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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고난주일] 이 사람이 누구냐? (슥 9:9-10, 계 3:20-22, 마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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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오동 목사

1. 우리는 교회력의 황금시즌이라 일컫는 사순절 기간을 지난 성회 수요일부터 지켜오고 있습니다. 주님의 고난을 명상하면서, 그 고난에 동참하므로 부활의 영광을 더 새롭게 체험하기를 원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주님이 늘 그렇게 말씀하셨듯이 십자가를 통해서 면류관을 얻게 되기를 소원하는 우리 믿음의 행진입니다.

오늘이 종려주일이요 오늘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사순절의 클라이맥스요, 바로 부활절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기간입니다. 그리고 이 기간이야말로 주께서 우리에게 은혜와 복을 주기 위해 마련해 주신 기회인줄 믿습니다.  엡5:16에 “세월을 아끼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영어 NIV 성경에서는 “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 삶의 순간순간을 최상의 것으로 만들라는 뜻인 줄 압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절기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절기를 지키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오늘 주실 은혜를 사모하고, 그리고 내일을 주님께 맡깁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들도 교회력을 통해서 주시는 주님의 뜻을 살펴야 합니다. 그것이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입니다.

한신 교회 이중표 목사님은 고난주일 설교 준비를 위하여 눅9:28-36에 있는 예수님의 산상변모기사를 읽는 가운데 마치 전기가 흐르는 듯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눅9:31 말씀인데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라고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별세”라고 하는 단어에 그의 시선이 꽂혔습니다. “별세”라고 하는 말이 헬라원어로는 “엑스돈”인데 구약 성경의 “출애굽”이 바로 “엑소도스”입니다. 출애굽 사건은 다름 아니라 이스라엘이 애굽 종살이에서 해방 받게 되어 애굽을 떠나게 되고,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 땅 가나안 복지에서 새 삶을 이루게 될 것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셔서 할 일이 바로 영적인 “엑소도스”라 그 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우리의 해방 즉 우리의 구원을 이루실 것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중심으로 “별세신앙” “별세신학”을 주창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 십자가와 부활의 신학을 말합니다.

그는 그것을 3가지로 요약했습니다. 먼저,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옛사람이 죽는 것이요, 옛 세상을 떠나는 것으로 이것을 별세라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예수를 믿어서 새 피조물이 된 우리는 믿음의 새 세계 즉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별난 인생 즉 별세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 별난 인생으로 인도하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서 이 세상을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별다른 세상 즉 별세로 만들어나간다는 것입니다. 이 “별세” 즉 “엑스돈”이라는 단어 속에 복음의 핵심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종려주일부터 시작해서 맞게 되는 이 고난 주간 한 주간과 부활절은 복음의 핵심 사건에 우리가 몸으로, 생활로 접하게 되는 은혜의 시간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대로 한 순간 한 순간, 하루하루를 복음의 핵심 사실들과 접하면서 바로 이 때에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신령한 은혜, 임마누엘의 은총을 새롭게 체험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맨 먼저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성전을 청결케 하신 유명한 사건입니다. 당시 하나님의 성전은 교권자들에 의하여 완전히 더럽혀 지고 있었습니다. 교권자들은 권력과 돈에 눈이 어두워진 나머지 거룩한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몰려든 수많은 순례자들의 주머니를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갈취하고 있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예수께서 “강도의 소굴”이라고 했겠습니까? 그래서 채찍을 드셨습니다. 거룩한 성전, 하나님 아버지의 집이 이렇게 강도의 소굴로 전락한 것을 차마 보실 수 없으셨습니다. 여기 우리는 심판하시는 주님의 분노를 보게 됩니다.

아, 그런데 성도 여러분, 오늘 한국 교회를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만족하시겠습니까? 그 마음이 평안하시겠습니까? 분노하지 않겠습니까? 채찍을 들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이미 그 채찍을 드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말처럼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습니다. 열매 맺지 않으면 찍어버리실 것입니다.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고사하고 오늘 내 모습은 어떠합니까? 내 마음의 성전은 주님 모시기에 합당하게 준비되어 있습니까? 내 모습은 주님의 분노의 대상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까?

