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16~20)

  • 잡초 잡초
  • 384
  • 0

첨부 1


- 설교 : 유관지 목사

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주님이 열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평소에 이 말씀을 살필 때는 이 말씀의 중간 부분, 19절과 20절의 전반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여기에 초점을 둡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의 끝부분, 20절의 후반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말씀에 초점을 두어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약속을 확인하는 가운데 은혜와 교훈을 얻기 원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말씀은 ‘임마누엘의 축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임마누엘이라는 말의 뜻은 여러분 모두 잘 아실 것입니다.
또한 잠시 후에도 다시 한 번 말하게 될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말씀은  마태복음의 핵심 문장입니다.
마태복음은 시작부분인 1장 22절과 23절에서 이 말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리고 끝에 가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와 같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강조하고 싶은 말을 처음과 끝에 두어서 서로 맞물리게 하는 것을 수미쌍관법(首尾雙關法)이라고 합니다. 머리와 꼬리가 고리처럼 맞물리는 문장법이라는 뜻입니다.
수사법에서는 강조하고 싶은 것을 앞에 두는 것을 두괄식(頭括式)이라고 하고, 끝에 두는 미괄식(尾括式)이라고 합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을 앞과 꼬리에 두는 것을 쌍괄식(雙括式)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은 강조하고 싶은 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를
앞과 끝에 두는 쌍괄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표현을 인클루시오(inclusio) 라고 부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마태복음은 중간에서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18장 19절과 2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니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 19~20)

부활하신 주님은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물론 주님을 말합니다.

주님은 어떤 분입니까?
이 문제에 대해 답을 찾는 것을 기독론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출간된 기독론에 관한 저서들을 한 권씩만 갖다놓는다고 하더라도 이 방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오늘은 부활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서, 주님은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분이라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또한 본문 안에서 이 문제의 답을 찾아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은 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18절을 다시 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습니까?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십 일을 금식하셔서 주린 가운데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습니다.
세 번째 시험이 마귀가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이며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만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는 말씀으로 이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는 십자가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습니다.
마귀는 땅의 권세만 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땅의 권세는 물론 하늘의 권세까지 주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여기에서 “너희”는 일차적으로 갈릴리의 어느 산에 모인 열한 제자를 말합니다.
여기에서 “너희”는 나가서 복음을 받고 제자가 된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너희”는 오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 이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 하나하나를 말합니다.

여러분, 사망권세를 이기신 주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여러분 한 분 한 분과 함께 있다고 하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약속입니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있겠다고 하십니다.
항상은 매일, 매일을 말합니다.
항상은 언제든지를 말합니다.
항상은 좋은 날, 기쁜 날, 슬픈 날을 모두 말합니다.

성경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신 기록들을 살펴보면 이 말씀이 사실인 것을 알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디베랴 호수가, 제자들이 고기 잡는 곳에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대부분 어부, 호수는 어부들의 삶의 현장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디베랴 호수가 제자들이 고기 잡는 곳에 나타나셨다는 것은 주님께서 오늘,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의 직장에, 학생들에게는 공부하는 학교에, 가정주부들에게는 주방에 나타나서 만나주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제자들은 날이 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아무 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습니까?
바로 그 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시는 것을 아셔야합니다.
그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학생들, 입시가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까? 수능고사가 두렵습니까?
바로 그런 분들에게 주님이 나타나신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 실망의 낙향길입니다.
주님은 그 두 제자의 눈이 밝아지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마음이 뜨겁게 해 주셨습니다.
두 제자는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길에서 된 일을 말해 주었습니다.
실망의 낙향길이 변하여 서둘러 사명으로 원대복귀 하는 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혹시 실망과 낙심 가운데 있습니까?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실망과 낙심이 재충전, 의욕 충만으로 바뀌시기 바랍니다.
주저하지 말고 곧 지금 바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대성전에 입당하면서 교회에 걸려 있던 미술품들을 재배치했습니다.
성도들 가운데 미술가들이 모여 재배치 원칙을 정하고 이 작업을 했는데 교육관에는 주로 한국화들을 두기로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교육관에 들어오시다가 정면에 국화를 그린 대형 한국화 한 점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 교회 예배에 출석하는 중진 화백 한 분이 몇 해 전에 기증한 것을 이번에 입당예배를 드리면서 표구를 해서 건 것인데 그 그림의 오른쪽에 시편 23편이 한문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23편은 저희 교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말씀이지요.
저희 교회의 자랑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교회 신문의 제목 「푸른 풀밭 맑은 시내」도 시편 23편에서 왔습니다.
오늘 교회 표지석 제막식이 있습니다.
이 표지석은 지난 2003년에 장로로 선출되어 지난 번 이 자리에서 열린 지방회에서 안수를 받은 일곱 분 장로님들이 봉헌하는 것입니다.
표지석 앞면에는 교회 이름이 크게 새겨져 있습니다.
뒷면에는 시편 23편 2절의 말씀,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 하시는도다

이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그림은 그 화백이 저희 교회를 위해서 특별히 그린 것은 아닙니다. 그 분이 주일 저녁에 저를 화실로 오라고 하더니 ‘목사님, 제가 오늘 낮예배에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제가 건축을 위해서 그림 한 점을 기증하고 싶은데 목사님 마음대로 한 점을 택하십시오.’ 하기에 제가 그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나요, 무조건 큰 것을 택해서 가지고 왔지요.
나중에 보니까 그 그림에 시편 23편이 기록되어 있더군요.
목양교회 성전은 성서적인 원리 위에서 건물자체가 선교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경건성, 예술성, 실용성, 안정성을 갖추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교회가 본당, 교육관, 잔디 정원, 셋으로 구성된 것은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원적이며 그리고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갖추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한국화에 쓰여진 시편 23편을 보면서 이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담임목사실 앞의 벽에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함께 하는 예수님의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이 그림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미술품 이야기가 나온 것인 데요, 미술품 재배치의 원칙에 따라 그 그림도 일단 떼더군요.
그러더니 나중에 도로 그 자리에 붙여놓았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저는 ‘목사님, 목회를 하시다가 혹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처럼 실망되는 일이 있으면  예수님을 만나서 힘을 내세요.’ 하는 뜻으로 그렇게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식탁에도 자주 나타나셨습니다.
식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번 사순절에 금식하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새벽에 사망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여러분과 항상 함께 계십니다.
이 사실 앞에서 여러분과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제부터 이것을 함께 생각합니다.

