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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그리스도의 승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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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구원 목사

기독교 교리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신분 중에 낮아지는 신분이 있는가 하면 높아지는 신분이 있습니다. 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십자가의 죽음까지를 말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비하(卑下)라고 합니다. 후자는 그리스도의 부활에서부터 재림까지를 말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의 승귀라는 비교적 어려운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승귀를 말하는 성경구절은 빌립보서 2장 9-11절에 나타난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 26절은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라고 하므로 그리스도의 낮아지신 신분(비하)후에 높아지시는 신분(승귀)의 확보는 이미 계획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확실한 역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한편 구석에서 된 일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세상 역사 가운데 우뚝 서서 모든 거짓을 비웃으며 진리를 왜곡하는 궤변들을 호령하는 진리의 종교입니다.
이 진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Ⅰ.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 하고 있습니다.

1) 구약성경의 예언입니다.
시편 16장 10절에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이 구절을 사도행전에서 확증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24-31절의 말씀이 바로 그것이며 13장 35절에도 같은 내용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썩지 않게 하실 것은 부활을 가리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 그리스도 자신의 예언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1절에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8장 32절에도 똑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살아난다는 사실을 이미 만천하에 공포하셨고 그러한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제자들 앞에서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3) 사도들의 증언입니다.
사도행전 1장 3절에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승천하시기 전에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습니다(행 1:8).

4) 바울의 증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8절에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 했습니다.

5)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9절에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5-17절에『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에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 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1-32절에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리스도의 부활 사실은 몇몇 사람들에게만 보여 진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 된 일입니다. 따라서 부활을 부인하는 어떤 궤변도 부활의 공개적인 역사성 앞에 더 이상 설자리를 마련할 수 없을 것입니다.

6) 안식일이 변경된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에 『이날 곧 안식 후 첫 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이 일주일간의 7일에서 제1일로 변경된 것은 부활을 믿는 초대 교회와 사도들의 자연스러운 일치입니다. 오순절 일백이십 명은 안식일 이튿날 곧 주간의 첫날에 다같이 한곳에 모였습니다(행 2:1). 그리고 그들은 성령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드로아의 교회는 안식 후 첫날에 떡을 떼려고 모였습니다(행 20:7).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의 지시에 따라 매 주일 첫날에 성도들을 위하여 연보를 드렸습니다(고전 16:1,2). 사도 요한은 주의 날에 계시를 받았습니다(계 1:10). 예수의 부활일이 주일이 된 것입니다.

안식일이 변경된 것은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은혜 받은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는 더 이상 안식일에 대하여 시간적인 구속을 강요할 수 없었습니다. 안식일을 율법적인 족쇄로 채워둘 수 없다는 사상이 노골화된 결과라고 보아야 합니다(골 2:16).
안식일이 주의 날(주일, Lord's day)이 되었다고 해서 안식일의 정신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안식일보다는 부활의 의미를 가진 안식 후 첫날을 더 뜻 깊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에 로마인들은 태양의 날(sun day)로 일주일간의 첫날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콘스탄틴 대제(Constantine 274-337)의 밀란 칙령이 있은 후 주후 321년에 공휴일로 정식 제정되었습니다. 바로 이 날이 '의로운 태양'(말4:2)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날로 의미가 한층 더 고조되는 가운데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조인 소요리문답(59)은 기록하기를 『세상 시작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하시기까지는 하나님이 칠일 중에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명하였고 그 후로부터 세상 끝 날에 이르기까지는 칠일 중에 첫날로 명하셨으니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안식 후 첫 날을 주일로 지키는 것은 매우 합당한 것입니다.

Ⅱ. 그리스도의 부활은 전혀 다른 몸으로의 삶입니다.

1) 부활은 분명한 신체적 변화입니다.
(1) 썩지 아니할 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절에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라고 했습니다.
(2) 영광스러운 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3절에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라고 했습니다.
(3) 강한 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3절에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라고 했습니다.
(4) 신령한 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5) 하늘에 속한 자의 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7-49절에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변형되시고 얼굴이 해같이 빛났다고 했습니다.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고 했습니다(마 17:2).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가 변화산에 나타나서 예수와 더불어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마 17 :3). 그때의 광경은 죽은 자의 부활을 증거하기에 충분한 것들입니다.

2) 부활은 새 생명의 표징입니다.
로마서 6장 4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3)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들의 영원한 생명의 표상 입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4절에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절에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택한 백성들의 구원을 완성하는 성취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습니다(롬 5:10).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산 소망이 있게 하셨습니다(벧전 1:3).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신앙의 처음이요 마지막을 장식할 핵심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 후로부터 참 제자의 걸음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손과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이실 때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했다고 했습니다(요 20:20).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는 그 손에 못 자국을 보고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 보아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했습니다(요 20:25).

이때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나타나서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요 20:27). 도마는 그 자리에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고 하셨습니다(요 20:29).
지금도 이스라엘 성지에는 로마 카톨릭이나 그리스정교나 모슬렘들에 의하여 때 묻지 아니한 곳이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1882년 영국 개신교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가든툼(Garden Tomb)입니다. 바로 그 위가 골고다 언덕입니다. 1587년 영국 고든(Godon)장군이 발견했다고 해서 일명 고든 갈보리(Godon Calvary)라고도 합니다. 바로 이곳이 4세기까지 히브리인들의 사형장이었습니다. 스데반도 이곳에서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하는 곳입니다. 이곳이 바로 신교에서 주장하는 유일한 골고다입니다.

