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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 나는 부활을 믿습니다 (요 11:1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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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현식 목사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이 기쁜 부활주일에, 다시 사신 우리 주님의 부활의 능력과 축복이, 사랑하는 성도여러분과 삶속에 충만히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위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로마군인들은 6시간동안 십자가에 달려있던 예수님이 완전히 숨을 거두시자, 사망을 재차 확인하기 위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다음/ 동굴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넣고, 돌로 막고, 인봉을 하고, 그리고 동료군인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살아생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전은 곧 나 자신이다 너희들, 이 성전을 헐라 그리하면 사흘 안에 내가 다시 지으리라>
바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말씀하셨던 그 대로무덤속에 그냥 누워 계시지 아니하시고 사흘만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이 부활에 대해서 천사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눅24:5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예수님은 여기 무덤에 계시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느니라"

요20:19절이하를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사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어다 그러면서 도마에게는 창으로 찔렸던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 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여러분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부활하셨고
예수님은 그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들도 부활의 그 다음 열매가 되어 영원토록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빈 무덤의 종교이다

우리 사람에게는 중요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뿐입니다. 하나는 사는 것이요, 또 하나는 죽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바르게 사느냐, 얼마나 사람답게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 인(人)자 다섯 개--사람이라고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람에게는 짐승들에게는 없는 도덕이 있고 윤리가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세상에서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뭔가 불신자들과는 구별된 모습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람에게 피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누구나 다 한번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
올 때는 순서가 있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 주소입니다
한문에서 죽을 사(死)자를 뜻풀이하면
한 일자--저녁 석자 그리고 비수 비 자입니다
죽음이 뭔가? 하루 저녁에 날라드는 비수와도 같다는 것이다
이 비수가 대낮에 날라든다면, 그래도 피할 수 있겠지만, 이 죽음의 비수는 어둠 컴컴한 밤에 날라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꼼짝없이 당할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으면 그 후에는 어떻게 됩니까?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은 죽음과 함께 다 끝이 납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여러분들이 다 잘 아시는 내용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아니한 베다니라는 마을에 마르다와 마리아자매, 그리고 나사로라는 오라비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가정은 예수님과 아주 가까이 지내던 가정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전도사업에 필요한 것들을 도왔고, 또 예수님은 피곤하시면 주저하지 않고 그 집에 가셔서 쉬시기도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이 가정은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가정이었고, 이 가정 역시 예수님을 극진히 사랑하였습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이런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나사로의 가정처럼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가정이 되고
고넬료의 가정처럼 주님의 말씀으로 늘 풍성한 가정이 되고
그리고 롬16장에 나오는 가정들처럼 여러분의 가정이 교회화될 수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이제 어느날
예수님이 그렇게 사랑하시던 나사로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서 "주님, 빨리 오셔서 우리 오라비의 병을 고쳐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이 급한 사실을 들으시면 그냥 만사를 제처놓고 자기들의 집으로 달려오시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연락을 받고서도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이나 더 유하시다가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서야 그 베다니로 가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 마르다가 주님을 맞으러 나아갔습니다.
주님을 뵙는 순간 슬픔이 북받쳐 오른 마르다는 원망 섞인 어조로 말합니다.
21절입니다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우리 오라비가 병들었을 때, 아니 막 죽어가려는 그 순간에 주님이 여기계셨더라면 내 오라비는 죽지 않았을 겁니다.---만약에 그 때 오셨더라면--과거를 생각하며 탓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이 뭐가 잘 안되면 거의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 바로 이 탓을 하는 것입니다
그 때 만약에 누가 좀 도와주었더라면, 오늘 내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텐데...
그 때 그 상황이 그러지 않았더라면, 오늘 내가 이 모양은 되지 않았을텐데..
마르다가 그랬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그저 막연한 희망 하나를 가지고
2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님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면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줄 아나이다"
이때 예수님은 마르다를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23절/"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40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마리아야, 그리고 마르다야, 너의 오라비가 죽은지 나흘이나 되었느냐, 그리고 지금은 동굴 무덤속에 누워있느냐
그러나 그리할지라도 바로 지금 너가/ 죽은자를 살리시는 하나님, 죽은 자를 소생시켜 주시는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

