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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광(榮光)의 상흔(傷痕) (눅 24: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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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홍문수 목사

고대 그리스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대제국을 건설하고 자신의 초상화를 후세에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화가를 불러 자기 모습을 그리게 했습니다. 여러 화가들이 그렸지만 그리는 것마다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알렉산더는 전쟁터에서 입은 상처로 인해 얼굴에 큰 흉터가 남아 있었습니다. 아무리 화가가 멋지게 그리려고 해도 흉터를 없애고 그릴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한 화가가 알렉산더를 테이블 앞에 앉게 하고 손으로 턱을 고이면서 흉터를 살짝 가리게 했습니다. 그 제서야 알렉산더가 흡족해 하며 그 화가에게 큰 상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갖고 있는 상처를 숨기고 싶어 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렇게 대범했던 알렉산더 대왕조차 자기 얼굴의 흉터에 대해 열등감과 자괴심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경우는 전혀 달랐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실 때 얼마든지 상처를 없앨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몸의 상처를 그대로 남겨 두셨던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그런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십자가 고난을 당하실 때 못 박힌 자국과 창에 찔린 자국 등이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왜 그러셨을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못 궁금합니다. 오늘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몸에 남아 있는 상흔(傷痕)의 이유와 그 의미를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의 상처 : 영광의 상흔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바로 그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건 기록입니다. 36절에 보면 “이 말을 할 때에 ... ” 그랬습니다. 앞 단락에서 본 대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황급히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제자들에게 보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제자들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신 겁니다. 본문에는 자세히 명시되지 않았는데, 병행 구절인 요20:19을 보면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

그때는 아직 예수님의 부활을 확증하지 못했으므로 용기있게 나서서 증거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혹시라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에게 붙잡히면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것을 두려워한 제자들이 문을 잠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신 겁니다. 그러니까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죠. 문이 닫혔는데 상식적으로 어떻게 들어옵니까? 그래서 37절 기록대로 유령으로 착각하게 된 겁니다.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여러분, 부활체는 그렇습니다. 모습도 평소와 다르게 영광스럽게 변화되고, 몸 자체도 시공을 초월할 수 있는 특수 체질(영체)로 변화됩니다.

예수님은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어떻게 하십니까? 두 가지 행동을 취하셨습니다. 먼저 손과 발을 보여주셨고, 다음에는 그들이 보는 데서 생선을 잡수셨습니다. 유령이 아니라 분명히 육체로 부활하셨음을 증명해 주신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손과 발을 보여주신 대목을 살펴보죠. 38절~40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 ” 여기 보면 그냥 ‘손과 발’이라고 말씀하지만, 요한복음을 보면 부활하신 못 자국이 남아 있는 손과 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20:24~28 보면 도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도마가 마침 출타 중일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이 떠나가신 후에서야 도마가 들어옵니다. 다른 제자들이 어디 갔었냐고 야단입니다. 그러자 도마는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못자국과 창자국에 손가락을 넣어봐야 믿겠다고 큰 소리 칩니다. 여드레 후 다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20:27 “ ...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실제로 예수님의 못 자국을 만져봤는지 아닌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하신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고백합니다. 요20:28 “ ...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에 못 자국과 창 자국이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실 때 전능한 능력으로 얼마든지 상처 자국을 없앨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겨두신 것입니다. 물론 그 자국이 십자가 고난당하실 때의 흉측한 모습으로 남아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마 빛나는 모습으로 변했을 것으로 짐작해 봅니다.

언젠가 한 성화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작가의 이름은 제가 잊었지만 그 그림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그렸는데, 두 팔을 벌리고 손바닥의 못 자국을 보여주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못 자국이 유난히 환하게 빛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의 콘텍스트를 통해 유추하건대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송가 25장 2절 가사도 그런 사실을 노래합니다.(Godfrey Thring, 1874) “면류관 가지고 주 앞에 드리세 그 손과 몸의 상처가 영광 중 빛나네 하늘의 천사도 그 영광 보고서 고난의 신비 알고자 늘 흠모하도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체에 남아있는 상흔은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오히려 자랑스러운 겁니다. 영광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을 「영광의 상흔」으로 붙인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상흔이 주는 의미 : 십자가와 부활의 증표

그러면 왜 예수님이 상흔을 남겨 두셨을까? 그 이유와 의미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한 마디로 그것은 십자가와 부활의 증표(certificate)입니다. 그것으로 예수님이 분명히 십자가 죽었다가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이심을 영원히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증표는 구체적으로 다음의 네 가지 사실에 대해 증거합니다.

