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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사명을 위해 지음받았다 (행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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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오재현 목사

1. 작년 2월에 세계 최초로 인간 체세포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하여 생명공학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실력임을 입증한 서울대학교 황우석 교수, 그의 글이 실린 <나의 생명 이야기>란 책이 있습니다. 물론 줄기 세포 연구가 윤리적 차원에서 찬반 논쟁이 치열하지만, 그는 줄기세포 배양 분야에선 세계 최고의 학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가 이 연구를 시작할 때, 복제 인간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연구는 이미 세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모하게도 이런 연구를 시작하게 된 배경을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의학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난치병을 앓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이 내 가슴에 와닿았던 것이다. 우리 연구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의 병 때문에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들에게 작은 희망의 단초라도 제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나는 자연과학도지만 인간의 삶을, 그것도 막연한 인간이 아니라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분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자연과학을 전공했다.”

난치병 환자의 치료에 도움이 되어야 하겠다는 사명, 고통당하는 이웃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결코 쉴 수가 없다는 황 박사의 사명감이 남들이 가지 않는 길, 불가능하다고 하는 그 길을 가게 하였고,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에게 작은 희망의 싹을 틔워줄 수 있었습니다.
사명, 사명이 있는 자는 다릅니다.

2. <목적이 이끄는 40일 캠페인>에서 우리는 이미 인생의 다섯 가지 목적 중 네 가지를 이미 배웠습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었습니다. 이것을 예배라고 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서로 교제함으로 서로 섬기며 섬김을 받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이것을 훈련이라고 합니다. 삶의 여러 가지 여정을 통해 훈련받음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성숙해가는 것입니다.
넷째,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지금의 모습으로 지음받았습니다. 이것을 사역, 혹은 섬김이라고 합니다. 사역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마지막 다섯째 목적입니다. “우리는 사명을 위해 지음받았다.”
우리의 사명은 전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하신 말씀을 들어봅시다.
요한복음 20:21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여기의 ‘보낸다’는 단어를 라틴어로 미쇼(misso) 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영어로 사명이란 단어 미션(mission)이 나왔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아들 예수님께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세상을 구원하는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피와 물을 다 쏟으시고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구속사역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께서도 그분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으로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한 사명을 맡겨주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19-20에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너희는 가서”- “가라” 고 명령하십니다. 세상으로 가라. 뭐하러 가라고 하십니까?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기 위해서” 가라.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의 제자로 삼기 위해서 “너희는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게 우리의 사명입니다. 가서 제자 삼는 것. 복음 전하는 것.

3. 황우석 박사와 그의 연구팀이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하여 난치병 환자에게 희망의 싹을 틔워주기까지 일년 365일 공휴일도 없이 외부와 격리된 실험실에 틀어박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였습니다. 수백번, 아니 수천 수만번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끝까지 연구에 집중하여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몸담고 있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지고 지선의 일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난치병 환자를 살리는 일을 위하여 이렇게까지 헌신적으로 일하는데.
한 사람의 영원한 생명, 영원한 행복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은 우리는 어떠합니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의 영원한 복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 이보다 더 큰 친절, 이보다 더 큰 봉사, 이보다 더 큰 섬김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한 복을 누린다는 것,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어떤 목사님께서 상당히 큰 교회에서 전도에 대한 설교를 해달라고 부탁받고 강단에 섰습니다. “제 설교에는 세 가지 요점이 있습니다.” 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성도들은 시작부터 하품을 했습니다. 늘 듣던 말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요지는 이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세상에는 5400만명이 죽어가고 있는데, 대부분이 그리스도를 모른 채 죽어가고 있습니다.”
교인들의 반응이 시큰둥했습니다. “두번째는...” 아니 겨우 10초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두 번째라니. “두 번째 요지는 여러분 대부분은 여기에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빌어먹을’ 사실에 있습니다.” ‘뭐라고 빌어먹을.’ 목사가 강단에서 ‘빌어먹을’ 이라니. 사람들이 놀라면서 웅성웅성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요지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비극은 많은 영혼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제 말보다 ‘빌어먹을’ 이란 말을 했다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돈 버는 일도 중요하고, 직장에서 승진도 해야하고,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어가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영원한 생명, 영원한 복을 얻게 해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모두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 이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데는 대가를 치르는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이번 한 주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을 구체적으로 묵상하는 고난주간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만찬 예식을 거행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떡과 잔을 받습니다. 이 떡과 잔을 먹고 마시면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살을 찢으시고 피를 다 쏟아주시기까지 희생하신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피의 대가를 치르고 나를 살려주신 예수님, 그분을 기억하는 것이 성만찬 예식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곧 그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희생이 들어 있습니다. 대가를 치르지 아니한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황우석 박사는 어린시절 너무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6.25 전쟁 이후에 태어난 그는 농촌에 살면서도 소 한 마리도 없어서 부자가 산 송아지를 키워주고 새끼를 낳으면 자기 것이 되는 그런 소를 키웠습니다. 그는 소를 키우면서 소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죽도록 일만 하다가 잡혀 먹히는 소, 그 소가 있어서 농부는 조금이나 수고를 들었고, 소를 팔아 가족의 주린 배를 채웠고 자식 공부도 시켰고. 소는 인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가슴 아픈, 그러나 아름다운 존재였습니다. 황박사도 그런 소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그는 고3때, 의과대학에 들어갈 실력이 되었지만, 수의학과에 들어가서 소를 연구하게 되었답니다.
황박사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복제 인간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연구를 시작했을 때, 주위에서는 모두 말렸다. 그건 이미 세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연구라는 것이다. .... 사람들은 너무나 숭고한 것은 이룰 수 없는 이상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대로 되기만 하면 좋겠지만, 세상 일이 어디 그러냐는 식이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소리없이 자신의 확고한 신념과 이상에 몸 바친 사람들이 많다.”
맞습니다. ‘불가능하다고, 너무 힘들다고’ 생각되지만, 사람을 살리는 일에 몸 바쳐 뛰어들 분은 안 계십니까? 내가 좀 희생하여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기꺼이 희생하겠노라고.

