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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 말씀하신대로 다시 살아나셨느니라 (마 26:1-2, 31-32, 마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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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지용수 목사

역사적으로 보면, 점을 보는 사람, 사주팔자를 봐주는 사람의 자녀가 잘 된 일이 없습니다. 신문이나 잡지에 사주팔자나 꿈 해몽이 자주 나오는데, 그런 글을 쓴 사람의 자녀가 잘 된 일이 없습니다. 그런 것에 미혹 당하면 안 됩니다.
인도에 유명한 예언자로 소문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니 사람들을 속인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문을 들은 왕이 그를 그날 당장 죽이려고 불러들였습니다. 왕은 거짓 예언자가 그날 자기가 죽는 것을 아는지 시험하기 위해 그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몇 년까지 사는지 아는가?”
거짓 예언자가 왕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폐하, 저는 폐하께서 돌아가시기 3일 전에 죽습니다.”
“뭐라고? 그러면 나는 몇 년까지 사는가?”
“폐하께서는 제가 죽은 3일 후에 돌아가십니다.”
그 말을 듣자 왕은 아찔했습니다. 그 예언자를 그날 죽이려 했는데, 혹 그 예언자의 말이 맞으면 자기도 3일 후에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여봐라! 이 자를 데리고 가서 잘 먹이고 오래 살도록 잘 돌보아 주어라.”
왕이라도 미래를 모릅니다. 대통령이라도 코앞의 일을 모릅니다. 삼손이 예쁜 여자와 놀아나다 눈이 뽑혀 죽을 줄 알았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롯의 처가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될 줄 알았으면 뒤를 돌아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간이 금과 은, 외투를 훔쳤다가 자기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다 돌에 맞아 죽을 줄 알았다면 훔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두 몰라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사람은 미래를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전지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래서 본문 26장 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예수님께서 배신을 당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31절, 32절에 보면, “내가 죽지만 다시 살아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도 아셨고,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도 아셨습니다.  때문에 마태복음 16장 21절에서도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고 삼일 만에 부활한다.”라고 제자들에게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2절, 23절에도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마태복음 20장 18절, 19절에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여 이방인들이 나를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으리니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오늘은 부활절인데, 주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지난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십자가에 달려 계셨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십자가에 달려 계신데, 당대의 유명한 공회의원이요 재벌인 아리마대 요셉이 용기 있게 빌라도 총독에게 가서 허락을 받아 예수님의 시신을 장례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하는 일을 보고 힘을 얻은 니고데모도 힘을 다해 침향과 몰약 백 근을 준비해 왔습니다. 침향과 몰약은 왕의 장례식에만 쓰는 귀한 것인데, 그것을 백 근이나 아낌없이 주님께 바쳤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자기를 위해 준비해 놓은 새 무덤에 예수님을 모셨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주 “내가 죽지만 삼일 만에 부활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그들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빌라도 총독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각하, 죽은 자는 자신이 죽은 후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자주 말했습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의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가서 감추어 놓고 ‘예수가 부활했다.’라고 하면 민심이 소란하게 될 것이니 군사들에게 무덤을 지키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래서 허락을 받고 파수꾼을 시켜 무덤을 지키게 하고 또 돌로 막은 무덤 문에 다시 회칠을 해서 도장을 찍었습니다.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하고 군사들이 3일간 지켰습니다. 안식일인 그 다음 날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이 죽어도 영혼이 금방 떠나가지 않고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는 삼일간은 주변을 맴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이 삼일간은 매일 무덤에 가서 돌봅니다. 그런데 예수님 장례식 다음 날은 토요일로 그들이 목숨을 걸고 거룩하게 지키는 안식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무덤에 가지 않은 것입니다.

구약은 미완성 성경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구약의 부족한 것을 다 완성하셨습니다.
구약에서는 소를 잡고 양을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려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피비린내가 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피로 모든 것을 대신하셔서 이제는 소나 양을 잡아서 예배드리지 않습니다. 예수님 피의 공로를 의지하여 예배를 드립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구약에서는 모두 할례를 받았으나 이제는 할례를 받지 않고 세례를 받도록 예수님께서 바꾸셨습니다. 
