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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고난주일] 겟세마네 기도 (눅 22: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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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춘수 목사

만약에 나의 삶에 내일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삶이라고 한다면 오늘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주님은 죽음을앞에 두고 기도를 선택하셨습니다.고난의 십자가,죽음의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주님은 겟세마네동산으로 올라서 마지막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본을 보이시지만 특별히 기도에 대해서 그렇습니다. 주님의 삶은 기도의 삶이었습니다. 여기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고난과 죽음의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삶은 기도가 선택이 아니라 기도가 필수의 삶이었습니다. 처음 사역을 시작하실때에도 광야에서 기도하면서 시작하였습니다. 거기서 40일간 금식기도함으로 고난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이제 3년간의 사역을 마치는 시간을 앞에두시고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함으로 마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기 전 어제 저녁에는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벌였습니다.자신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나누어주시고 자신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즙을 나누어주시면서 이미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도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겟세마네동산에 올라서 십자가의 최후를 기도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도의 삶입니다.
누가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는가? 누가 고난를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는가?
누가 믿음 생활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고 승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 무엇일까요? 바로 기도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서 삶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아무리 아는 것이 많아도 기도의 체험이 없으면 신앙의 힘이 없고 승리의 삶이 없고 능력이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기도없는 신앙 생활,기도없는 봉사생활,기도없는 삶이 실패합니다.

우리주님은 분명히 우리보다 능력이 많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보다 말씀도 더 많이 아십니다. 우리보다 더 많이 하나님을 체험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앞에서 자기의 성경지식을 의지하거나 자기의 지혜를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 십자가 앞에서 우리 주님은 기도하셨습니다.주님의 삶은 기도의 삶이었습니다. 과연 주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무엇을 위해 기도하셨을까요? 마지막 고난과 죽음을 앞에 두고 기도하신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1.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를 하였습니다.40절

왜 기도해야 하는가?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믿는 제자들이 성도들이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여기 시험이란 “유혹”을 말씀합니다.
여기 예수님 자신이 고난과 희생의 십자가를 앞에 놓고 유혹의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겟세마네동산에 올라 기도하신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 동안에 자주 오르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항상 깨어서 기도하셨고 이제 오늘은 특별히 베드로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겟세마네동산에 기도하기 위해 오르셨습니다.이 3명은 예수님의 가장 사랑하시는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의 겟세마네동산에 이르러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고 하십니다.십자가 앞에서 우리 주님은 시험을 들지 않기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에게 분명히 고난 앞에서 십자가 앞에서 시험이 올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주님은 우리와 다른 인간이기 때문에 너무 인간적인 면을 무시하고 이해할 위험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 주님을 바라볼때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을 우리가 잘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도 두려움도 있고 그분도 고통의 아픔을 힘들어하시는 분이십니다. 나중에 주님께서 재판을 받는 과정을 보면 어떤 유혹이 옵니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심문할 때 그때 에수님께서 한마디만 말을 하면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라고 하면 됩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밑에서 울고 슬퍼할 때 감정적으로 동요되어서 죽기 싫은 마음의 유혹이 찾아왔을 것입니다. 이런 유혹 앞에서 주님은 친히 기도하심으로 이겨내셨습니다.

오늘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성경은 “시험”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예수님도 시험받으셨습니다. 목사에게도 시험이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에게 시험이 있습니다. 여기 시험은 바로 유혹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시험 유혹은 우리 인생의 시기와 때에 따라서 조금 다르게 나타납니다.

단테라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시험을 받는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였습니다.
단테는 그리스도의 삶이 바람이 몰아치는 산길로 여행을 하는 사람의 경로에 비유했습니다.
그가 여행을 시작했을 때 그는 젊은이였습니다. 그가 산길을 얼마간 올라갔을 때 사나운 늑대가 숲에서 뛰쳐나와 그를 물어뜯으려 했습니다.단테에게 이것은 육체의 욕망,즉 음욕의 늑대이며 젊은이의 가장 큰 시험을 대표하는 것이었습니다.
더 높이 올라가며 그는 중년을 맞이합니다.거대한 호랑이가 그를 덮칩니다.이것은 자만의 호랑이며 지위와 명예 그리고 권력의 자만으로 중년의 가장 큰 시험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마침내 그가 정상에 가까워지자 털이 수북한 사자가 그 앞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노후의 가장 큰 시험인 재물과 안정이었습니다.

