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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사망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고전 15: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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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정호 목사

사람은 자기 수준만큼 봅니다. 미술에 안목이 있는 사람이 보는 화랑(畵廊)과 미술에 문외한이 보는 화랑은 다릅니다. 영적 리더십이란 성경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눈을 지닌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에 도착한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고 합니다(행11:23). 오늘날 많은 사람이 교회에서 실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안 보고, 사람들만 보기 때문입니다. 먼저 보아야 할 것을 나중에 보고, 나중에 보아야 할 것을 먼저 보기 때문입니다.

  요즘 영성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영성'(靈性)이란 '예수님께 뿌리를 두는 것', '말씀에 뿌리는 두는 것', '생명에 뿌리를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트가 풍랑에도 쉽게 뒤집히지 않는 이유는 무게 중심이 수면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무게 중심을 낮추기 위해 배 중심에 무거운 것을 둡니다. 이것을 '바닥짐'(ballast)이라고 합니다. 무게 중심이 낮아야 파도에도 뒤집히지 않습니다. 외형에만 신경 쓰는 사람은 수면 위를 꾸미는 사람입니다. 자꾸 장식과 과시에 집중합니다. 이런 사람은 풍랑에 뒤집히게 됩니다. 삶의 풍랑에 넘어지지 않는 든든한 인격이 되기 위해서는 영성의 바닥짐이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영성의 바닥짐을 지니는 것이 영적 리더십의 출발입니다. 그런데 이 '영성'이라는 것은 명확하게 정의(定議)를 내려야 혼동을 피할 수 있습니다. 고든 맥도날드는 '영성'과 '영적 체험'을 구분합니다. 영성은 생명에 뿌리를 둔 것인 반면, 영적 체험은 감정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부활 이전의 베드로는 영적 체험의 단계에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이적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감정에 근거했기에 호언장담하다 넘어졌습니다. 진정한 영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부활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이 성도들에게 승리를 주신 분이며, 성도들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떠한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 최대의 사건입니다. 부활 신앙은 최고의 기적이며 축복입니다. 오늘 부활 주일에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분들에게 사망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본문 50절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혈과 육'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육체'를 의미합니다. 바울이 여기서 밝히고자 하는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 나라가 땅의 것과 전혀 양립할 수 없는 성질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나 어울리는 육체를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에서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가 완전히 썩어서 없어지고 새 몸을 입어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썩을 운명이나 하나님 나라는 썩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기 위해서는 '육의 몸'이 아니라 '영의 몸'을 입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활이 있어야 합니다. 영광된 부활을 바라보는 성도는 이 부활의 현대적 삶에 참여한 것이기에 썩어질 육체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현실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부활의 영광된 삶을 추구하며 그 완성의 날을 기다린다는 것은 곧 하늘 나라의 방법으로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방법은 이스마엘이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이삭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법칙이 있다고 합니다. 혹시 공감이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① 정류장의 법칙­그냥 지나칠 때는 자주 오던 버스도 타려고 기다리면 죽어도 안 옵니다.
  ② 신체의 법칙­가려움은 손이 닿기 어려운 부위일수록 그 정도가 심합니다.
  ③ 수입과 지출의 법칙­뜻밖의 수입이 생기면 반드시 더 많은 뜻밖의 지출이 생깁니다.
  ④ 세차의 법칙­큰맘 먹고 세차를 하면 꼭 비가 옵니다.
  ⑤ 애프터 서비스의 법칙­고장난 제품은 서비스맨이 당도하면 정상으로 작동됩니다.
  ⑥ 시험의 법칙­공부를 안 하면 몰라서 틀리고, 어느 정도 하면 헷갈려서 틀립니다.
  ⑦ 택시의 법칙­급해서 택시를 기다리면 빈 택시는 반대편에서만 나타납니다. 기다리다 못해 건너가면 먼저 있던 쪽에 자주 옵니다.