여러분 여기서 아십시요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은 과거를 탓하는 신앙이 아니라
과거야 어찌되었든, 또 지금 결과야 어찌되었든/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오 그 살아계신 하나님은 바로 오늘 나의 믿음, 바로 지금 나의 믿음을 축복하사 나에게 기적을 베풀어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그저 왕년의 스타--전에는 믿음도 좋았고 전에는 봉사도 많이 했고 전에는 전도도 많이 했는데---지금은 다 꺼져버린 부지깽이 같은 신앙이 아니라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오늘의 믿음을 가지고 주님앞에 서는 오늘의 일꾼, 오늘의 스타들 되시길

그리고 또 한가지 확신해야 하는 것은
우리 주님은 죽음의 완전한 정복자가 되신다는 사실이다
25-26절을 읽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여러분,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가 있습니까?
부활이 가능합니까?
우리 사람의 힘으로는 있을 수 없고, 가능할수도 없지만, 하나님께는 가능인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인생을 세상에 내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우리 인생을 거두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다 하실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에는 두 종파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바리새파요, 또 하나는 사두개파였습니다. 그 중에 이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구약성경 가운데서도 모세 오경만 성경으로 인정하고, 다른 모든 책들은 성경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모세 오경에서는 부활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사두개파 사람 하나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부활에 대한 진리를 반박하면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선생님은 부활을 믿으신다고 하셨는데 가령 이런 경우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얼마를 살다가 그만 죽었습니다. 유대 사람들의 풍속대로 하면 자식이 없이 형이 죽으면, 그 죽은 사람의 동생이 형수와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동생이 형수와 같이 살다가, 또 자식이 없이 죽었습니다. 그 형수는 그 다음 동생과 사는 것이 유대나라의 풍속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 여자는 일곱 형제와 같이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그들이 다 부활하게 될 때, 그 여자는 그 형제중 어느 남자를 남편으로 여기고 함께 살아야 합니까?" 아주 묘한 질문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때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셨는데 여러분 기억이 나십니까?
"너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권능도 모르고 있구나. 이 다음에 우리가 부활하게 되면 다 천사와 같이 될 터인데, 다시 시집가고 장가간다는 소리가 다 무슨 말이냐?"

지난 고난주간새벽에도 잠깐 말씀을 드린 것 처럼
우리가 죽으면/ 영과 육이 분리됩니다--기독교,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이란 영혼과 육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은 흙에서 왔으니 다 무덤-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께부터 왔으니 하나님앞으로 갑니다. 하나님앞으로 간 우리의 영혼은, 다시 두 군데로 나뉘어지게 되는데 예수님을 믿은 영은 낙원으로 향하게 되고
예수님을 믿지 않은 영은--뭐 그 사람이 세상에서 아무리 대단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 음부, 지옥으로 향하게 됩니다

여기서 한가지 알아야 하는 것은 한번 이 세상을 떠난 우리의 영은 다시 어디로든 움직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낙원에 가 있는 영은 그곳에 계속 있어야 하고, 음부에 간 영은 그곳에 계속 있어야 합니다

뭐 천주교에서는 연옥설을 이야기 하면서
예수를 안 믿다 이 세상을 떠나면 금방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지 않고 연옥에 가 있게 되고 그 때 후손들이 그 부모를 위해 공을 쌓고 기도를 많이 하면 그 공력 때문에 그 연옥에 있는 부모가 천국에 가게 된다고 하는데 아니오!! 사람이 한번 죽으면 영혼은 그 순간 가는 길이 정해져 있고.. 천국이든 지옥이든--그리고 한번 그곳에 가면 절대로 위치이동을 할 수 없고, 더욱이 이 세상에 올 수 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는 유교의 전통에 따라서 부모나 조상의 제삿날이 되면, 이 세상을 떠난 조상들의 혼령이 황천을 떠돌다가, 그 날, 잘 차려 놓은 제삿밥 먹으러 우리들의 집으로 온다고 생각하고 제삿장 차리고 거기에다가 꾸벅 절하고 그러는데..
성경 고전10:20에 보니까/ 그런 제사는 바로 귀신에게 하는 것/ 귀신을 숭배하는 것이다 그랬다
아세요
제삿날,, 그 제삿상앞에 누가 앉아있긴 있지만/ 그것은 우리 조상이 아니라 바로 조상으로 위장한 귀신들이 앉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는 선교초창기에 생명 내걸고 반대한 것이 바로 이 제사이다. 사실 이 제사지내는 것 허용했으면, 선교사들 그렇게 많이 죽지 않았을 것이고, 기독교가 쉽게 전파될 수 있었겠지만, 그러나 아니오, 제사는 귀신에게 절하는 것이요, 그러므로 1년 신앙생활 잘하다가도, 한번 제삿상 차려 놓고 절하면, 그 신앙은 왕창 무너지는 것이 되기 때문에 제사지내는 것--생명 내걸고 반대했던 것입니다

