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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의 증인과 표적 (막 16: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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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홍인덕 목사

고난 주간을 지내시면서 얼마나 힘이 드셨습니까? 또한 금식들 하시면서 얼마나 배고프셨습니까? 정말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새끼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올라가신 예수님은 유월절 전날까지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전날 마지막 저녁 식사를 제자들과 함께 나누십니다. 식사를 하시면서 대야에 물을 떠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내가 선생이 되어 너희를 이렇게 섬긴 것처럼 너희도 서로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식사를 마친 다음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십니다. 거기서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머무르면서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말씀하시고는 조금 더 나아가셔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서 기도하셨습니다.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던지 마치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어 흘러내렸다고 했습니다.
곧 이어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보낸 무리에 의해 붙잡혀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심문을 받고 다시금 빌라도에게 넘겨집니다. 거기서 로마 군병들에 의해 채찍에 맞고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이 씌여진 채로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은 이윽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셨습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피투성이의 모습으로 못박히신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큰 소리로 부르짖으십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하고 부르짖으십니다. 마침내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고 예수님이 운명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다 절망합니다. 탄식합니다. 모든 희망이 다 끊어져 버린 그렇게 어두운 밤이 지나갑니다. 그런데 안식일이 지난 이레의 첫날 새벽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무덤 안에서 흰옷을 입고 앉아있는 한 남자를 보게 되고 그로부터 "놀라지 마시오. 그대들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나사렛 사람 예수를 찾고 있지만 그는 살아나셨소.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소. 보시오 그를 안장했던 곳이오. 그러니 그대들은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그는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니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거기에서 그를 볼 것이라고 하시오" 하는 말만 듣게 됩니다. 곧 이어 예수님께서 살아나신 다음으로는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래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가서 이를 전하지만 그들은 아무도 마리아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 두 사람이 엠마오로 가다가 그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곧바로 돌아와서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만 여전히 제자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깊이 생각해 보십시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여러분은 과연 믿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삼 년 동안이나 따라 다니며 예수님께 배웠던 제자들입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되면 고난을 당하고 죽게 되리라 그리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수도 없이 들었던 제자들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예수님이 다시 살아난 것을 본 사람들의 말을 전해 듣고도 믿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오죽하면 그 뒤에 열한 제자가 음식을 먹을 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이 믿음이 없고 마음이 무딘 것을 꾸짖으셨겠습니까?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가 이윽고는 다 죽습니다. 그리고 죽음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이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사람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죽고 맙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 세상에서 그들의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 보십시오.
그 날, 곧 주간의 첫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습니다. 방금 엠마오로 가던 도중 예수를 만난 사람들이 돌아와서 다시 사신 예수님을 만났노라고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믿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에 예수께서 오시어 그들 가운데 서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고 인사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놀라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유령을 보고 있는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너희는 당황하느냐?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을 품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너희가 보다시피, 나는 살과 뼈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손과 발을 그들에게 보이십니다. 그들은 너무 기뻐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고 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그래서 그들이 예수께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립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받아서 그들 앞에서 잡수십니다.
그런데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보았소"하고 말하였으나, 도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하고 말합니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도마도 함께 있었습니다. 문이 잠겨 있었으나,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고 인사말을 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
도마가 예수께 대답하기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하니,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오늘 우리는 도마에게 주셨던 주님의 말씀처럼 주님을 보지 못하였으나 주님이 다시 사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주님이 오늘 우리들 가운데 함께 계심을 또한 우리는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주님의 말씀처럼 복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요? 하늘나라 백성이 되었기 때문이요 천국이 여러분 앞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기에 주님이 올라가신 하늘나라에 들림 받아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까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어떠한 말씀을 또 우리들에게 주십니까?
그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을 것이다."
여기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온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해 주면 사해질 것이요, 사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도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것이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아 그 권능으로 복음을 전할 때 사망의 권세를 물리치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성령 안에서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믿고 세례를 받으면 즉 그들이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게 될 때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내가 하는 것이 아닌 성령의 능력이요 성령의 역사이기에 우리는 성령 안에서 기도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요 복음의 말씀을 듣는 상대방이 사망의 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축복하며 중보하며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대상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야 된다고 하셨고 천하만민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한 우리의 기도와 전도의 폭이 단지 내 가족에 머무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우선 순위가 먼저 내 가족 내 친지 내 이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라는 말로 주님이 시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가족들 가운데, 내 친지들 가운데, 내 이웃들 가운데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먼저 믿다가 낙심하여 믿음에서 멀어진 사람들을 위하여 먼저 기도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십시오. 하지만 사마리아 즉 내가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온 세계가 다 우리 복음 전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하고 이를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직접 가서 전하기 어렵다면 기도와 더불어 우리 대신 복음을 전할 사람들을 보내는 일에도 함께 힘써야 할 것입니다. 특히 주님은 너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을 전하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단지 함께 만나 웃고 즐기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그들에게 끊임없이 예수를 전해야 하며 끊임없이 그들을 만나 주님 앞으로 함께 나아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한 생명이 얼마나 귀한지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귀하다"고 했는데 그 생명을 건져 구원할 때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겠으며 그 상급은 또 얼마나 크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그 험한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이유도 나뿐만 아니라 그들 모두가 다 구원에 이르기를 위해서라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한다면 한 생명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의 온 힘을 다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이 그렇게도 원하시며 주님이 그렇게도 강조하며 명령하시는 이 복음전파의 사명을 다 함께 감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성전에는 믿는 무리들로 가득하고 하나님 앞에서는 기뻐하심을 얻어 수고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 받고 상급 받는 귀한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활의 증인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표적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 성령께서 나타내 보여주시는 증거들이 있다고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표징들이 따를 터인데, 곧 그들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으로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들며, 독약을 마실지라도 절대로 해를 입지 않으며, 아픈 사람들에게 손을 얹으면 나을 것이다."