① 구원의 증표 :

성경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롬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 지고 죽었다가 부활하신 사실을 그저 믿기만 하면 구원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너무 쉬워서 오히려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뭔가를 해야 될 것 같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못 자국을 보여주십니다. 마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에게 못 자국을 보여주신 것처럼 ... “이거 봐라! 이 못 자국이 내가 너희 죄인들을 위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살아난 증거이다. 나는 십자가에서 너희를 위한 죄 값을 다 치렀다. 그러므로 믿기만 해라. 그러면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겠다. 영생과 천국을 주겠다!”

여러분!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목 자국을 마음으로 눈으로 바라보심으로 구원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믿는 자의 구원에 대한 영원한 증표입니다.

② 부활의 증표 :

예수님의 손과 발에 남아있는 못 자국은 부활에 대한 강력한 증표입니다. 예수님 자신아 부활하신 증거일 뿐 아니라, 믿는 성도들도 장차 부활할 것에 대한 보증입니다. 예수님은 못 자국을 보여주시면서 마치 이렇게 말씀하는 것 같습니다. “자, 봐라!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지? 너희들도 나를 믿으면 다 이렇게 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부활의 보증이요 샘플임을 증거합니다.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여기서 ‘첫 열매’라는 것은 우리가 현재 쓰는 말로 ‘샘플’이란 뜻입니다. 빌3:21 “그(=예수 그리스도)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님의 못 자국을 바라보면서 부활의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③ 승리의 증표 :

성도들이 지상에 사는 동안에는 환란을 많이 겪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승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그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승천하신 예수님의 천상사역(Heavenly Ministry) 혹은 중보사역으로 가능합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며 때마다 일마다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도 여전히 실수하고 범죄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때때로 구원의 확신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우리가 혹 범죄해도 멸망당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혹시 범죄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우리를 대언해 주십니다. 이것이 곧 우리가 범죄해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죄를 고백하면 얼마든지 용서받고 깨끗함을 얻는 근거입니다. 요일2:1 “ ...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또한 우리가 세상 살면서 연약해질 때,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하며 도와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못 자국을 보십시오! 아무개 성도를 위해 흘린 십자가 보배 피의 흔적입니다. 아시죠? 용서해 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롬8:33~37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여러분! 아무쪼록 예수님의 못 자국을 늘 기억하며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꼭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④ 심판의 증표 :

예수님은 장차 재림하십니다. 그리고 심판하실 겁니다. 그때도 예수님은 손과 발에 못 자국을 갖고 계실 겁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므로 무턱대고 심판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승복한 후에 판결을 하십니다. 심판의 때 불신자들은 예수님의 못 자국 때문에 결코 핑계할 수 없을 겁니다. 예수님은 못 자국을 보이면서 이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자, 봐라!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죄인들을 위해 내가 십자가에 죽었다 살아났노라. 그리고 내 제자들을 통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해 주었다. 그런데도 너희들이 믿지 않고 기회를 놓쳤으니 이제 심판할 수밖에 없노라. 너희 동네에 교회가 없었느냐? 정말 전도 받아본 적이 없느냐? 그런데 왜 거부했느냐?” 그때 불신자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됩니다. 영원한 심판에 대해 승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통곡을 하게 될 겁니다. 요19:37 “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슥12:10 참조)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부디 예수님의 손과 발에 있는 못 자국을 바라보면서 구원의 확신과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험한 세상 담대히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3] 그리스도인의 고난 : 영광으로 승화

세상에 살 동안 우리에게는 많은 상처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으로 그 상처를 얼마든지 영광의 상흔으로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① 사적인 고난을 신앙으로 승화시키기 :