여기에 예수의 무덤이 있고 부활했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요 19:41-42).
저는 이곳을 순례하는 중에 잠시 사진 찍는 것을 잊은 채 바위처럼 무겁게 서고 말았습니다. 출입문처럼 뚫어진 바위 무덤을 바라보았습니다. 순간 나 같은 죄인 살리시기 위하여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갖은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마침내 십자가에 죽어 바로 이 무덤에 죄인처럼 던져졌다가 사흘 만에 무덤을 열고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는 듯 했습니다. 바위 무덤 앞에는 아름답게 가꾸어 놓은 공원의 꽃들이 있었습니다. 그 꽃들은 부활의 현장을 보기 위해 먼 이국에서 찾아 온 주의 제자에게 부활의 메시지를 주는 듯 했습니다.

예수님이 안 계시는 이스라엘 성지와 빈 무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모든 감성을 동원하여 그곳의 바위를 손으로 만져보았습니다. 그리고 부스러기 흙을 발로 밟아 보았습니다. 나를 제자삼아 당신의 복음을 증거하게 하시는 그 놀라운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예수 부활은 확실하고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교회 역사의 신기원입니다. 예수 부활소망은 교회운동의 활력입니다.

Ⅲ.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는 자들의 최후 승리의 Vision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9절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역사상에 나타난 무수한 인생들의 흥망성쇠의 흔적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세상에서 시대 시대마다 파상적 공격을 받아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무덤에 장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러한 역사의 허구의 무덤을 박차고 강건하게 걸어 왔습니다. 교회는 무덤 어귀에 막아 놓은 그 돌들을 굴려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사망에 매이지 아니하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입니다. 우리는 담대해야 합니다. 수다한 역사의 원수들 앞에 천하를 호령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마침내 참과 선과 사랑이 이긴다는 것을 확증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의 숙적인 죽음이 패배했다는 생명의 승리를 보도하는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는 사망이 생명에 삼킨바 된 부활의 비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부활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부활을 뒤엎어버리면 죄가 새롭게 지배력을 행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입니다. 부활의 환희는 겟세마네와 십자가를 거쳐서 왔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발전의 축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예수는 자기 생명을 십자가에 주신 결과 부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부활을 믿느냐고 물어 보십니다. 그리고 부활을 받았느냐고 물어보십니다. 그리고 믿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성도는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는 부활의 삶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부활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따라서 부활은 기독교 운동의 동력입니다. 헬라 격언 속에 횃불을 가진 자는 그 불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깃발을 높이 들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은 새로운 기독교 문화권을 형성했습니다. 그것은 역사상에 새로운 인류문화를 꽃피웠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사탄은 예수 부활의 확실성에 전격 도전합니다. 예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은 기절을 했습니다. 부활의 진리는 확실합니다. 그것은 역사적 사건의 사실입니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근거와 존재와 소망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생명의 부활로 나옵니다. 그 후에는 남은 자들 곧 그리스도 밖에 있는 불신자들에게는 심판의 부활이 있습니다.
죽음은 인생본연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생이 범한 죄의 값이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은 쏘는 것이요 원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삼키기 위해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피 흘려 죽었습니다. 이것으로 우리의 죄 값은 하나님의 공의 앞에 지불되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믿는 자는 예수로 말미암아 생명의 부활로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인생은 심판의 부활로 나옵니다.

예수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진리입니다. 예수는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진리입니다. 부활을 믿는 신앙 그것은 내세를 믿는 신앙입니다. 부활신앙에 견고합시다.
부활신앙을 방해하는 사탄의 공격에 흔들리지 맙시다. 더 높은 과학문명의 만세 소리 앞에 부활 신앙이 흔들리지 맙시다. 극에 달하는 물질문명의 쾌재 앞에 부활신앙이 흔들리지 맙시다. 자신만만한 황금만능주의 앞에 부활신앙이 흔들리지 맙시다.
창세 이후로 모든 인류의 무덤은 결국 열리고 말 것입니다. 빈 무덤이 되고 말 것입니다. 모든 인생은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라고 하는 시제(Tenses)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만난 이 세 시제 속에 사는 인생을 가리켜 죄중에 나서 죄중에 살다가 죄 가운데 죽을 실존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일에 증인입니다. 결코 예수는 전설이나 신화나 우화의 가공적인 주인공이 아닙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오늘의 갈보리교회는 예수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의 집이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예수 믿는 우리는 이 일 곧 예수 부활의 산 증인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도 예수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의 집입니다. 우리의 회사도 예수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의 회사입니다.

지금 인류가 머물고 있는 이 지구촌 역사의 현장은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의 현장입니다. 우리가 머무는 여기는 우리의 영원한 본향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는 현장일 뿐입니다.
예수 부활은 결국 진리가 거짓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예수 십자가의 부활은 영광의 극치이자 역사의 절정입니다. 십자가는 비극인 동시에 영광입니다. 십자가는 불명예인 동시에 영예로운 것입니다. 십자가는 패배이자 승리입니다. 십자가는 수치이자 존귀입니다. 십자가는 사망의 종착인 동시에 부활의 시작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없는 교회는 결국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보유하고 증거할 때만이 참된 교회, 살아있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갖고 있지 않거나 변질시켰거나 또 증거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살았으나 죽은 교회입니다.
저 나사렛 사람 예수 그 분은 우리에게 부탁했습니다. 나를 찾아 무덤으로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는 여기 무덤에 머물지 않고 살아났다고 했습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사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세세토록 살아계신 분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믿음의 가장 중요한 항목입니다. 부활은 우리의 구속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보다 부활 때에 무덤에서 일어나는 것을 더 분명하게 확신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육체는 빛으로 옷을 입고 빛나는 면류관을 쓰고 상처나 질병에서 영원히 해방될 것입니다.
사탄은 그리스도의 무덤 위에서 기쁘게 춤을 추었습니다. 사탄은 그리스도를 무덤에 가두어 놓고 이제는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사탄의 보좌를 짓밟았습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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