  ⑧ 정리정돈의 법칙­찾는 물건은 항상 마지막으로 찾아보는 장소에서 발견됩니다.
  ⑨ 동창회의 법칙­동창회에 가면 좋아하는 사람은 결혼했고, 상관없는 사람들끼리만 2차를 갑니다.
  ⑩ 미팅의 법칙­미팅에 나가 저 애만 안 걸렸으면 하는 애가 꼭 짝이 됩니다.
  ⑪ 주유소의 법칙­운전하다 기름이 떨어져 주유소를 찾으면 꼭 반대쪽에서 나타납니다.
  ⑫ 세일의 법칙­바겐세일에 가 보면 꼭 사려는 물건은 세일 제외 품목입니다.
  ⑬ 사고의 법칙­보험에 들면 사고가 안 납니다. 사고난 사람은 꼭 생명보험에 안 든 사람입니다.
  ⑭ 화장실의 법칙­공중 화장실에서 제일 짧은 줄에 서면 꼭 안의 사람이 큰일을 보는지 오래 걸립니다.
  ⑮ 인생살이의 법칙­사태를 복잡하게 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지만, 사태를 간단하게 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일입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이 사람의 뜻대로 안 됩니다. '혈과 육'의 방법이나 삶으로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영적인 삶과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삶과 들어가지 못한 삶은 하늘과 땅, 천국의 지옥의 차이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은 영원히 행복한 성공자이며 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영원한 불행자이며 실패자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어떠한 손해와 고난이 있어도 주님 뜻에 어긋나거나 불신앙적인 것을 버려야 합니다. 다니엘이 우상의 제물인 고기와 포도주를 버리고 채소와 물을 선택했으며 생명을 바쳐 기도하므로 사자굴에 들어간 결단처럼 '혈과 육'을 포기해야 합니다. 더욱 더 영적이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서 사망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최고의 영광과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본문 5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김'의 헬라어 '니코스'는 '정복하다', '극복하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죄와 사망에 대한 완전한 승리는, 우리가 참여함으로서 같은 승리를 얻게 하는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을 성취하시고 죽음의 독침을 쏘는 사망마저도 정복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같은 승리의 효과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인간은 하나님께 마땅히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인생 최대의 감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눈물겹도록 최고의 감사를 드립시다. 하나님의 은혜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큰 은혜를 받을 자격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이 거져 주신 것입니다. 최고의 복을 받았고 대박이 터진 것입니다. 로또 복권은 하나님의 은혜에 비하면 먼지와 같습니다. 때때로 찾아오는 작은 불평과 실패 때문에 큰 하나님의 감사를 잊어버리거나 깨뜨려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더 크고 많은 감사를 하나님 나라에 가는 순간까지 드려야 합니다.

  마이클 그리피스라는 영국 사람이 선교사 나간다고 했을 때 그에게 와서 겁주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에스키모로 선교를 가겠다고 했더니 "너 북극 가면 얼어죽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남아시아 더운 나라로 가겠다고 하면 "거기가면 콜레라 같은 전염병으로 죽을 거야"라고 합니다. 그래서 남미 아마존에 가겠다고 했더니 "아마존에서 수영하다가 식인 고기가 나오는데 잡아먹혀 죽는 사람 많이 봤다"라고 합니다. 그럼 미국에서 선교하겠다고 했더니 "미국에는 권총 강도가 많아서 총에 맞아 죽어"라고 합니다. 어디를 가나 죽는다는 이야기밖에 안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그리피스가 이런 생각이 딱 들더라는 것입니다. '죽을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분명한 것은 우리가 여러 번 죽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 한 번 죽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무엇을 겁냅니까!
