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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 번 더 주시는 기회 (욘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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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형 목사

니느웨로 가야할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고 다시스로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선원들은 배 밑창에서 자고 있는 요나에게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들에게 임하였나 고하라”고 하였습니다(욘1:8).

요나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 하리라 이 큰 풍랑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 내가 아노라”고 했습니다(욘1:12). 바다가 더욱 흉용하므로 선원들이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졌습니다.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쳤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일삼야를 물고기 뱃속에 있게 되었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요나를 다시 세상에 보내셨습니까?

Ⅰ. 한 번 더 사명감당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본문 1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는 말은 다시 한 번 더 사명감당할 기회를 주셨다는 뜻입니다. 지난날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고 한 번 더 일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번 실수했기 때문에, 한번 죄를 지었기 때문에 결코 영영 내어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꾼을 아끼십니다.

쓰지 못할 일꾼을 쓸만한 일꾼으로 만들어 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도가니에서 정금을 연단하듯이 고난과 연단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연단하십니다. 회개를 통하여 씻음 받게 하시고 감사와 겸손으로 주 앞에 엎드리게 하십니다. 고난과 시련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훈련하시는 하나의 방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불도가니에서 400년 동안 연단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바로왕의 궁전에서 40년 동안 훈련 시키셨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자기 동족을 위하여 제일 먼저 한 일은 이스라엘 백성과 싸우는 애굽인을 때려죽인 일입니다.

혈기가 살아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미디안 광야로 보내시고 다시 40년 동안 모세를 연단한 후에 다시 불러 쓰셨습니다.

다윗은 간음죄를 덮기 위하여 살인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다윗을 버리시지 아니하셨습니다. 나단선지자를 통하여 죄악을 깨우치게 하심으로 다윗으로 하여금 밤을 밝히고 침상을 눈물로 띄우는 철저한 회개를 통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
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행13:22).

예수님께서는 하룻밤에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를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두 번째 우는 닭울음소리를 통하여 베드로의 양심을 깨우고, 회개의 골짜기를 통곡으로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했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이제는 예수를 부인하고 떠나 갈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주님은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에 주님은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회개의 불도가니를 통과한 베드로는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던 이전의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왜 요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셨는가?
하나님 사랑을 회복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사명을 회복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아직도 요나에게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Ⅱ. 한 번 더 주시는 기회는 일사 각오의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본문 3절에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했습니다.

요나 1장 3절의 말씀은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라고 했습니다. 요나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다릅니다. 회개하기 전의 요나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고 도망하기 위해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회개한 후의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려고 일어났습니다. 삶의 방향과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옛사람 요나는 이웃의 영혼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새사람 요나는 이웃의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옛사람 요나는 불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새사람 요나는 순종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즉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니느웨는 큰 성읍입니다. 거기에는 좌우를 분간 못하는 사람이 십 이만이라 했습니다. 백만 명이 사는 거대한 도시를 누비며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심판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멸망을 선포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 일인가?

그러나 사명자는 자기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명자는 자기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생을 살아드려야 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할 수 없습니다. 선지자는 사명을 위해서 살고 사명을 위해서 죽는 것입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그리할 때 선지자는 능력도 받고 축복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한 번 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Ⅲ. 한 번 더의 기회는 새 역사를 창조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본문 4절에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라고 했습니다.

“40일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 이것이 누구의 음성입니까?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단 하루를 외쳤는데 세상이 변했습니다.

5절 말씀에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6절에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았다”고 했습니다. 7절에 “왕이 조서를 내려 먹지도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금식령을 내렸습니다. 8절에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나의 복음은 단 하루 만에 니느웨를 완전히 폭파하고 말았습니다. “백성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했습니다(5절). 불신앙이 폭파되었습니다. 왕이 보좌에서 조복을 벗었습니다(6절). 교만이 폭파되었습니다. 조서를 내려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라(7절) 불순종이 폭파되었습니다.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라(8절). 온갖 죄악이 폭파되었습니다. 굵은 베를 입고 부르짖으라(8절). 완악한 마음이 폭파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의 새로운 역사의 창조를 위해서 요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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