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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금 우리가 할 일 (빌 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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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관지 목사

오늘 본문은 성도들이 잘 알고 있고 또 좋아하는 말씀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 교회는 재작년, 2003년에 오늘 본문 가운데 13절과 14절 가운데 일부를 중심성구로 하고  ‘새롭게 달려가는 교회’라는 표어를 가지고 한 해를 보냈기 때문에 이 말씀이 매우 낯익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대성전에서 첫 주일낮예배를 드리면서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는 내용으로 설교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준비가 진행될수록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성경에는 이전 일을 기억하라는 내용도 몇 군데 있습니다. 특히 신명기 여러 군데에 있지요.
그러나 성경이 더 강하게 말하고 있는 것은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과거에 매이지 말고 앞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43장 18절과 19절 앞부분은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65장 17절은,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두 새로운 예배처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우리에게 향하신 말씀들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들이 오늘 우리의 가슴에 강하게 와 닿는 것을 느낍니다.

결국은 설교의 방향을 바꿔서 빌립보서의 이 말씀을 본문으로, 특히 16절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대성전에서 첫 주일낮예배를 드리면서 하고 싶은 말씀들이 피차에 많을 것입니다.
그 많은 말씀들을 우리는 고린도전도 15장 10절, 한 절의 말씀에 묻어버립시다.
이 말씀은 바울 사도가 자기의 일생을 한 마디로 압축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목양교회가 대 성전에서 예배드리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이제 본문을 봅니다.
바울 사도는 12절 앞부분에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온전히 이루었다는 것은 완성했다, 완전해졌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모든 성도들에게 중요한 말씀이지만 요한 웨슬리 목사의 후예인 감리교인들에게 특별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감리교회의 중요한 교훈 가운데 하나가 그리스도인의 완전입니다.
우리는 완전을 바라보고 나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2절 뒷부분은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로 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은 영광스러운 포로들입니다.
대성전에서 예배 드리게 된 목양교회는 그리스도께 더욱 강하게 사로잡힌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빌립보서가 기록될 당시 로마에서는 육상 경기나 전차경기 같은 것이 크게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은 우승을 하기 위해 전력을 다 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그 경기에 나간 선수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경주에서 우승하기 위해서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성도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우리는 축구선수가 한 골을 얻기 위해 힘쓰는 것처럼, 신앙의 경주에서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야구선수가 홈런을 치기 위해 힘쓰는 것처럼 신앙의 경주에서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4절과 25절에서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경기에서 우리가 최선을 다할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상은 썩지 아니할 관입니다.

이제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이 말씀은 “어쨌든 우리가 이미 이룬 것을 바탕으로 해서 다 같이 앞으로 나아 갑시다”(「공동번역성서 개정판」) 이런 뜻입니다.
이 말씀은 “어쨌든, 우리가 어느 단계에 도달했든지 그 단계에 맞추어서 행합시다”(「표준새번역개정판」) 이런 뜻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든지 지금까지 따른 법칙에 따라 계속 그대로 살도록 합시다”(「현대인의 성경」) 이런 뜻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서 지금 어느 단계에 와 있습니까?

먼저 나는 나의 삶에서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확인하셔야 합니다.
비행기가 비행을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1983년 9월 1일 KAL기가 사할린 상공에서 격추 당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우리 국민은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고 전 세계는 놀라고 분노했습니다.
그 때 KAL기가 왜 정해진 항로를 이탈해서 사할린 상공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런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KAL기가 왜 항로를 이탈했는지 그 이유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않습니다.
위치를 확인하는 작업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또는 실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그보다 오래 전에 KAL기가 소련 영공에 들어갔다가 총격을 받고 얼어붙은 호수 위에 강제 착륙 당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삶에서도 내가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을 겪습니다.

군대가 작전을 할 때 제일 기본이 되는 것은 좌표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금요심야합심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들어갔더니 TV의 한 채널에서 ‘워워 솔저스’라는 전쟁 영화를 방영하고 있었습니다. 월남전을 소재로 한 영화이지요.
한 부대가 베트콩의 강력한 공격을 받아 위기에 빠졌습니다. 마침, 부대장이 항공지원을 요청하는데 무전기를 붙잡고 좌표를 급하게 부르는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전폭기들이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곳의 상공에 도착해서 폭격을 시작했습니다.
좌표를 정확하게 불러주었기 때문에 이 부대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장면이 대단히 강렬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 영화에서 또 하나 받은 인상 깊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백병전이 벌어졌는데 대대장이 직접 소총에 대검을 꽂고 적의 한 가운데로 뛰어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투에서 열세에 몰려있던 미군은 적을 물리칩니다.
제가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런 것이 미군을 강하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일 거요.’