또 구약에서는 안식일을 지켰지만, 이제는 주일에 예배를 드립니다. 만일 지금도 안식일을 지킨다면 유대교인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 유대교인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안식일을 지킨다면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와 유대교를 구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부활하지 않으시고 안식 후 첫날, sunday, 주일날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안식일이 중하지만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더 큰 날로 여겨서 기독교는 유대교와 달리 주일날 예배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도 ‘주의 날’이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일주일이 다 귀한 날이지만, 가장 큰 날은 주일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일 이른 새벽,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예수님을 사랑한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보러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저 무덤이나 돌보러 온 것입니다. 그런데 와보니 지진이 일어납니다. 무덤 문을 지키고 있던 군사들이 지진에 놀라 기절합니다. 빛나는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무덤 문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얼굴이 번개처럼 빛나고 옷은 눈보다 흽니다. 
그 광경을 보고 여인들이 무서워 떱니다. 그 여인들에게 천사가 말합니다. 
“무서워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찾으러 온 것을 아노라. 그가 여기에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따라 합시다.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새벽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새벽에 일어나서 부활하신 주님을 경배해야 됩니다.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군에 가면 이유가 없습니다. 정한 시간에 일어나야 됩니다. 교인들은 다 새벽에 일어나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를 지시고 말씀하신 대로 삼일 만에 정확하게 부활하셨습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으실 때도 말씀으로 지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으로 오셨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한복음 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 창시자들은 무덤이 있습니다. 석가나 마호메트나 공자나 다 무덤에서 썩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Christian Century지 편집장 말티 목사님이 교회학교 교사 때의 일입니다. 부활주일 전 주일날 아이들에게 숙제를 냈습니다.
“얘들아, 다음 주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부활주일이니 생명을 상징하는 것을 상자에 담아 오너라.”
부활주일에 아이들이 모두 예쁜 상자를 갖고 왔습니다. 아이들이 가져 온 상자 안에는 병아리, 달걀, 나비, 푸른 잎 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티브라는 아이가 가져온 상자를 여니 빈 상자였습니다. 상자 안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얘야, 너는 왜 빈 상자를 갖고 왔니?”
“선생님, 이건 예수님의 무덤이에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빈 무덤이 된 거예요.”
그래서 스티브를 칭찬해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인도의 성자 산다싱이 영국에 갔을 때 많은 사람이 몰려왔답니다. 그때 한 대학교수가 이런 질문을 했답니다.
“선생님은 왜 조상 대대로 믿어온 힌두교를 믿지 않고 기독교로 개종하셨습니까?”
질문을 받은 산다싱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분명히 대답했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살아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만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가 죽은 사람의 어떤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생명의 종교를 믿는 것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다 이루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할렐루야!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Whoever, 누구든지 예수님만 믿으면 영생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듭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도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히말라야 산맥의 주변 사람들은 오래 산다고 합니다. 맑은 공기와 맑은 물을 마시며 사니 오래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히말라야 산맥 가까이에서 살면 아마 120, 130세까지는 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은 몇 십 년 더 사는 동네로 옮긴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동네로 옮긴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교회는 영원히 사는 동네다.”
