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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 부활의 증인이 되라 (눅 24: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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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참 좋습니다. 만물이 생기를 얻고 생명으로 피어나는 부활의 계절입니다. 새 천년에 처음 맞이하는 부활절, 우리 주님 예수께서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 영광의 박수를 보내드립시다. 짝짝짝----

감리교를 창설한 요한 웨슬레 목사가 천국에 가는 꿈을 꾸었답니다.
천국에 갔더니 듣던 대로 베드로 사도께서 천국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웨슬레 목사는 천국에 감리교도가 몇 명이나 왔을까? 몹시 궁금해서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님, 천국에는 감리교도가 몇 명이나 왔습니까? "
"웨슬레씨 감리교도는 천국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웨슬레 목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다면 장로교도는 몇 명이나 왔습니까?"
"천국에는 장로교도도 한 사람도 없습니다. "
웨슬레 목사는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렇다면 천주교도는 몇 명이나 왔습니까?"
"천주교도도 한 사람도 없습니다. "
웨슬레 목사는 더욱 궁금해 졌습니다.
"베드로 사도님, 그렇다면 천국에는 누가와 있습니까?"
"천국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와 있습니다."
웨슬레는 그러면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시 천사를 따라 웨슬레 목사를 지옥으로 갔습니다. 웨슬레 목사는 또 궁금했습니다.
"천사님, 지옥에는 감리교도가 있습니까?"
"예, 아주 많이 있습니다."
웨슬레 목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큰 일이구나.
"그렇다면 장로교도도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장로교도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주교도는요?"
"물론 천주교도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지옥에 들어오지 않습니까?"하고 물으니 천사가 대답하였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는 지옥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할렐루야!!
감리교는 무엇이고 장로교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언제까지 나누어져 서로를 비방하며 살 것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를 욕하는 것은 우리를 욕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욕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감리교도면 어떻고, 장로교도면 어떻습니까? 문제는 하나님을 바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 길은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약 30리쯤 떨어져 있는 엠마오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방금 그들이 떠나온 예루살렘에서는 참으로 참담한 일이 일어났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야로 믿었던 예수라는 사람이 실로 어이없게도 사흘 전에 십자가형을 받아 죽었던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은 예수를 따라 다녔던 제자들이었습니다. 두 제자는 구세주로 믿었던 예수가 참혹하게 죽는 광경을 보았고, 또 일찍이 그 예수가 '내가 죽으면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난다'고 한 말씀도 들은 바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날 새벽에 예수의 무덤을 다녀온 동료 제자들이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더라'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놀랍게도 다시 살아난 예수를 보았다는 막달라 마리아의 증언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분명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고 '다 이루었다'고 비명을 지르고 숨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로마 군인 하나가 창으로 숨진 예수의 옆구리를 찔러 피와 물이 흘러나오는 것도 숨어 보았고, 또 십자가에서 내려져 돌무덤 속으로 들어간 예수의 시체도 보았던 것입니다. 그 무덤의 문이 큰 돌로 봉해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3년간이나 따라다니던 예수는 아주 죽은 것입니다. 무엇이 더 남아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들에게는 허무한 슬픔과 절망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엠마오로 가면서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그 끔찍한 일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한 참을 이야기하며 걷고 있는데 어떤 나그네가 그들에게 다가왔습니다. 나그네는 그들의 이야기에 끼어 들었습니다. 그는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진지하게 하고 있느냐? 고 물었습니다.
"보아하니 당신도 예루살렘에서 오는 것 같은데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을 모른단 말이요?" 라고 물으니 그 나그네는 시치미를 떼고 " 무슨 사건말이요?" 반문합니다. 그들은 사흘 전에 있었던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에 그 나그네는 성경을 토대로 예수에 대한 증언들을 세밀하게 들려주었습니다. 예수가 죽었다가 다시 사흘만에 부활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을 때 제자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두 제자는 나그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습니다. 날이 저물었으니 어디 머물면서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나 더 하지고 제안하였습니다. 식탁에 앉아 나그네가 기도하고 떡을 떼어 두 제자에게 주자, 두 제자의 눈이 열렸습니다. 바로 앞에 계신 분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지금껏 자신들과 함께 걸으셨던 분이 부활하신 주님이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즉시 예수는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 두 제자는 그 시로 당장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니 제자들이 크게 소동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예수가 부활하신 것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찼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로 그들의 삶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그들의 절망은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분노는 환희로 바뀌었습니다. 두려움에 떨던 초라한 모습은 담대함으로 부활을 증언하는 전도자로 바뀌었습니다. 낙담하여 엠마오로 가던 발걸음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힘찬 발걸음이 되었습니다. 골방에서 떨고 있던 그들이 길거리에서 담대하게 증언하였습니다. 그 증언의 중심은 예수의 부활이었습니다. 그들은 감옥에 갇혀도, 죽으면서도 예수가 부활했다고 외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함양지역 기독교도 여러분, 또한 함양군민 여러분.
2001년 부활절에 부활의 주인공이신 예수를 만나 부활에 감격에 빠지시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않고서는 부활의 감격에 빠질 수 없습니다. 예수를 운명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어설프게 만나면 어설프게 믿게 됩니다. 어디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막달라 마리아는 죽은지 사흘이 된 예수의 무덤을 찾았다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습니다. 실로 부활하신 주님은 아무에게나 보이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활을 애타게 사모하는 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을 애석해 하고 절망하는 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를  따라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쳤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갈릴리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또한 오늘 성경 본문에서는 예수께서 성경을 열어 말씀하실 때에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주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어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부활의 감격에 빠질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부활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만나시기 위해서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엽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읍시다. 그리고 들을 만큼 들었으면 눈이 열려 주님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감격과 기쁨이 그 속에서 솟아납니다. 그리고 참 증인이 됩니다.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삶 속에서 예수가 드러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당신에게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드러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예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했고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셨습니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삶을 통하여 예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교회를 바라보면 예수가 보여야 합니다. 우리들의 가정을 들여다보면 예수가 보여야 합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예수가 보여야 합니다.

미국의 복음전도자 빌리그레함 목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유명 언론 기자가 빌리그래함 목사의 비리를 추적하여 특종 보도하려고 10년을 따라다녔답니다. 그런데도 비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의 청렴한 삶에 감동하여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믿게 되었답니다. 

참으로 귀합니다. 그러나 당연한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그랬습니다. 

이제 말로 전도하는 시대는 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말로 전도해서는 믿지 않습니다. 이제는 삶으로 보여야 합니다. 내 삶 속에서 그리스도가 나타나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그들의 삶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가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보면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습니다.

아무개 목사가 지나가면 아무개 목사가 지나간다고 말하면 잘 못 산 것입니다. 저기 예수께서 지나가신다고 말하게 해야 합니다. 아무개 장로가 지나가면 저기 예수께서 지나가신다고 말하게 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든 안 믿는 사람이든 우리를 보고 예수를 보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살아 있는 것이고 가정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은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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