여러분, ‘인생의 여러 단계에서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 ‘이 단계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꼭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나의 삶을 내가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삶에 내가 밀려가게 됩니다.
여러분, 고장 난 자동차 같은 삶을 살지 마세요.
그리고 일에 밀려가는 삶을 살지 말고 일을 부리는 삶을 사세요.

자기 삶의 단계에 맞는 일을 해야 합니다.
잘 알려진 심리학자 칼 융(Karl Jung)은 각 단계 사람들이 가져야 할 심리상태를 말하고 사람은 자기 단계에서 맞는 심리상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자기 단계에 맞지 않는 심리상태를 갖고 있으면 문제가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청년이 인생을 다 산 사람처럼 ‘아, 인생은 허무한 것이야!’  하는 것, 문제라는 것입니다.
노년이 들뜬 감정으로 멋진 연애 같은 것을 꿈꾸는 것도 문제입니다.
청년은 의욕과 활기에 가득 찬 심리상태를 가져야 합니다.
노년은 자기가 노년이 되었음을 인정하면서 의연하고 성숙한 심리상태를 가져야 합니다.

제가 육십이 넘었습니다.
어떤 생각을 할 때, 어떤 결정을 할 때,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이것이 과연 육십이 넘은 사람으로서 합당한 것인가?’ 종종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각자 자기가 삶의 어떤 단계에 와 있는지 생각하면서 ‘나의 생각, 나의 말, 나의 행동이 과연 이 단계에서 합당한 것인가?’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삶에서 원기왕성한 단계에 와 있는 분들은 빠른 걸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연세가 좀 많아진 분들은 앞으로 나가는 속도는 늦어졌겠지요.
그래도 꾸준히 앞으로 나가야합니다.
‘뚜벅 뚜벅 걸어도 황소걸음’이라는 말이 있지요.
늦더라도 확실하고 듬직하고 권위가 있는 걸음을 걸어야 합니다.

이제는 원로가 된 어느 연기자가 있습니다. 이 분의 소원은 무대에서 연기를 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연기 가운데에서도 죽는 연기를 하다가 ‘어, 저 배우 죽는 연기 정말 그럴듯한데! 명연기인데!’ 하는 소리를 들으며 숨을 거두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소원은 꼭 그대로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그의 삶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것입니다.
후배 연기자들이 정말 본받고 싶은 그런 삶이 될 것입니다. 

그 다음, ‘내 신앙의 단계는 어디에 와 있는가?’  확인하셔야 합니다.
그러면서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이만하면 되었어!’ 하면 그것이 교만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를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 됩니다.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한 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또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는 신앙적으로 이만하면 되었어!’ 하는 순간에 우리는 ‘쿵!’ 소리를 듣게 됩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물론 그 사람이 넘어지는 소리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나는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미 얻은 직분에 안주하려는 분들도 있습니다.
특히 믿음이 좋다고 하는 성도들 가운데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영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고장입니다.
 
빌립보교회 교인들은 성숙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었습니다.
옥에 갇힌 노사도 바울을 생각하고 바울이 필요한 것을 보내주었습니다.
바울이 세운 교회가 하나 둘이 아니지만 그 가운데 빌립보교회 하나만이 이런 일을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4장 14절에서 16절까지에서 이것을 이와 같이 칭찬하며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마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냈도다

그러면서 바울 사도는 그런 성숙한 믿음을 가진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온전하다고 자랑하거나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지금 이 지점에서 충실하며 앞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설교에서도 여러 번 하였고 심방에서도 여러 번 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이제 교회에 막 출석하게 된 성도들을 심방했을 때 잘 드리는 말씀입니다.