  지금 우리를 공격하는 마귀를 보면 마치 죽을 수 있는 경우의 수를 20, 30가지 이야기해서 우리를 위축시킵니다. 30가지로 여러 번 죽는 사람 있습니까? 우리 주변에 많은 문제가 우리에게 엄습해오는 것 같습니다. 그 문제에 다 우리가 죽는 게 아닙니다. 안 죽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다한 다음에 한 가지 방법으로 한 번 죽습니다. 죽을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교통사고로 죽을 수 있고 암으로 죽을 수 있고 아니면 아파트 지나가다가 화분에 뒤통수 맞아 죽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너무 웃겨 죽을 수 있고 슬퍼 죽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죽는 방법은 많습니다. 그러나 걱정할 것 하나 없습니다. 우리는 한 가지 방법에 한 번 죽습니다. 사명 다 일구고 난 다음에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그 사명 가지고 뛰어가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십자가의 고통과 부활의 승리가 있었던 것 같이 우리에게도 고통과 승리는 반드시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사탄은 성도를 방해하고 두렵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승리하게 하십니다. 어떠한 일에든지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열등감과 패배의식을 버립시다. 부활의 큰 믿음과 승리의 믿음으로 충만 합시다. 사망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승리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흔들리지 말며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성도가 됩시다
  본문 58절 "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때로 열광주의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 사변가처럼 보이기도 하던 바울의 진술은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문제로 종결됩니다. 고리도 교인들은 바른 신앙과 교리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가르침을 받은 만큼 이제는 거짓된 교사들의 이단적 가르침에 미혹되지 말고 오직 복음 위에 굳건히 서서 흔들림 없이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일으켜 세우는 일에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이 일은 대단한 인내와 수고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그 일은 '항상'하도록 요구됩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먹고 마시고 쾌락을 즐기는 것이 현명하다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반드시 있을 것이며 따라서 주를 위해 수고한 모든 것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모든 수고는 영원한 최대의 보상을 받게 됩니다. 이 보상이 모든 아픔과 눈물, 희생과 수고를 갚고도 남습니다. 최대의 이익을 얻게 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은혜와 축복의 사람들입니다. 가장 지혜롭고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선택과 축복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꿈에서도 찬양해야 합니다.

  인도에 지방 방언이 많지 않습니까? 선교사가 한 힌두교도에게 어떤 지방 말을 배우고 싶어서 좀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힌두교인이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몇 번을 이야기해도 자꾸만 거절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왜 자꾸만 거절하시죠? 제가 공짜로 배운다고 할까봐 그러십니까? 제가 사례비도 드릴 것입니다."라고 말했더니 이 힌두교인이 아주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답니다.
  "선교사님과 함께 있으면 제가 기독교인이 되고 말 것이란 그런 느낌이 자꾸만 듭니다. 그래서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이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제가 전도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전도는 절대 안 할 테니까 다만 그 지방 말만 좀 가르쳐달라고 다시 부탁했더니 그 힌두교인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안 됩니다. 선교사님과 함께 있으면서 기독교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떠나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말이 아닙니까? 힌두교 잘 믿는 사람이, 힌두교를 떠날 수 없다는 강한 확신이 있는 사람이 이 선교사님의 인생을 바라보면서 같이 못 있겠다고, 같이 있다가는 자신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밖에 없겠다고 말합니다. 선교사님의 삶의 너무 강력한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영향력 있는 모습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 모두의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자신이 믿는 바를 삶으로 보증함으로서 그 영향력이 주변에까지 미치게 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이렇지 않았습니까? 특히 '더둘로'란 사람이 바울을 고소하면서 그를 '염병', 즉 '전염병'이라고 했습니다(행24:5). 그러니까 같이 있으면 다 전염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바울 옆에 있으면 예수 믿지 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세상이 힘들고 어려워도 흔들리지 맙시다. 더욱 견고합시다. 주님의 일이라면 목숨을 걸고 충성합시다. 반드시 최고의 상을 받게 됩니다. '미치면 미치고, 안 미치면 못 미친다'는 말처럼 주님의 일에 미쳐봅시다. 반드시 모든 목표에 미치게 됩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혈과 육을 버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믿으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말며 주의 일에 더욱 힘씁시다. 사망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과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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