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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속성은 변화를 가져옵니다.(창 26: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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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아주 과묵한 장로님이었답니다. 아내인 권사님은 참 명랑한데 장로님은 집에 오면 한 마디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권사님이 장로님을 어떻게 하면 말을 하게 할까하여 아침에 일어날 때 "깍꿍"하고 집에 들어오면 "깍꿍" 하고 웃겼답니다. 그래도 반응이 없었답니다. 이렇게 깍꿍하기를 한 일년 쯤 하였는데 그래도 장로님이 반응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미쳤다고 하든 말든 권사님은 계속해서 "깍꿍" 했답니다. 그런데 어느날 출근을 하는데 출근하는 장로님 뒤에다 "깍꿍" 하니까 장로님이 돌아서서 "깍꿍"하고 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날 퇴근 시간이 기대되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장로님은 권사님이 "깍꿍"하시기 전에 먼저 "깍꿍" 하더라는 것입니다.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누가 지어낸 이야기인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심리학 교수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지속적으로 하면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변화는 지속성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블레셋왕 아비멜렉의 친구인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이 180도 변화된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이삭을 미워했던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어느날 자기 땅에 와서 부자가 되자 시기심이 생겼고 그를 시기하여 자기 땅에서 쫓아낸 사람들입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우물을 팠을 때 그 우물을 빼앗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삭에게 와서 평화조약을 맺자고 합니다. 이삭이 하나님께서 함께 한 사람이라고 인정해 줍니다. 이삭이 여호와께 복을 받은 사람인 것을 인정해 줍니다. 직장에서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괴롭히던 상사가 어느날 갑자기 변화되어 나도 너가 믿는 예수를 믿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핍박하던 부모가 설명절에 만나니까 "나도 너 믿는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가고 싶다"고 부모 형제가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군대에 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군에 가니 회식을 한다며 노래를 부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합시다." 복음 성가를 불렀습니다. 술을 마시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예수를 믿으니 술을 마실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왕따를 시킵니다. 고참들이 구타를 합니다. 그러나 굳을 일 도맡아 하고 열심히 화장실 청소, 내무반 청소를 하며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어느날부터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대장이 변하고 선임하사가 변하고 병장이 변하고 상병이 변하고 일등병이 변하고 제가 제대할 무렵에는 소대원 모두가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제대할 때는 저도 울고 소대원 식구들도 울면서 나왔습니다. 이삭을 통해 이루어진 변화가 바로 이런 변화입니다. 괴롭히던 자가 와서 화해를 하자고 애청을 합니다. 늘 비난하던 자가 칭찬을 하기 시작합니다. 만나기를 꺼리던 자가 도와 주겠다고 찾아옵니다. 만나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일이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1. 우리가 지속적으로 축복을 받는 모습을 보면 우리를 보는 주변 사람들을 변화됩니다.(29, ). 축복의 지속성

사람들은 눈에 뭔가 보여야만 변화가 됩니다. 어느날 큰 충격을 받으면 변화가 됩니다. 그러나 일상적인 가운데 변화가 되려면 자신이 경험을 해야만 변화가 됩니다. 자기 스스로 "그렇구나"라고 인정이 되어야 변화가 됩니다. 말로 한다고 변화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자식을 변화시키려고 부모가 노력하지만 잘 변화됩니까? 말로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로 자꾸 변화를 시키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예수 믿고 축복받는 모습을 보면 내 삶의 모습을 보고 부모가 예수를 믿게 되고 형제가 예수를 믿게 됩니다. 이삭을 삶을 보면서 변화된 블레셋 왕 아비멜렉과 그 친구인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을 보십시오. 그들이 무엇을 보고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라는 것을 인정합니다.(28,29)

이삭을 쫓아낸 이들은 이삭의 삶을 보았습니다. 자신들의 마을에 이민을 온 사람들이 그 해 농사를 지었는데 100배의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자신들은 농사로 뼈가 굳은 사람인데도 그렇게 큰 수확을 거두워 보지 못했는데 이삭은 그 해에 자신들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는데도 100배의 수확을 거둔 것입니다. 1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여기서 그 땅이라는 것은 이삭의 땅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부자가 된 것입니다. 얼마나 그가 부자가 되었는지 13절 이하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창 26:13-14)" 그들이 시기할 정도로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어떻하였습니까? 15절을 보십시오.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픈데 이방 사람이 자기 땅에 와서 이렇게 부자가 되니까 시기심이 생겨 우물을 막아 버렸습니다. 우물을 막아 버리는 것은 그곳을 떠나라는 말입니다. 물이 없는데 어떻게 그곳에서 살겠습니까? 폭력배를 동원해서 회사를 접수해 버린 것입니다. 갖은 권모술수를 써서 회사를 합병해 버린 것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노골적으로 떠나가라고 말합니다.

