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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로부터 시작된 기독교 (요 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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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성홍모 목사

  오늘 우리 주님이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구약을 경전으로 가지고 있는 유대교에서 나왔습니다.  유대교는 아직까지도 안식일을 지키는데, 우리는 주일 곧 일요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고 사흘만에 부활하셨는데, 그 부활한 날이 오늘의 주일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이 부활절이 축제 중에도 가장 큰 축제요, 절기 중에도 가장 큰 절기입니다. 더 중요한 축제도 없고, 더 중요한 절기도 없습니다.  우리는 부활절보다 소중한 날이 없기에 잘 맞이하기 위하여 준비기간으로 사순절을 두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회는 예수님의 빈무덤 위에 세워졌습니다.  초대교회가 우리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나설 때에 예수님을 장사지낸 무덤이 비어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빈무덤이 아니었다고 하면 단 한 시간도 기독교회는 유지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유대교라는 종교가 얼마나 단체심이 강하고 배타적이고 선민사상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런 동리에서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말이었다고 하면 단 한 시간도 유지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베드로가 나섰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한 그 예루살렘 시내에서 주의 제자 베드로가 설교하는데, 그 날에 3천명이나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선포했습니까?  베드로가 보고들은 대로, 그가 경험한 대로 증언합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행2:23-24)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2:32)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회개하고 돌아온 이들이 3천명이었고, 다음날 여자와 어린 아이를 제외하고 남성들만 5천명이 돌아오고, 사도행전 6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되에 복종하니라"(행6:7)고 했습니다. 제사장들이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이 너무나 사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본문은 부활절마다 많이 상고하는 말씀이기에 자세한 말씀을 드리지 않습니다. 

  지금 제자 훈련하시는 성도들이 읽는 책 중에 [기독교의 기본진리]라는 유명한 책을 보고 있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이 쓴 책으로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한번 읽어야 하는 필독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토트 목사님은 개신교회의 교황이라고 불릴 만큼 훌륭한 분이요, 저술가요, 성경을 강해하는데 힘쓴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런던 만인교회의 설립자이시고, 개신교회와 카톨릭교회와의 대화에 앞장서신 분입니다.  이 분의 책 중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책도 유명합니다. 
기도교의 기본진리란 책은 기독교의 입문서와 같습니다.  해박한 지식과 열정으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리를 하나하나 찾아가고 있습니다.

  스토트 목사님은 제4장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목사님은 부활의 증거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는 영국의 유명한 법률가인 에드워드 크라크 경의 말을 인용합니다.  그는 해박한 법률가로서 예수님의 부활을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얻은 결론은 성경의 증거가 그에게 있어서 모두다 사실이요, 확정적이라고 했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초대교회 때부터 부활을 부인하는 이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1) 다른 무덤을 찾아갔다는 설입니다.

  안식후 첫날에 여인들이 찾아간 무덤은 다른 무덤이었다고 주장하였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슬픔 때문에 제 정신이 아니고, 다른 무덤에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리가 엄청나게 크지도 아니하였고, 그들은 예수님이처형된 날에 무덤에 마주 앉아 무덤을 확인한 사람들입니다.  여인들이 좀 이른 새벽에 왔었지만, 후에 베드로도 오고 요한도 왔습니다.  컴컴할 때에 와서 다른 무덤을 보고 말한 것도 아닙니다.  새무덤을 제공한 아리마대 요셉이 무덤의 진위를 밝혀줄 수 있는데, 다른 무덤을 보고 와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2) 기절했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기절하였거나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빌라도 총독이 가졌던 생각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오더라"(요19:33)고 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힘을 내어서 장사지내었는데, 니고데모는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100리트라쯤 가져와서 시체에 바르고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싸서 굴에 장사지낸 것입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고문과, 채찍질과, 십자가에 달리시고, 창에 찔려 피와 물을 다 쏟으시고 약 40시간 가까이 온기도 없는 차디찬 땅 바닥에 있었는데, 생존할 것입니까?  무덤 입구를 막고 있는 돌은 또 어떻게 합니까?  로마 병정들은 가만히 있을 것입니까?  예수님이 기절하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3) 도난설이 있었습니다. 

  어떤 도둑이 시신을 훔쳐갔다는 가설을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도둑들이 무엇하러 훔쳐갈 것이며, 큰 돌을 어떻게 굴리며, 로마 군병을 어떻게 따돌리고 훔쳐갈 것입니까?  도둑들이 시신을 훔쳐가면서 왜 수의와 수건은 남겨놓을 것입니까?