‘쉰들러 리스트’란 영화는 독일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의 삶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의 일꾼들은 전부 유태인입니다. 그가 공장 직원으로 채용해서 수용소로 끌려가지 않도록 구해준 이들입니다. 쉰들러는 섹스광에 술주정뱅이며 구두쇠였지만, 유대인들을 통해 이기적인 사람에서 희생적인 사람으로 바뀝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습니다.
연합군에 대한 독일군의 무조건 항복이 발표되자, 쉰들러는 자기 일꾼들과 그곳에 주둔했던 독일군 병사들을 모두 모읍니다. 고별사를 하고, 자정이 지난 시간, 바깥에서는 쉰들러와 그의 아내를 태워갈 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든 일꾼이 그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들은 혹 쉰들러가 체포될 경우를 위해 그 동안의 일을 설명하는 편지를 써서 전원 서명했습니다. 그전에, 일부는 자신의 이에 씌운 금을 뽑아 그에게 반지를 만들어 주기로 자청했습니다. 그 반지를 쉰들러에게 건네주면서 유대인 스테른은 히브리어로 새겨 넣은 탈무드 문구를 해석해줍니다.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자는 온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쉰들러는 감정을 가누지 못하고 스테른에게 말합니다.
“더 구할 수 있었는데... 더 살릴 수 있었는데.... 조금 더.... 조금이라도 더... 더 살릴 수 있었는데....”
“오스카, 당신 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이 1,100명이나 됩니다. 보십시오.”
그러나, 쉰들러는 차마 그들을 볼 수가 없습니다. 허비해 버린 수많은 기회가 생생한 실체로 되살아나 가슴을 짓누르기 때문입니다.
“돈을 더 들였더라면.... 너무 많은 돈을 날렸습니다. 당신은 모릅니다. 조금만 더 아꼈더라면...”
“당신 덕분에 세대가 끊기지 않을 것입니다.” 스테른이 다정하게 말합니다.
“더 많이 못했습니다.”
“아주 많이 했습니다.” 쉰들러는 웁니다.
“이 차, 괴트가 이 차를 샀을 겁니다. 어쩌자고 이 차를 붙들고 있었단 말입니까? 열 명, 이 차로 열명을 더 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 자기 옷깃을 내려다봅니다.
“이 핀...”
그는 옷깃에서 나치스 국장을 뜯어내 스테른에게 내보입니다.
“두명, 이것은 금입니다. 두명. 이걸로 두명은 더 살렸을 겁니다. 최소한 한명, 한명은 구했을 겁니다. 한명 더, 한 사람 더, 한 사람입니다. 스테른, 이걸로 한 명 더, 한 명 더 구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습니다.”
쉰들러는 계속 웁니다. 그는 무너져 내려 무릎꿇고 흐느낍니다. 스테른이 그를 감싸줍니다.
한 여자가 다가와 그 옆에 무릎을 꿇습니다. 다시 다른 여자, 또 다른 여자. 쉰들러는 드디어 일어나 화려한 제복을 벗고 초라한 죄수복으로 갈아입습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차에 오릅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자는 온 세상을 구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한 사람이라도 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바울 사도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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