저 예루살렘 사람들은 결국 예수님을 거부하여 십자가에 처형했습니다. 나는 지금 주님을 용납하고 있습니까? 주님을 영문 밖으로 몰아내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그래도 주님은 끝내 나를 잊지 못하시고, 나를 버릴 수 없어서 지금도 계속 문밖에 서서 두드리고 계시는 것은 아닙니까? 그런데도 나는 나대로 좋아하는 것이 많아서, 그리고 내 안이 너무 소란해서 두드리시는 그 소리고 무시하고, 그 소리조차 듣지 못하고 우리 주님을 계속 문밖에 세워두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1930년대, 불과 33살, 예수님과 같은 나이로 요절한 이용도라고 하는, 당시 교계를 뒤흔들었던 유명한 부흥사가 있었습니다. 우리 교단 독노회가 1907년에 조직되었고, 총회가 1912년에 조직되었으니 1930년대라면 아직도 한국 기독교가 한 세대를 채 넘기지 못한 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일제에 의하여 나라는 망하고 난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미 한국교회는 부패하고 타락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약관의 이용도 목사는 이런 한국 교회를 향해서 예수님의 심정으로 채찍을 들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이단으로 몰려서 파직 당하고 나중에는 과로와 지병으로 3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당시 그는 이렇게 외쳤는데 이 말은 오늘 우리 한국 교회에 적중되는 말입니다. “참으로 我 조선 교회는 잠들었습니다. 병들었습니다. 영화로운(榮) 예수, 부자(富) 예수, 지극히 높은(高) 예수만 떠받들고, 참 예수 곧 천한(賤) 예수, 가난한(貧) 예수, 낮은(卑) 예수는 죽였습니다”라고 고발하면서, 예수는 죽이고 그 옷만 나누는 현대 교회는 “예수의 피도 버리고 살도 버리고 그 형식과 의식만 취한다”고 하면서 온 몸으로 항거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조선 교회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있는 것”으로는 “잔말, 말질, 탐욕, 게으름, 시기, 비겁, 근심, 분열, 이기심, 가정 불화”등이며, “없는 것”은 “기도, 개인전도, 열심, 사랑, 용기, 감사, 찬송, 협동, 성경공부, 구도심, 봉사, 가정기도” 등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병든 교회가 치료받고 다시 건강을 회복하려면 회개와 기도, 사랑의 실천 운동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활이 있는 곳에라야 열심이 있고, 봉사가 있고, 자기희생이 있고, 만족이 있고, 쾌락이 있습니다. 부흥이 있는 곳에라야 기적이 있습니다.”

이용도 목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게서 4가지를 보았습니다. 첫째로, 십자가의 주님은 말이 없으셨습니다. 이것을 무언지언(無言之言)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소리는 없으면서 하나님 말씀만 하셨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십자가의 예수님은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이것을 겸비지심(謙卑之心)이라고 했습니다. 셋째로, 십자가의 주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기도로 일관하셨습니다. 이것을 기도지행(祈禱之行)이라고 했습니다. 넷째로 십자가의 주님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한 기도에서 나타났듯이 온 생애가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한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순종지인(順從之人)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도의 교회가 정말 예수님을 제대로 모시고 그 사명을 감당하려고 하면 無言之言의 예수를 謙卑之心으로 꿰뚫고, 祈禱之行을 통하여 예수적 삶을 완성하고, 順從之人으로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서 다시 사시도록 해야 한다고 피를 토하면서 외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신 말씀의 뜻이라고 믿습니다.

3. 마침내 예수께서 당시 유대교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일찍이 예수께서 수차례 예고하셨던 대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나귀 새끼를 타신 모습이야 매우 초라하게 보였을는지 모르겠으나 구약에는 이것을 내다보면서 “네 왕이 네게 임하신다”고 했습니다. 왕으로서 입성하십니다.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호산나!”를 외치면서 왕의 입성을 열렬하게 환영했습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뜻밖의 이 행렬을 보고 정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 말이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냐?”라는 말입니다. 나중에는 이 소요의 장본인인 예수님을 찾아가  이런 반정부적이고 이단적인 선동을 자제하라고 경고하기 까지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옛날 예루살렘에 나귀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오십니다. 오늘 우리는 삶이 매우 바쁘고 분주하고 또 소란해서, 아니 내게 너무 중요한 일들이 많아서 나를 향하여 오시는 주님에게 관심을 기울일 여가조차 없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남들은 주님을 영접하면서 “호산나!!” 찬양하는데 이런 엄청난 일조차도 별 관심꺼리가 되지 못하는 나는 저 무리들처럼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냐?”라고 하면서 오히려 저 열광하는 무리들을 이상하게 여길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양자택일의 결단을 촉구하십니다. “호산나!”라고 영접하든지, 아니면 “이 사람이 누구냐?”라고 하면서 오히려 귀찮다고 고개를 돌리고 나중에는 저 예루살렘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추방해 버리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하십니다.

매우 바쁜 사장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웬만한 사람은 이 사장님을 면담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전도하겠다고 목사님 한 분이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데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로 노닥거리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몇 차례, 아니 꽤 여러 차례 찾아갔으나 번번이 비서실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비서실조차 거치지 않고 direct로 사장실에 나타나서 사장을 끌고 가려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물론 사장은 처리해야할 일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절대로 갈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그러나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그날로 사장은 그 자리에서 떠나야 했습니다.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을 다 버려둔 채 떠나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날 그 사장을 끌고 간 존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죽음이었습니다. 일중독에 빠진 사장, 그래서 목사의 면담을 쓸데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던 사장이지만 결국 죽음 앞에서는 저항도 변명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불청객은 정말 불시에 우리들을 찾아옵니다. 혹 낮일는지 혹 밤일는지, 밤이면 초저녁일는지, 밤중일는지, 새벽녘일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허용된 시간은 지금 여기서 뿐입니다. 지금 여기서 결단해야 합니다. 주님을 모시든지 아니면 거부하든지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 자유에 속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홍포 입은 부자는 불구덩이 속에서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사로를 다시 세상에 보내서 자기 형제들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서 그들만은 이 무서운 곳에 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소원입니까? 그러나 이 훌륭한 소원마저도 기회를 놓친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마치 홍수에 사람이 떠내려가는 것을 연상케 합니다. 우리 찬송가에 있듯이 “물 건너 생명줄 던지어라....물 속에 빠져간다....생명줄 던져....지금 곧 건지어라”는 말씀처럼 절박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나 자신부터 지금 여기서 신앙의 결단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그리고 이 한 주간을 지나면서, 부활절을 바라보면서 우리 주님을 여러분의 왕으로 새롭게 확실하게 영접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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