이삭이 그곳을 떠나 다시 우물을 팠습니다. 18절 보십시오. 또 블레셋 사람들이 메워버립니다. 이제 이삭이 어떻게 합니까? 골짜기로 들어가 우물을 팠습니다. 그랄 목자들이 다시 빼앗습니다. 또다시 이삭을 이사하여 우물을 팠습니다(21). 22절을 보십시오. 넓은 장소에 가서 우물을 팠습니다. 그곳에서도 우물물이 펄펄 쏟아져 나옵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하는 일 마다 잘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가더니 질병이 치유받고 사업이 풀리고 자녀가 잘되고 가정이 행복해지고 아무리 짓밟아도 일어나고 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해진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늘 구타하던 남편이 변하여 예수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탈선했던 자녀가 마음을 잡고 공부하여 훌륭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있는 사람이 야 너는 무엇이가 다르구나 그 비법이 뭐냐 나도 너처럼 되고 싶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축복의 지속성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물론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합니다. 이삭이 어떻게 고백하고 있습니까? 자신이 이렇게 축복을 받은 비결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2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경을 넓게 해 주셨고 우리를 번성하게 해 주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왕도 이 사실을 고백합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자신들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하신 것을 분명히 보았다는 것입니다. 2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복을 주신 것입니다. 창25:11절을 보십시오. 창26:3, 4, 12, 24절을 보십시오. 이방 사람들이 인정할 정도로 지속적으로 복을 받은 것입니다.(창26:16,29).

우리도 이삭과 같이 지속적인 축복으로 우리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시127:1-5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합니다. 집을 세우는 일(1) 하나님께서 복을 주어야 합니다. 바벨탑이 무너진 것은 그들의 노력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 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을 지키는 일(1), 돈버는 일(2), 자녀 문제(3-5) 인간의 노력으로만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합니다.

2. 우리는 순종의 지속성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아 우리를 보는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켜야 합니다.(28) 순종의 지속성

이삭이 이렇게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이 우연히 일어난 일일까요? 세상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필연적 사건들입니다. 필연에 의해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삭은 어떻게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속적인 복을 받았을까요? 지속적인 순종으로 지속적인 복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26장 2절 이하를 보십시오. 그 이유를 성경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삭 때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애굽은 나일강이 있어 그래도 곡식이 있습니다. 이삭이 애굽으로 내려 가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 이삭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거하면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이삭은 이 약속 믿고 순종했습니다. 지금 가믐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당장 죽음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혀 현실성이 없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풍요롭고 기술이 발달된 사회에서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당시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삭을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한 번만 순종을 한 것이 아닙니다. 8절을 보십시오. 오래 거하였습니다. 지속적인 순종을 한 것입니다. 이삭의 삶은 아버지가 자신을 제물로 드릴 때도 끝까지 순종을 했고 40세까지 결혼을 하지 못했지만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께서 짝지어주는 배필을 만날 때까지 기도하며 끝까지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계속 우물을 빼앗기면서도 이삭이 무엇을 하는가 보십시오. 2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다시 우물을 팝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이삭의 신앙 생활입니다. 어떤 환경이 닦쳐와도 끝까지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면서 시간적으로 끝까지 지키는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시 119:33)" 질적으로는 전심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나로 깨닫게 하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시 119:34)" 시간적으로 즉각 순종하는 것입니다.(시 119:60)
"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치 아니하였나이다 (시 119:60)"

방백들의 비방 가운데서도(시119:23,51,161), 악인들 가운데서도(시119:61,95,110,157), 연기 중에 있는 가죽병 같은 환경 속에서도(시119: 83), 자기를 멸하려 하는 가운데서도(시 119:87), 비천한 가운데서도(시119: 141)도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어떤 복입니까? 25절을 보십시오. 즐거움과 지혜가 주어집니다(98). 32절을 보십시오. 마음을 넓히어 줍니다. 46절을 보십시오. 수치를 당치 않게 합니다. 49절을 보십시오. 소망을 줍니다. 50절을 보십시오. 곤난 중에 위로를 줍니다. 우리를 살립니다. 105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인생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165절을 보십시오. 큰 평안이 있습니다. 장애물이 없어집니다. 물질적인 축복을 받습니다(신 28: 1-14, 사 1 ; 19). 성령충만을 선물로 받습니다.(행 5 : 32).