사람은 누구나 인생 가운데 고난을 겪습니다. 상처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로 늘 수치스러워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 극복하면 오히려 자랑이 되고 영광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 몸에 ‘육체의 가시’를 갖고 있었습니다.(고후12:7~10 참고) 그것은 아마 그가 평생 앓았던 독한 안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장간 식칼이 논다고 남의 병은 고쳐주면서, 심지어 죽은 자를 살려내면서 자기 몸에 있는 육체의 가시 하나 제거하지 못하는 마음이 오죽했겠습니까? 수치스럽고 괴롭고 그랬을 겁니다. 세 번이나 목숨 걸고 기도했지만 주님의 응답은 이미 주신 은혜가 족하니 그냥 지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실망할 수밖에 없었지만 바울은 큰 깨달음을 갖게 됩니다. 그의 연약함 때문에 겸손히 주님을 의지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능력의 역사가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후로 오히려 연약한 것을 자랑하게 됩니다. 고난이 있어도 감사하고 승리의 삶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두어 달 전에 선교회 모임 때문에 어느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식당에 가서 앉았는데 목사님이 한 여 성도를 가리켜며 소개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 분이 이지선 자매 어머님이십니다.” 여러분, 잘 아시죠? 여대생 시절 교통사고로 중화상을 입어 흉한 얼굴을 하게 된 자매입니다. 예쁜 여대생이 갑자기 그러게 되었으니 본인도 어머니도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죽고 싶은 절망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난 중에 살아계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감사하면서 수많은 성도들에게는 은혜를, 불신자들에게는 주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그 어머니의 표정에는 아무 그늘이 없이 환했습니다. 목사님이 또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이지선 자매와 어머니가 이 교회에서 제일 유명한 분들입니다.” 이게 고난을 이기는 신앙의 힘입니다. 기왕에 당한 고난을 그저 비관하고 원망하고 절망 가운데 울고불고 난리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유명한 찬송시인 화니 크로스비를 아시죠? 설교 후 부를 찬송 231장의 작사자입니다. 그분은 생후 6주 만에 실명한 시각장애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소망 중에 기뻐하며 수많은 찬송시를 지었습니다. 한번은 어느 목사님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인생 살면서 장애를 주신 하나님을 섭섭하게 생각한 적은 없습니까?” 그랬더니 그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아뇨, 저는 다시 태어나도 이 모습 그대로이길 소원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천국에 가서 처음으로 눈을 뜰 때 나의 첫 번째 시야에 주님의 얼굴을 담고 싶기 때문입니다.” 정말 이 세상에는 멀쩡하게 눈 뜨고 살면서 오히려 그 눈 가지고 나쁜 것만 보고 범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에 비하면 정말 이 분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②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으로 영광의 상흔 만들기 :

우리는 언젠가 각자 주님 앞에 설 것입니다. 성도는 정죄를 위한 최후의 심판은 면제되지만 상급을 위한 심판을 받습니다. 그때 우리는 다 부활의 몸을 입게 됩니다. 부활의 몸은 영광스럽지만 각각 그 광채가 다르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고전15:41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여러분, 과연 어떤 사람이 더 빛나는 영광을 얻겠습니까? 당연히 주님을 위해 고난 받고, 그 고난으로 인한 상흔이 있는 사람일 겁니다.

바울은 그런 소망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인간적으로 아쉬울 게 없는 사람입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최고의 학문을 공부한 박사입니다. 귀족의 가문입니다. 로마시민권자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좋은 조건을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세계를 누볐던 사람입니다. 가는 데마다 감옥에 갇히고 매 맞고 목숨의 위협을 당하고 ... 고후11:23~28 보면 그가 당한 고난이 얼마나 혹독했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고난은 스스로 선택한 고난입니다. 스스로 자기 몸에 만들어간 상흔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갈4:17 “ ...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여기서 말하는 ‘예수의 흔적’이 바로 주님을 위해 당한 고난의 상처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수치가 아니라 자랑이요, 영광의 상흔입니다. 그것은 훈장입니다! 마치 군인이 조국을 위해 전쟁에 나가 싸우다 입은 상처와 같은 겁니다. 그 상처는 영광이요 훈장입니다.

여러분! 한번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당한 고난들은 과연 어떤 것들이었던가! 혹시 나의 실수와 범죄로 인해 당연한 고난만 당하면서 울고불고 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우리의 남은 생애에는 모든 고난을 주님 앞에 가지고 나와 신앙으로 승화시키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주님을 위해, 복음과 교회를 위해 스스로 수고하고 헌신하고 힘쓰고 애쓰는 영광의 상흔을 남기시기 바랍니다. 부디 예수님의 손과 발에 남아있는 못자국의 의미가 무엇인지 늘 묵상하면서 구원의 확신 가운데 승리하시고, 주님을 위한 고난에 기쁨으로 동참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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