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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의 주님께서 주신 선물 (요 20: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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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김명섭 목사

부활의 승리와 기쁨이 이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 모두 위에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활이란 단어는 원어로 ‘아나스타시스’ 인데 그 뜻은 ‘다시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모든 어두움의 권세에서 다시 일어나 자유케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걱정과 근심의 자리에서 일어나 평화와 기쁨이 충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날 인도에서 스텐리 존스 박사가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설교 도중에 한 이슬람교도가 일어나서 “우리는 당신들이 못 가진 것을 가지고 있소, 우리는 메카에 가면 마호멧의 시체가 담겨있는 관이 있고, 또 무덤이 있소, 정말 마호멧이라는 사람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기독교는 예루살렘에 가보시지요, 빈 무덤밖에 없지 않소!” 그 때 스텐리 존스 박사는 “고맙습니다. 당신의 말이 진실인데 그것이 바로 기독교요 다른 종교의 차이점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빈 무덤 밖에는 없는 것이요”라고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지만 부활절을 지키는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기독교 이외의 다른 종교는 부활을 기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종교를 만든 교주가 모두 죽어 무덤에 묻혔고 다시 부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의 무덤은 인도의 능수해안에 있고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의 무덤은 중국 장평성에 있으며,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멧의 무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그 교주의 무덤을 웅장하게 꾸며놓고 그 무덤 앞에서 참배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결코 무덤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무덤에 계시지 않고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믿는 우리에게 영생의 선물과 평강의 선물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나가서 이 부활의 복음을 전하라고 사명과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주님이 주시는 복된 선물들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1:25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10:9 말씀에서는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쳤던 프랑스의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 샤르트르란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폐수증에 (폐에 물이 차는 병)걸려서 죽음을 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기 싫다고 나를 좀 살려내라고 의사들에게 고함을 치고 발로 발버둥을 치다가 1980년 4월 11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다음과 같은 신문기사가 났다고 합니다. “샤르트르는 왜 이렇게 죽어야 했는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그토록 외쳤던 그가 왜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죽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돌아갈 집이 없었던 것입니다. 부활의 믿음도, 부활의 소망도, 부활에 대한 약속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또 죽음 앞에서 좌절하거나 자포자기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에 알렉산더 대왕은 3번 울었다고 기록이 있습니다. 한번은 페르시아 원정을 갔을 때 고레스 왕의 묘비를 보고 울었다고 합니다. “인생이 아무리 위대하여 부귀영화를 누려도 결국은 한 개의 무덤밖에 남는 것이 없구나”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인도를 정복하러 인더스 강까지 왔는데 부하장병들이 다시 돌아가라고 해서 “저 인더스 강만 건너면 인도를 정복 할 수 있는데”라고 하면서 돌아가다가 울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부하와 함께 모래사장에서 씨름을 하다가 넘어졌는데 그 넘어진 자리를 보고 울었다고 합니다. 그를 넘어뜨린 부하가 하도 무안하여 “왜 우십니까?”라고 물으니 그가 하는 말이 “내가 네게 져서 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래사장에 넘어진 자국을 보고 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의미는 “지금은 내가 큰 나라를 가지고 부귀권세를 누리지마는 나도 죽으면 이렇게 무덤하나 표시만을 남겨놓고 사라질 존재가 아닌가? 생각하니 인생이 무심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부활의 약속과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0:17 말씀에 보면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예수님의 약속이고 우리에게는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월터리드 미 육군병원에서 마지막 임종 순간을 맞이하기 얼마 전에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30분의 면회 시간을 얻어서 들어간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시간이 다 되어 나갈 때가 되자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그가 조금 더 있기를 원했습니다.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아니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라고 묻자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제게는 확신이 없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저의 마지막 부탁입니다.” 그러자 빌리그래함 목사님은 주머니 속에서 성경을 꺼내 어떻게 하나님 믿고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구원은 무슨 업적이 있다거나 선행을 많이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노력으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내 지난날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요 주님으로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은 당신을 자녀로 삼아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을 성령께서 확신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이때 빌리그래함 목사님의 인도로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영접기도를 마쳤을 때 아이젠하워가 마지막 유언을 남겼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나는 이제 준비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 영생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소망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로 부터 영생의 선물을 받은 자 답 게 날마다의 삶 속에 이 주님을 만나고 모시고 소망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 부활의 주님께서 평강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본문 19절 하반절에 보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하시면서 평강을 주셨습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며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참 평강을 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주는 평강은 일시적인 평강이므로 언제나 불안한 평강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가장 행복한 순간에도 최악의 상태를 상상하고 불안해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본문 19절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사실을 목격한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한곳에 모여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닥친 위험한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찾아와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주님이 주신 평강의 선물은 크나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로마서 8:35 말씀에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위협적인 요소도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손길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엊그제 우리교회 새벽예배에 나오시는 타 교회 권사님께서 책을 한 권 선물하셨습니다. 이 책은 <자넨 하나님이 살렸네>라는 책인데 실미도 사건의 생존실화인 양동수 장로의 간증집 이었습니다. 실미도에서 기관병으로서 북파 공작원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던 분인데 영화에서처럼 훈련병들이 폭동을 일으켜 기관병들을 모두 죽이고 서울을 향해 올라가는 계획을 실행하던 중 그는 목에 총을 맞았습니다. 그때 많은 피를 흘렸는데 살기 위하여 피를 흘리며 바닷가 쪽으로 도망했습니다.