그럼으로 말미암아 지속적인 축복을 누림으로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28절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순간, 결단의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를 테스트 하는 순간,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은 형통의 복을 주십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권력있는 부자집 중년 부인이 유혹을 합니다. 그 때 그는 그 유혹 앞에서 내가 어찌 하나님께 득죄하겠느냐며 단호하게 신앙을 고백합니다.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신앙으로 승리를 합니다. 만약 결정적인 순간에 쓰러졌다면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축복을 지속적으로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사울왕이 지속적으로 자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 때 그는 사울을 죽일 기회가 몇차례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운 왕을 자신이 죽이려하지 않았습니다. 지속적인 순종으로 지속적인 축복을 누린 것입니다.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에스더가 그랬습니다. 느헤미야가 그랬습니다.

지난 주에 기독교 방송 "새롭게 하소서"에 나온 어느 집사님의 간증을 테이프로 들었는데 지독히도 아내를 구타한 분이었습니다. 어머님이 지극히 불교에 심취했는데 외아들을 기르며 정성을 다했답니다. 집이 너무 가난하여 고학을 하며 야간 대학에 다니다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답니다. 그런데 아내가 처녀 때 교회에 나갔는데 그것을 자신에게 말하지 않고 결혼을 했답니다. 아이를 낳고 가정이 어려워지자 아내가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잠을 자면 밖으로 나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람을 피우는 줄 알고 자는 체 하다 아내를 미행해 보니까 교회에 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날 밤 아내가 들어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너무 화가 나가 아내를 구타했답니다. 교회에 안가겠다는 약속을 받을 때까지 구타했답니다. 이분은 한전에 다니는 분이었는데 어느날 직장에 갔다왔는데 집에 없더라는 것입니다. 밖에 나와 무슨 일을 하는가 감시하고 있는데 여러 아주머니들과 가방을 들고 오더라는 것입니다. 구역 예배를 드리고 오는 길이었는데 잡아다 마구 때렸답니다. 아무리 때려도 소용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발로 차고 두드려 온몸에 피멍이 들 정도로 때렸답니다. 그러자 아내가 부엌에 있는 칼을 가지고 화장실에 들어가더라는 것입니다. 갑자기 겁이 났답니다. 그래도 나오겠지 했는데 30분이 지나도 화장실에 나오지 않았답니다. 문을 열라고 하니 문이 잠겨 비상열쇠를 찾아 열고 들어갔는데 아내가 화장실에 누워 죽어 있었답니다. 칼로 손을 그어 피가 흐르고 유한 낙스 한 통을 다 마셔 버렸답니다. 급히 병원에 옮겨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께 기도했답니다. 아내를 한 번만 살려 주시면 교회에 나가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아내가 살았는데 그 때 아내에게 말했답니다. 당신 교회에 나가는 것 허락하겠다고 말했답니다. 아내는 너무나 좋아했답니다. 단 나에게 교회를 가자고 하지 말라고 했답니다. 그 약속을 하고 집에 왔는데 아내는 너무나 좋아하더라는 것입니다. 이제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합니다. 늘 기뻐하고 자신에게 잘 해 주더라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퇴근하여 발을 씻으려고 하는데 대야에 물을 떠 오더니 "당신은 앉아만 있어요. 내가 씻겨 줄께요." 라면서 발을 씻겨 주더라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아내에게 발을 씻김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로 끝날 줄 알았는데 매일 지속적으로 하더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미안해 어느날 교회에 가려고 화장을 하고 있는 아내에게 "나도 한 번 교회에 가볼까?" 자신도 모르게 말이 나왔답니다. 그러자 아내는 화장을 하다 말고 일어서서 남편을 껴안고 엉엉 울더라는 것입니다. 고맙다는 말을 연발하며 엉엉 우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아내를 안고 울었답니다. 그날부터 교회에 나갔답니다. 그 후 그는 변화되어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서 1000여명을 전도한 전도왕이 되었다는 간증이었습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께 순종하면 가정이 변하여 천국이 되고 교회가 변하여 부흥케 되고 직장이 번성하며 사회가 행복해 질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 보며 원망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 말씀에 지속적으로 순종하다 보면 세상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3. 우리는 신앙적 태도의 지속성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아 우리를 아는 사람들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28, 31)

