠습니까?

목자는 잃은 양을 찾아다닙니다.

“너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지 않겠느냐? 찾으면 기뻐하면서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서 친구들과 이웃 사람을 불러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목자는 아흔 아홉 마리를 안전한 곳에 두고 지금까지 양들과 함께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양을 찾기 시작합니다. 어디에서 양의 울음소리가 들리지는 않는가 귀를 기울여가며 길을 되짚어 갑니다. 이리저리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찾고 또 찾습니다. 어쩌면 온 종일 찾아다닐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맹수에게 잡아먹히지나 않았을까 하는 염려로 인해 마음은 또 얼마나 초조한지요? 내가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조금만 더 조심스럽게 살폈더라면 하는 자책감 때문에 또 얼마나 괴로운지요?

목자에게는 마치 자식과 같은 양입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와 같은 심정입니다. 마치 가슴은 터질 것만 같습니다. 속으론 내가 조금만 더 조심했으면 되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가 하면서 자책하며 지금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양을 생각하면 눈물이 용솟음칩니다. 맹수에게 들킬까봐 숨죽이고 숨어 있을 양을 생각하면 정말 미칠 것만 같습니다. 정신 없이 양을 찾아 헤매기를 얼마 만에 지쳐 쓰러진 양을 찾았을 때 그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정말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이만만 하길 정말 다행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눈물이 왈칵 솟아오릅니다. 얼른 좇아가 양을 얼싸안습니다. 입을 맞추며 양을 토닥토닥 두드려줍니다.
“이젠 안심해라 내가 왔다. 그동안 얼마나 무서웠니? 얼마나 힘들었니? 이젠 괜찮아 이젠 괜찮아.”
그리고는 겁에 질려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하는 지친 양을 얼싸안고 들어올려 어깨에 둘러맵니다. 그리고 돌아올 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얼마나 신이 나겠습니까? 지금까지 고생한 건 다 어디로 가고 그저 노래가 절로 흘러나옵니다. 발걸음도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헤매고 다니며 염려했던 마음이 큰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 집으로 돌아와서 친구들과 이웃 사람을 불러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하면서 잔치를 벌립니다.

내 가족과 같은 양 한 마리 때문에도 미어질 듯한 마음으로,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찾아 헤매고, 찾으니까 또 이렇게 안도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가 잃어버린 생명을 찾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보람된 일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에는 세상에 나가 사는 것이 즐거움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윽고는 자신이 길을 잃은 양과 같이 그렇게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덜컥 겁도 납니다. 이게 아닌데 싶습니다. 하지만 돌아갈 방법을 모릅니다. 아니 민망해서도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 자존심은 또 얼마나 상하던 지요? 그래 가슴만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아 무언가 위로를 찾는다고 하는 것이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마는 것입니다. 타오르는 갈증에 한 잔 술을 청해보아도 그리고 술김에 이런 저런 소리를 지껄여보아도 깨고 나면 허망할 뿐입니다. 이래저래 몸만 망가질 뿐이죠. 어떤 일에 집착을 하고 매달려도 봅니다. 산으로 들로 여행도 다녀보고 낚시에 무슨 오락에 빠져도 보지만 그것들이 우리 마음을 달래주지 못하죠. 그럴수록 점점 더 허전하기만 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습니다. 그래 방황하는 심령들입니다. 그 심령들을 우리가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 한 영혼으로 인해 안타까워하며 눈물 흘리시는 주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잃은 양 찾기라는 말을 합니다. 말만 잃은 양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알았던 그들, 주님 품에 있었던 그들이 지금 세상에 빠져 있습니다. 어떤 상처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나 욕구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친구 따르다가 그렇게 됐을 수도 있습니다. 먹고사는 일에 매달리다 보니 그렇게 됐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으로 인해 세상으로 빠져들었든 그들의 현실은 지금 주님의 품을 떠나 있다는 것입니다. 죽어 있는 생명들입니다. 그 생명들을 다시 살리는 일입니다. 한 시가 급합니다. 언제 생명의 문이 닫혀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니 언제 주님이 오실런지 모릅니다. 느긋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해도 좋고 안 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될 일입니다. 그들을 찾고 찾고 또 찾아 반드시 주님의 품으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물을 뿌려가며 기도도 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그들을 만나 권하고 또 권해야 합니다. 이렇듯 양을 잃고 찾아 헤매는 목자의 심정으로 영혼들을 찾아 구원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회개하는 한 영혼이 참으로 소중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기뻐할 것이다.”
한 영혼을 주님이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문제는 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버려진 영혼, 교회 밖에 방황하는 영혼들만을 가리켜서 회개해야 하는 죄인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눈 속의 들보의 비유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볼 때 눈에 드러나는 그런 사람들만이 죄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믿음과 은혜 아래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교회 안의 죄인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예수님을 향해서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이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고 있다고 수군거리는 바리새파 사람들 역시 자신이 죄 아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입니다.