4) 제자들이 시체를 감추었다는 가설을 말합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제사장들이 퍼친 헛소문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이 로마 군인에게 돈을 주고는 헛소문을 퍼지게 하였습니다.  로마의 군인들이 선발된 사람들인데 잠을 자고 있었다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지금 로마 군인들이 입을 벌려 그 날 천사가 와서 돌을 굴려내었다고 증언해줄 것입니다. 
제자들은 모두가 주의 부활을 증언하다가 많은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냥 꾸민 이야기를 가지고 옥에 갇히고, 채찍에 맞아 죽고 목베임을 받아 죽을 것입니까?  제자들이 시체나 훔쳐놓고 그것을 합리화하려고 부활을 외치면서 일생 살아간 것입니까?  그것도 한 두 사람도 아니라, 모든 사도들이 그렇게 죽었으며, 수많은 성도들이 생명 내 걸고 주의 부활을 외치다가 죽었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은 말합니다.  그는 사도행전을 읽어보면서 느낀 점은 저들 사도들이 진지하였다고 합니다. 

5)  당국자들이 미리 시신을 치웠다는 설을 말합니다.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은 안전성에 문제가 있어 시신을 안전히 지키려고 제삼의 장소로 옮겼다고 하는 설입니다.  이것은 사도들이 부활을 외칠 때에 즉시 반박하기 위하여 시신을 보이면서 이것 보라고 할 수 있었기에 불가능한 것입니다.

6) 환상을 본 것이라고 합니다. 

부활을 부인하는 이들은 하나의 가설로 지어낸 이야기라든지, 환상을 본 것이라는 말로 일축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거짓말이 해놓고 순교할 만큼 대담한 사람들이 아니었고, 매우 진지하고 확신에 찬 정상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부활이란 조금도 의심할 것도 없고 부인할 것도 아닌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초기 기독교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대하고 박해하고 잡아들이고 죽이려고 달려들었지, 합리적으로 반박하거나 부활을 부인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부활을 목격한 사도 요한의 직접적인 진술입니다.  다른 복음서는 간접적인 증언이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만은 목격자의 진술입니다.  요한은 주의 모친을 모시고 십자가 형장에 갔고, 어디에 묻히는지, 분명히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수제자 베드로보다 먼저 무덤에 달려갔지만, 무덤 밖에서 들여다보기만 하였지, 그 속에 들어가 보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들어가 본 후에 요한도 들어가 보고 믿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요한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는 처음에는 여자들의 말에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가보고 부활하신 것을 확인하여 주었습니다. 의심한 제자들이 있다는 것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는 무엇을 보았고, 그로 하여금 믿게 된 것입니까?  시체만 없어진 것이 아니라, 수의가 있었는데 그것도 헝클어지지 않고 시신이 빠져나가므로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는 말입니다.  머리의 수건은 본래의 모습 그대로 있던 자리에 놓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믿었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은 엄청나게 변화되었습니다.  무엇이 그런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까?  새로운 믿음과 생명 내 걸고 믿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경험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회를 세워주었습니다. 우리 기독교회는 부활로부터 시작되었고, 세움을 입었습니다.  우리 기독교회는 부활을 기초로 하여 세워졌습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이하였습니다.  오늘 부활절을 지키는 것이 우리 주님의 생애에 일어났던 한번의 사건으로, 과거의 사건을 기념하는 행사로 끝난다면 부활절은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할 것입니다. 