그때 바위 곁에 숨었는데 훈련병들이 핏자국을 따라 10m 가까이 총을 겨누며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제 발각되면 죽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밀려오는 그때에 차마 눈을 뜨고 그를 바라 볼 수가 없어서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흐르는 눈물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훈련병의 눈을 가리워 주옵소서. 눈을 가려 제가 안 보이게 해주세요. 제가 안 보이면 삽니다. 다니엘의 기적을 믿습니다.” 눈을 감고 기도하는데 훈련병의 발자국소리가 1-2m 전방에서 멈추었습니다. 바로 앞에서도 그를 찾지 못하고 뒤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생명을 내어놓고 드리는 그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건져 주셨습니다. 보통 목에 총알이 관통하면 죽거나 식물인간이 되는데 기가 막히게 총알이 휘어져서 뚫고 나가는 바람에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를 치료하던 공군 의료원 원장은 그를 보면서 “총알이 정확하게 뒷목 중앙에 명중하였네. X-Ray 사진을 보게나. 그런데 총알이 스핀을 먹었네. 총알이 신기하게도 생명에 전혀 지장이 없는 모세 혈관과 근육사이를 관통하고 나갔네. 자넨, 하나님이 살렸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작년에는 실미도 라는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그 사건의 생존자로서 KBS, MBC TV에서 출연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그때 폭동반란 상황 가운데서 자신을 살려주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해도 괜찮다는 조건하에 출연했고 당당하게 전했습니다. 아현성결교회 장로로, 서울 구산중학교 교감으로서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 은혜에 보답고자 열심히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주신 평강이 있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언제나 안전 할 줄로 믿습니다. 지금뿐 아니라 장래까지도 나아가서 영원토록 주님이 주신 평강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을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강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빼앗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평강을 감사하면서 이 세상사는 동안에 어떤 환경에 살던지 날마다 평강을 누리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세 째,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본문 21절 하반절 말씀에 보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사도라는 말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도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의 뜻은 예수께서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인간 세상에 오셨던 것처럼 우리도 편안하고 대우받고 안일한 자리들을 박차고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보다 앞서 요20:11 말씀에 보면 새벽미명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 울고 있던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마리아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라”고 하셨습니다. 곧 바로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내가 부활의 주님을 보았노라고 그리고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노라고 전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큰 사명을 맡겨 주셨습니다. 제자들을 비롯하여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힘을 다하여 이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해 침체되고 낙심한 사람들에게 찾아가 예수 다시 사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그분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분이 당신을 구원하십니다. 그분이 당신의 삶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라고 목청을 다하여 부활의 주님을 증거 했습니다.

1815년 6월, 영국 해군과 프랑스 해군 사이에 대 접전이 벌어졌습니다. 이 전쟁을 이름하여 워터루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그 당시에는 무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소식을 수신호 내지는 빛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누가 이겼을까?’그런데 신호가 왔습니다. 깜짝 놀랄 소식이었습니다. 영국 해군이 패했다는 그런 소식이었습니다. 충격이 큰 영국 백성들은 거리로 나와서 울고불고 보따리를 챙겨서 도망가기에 바빴습니다.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한참 뒤에 다시 군함에서 신호가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완전히 이겼다. 프랑스 군대는 패배하였다. 우리가 승리했도다.”이런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모든 영국 백성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얼싸안고 부둥켜안고 노래를 부르면서 축하했습니다. 승리는 온 나라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께서 무덤 문을 여시고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절망과 낙심, 근심과 눈물이 가득 찬 땅에 놀라운 기쁨의 소식이 되었습니다. 이 승리의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온 땅에 전파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22절 말씀에 “저희를 향하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성령은 원어로 프뉴마로서 영을 의미하며 하기로느란 단어를 함께 써서 ‘순수한’, ‘완전한’, ‘거룩한’ 이란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활하시기 전에도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 하셨는데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시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은 무슨 뜻 입니까?
전에는 주님을 빼앗긴 제자들이 홀로 있음으로써 주님을 배신하고,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성령을 주셔서 제자들의 실패를 막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이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눈이 열려져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의미가 깨달아졌습니다. 기도할 때에 병든 자들이 고침 받고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하루에 3천명, 5천 명씩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세상이 악하고 힘들어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2005년도 부활주일 아침에 부활의 주님이 주신 선물, 영원한 생명과 평강의 사명,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므로 다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굳게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주시는 좋은 일들이 여러분의 삶 속에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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