우리가 교회에서 살게 됨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 26절에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캘리포니아에 제임스 베드포라는 박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간암으로 죽게 되었을 때인 1967년 1월 12일에 자신을 냉동시키게 했습니다. 그리고 의학이 발달되어 간암을 완전히 치료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냉동 상태에서 해동시켜 달라며 4,200만 불(500억 원)을 냈습니다. 그때 간암을 고쳐서 다시 살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냉동된 시체가 열두 구가 있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혹 간암이 완전히 해결되는 때가 되어서 해동되어 다시 산다고 해도 몇 십 년 더 살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몇 십 년 더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돈을 번 자들입니다. 500억 원 정도가 아닙니다. 말할 수 없는 가치의 생명, 영원히 사는 생명을 샀습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리고 우리 영혼만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몸도 부활합니다. 우리가 무덤에 들어가지만 나중에 우리의 무덤도 빈 무덤이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인 레브론에서는 클로레리 세프라는 미인 모델을 바닷가에서 뛰게 해서 한 장면을 찍고는 천억을 주었답니다. 그 아가씨의 얼굴이 아주 순박하고 청순하며 몸이 아름답고 생동감이 넘치니, 흠과 티가 없이 아름다우니 뛰는 모습을 한 번 찍는데 천억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가씨도 세월이 가면 늙고 병듭니다. 그 아름다운 몸도 썩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광의 몸으로 부활합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만일 예수님께서 지금 오시면 우리는 무덤에 들어가지 않고 홀연히 변하여 영광의 몸을 입고 하늘로 들림 받게 됩니다. 제가 99세까지 살기를 원하지만 우리 주님께서 내일이라도 오시면 참 좋겠습니다. 제가 지난 주일에도, 우리 일생에서 최고로 기쁜 날은 죽는 날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 에스키모인이 에스키모에 탐험을 온 미국 탐사대를 도와주었습니다. 미국 탐험대원들이 고마워서 그를 미국에 초청했습니다. 에스키모인은 뉴욕과 시카고를 구경하며 깜짝 놀랐습니다. 그가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미국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빌딩이 있고, 거리를  쌩쌩 달리는 자동차가 있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 있고…….”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거짓말쟁이라고 해서 그가 고통당하다가 죽었답니다. 미국에 빌딩이 있고 자동차가 있고 비행기가 있는 것을 미국에 갔다온 사람은 사실이라는 것을 아는데, 그렇지 않은 에스키모인들은 그 사실을 말한 사람을 거짓말쟁이라고 한 것입니다.
에스키모에서 살다가 미국에 가도 충격을 받는데 이 세상에서 살다가 천국에 가면 얼마나 더 큰 충격을 받겠습니까? 천국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예수님께서 지금이라도 재림하시면 우리는 홀연히 변하여 천국으로 들림 받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이 몸, 병든 몸, 때가 낀 몸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합니다. 그런데 부활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수년 전에 성형 수술을 한 사람들은 부활할 때 어떤 모습일까 한동안 생각해 보았습니다. 코를 높이고 결혼을 했는데 납작코의 모습으로 부활하면 남편이 ‘이상하다. 음성은 내 아내의 음성인데 코가 왜 저렇게 생겼을까?’라고 생각하며 “당신, 내 아내가 맞소?”하고 물어보지 않겠습니까? 또 쌍꺼풀 수술을 하고 결혼을 했는데, 부활할 때 쌍꺼풀이 없는 모습으로 부활하면 남편 보기에 미안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나는 네 친정아버지보다 너를 더 사랑한다. 성형 수술하고 나서 더 못나 보여 후회하면 이전의 모습으로 부활시켜 주고, 더 예뻐졌으면 수술 후의 모습으로 부활시켜 준다.”
따라 합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친정아버지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합니까?
어쨌든 우리는 영원히 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만 부활하시고 우리는 죽어서 부활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부활은 축하만 하고 말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예수님과 똑같이 부활하니 축하하고 말 일이 아니라 기뻐서 춤을 출 일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모욕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의 터널을 지나셨지만 부활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승리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2장 26절에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눈이 오는 날 사람들이 앞사람의 발자국을 밟고 가듯이, 여러분과 저는 주님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십자가를 지는 것 같은 고통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부활합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승천합니다. 주님께서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도 이기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까지 '주의 이름으로 승리하기를 축원한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사실은 그것이 맞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승리했습니다. 할렐루야! 승리하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 대장 예수님께서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승리한 것입니다. 함포 사격으로 고지를 초토화시킨 후 보병들이 "와!"