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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은 곧 승리 (고전 15: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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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쓰라림은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죽느냐? 사느냐?에서 승리하였거나, 가장 강력한 라이벌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였거나, 거의 승산이 없는 상황에서 이겼다면 그 기쁨은 말 할 수 없이 클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축구가 월드컵에서 우승하였다면 대한민국 전 국민이 승리의 기쁨으로 온 나라를 뒤흔들 것입니다. 아마 국경일로 정하여 공휴일로 삼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서 필연적으로 싸우지만, 이길 승산은 거의 없는 대적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망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사망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천하장사도 안 되고, 왕후장상도 안 되고, 의학박사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사망입니다. 죽음입니다. 이것만 해결할 수 있다면, 이것만 이길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다 하리라. 돈 많은 사람은 이것만 해결할 수 있으면 돈은 얼마든지 쓰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 스스로 사망과 대적하여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망에게 당당히 도전장을 낸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예수라는 사람입니다. 예수는 사망의 권세를 잡기 위해 직접 죽으시고 무덤 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당당히 그 사망의 권세를 제압하고, 무덤에서 살아나셨습니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사도행전2:23-24)

예수는 죽임을 당하여 사망에 이르렀으나, 그 사망에 매여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레슬링선수라고 치고, 상대와 한판 붙었는데, 열심히 싸우다가 실수하여 빳데루를 당하였습니다. 등어리를 대주었는데, 상대방이 나를 밑에 콱 깔았습니다. 잘못하면 케이오패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그 밑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힘이 있는데, 밑에 깔린 채 있겠습니까? 힘이 없으면 할 수 없지만 충분히 빠져나와 상대방을 누를 수 있는데 밑에 깔려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망을 당하셨지만 그 사망에 매여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요? 사망의 권세보다 강하니까요! 그를 충분히 이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무덤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굳이 사망의 권세보다 강하신데, 뭐가 답답하여 그 고통을 당하시고, 그 힘든 사망의 길을 자초하여 무덤까지 들어가셨다가, 다시 부활하셨을까요? 이기는지, 못 이기는지 시험하기 위함이었을까요? 아니면 사망의 권세를 혼내주려고 그랬을까요? 알고보니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주시기 위해서였답니다.

아니 예수님이 뭐가 답답하셔서 우리를 구하시러 그런 고통을 스스로 당하십니까?

그렇게 되신 사연이 있습니다.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1.사람을 예수님이 만들었습니다.(창세기2:7-8)

사람은 예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가 직접 손으로 빚어서 만들고, 당신의 입에 있는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 즉 영혼을 가진 산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낙원의 삶을 살게 하였습니다.

2.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창세기3:6)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았던 사람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 만드신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형벌로, 낙원에서 추방하였고, 그때부터 사망아래 있게 하였습니다. 이로써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가운데서 복락(福樂)만 누리면서 살던 삶에서, 사망아래서 저주의 삶이 시작되어졌습니다. 그로 인하여 고통과 질고와 아픔과 괴로움과 불화와 같은 온갖 나쁜 것들이 사람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3.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사람을 구원하실 언약을 맺습니다.(창세기3:15)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나님을 배반하게 만든 장본인 사탄에게 저주를 선포하고, 장차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여, 여자의 후손이 사탄의 머리를 밟아 더 이상 사탄이 맥을 추지 못하게 하고, 이 과정에서 사탄이 여자의 후손과 대적하는 중에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물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창세기3;15)

이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여자의 후손은 장차 보내실 당신의 아들이시며,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날 예수였고, 그의 발꿈치가 상한 것은 사탄의 조정을 받는 사람들로 하여금 고난당할 것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이 언약을 확실히 하시기 위해서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게 하였고, 그 가죽으로 사람의 옷을 해 입혔습니다. 피는 곧 언약이 변치 않음을 나타내기 위함이었고, 가죽옷은 사람의 수치와 허물을 가리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였습니다.

이로서 사망의 권세아래 있게 된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언약을 성립시키신 것입니다.

4.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이 언약을 확인하였습니다.(울법과 선지자)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의 큰 두 사건이 있었는데 하나는 출애굽사건입니다. 즉 430년동안 애굽의 포로생활동안 스스로 해방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이끌어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사건이었고, 또 하나는 가나안땅에서 나라를 잃고 바벨론에 끌려가서 70여 년 동안 포로생활 중에 역시 자기 스스로 해방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해방시켜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는 사건입니다.

이 두 사건은 똑 같은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죄로 말미암아 사망의 권세아래서 스스로 해방될 수 없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이끌어 내셔서 영원한 하나님나라로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의지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소금언약입니다 즉 절대로 변치 않는 언약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제사법을 만드셔서 짐승의 피를 흘려 제물을 바치게 하심으로 장차 보내실 당신의 아들의 피를 흘리게 하여 구원할 것을 모형으로 보여주었고, 또한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여자의 후손 즉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셔서 구원하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이사야7:14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처녀가 잉태할 것에 대한 것은 창세기3;15에서 여자의 후손이 태어날 것에 대해 확인하는 말씀입니다.

5.동정녀에게서 예수가 탄생하였습니다.(마태복음1:18-25)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언약하신 것을 큰 사건을 통해서, 선지자들을 통해 거듭 확인하시고, 그 언약대로 여자의 후손이 태어나는데, 마태복음1:18-25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마리아는 남자와 동거하기 전에, 동침하지 아니하고, 처녀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약대로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수천년이 지났지만, 전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6.여자의 후손은 발꿈치가 상합니다.(이사야53:5-6)

예수는 이 땅에 오셔서 온갖 고난을 당합니다. 사탄으로부터 쉬임없는 공격을 받습니다. 그의 온 몸은 상했습니다. 발에 대못이 박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사탄에게 발꿈치를 상할까? 능력으로 제압하면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고 간단히 해치울 수 있을텐데! 그렇게 상한 이유를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비로소 밝힙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 53:5-6) 왜 맞을까? 왜 상하도록 참았을까? 왜 그토록 아프도록 참았을까? 그가 하나님에게 뭘 잘못을 하였을까?라고 생각하였는데 우리 때문이랍니다. 나 때문에 그렇게 발꿈치가 상하였답니다. 내가 지은 죄와 허물의 대가랍니다.

7.예수가 죽었습니다.(마가복음15:37)

우리를 구원하셔야지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사망을 잡으려고 사망의 굴로 들어가셨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사망이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하게 하려고 아예 사망을 뿌리 채 뽑으려고 사망의 권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사흘이나 사망아래 있었습니다.

8.드디어 예수가 살아나셨습니다.(마가복음16:6)

사망의 권세는 완전히 예수로 말미암아 장악되었습니다. 예수가 승리하였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사망의 권세아래서 해방됩니다.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한복음11:25-26)




성도 여러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 우리는 이제 이렇게 말합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전에는 수고해도 사망에 이르렀고, 이제는 주안에서 수고하면 영원한 천국에서 상이 있으므로 헛되지 않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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