에스겔서 47장에는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했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흘러나옵니다.
이 물이 처음에는 발목, 그 다음에는 무릎, 그 다음에는 허리, 그 다음에는 건너지 못할 강이 됩니다.
여기에서 발목, 무릎, 허리, 온몸은 신앙성장의 단계를 말하는데 많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발목 신자는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
무릎 신자는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신자,
허리 신자는 허리 굽혀 봉사하는 신자,
온몸 신자는 성령의 흐름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신자,
발목 신자 단계에 있는 성도들은 무릎 신자를 바라보면서 앞으로 나가야합니다.
무릎 단계에 있는 신자는 허리 신자를 바라보면서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성령의 흐름에, 성령의 인도에, 성령의 역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단계에 이르기를 바라면서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재탕을 너무하면 설교자의 생명이 위협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오늘 이 이야기를 또 하는 것은 지금 우리는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한 대성전에서 첫 주일낮예배를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침반이 붙어 있는 시계를 차고 있는 분들도 있는데 혹시 그런 분들이 있으면, 예배 마치고 나가면서 방위를 확인해 보세요.
정동향인 것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에스겔서 47장의 내용입니다.
앞면이 동쪽으로 향한 성전의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생명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강 좌우 편에 나무가 살고, 바다로 들어가니까 바다가 삽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생명의 역사를 에스겔서 47장 9절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여러분, 목양교회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이 지역사회에, 한국에, 특히 북한에, 타문화권 여러 곳에 흘러들어가며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는 일에 한 분도 빠짐없이 동참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성전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한 번 이 앞에서 3층까지를 보고 반대로 3층에 올라가서 내려 보시기 바랍니다.
이 성전이 어떤 규모를 가진 성전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해 이 성전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내 삶에서 나는 어느 단계에 와 있나?
이 단계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내 신앙에서 나는 어느 단계에 와 있나?
이 단계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것을 생각하면서 앞으로 나가기 바랍니다.

이제 대성전에서 첫 주일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는 ‘우리 교회는 지금 어느 단계에 와 있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잘 알고 있는 목사님이 계신데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잘 알려진 목사님입니다.
목회를 비롯하여 여러 분야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백만 명이 모인 집회에서도 여러 번 강단에 섰던 분입니다.
그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의 성전을 준공하고 임당예배를 드리는데 참석을 했는데 그 분이 인사순서에서 ‘지금이 나의 목회 일생에서 가장 감격적인 순간입니다. 여의도에서 백만 명 앞에 섰을 때보다도 더 감격적입니다.’ 하더군요.
저는 지금 감사와 감격이 적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이 부족하고 현실적인 사람이어서 그런지, 남들이 좋게 하는 말로 합리적인 사람이어서 그런지 앞으로 해야 할 일들 생각이 머리를 꼭 채우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 것입니까?

교회 신문 「푸른 풀밭 맑은 시내」26호가 나왔는데 1면 톱 기사는 입당예배 내용입니다.
그 밑에 “목양교회 역사의 AD가 열리고 있다”는 제목으로 이런 기사가 있습니다.
전체를 읽어 드립니다.

