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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주일]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 (막 14:5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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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억희 목사

지금 우리는 고난 주간을 지내는 중에 있습니다.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을 맞이하게 되는 유대인들은 예수를 잡아 죽일 음모를 가지고 숨을 죽이며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변 분위기는 살얼음을 걷는 것 같은 긴장감이 돌고 제자들은 지금 예수님이 죽으실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월절에 예수님을 어디서 식사하게 하실까를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4:1)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일 방책을 구하며

(마가복음 14:12)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으로 유월절을 잡수시게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그러나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이미 예수님을 배반하고 대제사장들에게 팔아넘길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착잡한 심정으로 제자들을 불러 모으고 계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식사자리에서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을 고백하시면서 가룟 유다는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4:17) 저물매 그 열둘을 데리시고 와서

(마가복음 14:18)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마가복음 14:21)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줗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렇게 예수님은 지금 마지막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하실 말씀을 다 하시면서 그 날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어떻게 준비하셨습니까?
함께 은혜로 나누고자 합니다.

1. 기도로 그 날을 기다리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결코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하기도 하고 충성과 의리를 지키겠노라고 선언 하지만 예수님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기도로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마가복음 14: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찌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

(마가복음 14: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우리는 어려울 때 장담하고 결심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확신을 가지게 할 수 있지만 확신만으로 십자가를 질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현실과 상황이 최악의 지경이 된다 할지라도 그것을 넘어서고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자신감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의지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주권자이시고 기도의 응답자이신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14:32)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하시고

(마가복음 14:36)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의지보다는 하나님의 원하심이 더 소중한 것임을 알고 기도했습니다.
제자들은 그렇게 확신하고 장담했지만 육이 잠들어 있듯이 영도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잠들어 있는 상태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도 없고 될 수도 없습니다.

(마가복음 14:37) ...네가 한 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마가복음 14: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예수님은 잡히실 것과 십자가를 지실 것과 죽으실 것을 아시고도 기도로 준비했습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이라면 그것이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2. 말씀으로 담대하게 서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하나 둘 씩 도망가고 흩어지는 동안에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으로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위기와 위험과 한계의 상황이오면 누구나 두려움과 불안과 초조함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도망가는 사람도 있고 순리에 순종하여 버티는 사람도 있고 맞서 싸워 이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를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마가복음 14: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마가복음 14: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마가복음 14: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이렇게 도망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황을 엿보면서 기회를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도망가는 것에 대한 비참한 모습이 너무나 수치스러워서 예수님을 따라 가기는 하지만 멀리서
아닌 척 하면서 모르는 척하면서 따라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어쩌면 더욱 부끄러운 일입니다.
외면보다 거역하고 부정하고 배신하는 것은 이중적인 도피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4:54) 베드로가 예수를 멀찌기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안까지 들어가서 하속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마가복음 14:68)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마가복음 14:70) 또 부인하더라...

(마가복음 14:71)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우리가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면 한 사람이라도 더 마음과 뜻과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부족해도 힘이 되고 능력이 되어 이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도망가 버리고 외면해 버리고 부인하고 부정해 버리면 어려운 일을 더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나와 너, 우리와 우리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부정해 버리는 이중 불행을 겪게 됩니다.
이럴 때도 예수님은 여전히 말씀 앞에서 분명하고 말씀으로 담대히 서 계셨습니다.

(마가복음 14: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침뱉음을 당하고 주먹으로 맞고 손바닥으로 맞으면서도 예수님은 말씀으로 당당했습니다.

3. 부활로 성전을 지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사십 육년 동안 성전을 지으면서도 외형과 겉치레 하는 일에 정성을 쏟고 물질을 채웠습니다.
형식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교회는 복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
복음 전파가 목적인 교회가 사람을 세우고 자랑하고 자기 벼슬의 전당으로 생각하는 성전을 짓는 다면 백 년을 지어도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성전을 지으셨고 보혈로 성전을 칠하셨고 그 몸과 피로 성전을 채우셨습니다.
그리고 부활로 성전을 세우시고 그 성전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그것을 위해 지금 십자가를 받아들이시고 죽임 당하시는 자리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안에 생명이 있고, 구원이 있고, 복음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고난을 참으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4:57)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거하여 가로되

(마가복음 14: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요한복음 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오늘의 교회는 아직도 겉치레와 명분과 자기중심적 본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성도는 아직도 권위주의와 교만과 자기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난 주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겉치레와 명분, 욕심과 교만, 자기중심적 자아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복음 앞에 겸손해야 하고 순종해야 하며 믿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이루며 은혜와 평강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로 기다리셨습니다.
말씀으로 준비하셨습니다.
부활로 성전을 지으셨습니다.
부활의 영광에 함께 참여하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인 세례와 성찬에 참예하고 은혜와 평강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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