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주일] 실패를 넘어 승리로...(고전 15:55-58)

  • 잡초 잡초
  • 265
  • 0

첨부 1


- 설교자: 오재현 목사

1. 톨스토이의 <부활>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70세의 노년에 쓴 <부활>이란 소설이 있습니다. 어느 날 재판소의 배심원으로 나온 주인공 네흘류도프 공작은 살인절도 혐의를 받아 재판을 받는 까츄샤라는 여인을 만납니다. 이 여인은 네흘류도프가 청년시절에 정욕의 대상으로 유린해버린 여인, 순결하고 아름다운 그 까츄샤였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임신을 한 그녀는 집에서 쫓겨나 창녀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네흘류도프는 그녀의 타락의 원인이 자기의 무책임한 행동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는 까츄샤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 귀족사회에 속한 자기 생활 태도에 대하여 깊은 회의를 하게 됩니다. 까츄샤의 감형운동을 위하여 감옥에 드나드는 동안 그는 도움을 바라는 무고한 죄인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일신상의 정리를 위해서 자기 영지에 내려가서 농촌의 궁핍과 이들 농민들의 희생 위에 배불리는 귀족 사회의 경박함과 부패를 다시금 인식하게 됩니다. 재판소에서 그가 받은 충격이 사회 비판과 현대 문명에 대한 규탄으로까지 확대됩니다. 네흘류도프는 까츄샤라는 창녀와 결혼하리라 마음먹고 그녀를 따라 괴로운 시베리아 유형을 자청합니다. 마침내 시베리아의 황막한 벽지에서 마태복음에 있는 산상수훈을 통해 영혼의 부활을 발견한다는 내용입니다.

  톨스토이가 소설 제목으로 삼은 <부활>- 이 부활은 우리 모두 죽고난 후에 얻게 되는 내세의 부활이 아닙니다. 과거의 무책임한 행동, 힘없는 서민의 희생 위에 누려온 귀족의 삶을 회개하고 그런 안일한 삶, 정욕에 물든 삶을 청산하고, 새출발을 하는 것을 부활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날의 실패를 딛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구하는 삶으로서 약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봉사하는 삶으로 새출발하는 것을 부활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현재적인 부활인 셈입니다.

2. 실패를 딛고 승리에로

자녀교육에 실패했습니까? 사업이나 인간관계에 실패했습니까?
부부관계에 금이 가서 이혼의 위기에 와 있습니까?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저질렀습니까?
고개를 들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습니까?
이런 실패와 좌절감이 우리 인생의 끝은 아닙니다.

찬송가 330장 2절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로 나옵니다
십자가 은혜 받으려고 주께로 옵니다
슬프던 마음 위로 받고 이생의 풍파 잔잔하며
영광의 찬송 부르려고 주께로 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실패와 오점과 죄악을 위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실패를 청산하고 영원한 승리의 삶으로,
오점을 씻어버리고 거룩한 삶으로,
죄악을 씻어버리고 용서와 사랑의 삶, 배려와 관용의 삶으로 나아가게 해줍니다.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두려움과 불안, 염려와 문제를 십자가에 묻어버리고, 우리도 다시 일어섭시다.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난 우리나라의 정세는 매우 불안하고 혼란스웠습니다. 당시 국제 사회는 조선을‘소망 없는 은둔의 땅’으로 보았습니다. 이듬해인 1885년 4월5일 부활절.
거센 풍랑을 헤치고 한 척의 배가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습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복음을 들고 조선 땅을 밟은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황무지에 소망의 빛이 비치는 감격의 순간이었습니다. 아펜젤러는 본국에 보낸 첫 선교 보고서에서 이날의 감동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왔다. 그 날, 사망의 철창을 쳐부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조선의 결박을 끊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빛과 자유의 세계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이 기도가 이루어져서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빛과 자유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오시면, 사망과 억압, 슬픔과 탄식은 사라지고 생명과 자유, 기쁨의 노래가 넘쳐나는 새로운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오늘도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주신 주님,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3. 고통을 통한 영광의 길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친구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째 되는 날에 나사로의 집에 문상갔습니다. 나사로의 여동생 마르다가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말합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조객들 중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이들의 공통점은 '이제 다 끝났다' 는 것입니다.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제는 다 끝났다' 고 생각되는 그 죽음의 현장에서
나사로를 살려내셨습니다.