목양교회는 1961년 6월 25일, 한국감리교회 모교회인 정동제일교회 전도부에 의해 노량진에 설립되어 올해로 창립 44주년을 바라보고 있다. 목양교회 44년의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오늘 3월 27일의 새 성전 입당예배는 교회에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오는 가운데 무엇보다도 목양교회 역사의 구분을 달리해야 한다는 과제를 주고 있다.
목양교회 창립 30주년이 되는 1991년에 발간된 「목양교회 30년사」는 그 때까지 목양교회의 역사를 ①설립기(1960~1962) ②발전기(1963~1979) ③강남기(1979~1989) ④웅비기(1989~  )로 구분하고 있다.
「목양교회 30년사」는 당시 극동방송에 재직하던 유관지 목사(현 담임목사)가 교회의 부탁을 받고 집필했는데 유 목사는 이 시대구분에 대해 “시기를 구분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때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교회가 성장하는 모습을 중심으로 기준과 명칭을 정했다.”고 말한다. 
목양교회가 수지로 이전한 뒤에는 교회의 역사가 ①노량진 시대(1961~1980) ②강남 시대(1980~1977) ③수지시대(1997~  )로 구분되고 있다. 교회당이 있었던 자리들을 기준으로 하고 명칭을 붙인 것이다. 유관지 담임목사는 목양교회의 수지 이전에 대해 “우여곡절이 있었고 파란이 많았지만,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를 말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인도임이 분명하다. 하나님이 목양교회를 크게 쓰시기 위해 새 땅 새 성전에서 새 역사를 열게 하신 것이다.”라고 말하고 “교회의 역사를 교회당이 있던 장소에 따라 구분하는 사례도 흔하지 않지만 목양교회는 교회당이 있던  장소에 따라 교회의 규모는 물론 성격과 사명도 달랐다는 점이 특징이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제 대성전 입당을 목전에 두고 유관지 담임목사는 “대성전 입당은 목양교회의 역사를 BC와 AD로 가르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유 담임목사는 “대성전 입당에 너무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 지 모르겠으나 목양교회의 역사와 그 동안의 과정을 살펴볼 때 이는 분명한 일”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교회의 연혁을 당장 그런 식으로 바꿔서 적기는 힘들겠지만 성도들이 그런 의식을 가져야 새 역사를 바르게 감당하고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한다.
유관지 담임목사는 이어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을 끝내면서 「신명기」를 통해 광야생활을 정리하고 가나안 복지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분명히 한 점과 이 신명기 역사가의 활동이 성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들면서 목양교회 성도들은 신명기 역사가가 지녔던 역사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유 담임목사는 “바로 그런 생각을 갖고 2005년 새벽기도회에서 신명기 강해를 시작했으며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사순절특별새벽기도회에서 십계명을 강해하고 있는 것도(관련기사 4면) 같은 맥락”이라고 밝히고 있다.
유관지 목사는 “지금 이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입당 이후 목회의 방향을 구상하고 있으며 기획위원회를 중심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검토하는 작업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계획을 말하면서 ”하나님은 역사의식이 분명한 교회를 복주시며 크게 쓰시는데 역사의식은 섬기고 있는 교회의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교인들이 이런 의식을 갖고 대성전 시대를 함께 열어갈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새 역사가 열리는 분기점에 와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교회의 3대 비전인 경건․북한선교․기독교문화에 더욱 힘써야합니다.

경건은 영적인 예배․기도․전도․말씀의 실천, 교육, 섬김, 나눔, 교제, 교회가 해야 할 모든 일들이 집약되어 있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는 교회가 해야 할 일들을 앞장서서 다 해야 합니다.
경건은 교회의 뿌리요, 생명입니다.
우리 교회는 튼튼한 뿌리를 바탕으로 생명력 넘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힘쓰는 교회입니다.

통일은 민족의 소원이요, 북한 선교는 한국교회의 기장 큰 과제입니다.
담임목사가 오랫동안 그 분야에 종사해왔고 그 분야를 연구해서 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북한선교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교회의 과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앞장서자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겔37: 17)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우회선교, 간접선교, 새터민(탈북자)선교 등 주어진 여건 하에서 가능한 북한선교에 힘써야합니다.
하나님께서 머지않은 장래에 선교의 자유가 보장된 통일을 허락하여주시면 바로 직접선교에 임할 역량을 길러야합니다.

문화는 그 시대의 옷입니다.
지금 이 시대가 입고 있는 옷은 너무나 혼탁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혼탁한 세속문화를 극복하고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넘치도록 하는 일에,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충만하도록 하는 일에(사11: 9) 힘써야 합니다.
사이버 공간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는데 사이버 공간도 기독교문화의 현장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저희 교회에는 기독교 문화인들, 음악인, 화가, 문필인, 연기자, 이런 분들이 유난히 많지요.
신학자 리차드 니버는  「그리스도와 문화」라는 잘 알려진 책을 썼습니다. 기독교 고전 가운데 하나인데 그리스도와 문화의 관계를 대립, 일치, 여러 가지로 말한 다음에  그리스도는 문화의 변혁자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혼탁한 문화 속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꼭 기억해야 할 말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의 삶과 신앙에서 여러분이 이미 이룬 것을 바탕으로 해서 다 같이 앞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어느 단계에 도달했든지 그 단계에 맞추어서 행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든지 지금까지 따른 법칙에 따라 계속 그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공동체, 오늘 대성전에서 첫 주일낮예배를 드리는 목양교회의 성도로서 이 교회가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분기점에 와 있다는 것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서 경건과 북한선교외 기독교 문화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더욱 힘쓰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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