성령이 함께 하심을 믿고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표적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는 사람들에게 따르는 표징들인데 먼저 바로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게 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예수님 앞에서는 어떤 귀신도 벌벌 떨며 다 쫓겨나갔습니다. 그 예수님이 오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지 못하도록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귀신을 예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먼저 예수님 이름으로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권세를 묶어 버리고 계속해서 귀신이 그 영혼에서 떠나가도록 명령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만한 믿음이 없다고요? 하지만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믿어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벌떡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말한 대로 될 것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얼마나 커야 된다고 하셨습니까?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어도 그렇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새 방언을 말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새 방언으로 말하며 기도할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이요 이런 믿음으로 나아가게 될 때 손으로 뱀을 집어 든다고 했습니다. 즉 능히 마귀를 물리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악한 마귀가 우리를 해치려고 해도 심지어 그로 인해 독약을 마시게 된다고 해도 해를 입지 않을 뿐 아니라 병든 사람에게 믿음으로 손을 얹게 되며 나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역사가 당연히 주님을 믿는 내게도 있어지리라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아픈 자가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고 우리의 길을 훼방하는 악한 마귀를 다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아무래도 힘든다"고 나도 모르게 말하고 있습니까? 그 모든 부정적인 말을 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마귀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새 방언이 무엇입니까? 나는 할 수 없어도 주님의 능력으로 능히 할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 역시 새 방언입니다.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히 할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힘들지만 그런 나를 여전히 주님이 사랑하고 계시고 주님이 함께 계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의 길을 하나님이 열어 가실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 정말 힘듭니다. 그래도 이윽고 하나님께서 모든 길을 활짝 열러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는다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의 길을 열어가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고백하며 얼굴에서 모든 근심 걱정을 다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제일 처음 주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너희에게 평안이 있기를!"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로 근심하고 걱정하도록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라 평안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 주님이 지금 우리들 안에 함께 계셔서 여러 가지 표적으로 나타나게 하십니다. 나는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그렇게 역사하실 줄로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부활은 사망의 권세가 더 이상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마르다에게 무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더 이상 사망이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부활이요 생명이 되신 주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주님 안에서 우리는 죽어도 살고 영원히 살 것을 믿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저와 여러분의 것입니다. 따라서 그 무엇도 더 이상 우리를 두렵게 할 것이 없습니다. 비록 세상에서 우리가 잠시 고난을 당하고 잠시 어려움 속에 살아간다고 해도 그 날은 잠시 뿐입니다. 비록 우리가 실패하고 넘어져도 사랑의 주님의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실패하고 넘어졌기에 붙잡아 일으켜 주시는 그 주님의 손길이 더욱 따뜻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주님을 섬기다가 실패하기도 하고 깊이 빠져들었던 아픔의 날들을 주님께서는 하늘나라에서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기쁨으로 바꾸어 백 배로 갚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욥의 고난을 보십시오. 저가 얼마나 힘든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까? 하지만 그의 마지막이 어떻게 됐는지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잠시 힘이 듭니까? 하지만 금방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주를 섬기기 위해서 힘들었던 만큼 우리에게 갚아 주시는 상급은 더욱 놀랍고 클 것입니다. 더욱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힘쓴다고 할 때 주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표적을 통해 역사하시겠다고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대로 주님의 표적이 우리들에게 나타나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내게는 아무런 표적도 없다고요? 아니요. 이미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는 것이 가장 큰 표적입니다. 주님이 함께 계시는 것보다 더 큰 표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담대히 주님께 맡기십시오. 모든 표적과 능력이 다 주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조금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힘들기에 더욱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감사하면서 주님께 엎드려 주님의 도움을 청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우리들의 마음을 평안으로 가득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요 그 평안 가운데 모든 일이 형통하게 풀려지게 만들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었듯이 주님이 함께 계심으로 우리 역시 형통한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의심하지 말고 모든 것이 이루어질 줄로 믿고 주님께 구하십시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신 말씀대로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또한 승리의 주님이십니다. 마지막 사망의 권세를 다 물리치신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의 승리가 또한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질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이미 주님 안에서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이 우리를 온전히 사로잡도록 하십시오. 오직 말씀으로만 살아가도록 하십시오. 그럴 때 말씀 안에서 주님으로 말미암은 모든 권능이 오늘 우리 안에서 놀랍도록 나타날 것입니다. 따라서 조금도 낙심하지 말고 담대하게 주님만을 바라보고 오늘을 살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최후의 승리의 노래를 높이 부르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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