실패없는 성공은 진정한 성공이 아닙니다.
고통없는 영광은 영광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아무런 실패와 실수도 하지 않고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무런 고통도 당하지 않고 영광의 날을 맞이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 프란시스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No cross, no crown."
십자가 없인 면류관도 없다. 고난없인 영광도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공으로, 영광으로, 승리에로 인도하시는 방법은 바로 이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영광과 승리,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주역>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가빈사양처(家貧思良妻), 세란식충신(世亂識忠臣), 질풍지경초(疾風知勁草).
"가정이 어려울 때 좋은 아내가 생각나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 충신을 분별할 수 있으며, 세찬 바람이 불면 어떤 풀이 곧은 풀인지 알 수 있다."
그렇습니다. 고난 속에서 희망의 싹을 봅니다.
고난이 희망을 만들어냅니다.

C.S. 루이스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오다가 이혼녀와 결혼해서 때늦은 사랑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사랑의 기쁨은 아내의 골수암으로 끝을 맺는데, 그는 아내를 잃은 고통 속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쁠 때에는 속삭이시고, 기분이 안 좋을 때에는 양심에 조용히 말씀하시지만, 고통 중에 있을 때에는 고함을 치신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기 위한 하나님의 메가폰이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기 위한 하나님의 메가폰이다." 얼마나 의미심장한 말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승리하는 삶으로 인도하는 과정에 고통이란 도구를 사용하십니다.
고통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을 깨우십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바라보고, 더 가까이 하고, 더 간절히 찾게 하십니다.

고통당하는 모든 사람이 희망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고통당하는 사람 모두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패한 모든 사람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늦가을이 되면, 나무는 낙엽을 모두 떨어뜨리고 추운 겨울을 벌거벗은채로 맞이합니다.
겨울의 매서운 눈바람을 이겨낸 나목에서 봄이 되면 새움이 터져나오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의 허위의식을 떨어내고, 우리의 실상을 직시하게 해줍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연약합니다. 그래서, 나에게 주님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벌거벗은 우리의 모습에서 비로소 희망의 싹이 트는 것입니다.
고난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부활의 희망이 움터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6주간 동안 <목적이 이끄는 40일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완수해왔습니다.
오늘은 마무리하는 축제주일입니다. 이 캠페인을 마무리하면서, 우리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살지 못한 실패한 삶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했을른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실패가 있기에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다시 시작할 가능성이 열린 것입니다.
우리의 실패는 승리에 이르는 과정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제 다시 시작합시다.

4. 흔들리지 말고 더욱 힘쓰라

  네쉬는 1947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하여 수학을 공부합니다.
괴팍하지만 창조적이었던 그는 모든 현상을 규정할 수 있는 새로운 진리의 법칙을 발견하고 싶어했고, 마침내 그가 생각해낸 독특한 법칙을 인정받아 국방부 산하의 한 연구소 책임자로 발탁이 됩니다. 당시는 미국과 소련이 힘을 겨루던 냉전시대, 암호 해독기와 컴퓨터로도 풀지 못하는 소련의 암호를 네쉬는 풀어내지만, 결국 네쉬는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심각한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점점 폐인이 되어갑니다.
  네쉬 옆에서 가장 힘들어했던 사람은 그의 부인이었습니다.
더 이상 네쉬와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을 수없이 확인하면서도 그는 끝내 네쉬를 떠나지 않습니다. 아내의 인내와 배려 속에 네쉬는 자신의 병을 인정하며 사회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1994년 노벨상을 타게 됩니다.
네쉬는 노벨상을 받으며 다음과 같이 수상 소감을 밝힙니다.
"전 항상 숫자를 믿었죠. 공식, 논리, 그리고 증명하는 것들. 그러나 평생을 몸바친 결과 제 자신에게 정말 논리가 무엇인지, 누가 증명하는 것을 결정하는지 묻게 됩니다. .......
저는 제 학업에서 정말 중요한 발견을 했습니다. 제 인생에서는 가장 중요한 발견을요.
모든 논리와 증명은 사랑이라는 신비스러운 공식에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네쉬는 아내를 향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요. 당신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고, 모든 이유는 당신입니다."

부활의 영광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힘들고 고달플 때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주님처럼 우리도 영광을 누리기 위하여 인내로 참아 기다리며 나아갑시다.
내가 희생함으로 가족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민족을 살릴 수 있다면,
끝까지 참고 기다리겠습니다.
인내와 기다림으로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58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