삶의 세가지 시험을 구분하면서 단테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다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도 예외가 없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시험을 벗어날 수 있는 수준이란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든 성숙하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시험을 받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여정을 보십시오. 애굽의 노예로서 살다가 광야를 지난 가나안으로 향할 때 그들의 삶의 여정은 죄에서 나와서 광야같은 세상을 살면서 천국을 향하여 우리들의 인생노정기와 얼마나 유사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시험의 여정이었습니다 . 그 시험의 여정에서 그들은 매순간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기도하면서 선택하엿던 믿음의 사람들은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을때는 전부 육적인 선택을 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패하고 말았습니다.

깨어서 기도하게 되면 유혹의 시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라고 하는 것은 마치 세상에서의 불침번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요 보초와 같은 역할이라고 합니다. 군대에 가면 보초병이 있습니다. 군대에서 가장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경계입니다. 다른 사람은 자도 보초는 항상 깨어서 지켜야 합니다. 특히 밤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밤에 보초는 깨어서 잘 지켜야 합니다.그래서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하여도 보초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보초가 실패하면 많은 군인들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마귀는 항상 깨어서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래서 성경 곳곳에서는 “기도로 깨어있으라”고 합니다.에베소서6:18“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벧전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여러분 주님께서 깨어서 기도하시고 우리에게 항상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마귀가 항상 깨어서 우리를 유혹하고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쉬지 않고 우리를 공격하려고 일하고 있습니다. 특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더욱 많은 유혹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좇지 못하도록 점점 우리를 유혹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도록 마귀는 우리를 유혹할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유혹할 때 누구보다도 우리의 약점을 이용하여 유혹할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따르지 못하도록 유혹합니다.물질의 약함이 있는 사람은 물질로 유혹할 것입니다.자녀의 약점이 있는 사람은 자녀로 유혹할 것입니다. 명예의 약점이 있는 사람은 명예로 유혹할 것입니다. 성에 대한 약점이 있는 사람은 그 성으로 유혹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자가 유혹을 이깁니다.주님께서 기도하시면서 모든 유혹을 이기시고 승리하였습니다. 오늘 사랑하는 주님의 백성들이기도하면 어떤 유혹도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항상 기도로 깨어서 모든 유혹을 이겨나가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해 기도하여야 합니다. 42절을 봅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 왜 예수님이 기도하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에 자신이 순종하도록 기도하십니다.기도할 때 주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주님의 뜻을 순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순종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하기 어렵고 따르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도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와 같은 성정을 입고 있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죽음을 당하시는 일이 힘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주님이시기 때문에 마음에 고통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7절에 보면 “고민”하엿다고 하고 “슬퍼하엿다”고 하십니다. 마태복음26장38절에 주님은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감정대로라면 지금 슬프고 지금 힘들어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감정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에게도 감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감정대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감정이 되어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봉사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감정이 되지 않을때 기도할 수 있어야 하고 찬송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마귀가 우리를 공격할 때 가장 먼저 건드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감정을 건드립니다. 감정이 이끄는 대로 하면 대개 실패하고 맙니다. 요즘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독도문제로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보면 감정대로 너무 반응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믿음 생활도 그렇습니다. 내 감정대로 반응하지 않고 감정을 쳐서 복종하여 믿음 아래서 가져가야 합니다.

주님은 나의 감정 나의 뜻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주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주님께서는 결국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시면서 이루셧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는 많은 고난이 있습니다. 그 고난 앞에서 우리가 기도하면서 감당해야 할 주님의 뜻이 바로 고난을 감당하는 것입니다.그런데 누가 주님처럼 고난을 감당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까? 바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기도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던 것처럼 성경에 우리와 같은 성정의 스데반도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한 것을 보게 됩니다. 행7장 59절에 보면 우리와 같은 성정의 스데반의 최후의 모습이 소개됩니다. 돌에 맞아 죽으면서 기도합니다.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살려달라고 구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해달라고 기도하엿습니다.

