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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받는 사람 (막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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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원사연 목사

(서론) 예수님의 명성에 위협을 느낀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손을 씻지 아니하고 식사를 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장로의 유전을 빙자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자기들의 이기적인 탐욕을 채우는 그들의 외식적인 행위를 지적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은혜받는 사람'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一) 중심이 바로 서야 은혜를 받습니다.

1-2절 보면 몇몇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서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 몇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예수님의 명성을 듣고 믿고 따르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은혜받고자)

그들은 산헤드린의 명을 받고 예수님을 책잡고 모함할 근거를 찾기 위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는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나 손으로 행하시는 표적은 보지 못하고 오직 장로의 유전을 거스려 손을 씻지 않고 식사하는 제자들의 모습만 보았습니다.
이와같이 사람들은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동일한 사물이나 사건, 또는 사실을 두고 전혀 다른 반응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찾기 전에 먼저 우리의 중심을 바로 잡고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들 가운데는 하나님과 교회에 대해 책잡을 일만 찾는 사람은 결코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의 눈과 귀에는 오직 비판과 책잡을 일만 들어올 뿐 은혜가 되는 일은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시간 진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원하십니까?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을 향해 활짝 열어놓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드리고 말씀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의 손길이 여러분의 눈 앞에 서서히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二) 세상적인 기준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말아야 은혜를 받습니다.

5절 보면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향해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장로의 유전이 뼈 속 깊이 박혀있어 복음의 진정한 의미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장로의 유전이 되었든 아니면 세상 사람들처럼 돈과 명예가 되었든지 말씀이 아닌 세상적인 기준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장로의 유전에 사로잡힌 바리세인의 눈에는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는 제자들이 한없이 불경스럽게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자리잡고 있는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기준을 깨끗이 내어버려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Paul은 복음은 유대인에게는 꺼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전 1:23)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요 영생의 진리"입니다. (고전 1:24)

7절 보면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계명이란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이 지키던 장로의 유전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 사람이 만든 규례입니다. 게다가 장로의 유전 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도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것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헛되이 경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나름대로 수많은 율례와 규칙(규례)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규정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머릿속에서 나왔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처럼 외형에 치중하다보니 계명의 가장 중요한 본질과 정신을 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본질과 정신이 사라지고 외형적 껍데기만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바로 "헛되이 경배하는 것이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인간적인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섬기면서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설교와 찬양, 혹은 전도와 봉사 등 모든 면에 있어서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은 사라지고 인간적인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예배의 장소를 강조하는 사마리아여인에게 "참으로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4:23-24)
우리는 화려한 건물과 실내 장식도 좋고 세련된 기교도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과 성령입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새로워진 우리의 중심을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예배라는 것입니다.
Paul 사도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롬 12:1)

(三) 부분적인 것을 절대화 하지 말고 전체적인 진리를 중요시 해야 은혜를 받습니다.

8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만든 율례를 지키느라고 율례의 근본이 되는 하나님의 계명을 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이렇게 되었습니까? 3-4절의 말씀처럼 그들은 전통으로 내려오는 정결례에 충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율례는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습니다.
예컨대 흙먼지가 많이 일어나는 사막지대에서 당시 식사습관을 생각할 때 손을 깨끗이 씻고 음식 먹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권고적 차원에 머물러야 할 조항이 경건을 측정하는 절대적 기준으로 비약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손을 씻으라"는 단순한 청결조항이 "손을 씻지 않으면 불경하다"는 종교적 척도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식사를 한 것이 불경하기 짝이 없는 죄악이라는 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의 기준으로 볼 때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즉, 부분적인 문제들과 관점 차이에서 오는 이견들을 절대의 자리에 올려놓고 한치의 타협도 하지 않은 채 주님의 몸된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자 존 칼빈의 말처럼 성경에서 말씀하지 않은 상대적인 문제들을 절대화 시키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부분적인 문제들이 절대의 자리에 앉아 말씀과 교회가 나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초대교회처럼 (행 15:28) 언제나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되 부분적인 것들은 열린 마음으로 포옹해야 교회의 덕을 세우고 이웃을 유익하게 하는 성숙한 성도들이 될 수 있습니다. (고전 11:33)

(결론)

주님은 마음의 온갖 죄악은 방치한 채 겉만 깨끗이 하려는 바리새인을 향해 사람을 진정 더럽게 하는 것은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죄악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죄악들에는 눈을 감은 채 환경운동이니 개혁이니 하며 겉만 깨끗케 하려고 하는 것은 모두 헛된 일입니다. 인간의 속사람이 깨끗해지지 않고는 무슨 일을 해도 깨끗케 하거나 개혁할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말씀처럼 먼저 말씀과 기도로 속사람을 정결케 해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적이거나 인간적이 아니고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서로 포용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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