분명히 아세요. 사람이 한번 죽어 이 세상을 떠나면 그 영혼은 다시 이 세상에 올 수 없고/ 그래서 육은 흙으로 돌아가 있고 영혼은 하나님 나라든 지옥에 가 있다가
오직 하나, 우리 주님이 다시 재림하실 때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무덤이 열리면서 흙으로 돌아간 이 육과 음부나 낙원에 가 있는 이 영혼이 결합해서
에수믿은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게 되고
예수 안믿은 영혼은 사망의 부활로 저 영원한 지옥의 불구덩이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부활한 몸은 물론, 이 몸을 기초로 해서 부활하겠지만 지금의 이 몸과 같은 몸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2절과 빌립보서 3장 21절에 보면 우리의 몸이 부활할 때 가장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가 된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몸매에 자신이 없는 분들,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콤플렉스를 가지신 분들--걱정하지 마세요 나중에 내 육이 부활할 때에는 누가 보더라도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바뀌어지게 될테니까요...

오늘 부활주일에 우리 다시한번 깊히 점검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2천년전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예수 부활을 사실로 믿고 있는 나의 믿음위에/ 부활의 주님을 오늘 나의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여기에 비해 부활의 주님은 현실적인 사건입니다.
예수 부활은 머리로 믿는 지적인 내용인 반면에 부활의 주님은 가슴으로 느끼고 믿는 체험적인 실존입니다.
예수 부활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2천년전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사실에 강조점을 두지만
부활의 주님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다는 사실에 강조점을 둡니다.
예수 부활은 주님이 누어게셨던 빈무덤을 주목하게 만들지만
부활의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나와 동행하고 계시는 주님을 주목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둘은 절대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 부활과 부활의 주님은 하나입니다.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우리 믿음의 양면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예수 부활만 믿고 예수 부활만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 날 수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대개 머리로 알고 있고 믿고 있습니다
부활의 내용을 훤히 꿰뚫고 있습니다. 예수 부활에 대해서 성경을 찾아보라 그러면 금방 찾아 읽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의 약점은 예수부활을 하나의 역사적인 사실로 믿고 있을 뿐 그 예수님은 오늘도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하심을 체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음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여러분의 삶의 현장속에 계심을 믿으시길
2천년전 부활하신 주님은 바로 오늘 2003년에도 부활의 주님으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길
그리고 그 부활의 주님과 함께 일하는 신앙으로 올라가시길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전도도 하고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봉사도 하고
그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충성하고 헌신하는 여러분들

종교개혁자 칼리는 신앙의 세가지 영역을 말합니다.
하나는 성경에 대한 지식입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이 기도를 많이 하면 신비주의에 빠질 위험이 높습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말씀을 배우고 공부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하는 성경공부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체험입니다. 신앙적 체험이 없이 성경공부에만 전념하다보면 우리의 신앙은 머리신앙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기도하는 만큼 성경을 공부해야 하고
성경을 공부하는 만큼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셋째는 실천하는 신앙-바로 봉사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공부를 하고 기도를 많이 해도 그 신앙속에 봉사가 없으면 그 믿음은 자라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21장과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 베드로는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그 주님은 비록 승천하셨지만 늘 성령으로 자신과 함께 하는 부활의 주님인 것을 확신한 다음에
그 부활신앙가지고 전도현장에 나갔을 때 부활의 주님이 그와 함께 하셔서 하루에 3천명 5천명씩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행3장을 보면 부활의 주님의 이름으로 외쳤을 때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그 사람이 벌떡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다시 묻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셨음을 믿으십니까?
그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부활의 주님인 것을 확신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부활의 증인되어서
세상에 나아가 주님의 부활하심 주님의 구세주 되심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고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사역하고 헌신하는 사람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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