하고 올라가서 승리의 깃발을 꽂는 것처럼,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로 마귀의 목을 다 부러뜨려 놓으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승리의 깃발을 꽂으러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는 승리하리 우리는 승리하리 우리는 승리하리 그 날에」하고 찬송하는데, 사실은 「우리는 승리했네 우리는 승리했네 우리는 승리했네 오늘에」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승리한 것입니다. 이긴 것을 확인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상황이 아무리 캄캄하고 어려워도 결국에는 이기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고 아내가 가출하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나는 이기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내게 계십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휘청거릴 때가 있습니다. 대통령도 휘청거릴 때가 있고, 회사 사장도 휘청거릴 때가 있고, 목회자도 휘청거릴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베토벤도 휘청거릴 때가 있었습니다. 베토벤이 한 여인을 너무나 사랑했는데, 그 여인이 가난한 베토벤을 버리고 갔습니다. 결혼한 후에 배우자에게 버림받는 것은 결혼 전의 애인에게 버림받는 것보다 덜 심각합니다. 함께 살아 보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혼 전에는 사랑하는 애인이 전부인 줄로 알고 있기 때문에 버림을 당하면 심각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결혼 전에는 제 아내가 제 삶의 전부로 보였습니다. 제 아내가 정말 굉장한 여자인 줄 알았습니다. 자나깨나 아내 생각뿐이었습니다. 공부도 주님을 위해서보다 제 아내를 위해서 할 때가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 한 분이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한 TV 방송국에서 70이 넘은 할머니들을 모셔다가 위로 잔치를 해드렸답니다. 그때 사회자가 할머니들에게 “할머니들,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할아버지와 결혼하시겠습니까?”하고 물었답니다. 그러니 할머니들이 “미쳤어?”라고 하는데, 한 할머니만 자기 할아버지와 결혼하겠다고 대답했답니다. 사회자가 놀라서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어디가 좋아서 다시 결혼하실 겁니까?”하고 물으니, 할머니가 “좋긴 뭐가 좋아. 그놈이 그놈이여.”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여러분, 사람이 내게 귀하지만 내가 휘청거릴 정도의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 때문에 흔들리지 맙시다.
그런데 베토벤은 첫사랑을 잃고 휘청거렸습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다투고 상처를 받았습니다. 또 충격으로 귀가 어두워졌습니다. 음악가가 귀가 어두워졌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는 인생을 접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영적으로 높은 경지에 있는 고매한 영적 지도자를 찾아가서 자기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지도자가 상자 하나를 가지고 와서 “여보게, 여기에서 구슬을 하나 꺼내 보게.”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구슬 하나를 꺼냈더니 검은 구슬이었습니다. 지도자가 또 말했습니다.
“또 하나 꺼내 보게.”
또 검은 구슬이 나왔습니다.
“여보게, 이 상자 안에는 하얀 구슬이 두 개, 검은 구슬이 여덟 개 들어 있네. 어떤 사람은 하얀 구슬을 먼저 집어내고, 어떤 사람은 자네처럼 검은 구슬을 먼저 집어낸다네. 검은 구슬은 불행, 실패를 뜻하고 하얀 구슬은 성공, 행운을 뜻하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검은 구슬도 주시고 흰 구슬도 주셨다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조금 먼저 흰 구슬을 집어내고 어떤 사람은 조금 늦게 흰 구슬을 집어내는 것뿐이라네. 자네가 계속 구슬을 집어내면 언젠가는 흰 구슬이 나오게 되어 있네. 흰 구슬이 자네 앞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다네.”
그의 말에 베토벤이 위로와 힘을 얻고 다시 시작해서 음악계의 별이 된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내 앞에도 흰 구슬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앞길을 예정하고 계십니다. 
잠언 16장 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7절에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시고 나아가도 우리에게는 힘든 일들이 많습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인간관계에서, 교회 생활에서 힘든 일이 많지만, 그래도 우리 주님께서 이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에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저는 오늘 참 기쁩니다. 1부 예배 때 헌금을 드리고 부활절 달걀 하나를 집어서 그 달걀에 붙어 있는 말씀을 찾아보니 사무엘하 8장 6절이었습니다.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이 말씀은 “지용수가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라는 의미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저는 22년 전의 우리 양곡교회 사진을 책상 앞에 두고 날마다 보고 있습니다. 혹시 제가 옛날을 잊을까 봐서입니다. 그 당시 우리 교회의 예배당은 거의 다 상한 슬레이트 몇 개를 걸쳐놓은 무허가 건물이었는데 마치 판잣집 같았습니다. 또 거름터 옆에 있어서 교회 가까이에 오면 거름 냄새가 났습니다. 그때 많은 분들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지 목사님, 양곡교회는 안 됩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철거당하고 그 땅에 공장이 들어설 겁니다. 지금 있는 그 건물은 무허가 건물입니다. 지 목사님, 잘못 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무릎을 꿇으니 하나님께서 이런 사인을 주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고 했지만 나사렛에서 나온 예수가 세상을 구원했다. 양곡교회가 세계를 구원하리라. 영락교회보다 더 큰 교회를 이루라.”