  부활은 기쁨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감사와 감격이요, 기쁨과 환희요, 승리의 감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중세교회에서는 사순절 기간 동안에는 "할렐루야"라는 곡을 연주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이제 부활절이 되면서 할렐루야를 연주하게 하였고, 사순절 내내 계속된 금식을 끝내며 정상적으로 음식을 먹고, 기쁨의 찬양을 부르게 되었습니다.  우리주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셨으니, 이제는 죽음도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순절 중에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때로 절제하고, 때로 조심하고, 금욕적인 시간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금욕과 고행을 풀고, 감사와 기쁨 그리고 축제로 즐기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사하여 주셨고, 무덤에 함께 장사지내 버렸으며, 우리로 새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의 감격과 기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감사와 감격, 그리고 기쁨과 소망에 넘쳐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부활은 새로운 존재로 새 출발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과거와 연속성이 있으면서 새로운 존재로 부활한 것입니다.  부활은 단순한 원기회복이나 소생이 아닙니다. 부활이라고 하면 죽었던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혹은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독자 청년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런 죽었던 사람이 살아난 것을 가지고 부활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회생한 것입니다.  엄격히 말하여 예수님의 다시 살아나심만을 부활이라고 할 수 있고, 다른 것들은 하나의 비슷한 예라고 할 수 있지, 진정한 부활이 아닙니다.  그들은 또 다시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복합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단순히 죽었던 육신이 살아난 것으로만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활은 예전의 생명이 살아났기 때문에 다시 살아났다는 말을 합니다. 부활 이전과 이후는 연속성은 있지만, 그 죽은 몸에서 나왔지만, 너무나 변화되어 전혀 새로운 존재로 지음 받은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부활은 새로운 생명으로의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생명이요, 새로운 몸을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목회자이시며 위대한 신학자이십니다. 기독교 신학을 수립한 최초의 신학자이십니다.  세상의 그 어떤 신학자도 사도바울을 넘어서지 못하고 사도바울이 세운 신학을 해석하는 정도일 뿐입니다.  바울은 부활한 몸을 영적인 몸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전15:42-44)고 했습니다.  여기 사도 바울이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은 육의 몸이 아니라, 신령한 몸, 영의 몸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육신을 말하면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부활을 놓고 "부활은 새로운 생명에로의 변화이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하나의 계시적인 사건입니다.  이것이 재창조의 역사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부활하신 사건으로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구속의 세계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죽음이란 것은 사실 그것으로 끝이 난 것입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모든 생명이 끝나는 순간입니다.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 죽어 장사지냈다고 하면 그것으로 그의 인생은 종결되는 것입니다.  여기 서있는 성목사가 죽어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로 변했다고 하면 저의 생애는 그것은 끝이요, 더 이상 다른 소망이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죽기 전에 무슨 소망이 있지, 숨넘어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죽은 사람 붙들고 어떻게 하자는 것입니까?  죽었는데 살아나라고 할 것입니까? 죽여놓고 미안하다고 하면 미안한 마음을 알아줍니까?  다 헛될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으로 하나님의 구속의 완성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는 계시적인 사건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요, 형태를 달리하는 새로운 출발이라고, 새로운 존재로의 변화입니다. 

  스토트 목사님도 부활을 확정적으로 말합니다.  "부활이란 사망을 정복하였다는 것과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존재로의 부활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여 새로운 차원의 새로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부활은 우리 기독교를 제외하고, 세상의 어떤 종교에서도 다루지 않는 문제요, 다룰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저들은 죽은 종교요, 우리는 산 종교입니다.  저들은 죽은 소망이지만 우리는 산 소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한복음11:25-26)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이런 놀라운 말씀, 경이로운 말씀, 황당한 말씀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생명이요, 부활이신 분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우리 기독교회는 예수님의 부활하신 부활의 사건 위에 설립된 교회입니다.  다시 말하면 빈무덤 위에 세워진 교회요, 우리들 교회마다 빈무덤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판넨베르그]라는 신학자는 부활을 근거로 하여 모든 기독론을 수립한 학자로 유명합니다.  예수님 부활의 사건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점이며,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판넨베르그는 "예수의 부활은 역사적으로 말해 기독교사의 출발점이 된 사건이다.  특히 부활절 사건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역사의 출발점을 이룬다"라고 했습니다.  부활이 없었으면 십자가의 죽음은 이 세상에 수없이 있었던 죽음, 하나의 죽음에 불과한 것이지 결코 우리의 죄사함을 위하여 죽은 십자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에 그의 사역에 나타난 모든 이적과 말씀들이 의미가 있고,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로운 말씀이요, 생명을 살리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이란 기독교회의 존립을 가능케 한 사건입니다.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시신이라도 집에 모시고 가면 좋을 정도로 주님을 사모하여야겠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언하는 최초의 증언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은 주님을 증거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열정이 있어야겠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부활절의 교회라고 해도 좋습니다.  최초의 장로교회의 선교사와 감리교회의 선교사가 부활절 아침에 인천에 들어오시므로 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1885년 4월 5일 인천에 상륙하면서 그들은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감리교회의 아펜셀러 목사님이 장로교회의 언더우드 목사님보다 연장자였기에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는 부활절 아침에 이곳에 상륙하였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이시여, 어서 속히 이 백성들을 얽어매고 있는 흑암의 사슬을 끊으시사 하나님의 자녀로서 광명과 자유를 베풀어주시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때에 죄에서 자유함을 얻고, 광명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활의 증언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방주로 이끌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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