찬송가 중에 431장 “내주여 뜻대로 ”찬송가가 있습니다. 작자는 독일의 목사님이었던 슈몰럭 목사님이셨습니다. 하루는 이 목사님이 사모님과 함께 이웃마음에 심방을 갔다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보니 집에 불이 났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두아들이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그사건이후에 지은 찬송가가 이 찬송가입니다.1절 “이 세상의 고락간에도 2절 큰 근심 중에도 3절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주님께서 고난당하시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고난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세상 나라와 하나님나라는 다릅니다. 생각도 다릅니다. 가치관도 다릅니다. 방향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살아갈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그 다름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크든 작은 어떤 형태로든지 우리에게 반드시 환난이 있습니다.주님께서는 겟세마네동산에 오르시기직전 제자들과 만찬의 자리를 가지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고난 속에서 우리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어떻게 이기셧습니까?주님이 세상을 이긴 비결이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 승리합니다.
기도하실 때 사명을 감당합니다.
기도할 때 나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아버지의 뜻을 순종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내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그 십자가의 자리는 고난의 자리요 희생의 자리입니다. 그 십자가의 자리는 나의 영광의 자리가 아니요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그 십자가를 좇는 자리는 내가 낮아지는 자리이고 주님이 높아지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힘써 기도해야 할 자리가 이런 십자가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고난이 있습니다. 희생이 요구됩니다. 세상의 손해가 요구됩니다. 그래서 기도없이는 하나님의 뜻을이룰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기도하엿습니다.오늘 내가 져야 할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낮아지는 자리입니다. 그것은 희생의 삶입니다.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인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서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육체를 쳐서 복종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누가복음22:44절 보십시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더라
히5:7 “그는 육체에 계실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엇느니라”
여기 주님의 기도의 모습을 4가지 단어로 소개합니다.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이”라고 합니다.
주님은 겟세마네동산에서 힘쓰며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육체의 힘을 다하는 최선의 모습입니다.주님은 애써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마음의 최선을 다하는 기도입니다. 주님은 더욱 기도했습니다. 열정을 갖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마음 속에서 진정으로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기도하는 겟세마네동산에서 밤중에 기도하시는데로 불구하고 몸에서 땀이 떨어졌습니다. 마치 피방울같이 뚝뚝 떨어지는 땀이었습니다. 자신을 쳐서 복종하면서 기도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기도의 땀을 흘린 경험이 있습니까?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신 경험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시편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약속하였습니다. 여러분 기도의 땀을 흘리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영혼을 위해서 믿음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여러분 우리가 이런 간절한 기도가 있기를 원합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라도 포기하지 마시고 눈물로 간절하게 기도의 도전을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힘쓰고 애쓰고 눈물의 기도를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간절한 기도를 아버지께서 기억하시고 응답하여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의 부모들이 언제 자녀를 보고 언제 자녀에게 집중합니까? 자녀가 울때입니다. 자녀가 울면서 매어달리면 무관신했다가도 볼 수 밖에 없고 집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사야38장에 히스기야의 기도가 소개됩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죽게되었습니다. 이사야선지자는 이사실을 증거하엿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고 마지막 유언이나 남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심히 통곡하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겟고 이 성을 보호하리라”고 응답하엿씁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기도의 노동은 기쁨의 단을 거둘 것임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비록 내 인생에 오늘 최후같을지라도 지금 고난으로 인하여 끝장날 것같아도 기도의 무릎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지금 함께 기도하는 제자들은 어떤 모습입니까? 수제자 3명은 지금 잠을 자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권면합니다.46절에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고 하십니다.주님께서 안따갑게 여기면서 제자들을 깨우시는 것을 봅니다. 제자들은 간절한 기도의 모습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반복하여 깨워도 계속하여 잠에 빠져버렸습니다.

오늘 내가 이 제자들처럼 신앙의 잠,기도의 잠을 자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우리의 신앙의 문제,우리의 기도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간절함이 없습니다. 왜 간절함이 없을까요?무엇이 문제입니까? 우선적인 문제는 영적 무지,깨달음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주님께서는 자기와 제자들들 앞에 일어날 말씀을 예언하였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무지했습니다. 깨달음이 없습니다.그러면 영적안목이 어두워지게 됩니다. 간절함이 없고 신앙의 나태함이 찾아오게 됩니다.
다음은 연약한 육신의 지배를 받을 때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피곤하였습니다.

이미 저녁부터 예수님과 같이 식사하고 시간을 보내었고 이미 한밤중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적인 피곤함으로 인한 수면의 본능 앞에 무너졌습니다. 육체적으로 피곤하면 신앙도 활기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약한 육신 때문에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약함을 아십니다. 그러나 육신이 약할 때 그것으로 기도하지 않는 합리화를 찾아서는 안됩니다.기도의 잠이 오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신을 쳐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주변에 기도에서 떨어진 분들이 있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흔들어 깨우신 것처럼 깨우시기 바랍니다. 서로 기도하도록 흔들어 깨우시기 바랍니다.

이번 주간에 우리 교회는 다함께 기도로 새벽을깨우시기 바랍니다. 서로 목장에서 깨워주십시오. 좀 몸이 힘들어도 깨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면서 한주간 십자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간절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고난을 당하신 기간을 기억하여 우리도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나의 믿음과 주님을 따르는 제자되도록 기도하는 기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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