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큰 사랑 (사 53:1-9)

  • 잡초 잡초
  • 232
  • 0

첨부 1


- 설교 : 원영대 목사

오늘 본문에서 소개되고 있는 “그”는 누구인가? (18회 언급)
본문의 내용을 읽으면 누구나 쉽게 “그”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킨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700년 전인 유다왕 히스기야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하여 놀라우리만큼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다.

그레샴 메이첸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성도들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관한 예언이라고 생각되는 구약성경의 한 구절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단연코 이사야서 53장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 예언을 통해 장차 이 세상의 죄를 인하여 고난 당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하여 정확히 예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 보도록 하겠다.

1절의 내용은 유대인들의 불신앙에 대한 탄식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미리 알린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이다. 그가 예수님의 오심에 대하여 증거하였으나 그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영접지 않았다.
요1:9-11,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한 이유는 무엇인가?
2절,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예수님의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인자하고 호감이 가는 얼굴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풍채도 없는 빈약한 체구의 모습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기대에서 완전히 벗어난 모습이었을 것이다. 뿐만아니라 예수는 유대의 변방 시골 나사렛 출신, 목수의 아들이었다. 특히 유대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저 사람 아니야. 생긴 모습을 보니 아니야!”

당시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언행을 주의 깊게 관찰하였다. 예수의 교훈이나 기적행함은 흠잡을 수 없이 완벽한 것이었으나 그들은 예수를 거절했다. 예수님께서 능력 행하시는 것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이용한 것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예수님의 외모와 가문 출신지역이 별 볼일 없었기 때문에 그분은 철저하게 배척을 당하셨다.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을 청빙하는 광고를 신문에 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일류대학 출신, 박사학위 소지자, 인격이 고매한 자, 설교 잘하시는 분, 교인들을 사랑으로 잘 돌보실 분,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는 능력 있는 분, 자녀가 둘 이내인 분. 나이가 45세 이상 50세 이하인 건강에 이상이 없는 분.

그 교회는 아직도 당신들이 원하는 목사님을 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의 유대 종교지도자들 뿐만아니라 오늘날 우리들도 이와 같은 과오를 범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원인은 예수님의 중심을 보지 않고 외모로 사람을 취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였다.

그에 대하여 어떻게 대접했는가? 한 번 미운 털이 박히면 뽑아 내기가 어렵다.
3-4절,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1)멸시 - 싫어 버린 바 됨. 공생애 3년 반 동안 계속적인 시달림.
2)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 슬픔을 많이 경험하심, 질고 - 질병을 아셨다
3)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 나병환자처럼 사람들이 싫어할 것.
4)우리도 귀히 여기지 않았고 하나님에게 징벌을 받는다 - 처음에 따르던 무리들도 다 배신, 제자들마져도 배신. 홀로 십자가에 달리셨다.

왜 사람들은 예수님을 멸시하고 배신했는가?
요15:19-21,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예수님을 멸시하고 핍박한 이유를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세상에 속한 자 - 불신앙.
2)그리스도에 대한 무지.

그리스도에 대한 불신앙과 무지는 자기 신앙을 구축하게 된다. 자기가 신앙의 표준이 되어서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배척하고 핍박하고 멸시하는 것이다. 결국은 누구 손해인가? 자기 자신의 손해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자기 중심적 신앙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받아 순종해야 한다.
마22: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유대인들의 불신앙과 무지가 오해를 불러 일으켰고, 결국은 생명의 주를 멸시하고 핍박하고 십자가 못박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 주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돌아보아 겸손히 섬기는 성도가 되기 바란다. 바르게 알면 더욱 더 잘 섬길 수 있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이었는가?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유대인들이 가졌던 불신앙과 편견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의인은 죄인으로 만들고, 죄인은 의인인 것처럼 행사하게 했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고난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 자기의 죄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진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유대인들의 허물과 죄악을 인해 예수께서 찔리시고 상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시고, 손과 발목에 못이 박히고, 창에 찔리신 것은 유대인들의 죄와 허물 때문이었다.

그러나 선지자의 예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예수님의 수난의 목적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완악하고 교만한 인간세계에 평화와 치유가 임하게 되었다고 증거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인류의 죄악의 상처가 치료된 것이다.
롬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십자가가 우리의 소망이요, 기쁨의 원천이다. 주의 십자가를 날마다 붙잡아야 한다.

6절, 우리의 실상과 함께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고 있다.
6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양, 어떤 짐승인가? - 제일 무력한 짐승, 단순하고 순진하지만 완고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길 잃은 양은 목자가 찾지 않으면 결국 목숨을 잃게 된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 - 자기 고집, 교만, 경험으로 사는 인생은 결국 멸망이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롬3: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인간은 착각 속에 산다. 자신이 의인인 것처럼 산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다. 그것이 인간의 교만이고 불행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멸망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인생들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예배해 두셨다.

6절하,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자식이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으려면 자녀를 낳고 키워 보면 알게 된다. 특히 자식이 속을 썩이면 자신을 알게 된다. “나도 저렇게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었구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면 나의 죄악과 허물이 얼마나 컷었는가를 알면 깨닫게 된다. 깨달은 사람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부르는 찬송이 404장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와 같은 큰 사랑을 받기까지에는 예수님의 희생과 순중이 있었음을 선지자는 말씀하고 있다.

7-9절,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예수님, 그분은 죄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제사장 앞에서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입을 열지 아니하셨다(마26:63). 그리고 죄인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셨다.(마27:57,60)

2700년 전, 선지자 이사야,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이 우리에게 주신 교훈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큰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구원의 계획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박윤선목사님,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창조계획보다 더 심원한 것이다.”

우주의 은하계에는 1천억개의 별이 있다고 한다. 그중 태양계의 작은 별 지구를 무대로 삼아 고대근동지역 팔레스틴의 척박한 땅에서 하나님께서는 인류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다. 그리고 그 구원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른 것이다. 이 사건이야말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큰 사랑을 받은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도 바울은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하겠다고 고백하였다.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십자가는 죄를 이기는 능력이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제는 그 십자가를 사랑하고 자랑하고 증거하는 삶이 되기 바란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