그 말씀을 붙잡고 나아오니 오늘의 우리 양곡교회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8년 전인가 9년 전에도 제가 신비로운 일을 경험했는데, 참고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비몽사몽간에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일어나 더 크게 나팔을 불어라.” 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안개 속에서 흰옷 입은 천사가 나타나더니 금 나팔을 빠바방 하고 불었습니다. 그때 제가 ‘내가 세계를 다니며 저 금나팔처럼 저렇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의 귀한 교회들이 저를 불러서 제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들이 충격을 받습니다.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큰 은혜를 받기도 처음이고, 그렇게 많이 모이기도 처음이라고들 합니다. 말씀대로 되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못해도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오늘 받은 말씀에 여러분의 이름을 넣어 보세요.
“○○○가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셔서 이제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우리 주님께서는 지금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엄마는 바람이 나서 아기를 버리고 갈 수 있어도 우리 주님께서는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승리의 길, 성공의 길을 갈 때뿐 아니라 실패했을 때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오해를 받을 때도 주님께서는 거기에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을 때도, 십자가를 지는 것 같은 일을 당할 때도 주님께서는 거기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엔 우리를 이기게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잘 나갈 때만 승리의 깃발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잘 안될 때도 승리의 깃발을 흔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 골프계에서 존경과 사랑을 많이 받았던 사람들 중에서 대표적인 사람이 아놀드 파머와 잭 니콜라스입니다. 특히 아놀드 파머는 경기에 이겼을 때뿐 아니라 졌을 때도 그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오히려 졌을 때 더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잭 니콜라스는 이겨야 인기가 올라가고 지면 인기가 떨어졌는데, 아놀드 파머는 져도 사랑을 받고 인기가 올라갔습니다. 오랜 친구이자 라이벌 관계이던 잭 니콜라스가 하루는 아놀드 파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경기에 져도 어찌 그렇게 사랑을 받지? 그 비결을 말해 보게.”
“비결이라니, 그런 건 없어.”
“그러지 말고 좀 가르쳐 주게나.”
“그러면 우리 집에 한 번 와 보게.”
아놀드 파머의 응접실에 들어간 잭 니콜라스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잭 니콜라스의 집에는  수없이 많은 우승컵이 찬란하게 진열되어 있는데, 아놀드 파머의 집에는 낡은 우승컵 하나뿐이었습니다.“
“아니, 그 많은 우승컵은 어떻게 했지?”
“나에게 그런 것은 의미가 없어. 내게는 이것 하나만 의미가 있지. 내가 경기에 져도 이렇게 사랑을 받으며 버티고 있는 것은 이 우승컵에 있는 글귀 때문이야.”
잭 니콜라스는 그 글귀를 읽어보았습니다.
‘당신이 패배했다고 패배한 것이 아니다. 당신이 그 패배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패배가 된다. 치열한 전투 현장 같은 이 세상에서 아무리 강자라도 매번 이길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설혹 져도 마음만 지지 않으면 다음에 이기게 된다. 마음이 긍정적인 사람이 영원한 승리자다.’
얼마나 좋은 글귀입니까?
아놀드 파머는 경기에 이겨도 이겼지만, 경기에 져도 ‘오늘은 졌지만 내일은 이긴다.’ 하며 마음으로는 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경기에 져도 얼굴에 빛이 있었습니다. 항상 이긴 자의 얼굴이었습니다. 그 얼굴을 보며 사람들이 “경기에 진 선수가 어떻게 저렇게 매너가 있고 힘이 있느냐?” 하며 그를 사랑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이기면 기뻐하고 지면 실망하여 고개를 숙입니다. 그러니 지면 인기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놀드 파머는 경기에 져도 오히려 얼굴을 들고 기뻐한 것입니다. 참 멋있는 골퍼입니다. 
우리는 회사가, 가정이 잘 될 때도 승리자입니다. 안 될 때도 승리자입니다. 결국에는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승리하셨고, 그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승리합니다. 부활의 주님과 함께 날마다 승리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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