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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난한 마음을 펼치면 (마 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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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금성 목사

산상설교에 나오는 팔복은 모두 크리스천의 여덟 가지 성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크리스천의 첫 번째 성품은 마음의 가난입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지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겸손하게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갖는 두 번째 성품이 있습니다. 바로 애통하는 마음입니다. 4 절 말씀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가난한 마음과 애통하는 마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애통은 슬퍼하는 마음입니다. 이 애통은 세상의 애통함과 다른 것입니다. 역시 영적인 애통입니다. 즉 애통이란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안에 있는 죄와 허물을 목격할 때 생기는 마음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 7:19>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4>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하고 싶어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도리어 죄뿐인 자기를 발견하고 갈등하는 것입니다. 원하지 않지만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내 몸에 어찌할 수 없는 죄의 덩어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슴을 치고 애통해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깨닫고 죄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통하는 것과 다릅니다.

요즘 일본에서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교과서에 과거 일제 침략기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패전 후 사과하고 그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뉘우치지는 않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 민감해야 합니다. 작은 죄 앞에서도 애통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이 애통하는 마음은 한 걸음 나아가 다른 사람의 죄까지도 자기의 죄로 보는 마음입니다. 이웃의 허물과 죄를 바로 자신의 죄와 허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아파하고 대신 애통하는 사람입니다.

이 민족의 죄악, 교회의 죄악, 내 가정의 죄악까지 같이 짊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런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죄를 짊어진 것입니다. 이런 애통함은 부패한 사회를 개혁하고 부정의 뿌리를 뽑자는 것입니다.

남의 죄 짐까지 진다는 것은 손해 아닙니까? 그래서 애통하는 자가 받은 복은 위로입니다. 이 위로는 땅의 위로와 다릅니다. 이 위로는 하늘의 보상입니다. 주님이 직접 눈물을 닦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갖 환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셔서 온갖 환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고후 1:4 표준새번역>

이 위로는 감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힘이 되어 주십니다. 용기가 되어 주시고, 지혜가 되어 주십니다.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게 도우십니다.

크리스천은 애통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회개하고 싶어도 무엇부터 회개해야 할지 모릅니다. 울고 싶어도 눈물이 안 나옵니다. 마음이 얼음처럼 차가워지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을 보면 고발하거나 정죄하기보다 애통해 하십시다. 이 애통하는 마음은 바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대신 애통해 하셨습니다. 눈물을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다음에 복 있는 사람은 온유한 사람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 5:5>

세상은 힘의 논리로 지배합니다. 힘센 사람이 땅을 차지합니다. 옛날에는 전쟁을 해서 땅을 빼앗았습니다.
우리나라의 토지소유자 중 상위 1%가 전체 국토의 4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 상위 10%가 전체의 72%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부자는 거의 땅 부자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온유한 자가 땅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온유는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입니다. 성품이 순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부드러움 속에는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어느 청년이 무궁화호 기차를 탔습니다. 미리 인터넷으로 예매를 했기 때문에 좌석을 받았습니다. 표에 적힌 번호를 찾아가니 그 자리에는 할머니가 앉아 계셨습니다. 할머니가 가진 표의 좌석을 확인 하려고 하니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예 창가만 내다보면서 상대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는 젊은 사람이 포기하고 그냥 서서 가거나, 끝까지 따져서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장거리 여행이라 젊은 사람도 힘듭니다. 요즘에는 입석표를 산 노인들이 막무가내로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은가 봅니다.

내가 권리를 주장하면 다른 사람은 권리를 빼앗기게 됩니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은 정당하지만 권리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항상 손해를 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사람은 자기 권리보다 남의 입장을 먼저 세워줍니다. 요즘 세상에 이런 사람을 바보라고 합니다.

절대로 온유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열등감이나 우월감에 빠진 사람입니다. 또 완벽주의자, 남에게 지고는 못사는 사람. 일등을 해야 풀리는 사람도 온유할 수 없습니다. 결론은 자기가 내야 하는 사람.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도 온유할 수 없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칭찬에 빠지지 않습니다. 조롱을 당하거나 무시를 당해도 화를 내지 않습니다. 너그럽게 용서해 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온유하게 살면 성공하거나 출세하지 못합니다. 경쟁 사회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온유한 자를 위해 땅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온유한 자가 받을 땅은 하늘의 기업입니다. 이 세상의 땅을 차지하고 있어야 죽으면 그만입니다. 우리는 저 천국에 영원한 기업이 있습니다.

온유한 성품은 바로 주님의 성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 11:28-30>

온유하려면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까지도 용서하셨습니다.

분노와 화를 내는 것은 온유의 반대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화를 낼 일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화를 내면 지는 것입니다. 온유하기 위해서는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내가 살아있는 한 교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나를 부인하면 우리는 온유한 모습으로 변할 것입니다.


다음 복 있는 사람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마 5:6>

의란 옳은 일을 말합니다. 언제나 옳은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의는 하나님의 의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언제나 기준이요, 표준이 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하나님의 자로 재어 보아야 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본질적으로 의가 없습니다.

로마서 3:10 말씀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의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은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사람의 의는 걸레 조각과 같습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있는 의를 하나님 앞에서 보니 배설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진 의를 모두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빌 3:7-9>

본문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자기의 의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의를 찾아 갈망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의를 찾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의에 대한 갈망은 죄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입니다. 더러운 옷을 벗고 하나님의 거룩한 옷을 입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의에 목마름은 성결해지려는 것입니다.

밥을 몇 끼 굶으면 배가 고픕니다. 배고프고 목마르다는 뜻은 원어로 보면 거의 죽을 지경이 된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배고픔의 고통은 영적으로 매우 고달픈 상태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심정입니다. 이때는 밥 한 숟가락이 꿀이요, 물 한 모금이 생명수입니다.

그래서 의에 주리고 목마르면 무엇 하나에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맛보면 온통 은혜입니다. 너무 행복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하니 배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7:9 말씀입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

또 시편 34:10 말씀에도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23 편에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1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5절>

요한복음 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하나님의 의가 어디서 납니까? 바로 성경 말씀에서 납니다. 이 말씀은 온통 하나님의 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려면 이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에 배고파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 말씀에 배부르시기 바랍니다. 진리에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십시오. 이 말씀이 내 영혼을 살리는 양식입니다.


다음 복 있는 사람은 긍휼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 5:7>

이 긍휼도 본래 사람의 마음에는 없습니다. 죄로 타락한 인간의 마음속에는 용서하고 치유하는 긍휼이 없습니다. 그래서 긍휼은 본래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 긍휼의 뜻을 보여주는 말씀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여리고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의 죽게 된 이 사람 옆에 한 제사장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은 그냥 지나갔습니다. 레위인도 지나갔습니다. 이 두 사람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이 때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갔습니다. 그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을 천대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가까이 가서 가지고 있던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부었습니다. 상처를 싸매 주었습니다.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에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이튿날에 주막 주인에게 돈을 주면서 계속 돌보아 줄 것을 청했습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은 자기 이익과 상관없이 시간과 돈과 마음을 쏟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병자들을 그렇게 긍휼히 여기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에는 용서가 흘러나옵니다. 끝없는 사랑이 솟아납니다. 그래서 이 긍휼은 기독교의 마크입니다.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기독교 최고의 긍휼은 영혼 구원에 있습니다. 그 영혼이 지옥 갈 것을 생각하면 불쌍해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 긍휼을 심으면 긍휼을 거두게 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를 하나님이 또한 긍휼히 여기십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죄를 너그럽게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긍휼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또한 우리도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습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길을 주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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