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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 부활의 은총과 능력 (겔 37:1-6, 고전 15:35-46, 막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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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오동 목사

우리 주님의 부활의 은총과 능력이 오늘 부활절 예배에 참석한 성도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가서에 보면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계절적으로 부활절을 봄철에 맞게 되는 것이 매우 의미 깊습니다. 온 겨울동안 죽은 것 같았던 삼라만상에 봄기운이 돌아 소생하는 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선포하는 부활의 메시지와도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부활절을 계기로 개인적으로 이런 부활의 기운을 새롭게 받아들여 새 생명이 약동하는 신앙으로 발돋움해야하겠습니다.

또 국가적으로, 민족적으로도 죽음과도 같은 구시대적 폐습을 다 떨쳐버리고 생명과 부활의 은총이 지배하는 나라로 태어나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소원인 남북통일이라고 하는 해묵은 숙제를 풀고 이 민족이 정말 통일로 부활하는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우리의 부활의 은총과 능력을 오늘 구약 성경 에스겔의 환상에서 볼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에스겔이 본 골짜기의 수없이 많은 마른 뼈들이 에스겔의 대언에 따라 서로 조립되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그 위에 가죽이 덮이게 되었습니다. 다시 에스겔의 대언에 따라 생기가 죽은 자들에게 불어오니까 그 뼈들이 살아 일어나서 아주 큰 군대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 소망 없는 뼈들이 살아나서 큰 군대가 되었다고 하는 여기서 우리는 부활의 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부활의 능력, 부활의 은총은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1.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겔37:1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 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하나님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곧 바로 "빛이 있으니라"고 하신 분이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시29편에 보면 여호와께서 한번 목소리를 발하시면 온 산천이 마치 송아지같이 뛰면서 벌벌 떨게 된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말갛게 쓸어버리신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부활의 놀라운 역사는 바로 이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고전15: 부활장에는 당시 사람들이 "도대체 부활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는 질문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한마디로 대답을 해줍니다.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행하신다" 즉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이론을 가지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 상식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속한 사항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가장 원초적인 복음서라고 할 수 있는 마가복음이 전해주는 부활 소식입니다. 오래된 마가복음의 사본에는 마가복음이 16:8로 끝이 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말씀이 어떻게 되어있습니까?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는 부활보다 더 기쁜 소식이 없고, 부활보다 더 널리 전해야할 복음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처음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은 저토록 무서워 떨면서 아무에게 아무 말도 못했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에 속한 엄청난 일이기 때문에 아직 저들로서는 그것을 수용할만한 준비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인간적인 차원에만 머물러 있으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믿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 부활에 대한 확신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도 주께서 내게 역사 하시는 부활의 능력, 부활의 은총을 체험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부활절을 계기로 여러분의 믿음을 다시 새롭게 하시고, 은총과 능력으로 임하시는 부활 주님을 만나고 체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고 했습니다. 즉 성령의 역사입니다.

에스겔의 체험은 개인적임 체험임과 함께 영적인 체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에스겔을 데리고 가셔서 골짜기 한 가운데 두셨습니다. 그리고 에스겔이 "생기야 불어라"고 했을 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생기가 바로 성령의 상징입니다. 에스겔은 거기서 부활의 은총과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직전에 광야에서 40일간 시험받으신 것을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거기서 주님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주님 사역의 성패를 좌우하는 매우 중대한 시험이었습니다. 거기서 실패하면 주님 사역은 시작도 하기 전에 끝장나고 말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온 시선이 집중되고, 모두가 잔뜩 긴장되어 바라봐야 했던 일대 격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싸움은 우리 주님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습니다. 마귀는 패배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승리가 가능했을까요? 성경을 보십시오. 마4:1에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다"고 했습니다. 성령께 이끌리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전 생애도 역시 그러하셨습니다. 행10:38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부활은 어떻습니까? 부활도 역시 성령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롬1:4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성령으로 세례 받으셨고, 성령으로 사셨고, 또 성령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성령 충만할 때 이 놀라운 부활의 능력과 은총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또 이런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이 이후에 성도들의 부활에도 참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3. 4절에 보면 "너는 이 모든 뼈들에게 대언하라"고 했습니다. 즉 말씀의 능력입니다.

여기 "대언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외치라는 뜻입니다. 마른 뼈들이 살아 움직이는 군인이 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에스겔이 대언한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번 강조해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도구가 무엇이었습니까?  요한복음1: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히1:3에는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어라"고 말씀하시자말자 그대로 빛이 생겨났습니다. 말씀의 능력, 창조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 우주 삼라만상을 붙잡고 계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실 때는 어떠했습니까? 부활장인 고전15:3-4에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했습니다. "성경대로" 즉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곧 그리스도 부활의 능력입니다. 여기에 천지 창조에 못지않는 하나님의 말씀의 새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보여 주신 사건이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내신 일입니다. 예수께서 죽어 장사 지낸 지 4일이 지낸 나사로의 무덤에 가셔서 무덤 문을 막은 돌을 옮겨 놓은 후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랬더니 죽은 자가 수건에 쌓인 채로 살아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이런 일이 역사의 마지막에 대규모로 일어나게 됩니다. 살전5:에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 자들이 먼저 일어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천사장이 저와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그때까지 무덤에 잠자던 우리들이 그 소리를 듣는 순간 홀연히 순식간에 변화를 받아 무덤에서 나와 들려 올라가게 됩니다. 이것이 역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위대한 사건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여기 살고 있는 우리들이 부활의 은총과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길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지금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살아나게 됩니다. 나사로만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도 역시 말씀에 의하여 우리 영혼이 살아나게 되고, 강하여지게 되고, 주의 사역에 쓰임 받는 능력 있는 일꾼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말씀이 너희 속에서 역사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가장 힘써야할 일은 이 생명의 말씀을 듣는 일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긴 말씀이 쉐마라고 일컫는 신명기 6: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어린이들이 겨우 말을 할 줄 알 때부터 외우도록 가르치고 계속 반복해서 확인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예수께서도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고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 원어로는 "들어라"는 단어가 맨 먼저 나온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장 강력하게 원하신 말씀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말씀이 우리를 살리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예수님도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과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데도 우리 모습이 이 모양입니까?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여 타락하고, 나라고 망한 원인이 어디 있었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데 있었습니다. 말씀을 버린 것이 바로 하나님을 버린 것이요 생명에서 떠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도 그렇습니다. 말씀은 말씀대로 나는 나대로 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나무에 잘려진 가지처럼 생명에서 잘려져 있습니다. 사람들 발에 여지없이 밟히고 있습니다. 이러다 결국 불태워지는 것은 아닌가 심히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부활절을 당하여 우리가 가장 힘써야할 일 가운데 하나가 말씀의 회복입니다. 옛 종교 개혁가들처럼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기에 부활의 생명이 있고, 부활의 은총이 있고, 부활의 능력이 있습니다.

첫 부활절 아침, 그 놀라운 부활 현장에 갔던 여인들이 처음에는 너무 놀라서 아무에게 아무 말도 못했으나 저들은 주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곧 바로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들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앞으로도 영원히 이 부활의 복은 증거 되어집니다. 그러므로 오늘 2004년도 부활절을 맞는 우리도 이 은총과 능력을 체험하여 부활 증인의 대열에 동참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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