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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섬김의 생활 (막 10: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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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병학 목사

한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로서 나는 어떤 목회자인가? 또 우리교회는 어떤 교회로 세워져 가야하는가? 하는 것을 언제나 고민하면서 묻고 또 묻는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주변에 이미 수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교회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편치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의 많은 교회들이 개혁되어야할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어 개혁되어야할 우선적인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우리들 자신과 교회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이 어디인지를 바로잡아야할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그리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교회가 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면 변하기 쉽고 부패하기 쉬운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 확고하고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앞으로도 계속 추구해야 할 귀한 목표를 오늘 말씀에서 함께 발견하고 함께 노력하기를 원합니다.

본문에 보면 제자들이 추구하는 것과 예수님이 추구하는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자들은 높아지려고 합니다.
먼저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제 빠르게 어머니까지 동원해서 예수님에게 다른 제자들보다도 더 높은 자리를 청탁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속셈을 알아차린 다른 제자들은 대단히 분히 여겼습니다. 그들도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보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이방인의 집권자들과 그들의 대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높아져서 다른 사람들을 종으로 삼고 그들을 지배하면서 그들의 섬김을 받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지금 한결같이 그것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방금 전에도 부자 청년과의 대화에서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었으나 제물 때문에 근심하다가 결국 생명을 길을 떠나는 것을 보았고 그런 사람과 비교해서 자기들은 주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고 자랑했던 제자들이지만 그들이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이 지위와 권세와 명예입니다. 제물에 대한 탐심이 있으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씀을 들었고 주님을 따르려면 이 땅에서는 때로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하고 그로인한 핍박이나 환란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들었지만 그들은 아직도 욕망의 사람이고 이기적인 욕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함께 따르고 있는 동료들에 대한 배려가 조금도 없이 그들보다도 더 높은 자리를 구하는 모습입니다. 두 형제의 이런 속내를 알게된 제자들이라고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을 뿐이지 그들 속에도 똑같은 마음으로 가득찬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비장한 각오로 가고 있는 판에 3년간이나 따라다닌 제자들의 이런 모습을 보는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우리라고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동양의 옛 사상가들도 지위와 명예와 제물의 욕심이 인간에게서 가장 큰 욕심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가는 길 그래서 제자들이 따라야할 길을 보여주십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나는 세상에서 권세를 얻어서 새로운 정권을 창출해서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멋지게 한번 휘둘러 보려고 온 것이 아니다. 그것이 세상의 권력과 정권의 속성인바 너희가 그것을 바라고 기대했다면 너희는 처음부터 길을 잘못 선택한 것이고 지도자를 잘못 만난 것이라는 말입니다.
오히려 나는 섬기러 왔고 봉사하러 왔고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죽으러 왔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나를 닮아야 한다. 나처럼 섬기는 자, 낮은 자,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세상을 사신 방법이고 그분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이 살아야할 생활방식이라는 것입니다.

본래 이스라엘의 집권자로 세워진 자들은 백성을 착취하고 억압하고 지배자로서 무한한 권력을 가진 자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하나님이 왕이 되시고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나라로 세워진 특별한 나라이고 그들의 왕 마저도 하나님의 대리통치자에 불과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 왕입니다. 다윗왕은 이점을 가장 잘 아는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비록 한 나라의 왕이지만 언제나 여호와를 자신의 목자로 삼고 살았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유대인들은 그래서 같은 동족 간에는 종이 되어서도 않 되며 서로를 종으로 삼을 수 없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형제이고 사랑해야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은 점점 타락해 이러한 생각이 사라지고 이방인의 생각 곧 서로 높아지고 집권하고 억압하고 착취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에스겔 34장은 이스라엘의 타락한 목자에 대해서 책망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타락한 목자는 양을 돌보는 목자가 아니고 양을 잡아 자신의 배를 불리는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지도자가 타락하면 모든 백성이 함께 불행해 지는 것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타락한 목자는 이방인의 집권자처럼 남을 지배하고 착취하고 섬김을 받으려는 지도자를 뜻합니다. 이스라엘의 목자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지금 예수님의 제자들의 생각이 바로 이와 같은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목자를 인하여 고통 당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그냥 두고 보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타락한 목자를 심판하고 하나님이 세우시는 참 목자를 약속하셨습니다.