우리 역시 다른 사람들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퍼붓고 있지는 않은지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불평하며 낙망하고 좌절하는 가운데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넘어뜨리며 시험에 들게 하는 자가 되고 있다면 나 역시 회개할 필요가 있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도 실족케 하는 자는 연자맷돌을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만 못하다고 하셨으니 연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기 못하고, 연약하다고 해서 깔보고 무시하는 것 역시 무서운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수고하는 자를 격려하고 좀 지나치다 싶은 것이 있어도 더 격려하고 잘 할 수 있도록 밀어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잡아 끌어내리고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바리새파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설사 잘못되더라도 그를 향해 돌을 던지기보다 그를 위해 눈물로 하나님 앞에 중보하며,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고 하며 위로해 주고 더 힘을 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내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 우리 스스로도 말씀과 은혜 안에 바로 설 뿐 아니라 이미 넘어진 사람들, 잃어버린 바 된 생명들을 찾아 그들로 하여금 다시 회개에 이르도록 만들며 주님 품에 안기도록 이끌어내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합니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며 돌아올 때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보다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더 기뻐한다고 하셨으니 이렇게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 찾고 또 찾는 자요 주의 전으로 회복하여 돌아올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의 가치는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귀하며 주님이 그 한 생명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으니 결코 주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만들 책임이 오늘 우리들에게 주어져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한 영혼이 돌아올 때마다 다 함께 기뻐하며 주님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나머지 아흔 아홉 마리를 두고 찾아 나섰던 목자처럼 나의 모든 것을 지키는 것보다 한 생명을 구원하는 그 일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위를 돌아보십시오. 내 가정에도 잃어버린 바 된 영혼이 혹 있을지 모르며 우리 주위에도 주님 품을 떠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그 생명을 찾았을 때 그들을 주님의 품으로 이끌기 위해 우리의 힘을 다해 기도하며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잃은 양을 찾는 목자된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누구보다도 열심을 가지고 수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수고가 자기의 의에 빠지게 되면 그만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처럼 되고 맙니다. 그들의 문제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만이 잘 났습니다. 나만이 제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가야 합니다. 뒤에 따라오는 자가 잘 따라올 수 있도록 내가 먼저 앞서 행해야 하고 결코 뒷발질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혹시 넘어지고 쓰러지는 자가 있다면 바로 붙들어주어야 합니다. 결코 비난하지 마십시오. 원망하지 마십시오. 손가락질하지 마십시오. 또한 앞서 수고하는 자를 잡아채지 마십시오. 혼자 튄다고 뭐라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같이 튀십시오. 양은 그저 앞서 가는 대로 그대로 따릅니다. 목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갑니다. 앞에 있는 양이 뛰면 같이 뜁니다. 그렇게만 하면 결코 길을 잃을 염려가 없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이 보여도 눈도 돌리지 마십시오. 목자가 이끄는 길이 아니라면 그 길은 풍성한 것 같으나 사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자리에서도 감사하며 혹 흔들리는 자가 있다면 함께 붙들어주고 함께 밀어주고 끌어주는 하나된 지체로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상처가 있다면 싸매 주십시오. 힘들어하면 내가 그 힘이 되어 주십시오. 혹 목자가 힘들어하면 양들이 젖을 내어 목자로 먹게 하고 추워하면 목자 곁에 붙어서 추위를 달래주는 것처럼 그렇게 목자 곁이 계십시오. 어떤 경우에도 목자에게서 멀어지지 마십시오. 그리고 내 뒤를 따르는 양을 성심 성의껏 돌보아주십시오.

혹 실족한 양, 길 잃은 양이 있다면 그들을 찾아내어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십시오. 그 한 마리 양을 찾아 목자가 나머지 아흔 아홉 마리를 떠나갑니다. 그 양을 찾기까지 목자의 관심은 온통 잃어버린 양에게 있습니다. 양을 찾기까지 수고하며 밤잠도 자지 못하고 헤매고 다닙니다. 결코 자기 몸을 돌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 한 영혼도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귀한 마음을 가지고 수고하는 이들을 격려하십시오. 그리고 순종하여 따르십시오. 그러면 어떤 경우에도 잃어버린 바 되지 않을 것이요 또한 누구도 잃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관심과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잃은 양들을 찾아 주님께로 이끄는 귀한 사랑의 사람들 되심으로 주님께로부터 칭찬과 면류관을 받아 누리는 귀한 성도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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