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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 있는 사람의 형통을 누리라 (시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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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광호 목사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면서 참여하셨던 분들은 올 해 내게 주신 말씀카드를 받으셨습니다.
제게 주신 올 해의 말씀은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욥22:21)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고 또 묵상하면서 먼저 하나님께 회개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1. 설교를 위해서 성경을 읽었던 것이 회개거리로 떠올랐습니다.
2. 성도들의 문제와 요청 앞에서만 기도했던 것을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3. 권면하고 설교할 때에는 말씀과 기도를 강조하고 진실한 사랑과 헌신을 강조하면서도 제 자신이 먼저 말씀과 기도에 힘쓰고 진실한 사랑과 헌신을 하지 못했던 것들을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제가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일 아침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말씀묵상을 통해서 다시 하나님과 친근해 지려고 합니다. 말씀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뜻을 깨닫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새로운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묵상을 통해 누리는 기쁨입니다.

저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고 그 복을 누리며 베푸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제가 누리기를 원하는 복은 형통의 복입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재건의 사명감당을 위해 형통을 기도했듯이 저도 사명감당을 위한 형통을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목회의 길이 형통하기를 원합니다. 가정의 길이 형통하기를 원합니다. 자녀들의 삶이 형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원하는 것만큼 하나님과 화복하고 평안해야 함을 깨닫고 있습니다.
제게 주신 올해의 말씀이 바로 그것을 제게 일러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한 관계를 지속하기를 힘쓰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곧 복이 되는 삶을 체험하고 그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 하길 원합니다.

지난 주 월요일에 구남이 권사님 병원에 문병을 갔습니다. 위로해드리고 손을 얹어 축복하며 치유의 기도를 드리고 왔습니다. 권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올 해 제가 받은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어요.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제가 수술을 받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고 수술을 하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그 말씀 이었어요.’ “인내하며 부르짖으라”

권사님이 그런 고백을 하자 임옥진 장로님이 제게 수첩을 열어 보여주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는 말씀이 적혀있었습니다.
이것은 올 해 제가 받은 말씀입니다. 이 때를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위로를 받았고 힘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다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또 받은 말씀을 나의 말씀으로 붙드는 사람과 붙들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삶의 결과가 전혀 다른 것입니다.
말씀을 붙드는 사람은 형통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붙들지 못하는 사람은 불통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말씀을 붙드는 사람은 말씀으로 인해 때로 위로함과 용기와 소망도 얻을 수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의 길을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기도 하고 분별하는 지혜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만 이 모든 것은 말씀묵상의 결과이지 목표는 아닙니다.

지난 월요일 갈대상자의 저자이죠? 한동대 김영길총장의 아내인 김영애 권사님이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책을 볼 때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하고 간증을 들으면서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분은 말씀을 붙들고 사는 분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가 가진 지식이나 배경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매일 읽으면서 묵상했던 말씀들이 삶의 고비와 위기 때 마다 그를 위로해 주었고, 세워주었고 인내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간증을 듣거나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같이 식사를 하면서 개척교회를 섬기시는 목사님이 권사님의 책을 읽으면서 개척 당시 겪었던 많은 어려움과 고난들을 이겨낼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서로 삶의 자리와 경험하는 고난은 달랐지만 동일한 위로와 은혜가 말씀을 묵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1987년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투쟁의 과정에서 옥에 갇히고 고난을 당했을 때 저도 서대문구치소와 영등포 구치소에서 약9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어야 하는 고난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너무나 억울하고 원통함이 저의 몸과 마음을 깊은 수렁에 빠지게 했습니다.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취조를 받는 가운데 저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너 하나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없애버릴 수 있다는 공갈과 협박이 있었습니다.
수갑이 허리 뒤로 채워지고 몇 사람의 경관에 의해서 물고문이 자행되어졌습니다.
저는 거의 초죽음의 상태에 빠졌고 모든 것을 포기해야겠다는 절망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제 입에서 흘러나오는 외침이 있었습니다. ‘오 주여 저를 도와주옵소서.’
물속에 거꾸로 쳐 박혀 물을 벌꺽벌꺽 먹으면서 오히려 정신이 더 차려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물속에 쳐 박힌 채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시18:1-2)는 말씀을 암송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죽음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바로 그 순간 주님께서는 제게 말씀을 주셨던 것입니다.
‘나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 이 고통을 이겨낼 힘을 주옵소서.’
저는 작음 외마디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고난의 순간 제가 이 말씀을 붙들었기에 고난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정 복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모든 명예와 권력을 가진 자입니까? 거부가 되어 하루에 100만원을 쓰는 사람입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복 있는 사람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쫒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오늘 본문 말씀은 복 있는 사람을 크게 둘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복 있는 사람은 구별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쫒느냐가 그의 인생을 좌우합니다. 어디에 서 있느냐가 그의 삶을 규정합니다. 내가 앉아야 할 자리를 모르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 1절에서는 복 있는 사람이 되는 소극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데 ‘아니하며’ ‘아니하며’ ‘아니하고’라는 표현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피하는 방법입니다. 멀리하는 방법입니다.
죄의 자리를 피하고, 더러운 곳을 멀리하고, 있어서는 안 될 자리를 떠나면 복 있는 삶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들하고 간현이라는 곳에 캠핑을 갔습니다. 밤에 강가에서 야영할 것을 생각하고 역전에 부스러진 나무들을 주워서 갔습니다. 얼마나 재미있게 놀았는지 그 당시에는 고고가 유행이었는데 모닥불을 피워놓고 신나게 춤을 추었던 것 같습니다.
잠을 자야 하는데 점점 몸이 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불은 다 꺼져가고 그때 우리들이 생각해낸 기발한 아이디어는 모래를 불 위에 덮고서 데운 다음 그것을 이불처럼 펼치고 잠을 자는 것이었습니다. 잠이 들긴 하였는데 곧 이슬을 맞은 우리들은 추워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추위를 피하여 대합실로 왔는데 모든 친구들의 몰골이 형편이 없었습니다. 숯 검덩이가 묻어서 완전히 거지 형상 그대로였습니다.
숯 구덩이 속에서 놀면 숯검정이 묻게 마련입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성도는 지혜로워야 하고 결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악한 꾀는 절대 쫒지 말 것이며, 죄인의 길에 결코 서서는 안 될 것입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은 친구가 좋다는 의미이지만 친구 따라 강남가면 안됩니다. 강남의 타락한 곳, 더러운 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망하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복 있는 사람은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2절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이 되는 적극적인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저는 며칠 전 정말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사는 한 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진주 강남교회 여자 장로님이셨는데 장로님의 표정과 말과 행동 속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기쁨이 흠뻑 묻어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정말 주님이 사랑스럽고 감사해서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 아시지요.’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싶은데 그 사랑의 고백을 핸드폰의 문자 메시지로 적어서 하늘을 향해 확인 버튼을 누르기도 했답니다.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과 순수함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면서 제 자신이 그런 순수함으로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기에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사람이 복을 차지하고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3절은 복 있는 사람이 누리는 형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쫒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 누리는 형통이 있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형통합니다. 범사에 형통합니다.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물질의 형통이 있습니다. 일에 형통이 있습니다. 열매의 형통이 있습니다. 가정의 형통이 있고 자손들의 형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명의 형통을 누립니다.