그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양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버려 양을 구하는 참 목자입니다. 그는 양을 섬기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외되고 억압받은 사람들 쫓겨난 사람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친구가 되어주고 위로 자가 되어 주시며 그들의 아픔을 살펴주시고 위로하셨습니다. 창녀, 세리, 병자, 가난한 자들 곁에 가까이 가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이런 사람들이 아닌 바리새인들 제사장들과 같은 당시의 지도자 층 유력한 사람들 힘 있는 사람들과 가까이 하고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면 예수님의 인기도 좋았을 것이고 아주 편하게 사역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낮고 천하고 보잘 것 없는 자들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며 섬겨주셨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에게 심한 모욕과 방해를 받았지만 한번도 자신이 가시는 길을 후회하거나 잘못되었다고 번복하지 않고 끝까지 그 길을 가셨고
제자들에게도 이 길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섬기는 자가 되라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철저하게 따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목사로 세워진 제가 먼저 그렇게 섬기는 자로 살기 위해서 몸부림 칠 것입니다. 우리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님들이 함께 섬기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세상에 섬기는 자로 비취지지 않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최고의 권세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처받은 영혼들이 많습니다. 저는 이런 모든 권위의식을 다 버리기를 원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당회장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목사 이외의 또 다른 어떤 권위적인 직함이나 자리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 보다는 예수님처럼 목자라는 칭호로 불려지기를 원합니다. (영어로 목자는 shepherd인데 들에서 양을 치는 목동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 말보다는  언제부터인가 pastor라는 말을 즐겨 쓰게 되었는데 이 말은 목자라는 말에 권위를 붙여주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로 사용한 단어는  shepherd입니다. )

우리교회는 세상을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자기 것을 쟁취하기에 급급한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자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섬긴다는 말은 디아코네오 라고 하는데 이 말은 식사시간에 주인에게 수종  드는 종을 칭하는 말입니다. 헬라인은 섬기는 일을 가장 부끄러운 일, 천한 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지배하기 위해여 태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말 많은 종을 거느리고 살던 시대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말은 전혀 다르게 바뀌어졌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가장 낮은 자리로 낮추시어 죄인의 친구가 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식사 수중을 들면서 자기 살과 피를 나누어 주시면서 너희도 이렇게 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섬기는 자가 가장 큰 자이다. 섬기는 자가 가장 높임을 받는다.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섬김을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덕목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교회의 집사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집사는 종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들은 종이 되어 먼지를 뒤집어 쓰면서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직분이 교회에서는 가장 영광스런 직분으로 받아드려진 것입니다.

눅17:7-10 은 우리가 얼마만큼 섬기는 자가 되어야하는지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가르쳐 줍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고 돌아와서 또 양들을 돌보고 저녁이 되어 돌아온  종에게 주인이 반가이 맞아주면서 수고했으니 편히 쉬라고 하겠느냐고 말합니다. 하루 종일 집에서 빈둥거리며 놀기만 한 주인이 그 종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빨리 부엌으로 들어가서 식사를 준비하게 하고 주인이 편히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수종까지 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자기의 밥을 겨우 먹을 수 있는 것이 종입니다. 그렇게 했다고 칭찬을 기대해서도 않되는 것이 종입니다. 나는 단지 종으로서 할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해야 되는 것이 종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런 종이 길을 가셨고 우리에게도 이런 종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눅12:37에는 반드시 역전되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와서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종이도시고  우리에게 종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이유입니다. 반드시 그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지 않은 나에 그날이 속히 오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생각지 않은 날에 오셔서 충성된 종들을 찾으시고 그들의 눈물을 닥아 주시고 수고를 위로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잔치자리에 앉게 하시고 친히 우리를 수종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너무도 엄청난 약속을 하십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종이 되어 살라는 말씀이 힘이 들고 어렵지만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함께 이 길을 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충성스런 종이라 칭찬받고 귀한 상급 받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누군가 쓰레기를 치우며 청소하는 사람이 있기에 그나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쓰레기 더미가 아닙니다. 오물을 치우는 분들이 있기에 배설물 가운데서 살지 않습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이름 없이, 빛 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그렇게 세상을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하신 것은 양들을 평화롭게 행복하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일을 위해 진실한 목자를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꿈꾸는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젖과 꿀이 풍성한 교회 성도들 간에 진실한 섬김과 돌봄의 사랑이 있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또한 나아가 세상을 섬기는 모습이야말로 교회가 갖추어야할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이신 것처럼 섬기는 자로 살기 위해 낮은 데로 내려가고 내 것을 비워 남을 섬기는 자리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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