이삭은 쉽게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삭에게 실패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의 환경이 결코 좋은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유목민이었습니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그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땅도 아닌 땅을 개간하여 농사를 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든지 하나님께 불평하며 원망할 수 있습니다. "이런 땅에 남아서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을 하다니요." 한 번 복을 주고는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게 합니까?라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우물을 파기 전에 와서 방해하면 그것도 조금 났지요. 다 파 노으면 빼앗아갑니다. 부도를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일으켜 놓으면 부도가 납니다. 이정도 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설명절에 세뱃돈 줄 것 없어 자살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자살할 힘이 있다는 우리 교회에 전화하면 그 돈 정도는 주었을텐데. 태도가 중요합니다.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인생이 다라집니다. 외모가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공부하는 것입니다. 미쓰 코리아 중에 공부 잘 하는 사람있습니까? 있을 수 있지만 별로 없습니다.
끝없는 실패가운데 이삭은 어떤 태도를 가졌습니까?

1)개척 정신을 가지고 그는 농사를 지었습니다.
아마 그는 땅을 개간하고 곡식을 심고 가꾸는데 각고의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그 후 그는 그곳에서 100배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복을 받은 후부터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어려움이 다가왔습니다.

2)고난이 다가올 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땅에서 사는 이삭이 부자가 된 것을 보고 그를 가만히 놓아 두지 않았습니다. 우물을 막아 버렸습니다(15). 우물은 삶의 필수품입니다. 이 지역에서 우물은 무엇보다 귀중한 것입니다. 이삭을 죽이려고 작정한 것입니다. 아주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이삭은 옛 우물을 다시 팝니다.(17-18절)