이와 같은 형통은 복 있는 사람이 누리는 형통입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면 복 있는 사람이 되고 복 있는 삶에게 형통의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함으로 얻게 되는 영적 삶의 유익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지혜와 분별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묵상에서 얻는 유익 중에 중요한 것이 지혜입니다. 그 지혜는 ‘하나님의 안목에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지혜는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유익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말씀을 묵상할 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길이 보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말씀을 늘 묵상해야 합니다.

길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하나님 뜻 안에서 이미 만들어져 있습니다.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께서 주신 길을 찾아서 그 길을 갈 때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여 주님의 뜻을 깨닫고 길을 찾는 자가 될 때 형통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영적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 악한 영들과 어두움의 권세와의 싸움입니다.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는 영적 싸움에 승리할 수 없습니다.
강한 자를 결박하기 위해 우리는 더 강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결코 우리는 강하지 못합니다. 약합니다. 질그릇 같이 깨어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우리가 가진 힘으로는 강한 자를 결박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더 강한 자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더 강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승리를 주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 더 강한자의 능력과 더 강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에 앞서 광야에서 40일간 금식을 하시며 준비하셨습니다. 그때 마귀들이 예수님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들의 공격을 물리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마귀가 공격해 올 때 예수님은 성경을 뒤지며 말씀을 찾지 않으셨습니다. 자연스럽게 입술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입술에서 흘러나와야 합니다. 그것은 말씀묵상의 훈련을 통해 얻게 되는 결과입니다.

3. 내적인 치유가 있습니다.

말씀 속에는 놀라운 위로와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상한 마음의 진정한 치료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생활은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하게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건강한 자아상을 회복시켜 주며 바른 인생의 가치관을 정립하게 해줍니다.
구원의 확신과 강하고 담력 있는 삶의 능력을 얻게 해줍니다.

4. 능력이 임하고 열매를 맺습니다.

말씀을 묵상 할 때 현재의 고난과 역경, 어려운 상황에서 넉넉하게 그 길을 뚫고 지나갈 수 있는 능력을 얻습니다. 길이 안 보이고 상황이 어렵지만 그것을 뚫고 나가는 힘이 말씀묵상을 통해 얻게 되는 능력입니다.

말씀묵상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형통케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능력의 지팡이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가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1:8)
여호수아가 형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묵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여호수아는 담력을 얻었고 인도하심을 받았고 형통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풍성한 삶의 열매가 맺어지고 모든 것이 잘 됩니다.
시냇가에 심은 과실나무처럼 때에 따라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고 입사귀가 마르지 않으며 그 행사가 형통한 것입니다.
말씀 묵상은 한 번 형통하고 마는 일회용 축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형통한 자가 되고, 축복받은 자가 되는 길입니다. 존재가 바뀌고 존재 자체가 넉넉해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통과 축복이 그를 저절로 따라가게 되는 것, 그것이 말씀 묵상입니다.

말씀묵상을 통해 얻는 형통은 모든 일에 이루어지는 형통입니다.
육신의 안일함만이 형통함은 아닙니다.
모든 일이 잘되어질 때만이 형통함이 아닙니다.

주님이 함께하실 때
요셉은 감옥에서도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쫓겨 다니면서도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자는
광야에서도 형통함을 누리고
사글세방에서도 형통함을 누리고
육신의 고달픔 속에서도 형통함을 누립니다

오늘도 주님이 함께 하시는 자는
믿음으로 이 형통함을 노래합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없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주님만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부족함이 없는 이 형통함을
오늘 누리는 것입니다.

복된 사람의 형통, 그것은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 누리는 형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래서 말씀묵상의 유익함을 경험하고 형통의 복을 누리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05년 3월13일 주일낮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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