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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도마를 찾아 오신 예수님의 사랑 (요 20: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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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명혁 목사

  지난 주일 “래방 삼언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주일 저녁 문들을 닫아 걸고 방안에 숨어 있던 10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하신 세 마디 말씀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도마를 찾아 오신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도마는 부활주일 저녁 그 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도 못했고 주님이 하신 말씀을 듣지도 못했습니다. 열 제자들에게 주신 평강도 사명도 성령도 받지 못하고 도마는 의심과 허탈감과 절망 가운데서 한 주간을 지냈습니다. 주일 저녁에 성도들과 함께 모여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 주간이 지난, 그 다음 주일 저녁에 10 제자들이 다시 함께 방에 모였는데 그 곳에는 도마도 함께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11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에 다시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그 곳에 오신 주 목적은 도마를 만나기 위해서 였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불안과 어두움 가운데 있는 도마에게 평강과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 도마를 찾아 오셨습니다. 주님은 허물 많은 베드로를 찾아오시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찾아오시고, 의심 많은 도마를 찾아오신,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이제 도마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주님에 대한 도마의 태도와 모습을 세 단계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도마는 주님에 대한 불신앙과 자포자기의 사람이었습니다(요11:16).

  도마는 요11:15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살리려 베다니로 가자고 했을 때 도마는 그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요11:14,15). 도마는 예수님의 긍정적이고 소망적인 기쁨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도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요11:15). 이 말은 불신앙과 자포자기의 말이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이것은 도마의 불신앙을 지적하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방금 신앙 연단을 위하여 난관과 시련의 필요를 역설하셨는데 그는 그 말씀 끝에 말하기를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였다. 난관과 역경 가운데라도 주님과 함께 가면 통과할 수 있다는 신앙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불신앙은 도마의 근성이다.” 도마는 불신앙과 자포자기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믿음을 저버리고 곧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마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14장에 나타난 도마는 여전히 불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힌 제자들에게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라는 말씀을 했지만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했지만 도마는 여전히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이렇게 답변을 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요14:5). 도마는 박윤선 목사님의 표현대로, 영성이 둔하고 더딘 불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설교를 아무리 들어도 믿지 않는 영성이 둔하고 더딘 불신앙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마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둘째 도마는 주님에 대한 의심과 고집불통의 사람이었습니다(요20:25).

  도마는 요20:25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제자들이 모두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고 증언했지만 도마는 제자들의 증언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손과 손가락으로 주님을 만져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당연한 말 같기도 했지만 주님을 3년 동안이나 따라다니던 제자치고는 좀 지나친 의심과 고집불통의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도마를 의심하는 사람의 모델로 삼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도마를 가리켜 ‘의심이 많았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윌리암 헨드릭슨은 도마를 가리켜 stubborn 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Thomas remained stubborn, 이라고 했습니다. Stubborn 이란 말은 ‘완고한’ ‘고집이 센’ 이란 말입니다. ‘고집불통’이란 말도 됩니다. 설교를 아무리 들어도, 간증을 아무리 들어도, 권면을 아무리 들어도, 그 마음이 완고하고 고집이 세어서 듣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고집불통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마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셋째 도마는 주님에 대한 믿음과 항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요20:28).

  도마는 요20:28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My Lord and my God” 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신앙고백은 베드로의 신앙고백보다 월등한 신앙고백 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지만 도마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습니까? 주님이 도마를 찾아오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도마의 불신앙과 의심과 완고함을 책망하시기 보다는 오히려 도마의 요구를 그대로 다 들어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참으로 황송한 일이었습니다. 도마가 세 가지를 요구했습니다.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이 세 가지 요구를 주님께서 다 들어주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주님은 불신앙과 자포자기의 사람, 의심과 고집불통의 사람인 도마의 죄와 허물을 책망하시지 않고 부드러운 사랑으로 찾아오셔서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고 만지게 하시므로 그의 마음과 생각과 인격과 기질을 바꾸어주셨습니다. 결국 도마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도마는 이제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 항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도마는 인도까지 가서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다가 거기서 순교 당했다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진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십자가의 주님과 부활의 주님을 믿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이렇게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20:29). 저와 여러분들은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진 일은 없지만 오늘 아침 도마처럼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제 강변교회 성도들을 대신해서 강변교회의 장로님들께서 지금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이렇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우리의 불신앙을 용서하시옵소서.” “우리의 의심과 고집불통을 용서하시옵소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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