3)힘과 시간을 쓸데 없는 곳에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정면으로 대항하지 않습니다. 힘과 시간을 쓸데없는 것에 낭비하지 않습니다. 힘과 시간을 가장 효율적인데 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블레셋은 강력한 국가입니다. 그는 떠돌이 유목민입니다. 그들과 싸우는 시간에 하나님께 나가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4)그는 양보할 것, 포기할 것을 빨리 포기하고 집중할 것에 매달렸습니다.
그는 떠나라면 떠납니다. 그러나 당당합니다. 거기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새로운 길을 찾습니다. 아버지가 파던 우물을 찾아 다시 팠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메워논 우물입니다. 그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메달렸습니다. 그리고 그 우물을 아버지가 부르던 대로 불렀습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파 놓은 우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우물을 팝니다. 새 우물을 파기 시작합니다.(19-22절) 가축도 많고 식구도 많으니 물이 많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랄 목자들이 와서 자기 것이라고 우겨댑니다. 그것 양보하고 다시 파기 시작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밀려 골짜기 안쪽으로 더 들어갔지만 그래도 우물을 팝니다. 이번에도 자기 것이라고 우겨댑니다. 또 옮겨 우물을 팠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5)끝까지 평화를 고수합니다.
이삭도 가솔이 많이 있었습니다. 전쟁을 할 수 있습니다. 이삭이 전혀 힘이 없어 이렇게 밀려간 것이겠습니까? 13절을 보십시오. 노복이 심히 많았습니다. 29절을 보십시오. 그들을 이삭이 자신들을 해치려면 얼마든지 해칠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물을 약탈해 가는 사람들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악을 선으로 대합니다. 끝까지 평화를 고수합니다. 계속 밀려가면서도 평화를 고수합니다. 죽을 것 같습니다. 평지에서 농사를 짓다 골짜기로 골짜기로 밀려갔습니다. 그러나 이삭을 밀려가면서 장소를 넓혀주시는 르호봇의 하나님을 만납니다. 브엘세바로 올라갔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24) 두려워 말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너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6)이런 이삭의 지속적인 신앙적인 태도를 보며 결국 블레셋 사람들의 태도도 변화된 것입니다. 이제는 저들이 전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들이 인정해 줍니다. 저들이 약탈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평화를 원합니다. 28절을 보십시오. 평화계약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화조약을 맺었습니다(31). 망할 것같지만 망하지 않고 오히려 인정받고 존경을 받습니다. 아비멜렉 왕이‘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네가 떠나고 나니까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이삭을 잘못 다루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삭이 져주고 낮아졌을 때 하나님께서 이삭의 손을 들어 준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 까지 내어줌으로 세상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거기에 굴복하지 않는 신앙 인격의 지속성이 결국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신앙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물은 받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만들어 집니다.
"태도를 바꾸면 성공이 보인다 "라는 책이 있습니다. 웨인 코데이로 가 지은 것입니다. 하와이, 괌, 사모아, 핀란드, 일본 등지에 20개 이상의 교회를 개척하신 분입니다. 작사·작곡가이자 연주가로 활동하여 여섯 개의 앨범을 내놓은 분입니다. 잡음 때문에 듣기가 힘든 라디오도 헤르츠만 조정해 보면 잡음이 갑자기 스테레오의 교향곡으로 변화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조그만 태도의 차이가 큰 변화를 가져온다고 말합니다. 태도는 성공과 실패를 결정한다고 말합니다. 내가 끼는 안경의 빛깔에 따라서 이 세계는 푸르게도 보이고 검게도 보이고 밝게도 보이고 어둡게도 보입니다. "인생의 10퍼센트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로 구성되며 나머지 90퍼센트는 그 일어나는 일에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느냐로 구성된다."라는 격언처럼 사실보다 그 사실을 해석하고 접근하는 태도야말로 인생의 미래를 만들어 내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커밍워크는 성공의 요인을 네 가지로 요약해 말합니다. 첫째는, "머리"가 좋아야 하며, 둘째는 "지식"이 있어야 하며, 셋째는 "기술", 넷째는 "태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 요인 중에서 성공적인 삶에 적어도 93% 이상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태도"라고 하였습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의 처남 프랑크 밴더 마이틴은 18살 때 아이오니아 주 제일의 바이올린니스트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경영하는 대장간에서 사고를 당하여 왼손에 단 쇠가 떨어졌습니다. 바이올린을 잡던 손가락이 잘리어졌습니다. 엄지만 남았습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이올린 활을 왼손으로 잡았습니다. 오른 손으로 4줄을 잡고 연습을 하였습니다. 아이오와 주 교향악단 바이올린니스트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런 말을 하였습니다. "내가 불구자라고 생각하기까지는 결코 불구자가 아니다"
불구가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인생의 미래는 달라집니다. 불구가 된 사실을 절망으로 받아들인다면 그의 미래는 어두운 그림자로 가득찼을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바꿀 수 없는 태도'란 없습니다. 우리는 인생과 세계에 대하여 세 종류의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첫째, 긍정적 태도냐, 부정적 태도냐. 둘째, 적극적 태도냐, 소극적 태도냐. 셋째, 낙관적 태도냐, 비관적 태도'입니다. 태양이 있는 곳에는 항상 그림자는 있는 것입니다. 하루가 어둠과 밝음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항상 부정과 긍정은 동시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문제만 보는 사람에게는 문제만 보이고 해답을 보는 사람에게는 해답이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의 눈엔 하루의 생활 가운데서도 수많은 하나님의 부재 이유를 발견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무수히 많은 존재의 이유를 삶의 현장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지속적으로 하루 1%만 개선하면 1년이면 300% 이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믿는 다고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어도 질병에 걸릴 수 있고, 사업에 실패할 수 있고,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태도가 다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환난이나 고통이나 위험이나 죽음이나 질병이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파도가 한 번 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우리가 어린 아이로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춘기를 거치고 청년기의 고뇌를 해야 하고 가정을 꾸려 자녀를 길러야 하고 중년기의 슬럼프를 극복해야 하고 노년기의 노쇠현상을 격어야만 합니다.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신앙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기 속에서도 담대한 신앙을 가지고 사는 우리의 삶의 태도를 보고 자식들이 변화됩니다. 나를 아는 이웃들이 변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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