첫째,  이와 같은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들었을 때 그들은 아마도 돌아서서 눈물을 씻으며 감격했을 것입니다.
그 제자들이 어떤 제자들입니까?
예수님이 잡히실 때 그 분을 버리고 도망친 제자들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한 제자들입니다.
제자들만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도 때때로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우리도 때때로 주님의 일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사면의 선언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 사면의 선언을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 주님은 지금 우리들에게 우리의 부족함, 우리의 허물, 우리의 부끄러운 일들을 묻지 않고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구원 받을 자격이 없는데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 말씀을 들을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도 여러분, 은혜입니다.
여러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할 때 부활에 대한 의심을 버리게 됩니다.

17절을 보세요.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예수님을 만난 여인들로부터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인들로부터 ‘예수님이 먼저 갈릴리로 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는 말을 듣고 갈릴리에 왔습니다.
과연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 경배를 하면서도 ‘이 분이 과연 예수님인가?  부활이 정말 가능한 것인가?’ 의심하였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로 교회가 탄생하고, 그 교회가 박해를 이기고 퍼져나가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120년 전 부활절에 한국에 들어와서는 한국사회를 변화시키고,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 놓고, 나를 바꾸어 놓는 것을 보면서도 주님의 부활에 대해 아직도 의심하지는 않으십니까?

의심하던 제자들도 주님이 자신의 허물을 들추지 않고 사명을 주고 격려를 하는 것을 겼으면서 ‘아, 이 분이 바로 그 예수님이로구나! 이런 성품을 가진 분은, 이런 명령을 하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다!’ 하면서 의심을 버렸을 것입니다.

주님이 오늘 여러분과 저에게 하는 이 말씀을 통해 감사하는 가운데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의심을 버리고 확신을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이 항상 함께 하시는 사람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항상 함께 하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항상 기뻐하는 삶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 8절 후반부에서 10절까지에서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부활을 믿는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특히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은 “항상 기뻐하라”고 가르칩니다.
빌립보서 4장 4절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항상 함께 하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항상 깨어 있어서 기도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일들을 말씀하시면서 누가복음 21장 36절에서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2장에서 의롭다 인정함을 받은 성도들의 삶에 대해 말하면서 12절에서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이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항상 함께 하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삶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부활하신 주님이 항상 함께 하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항상 양심에 거리낌 없기를 힘쓰는 삶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 총독 벨릭스 앞에서 피고의 신분으로 진술을 하면서,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행24: 15~16)

라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항상 함께 하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항상 담대하게 사는 삶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5장 5절과 6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다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항상 함께 하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항상 복종하여 구원을 이루는 삶입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부활하신 주님이 항상 함께 하는 삶은 어떤 삶입니까?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항상 누리는 삶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6절,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바라노라

여기에는 항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까 항상은 매일매일, 모든 일이라는 뜻이라고 한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데살로니가 3장 16절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그대로 이뤄지기를 기원합니다.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신 부활의 주님을 모시고 항상 기뻐하는 삶,
항상 담대하게 사는 삶, 항상 복종하여 구원을 이루는 삶,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항상 누리는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우리들은 전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축복은 그러니까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민족이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 생명의 권능을 믿도록  세상 끝까지 나가라는 권면입니다.
요약해서 전도의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사명, 큰 사명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지상명령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근거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내가 함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선교사역에 매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의 성공적인 선교사역을 위해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함께 계신 주님의 권능으로 담대히 복음을 선포하고 초대교회를  세워 굳게 지켜 나갔습니다. 
이 말씀이 초대교회라는 공동체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때때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 너무 죄가 많고 무능력하여 주님의 일을 하기에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좌절하지 말고,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담대히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 백성과 늘 함께 하시는 다시 사신 그리스도,  전능하신 구세주 안에 이 세계가 거하도록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 안에 역사하기 때문에 오늘 갈릴리 산상에서 있었던 주님의 말씀에서 시작된 기독교 역사는 그 약속을 성취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온전히 성취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헬라어 원어를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예언적 현재라는 특수한 시제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미래의 일이지만 현재의 일과 같이 확실하다는 뜻입니다.

어떤 젊은 설교자가 오늘의 본문으로 설교를 하면서 ‘여러분,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약속입니까?’ 이런 말로 끝을 맺었습니다.
예배가 끝난 다음에 연세가 많은 성도 한 분이 ‘목사님, 아까 목사님께서는 이 말씀이 놀라운 축복의 약속이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약속이 아니라 사실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연세 많은 성도는 평생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젊은 설교자의 이름은 캠펜 모르간인데 이 체험에 도전을 받아 힘 있는 설교에 더욱 힘써 나중에는 세계적인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분의 설교집이 여러 권 번역되어 나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부활주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모두 받은 주님께서 나에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십니다.

부족한 나에게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면서, 의심을 버리고, 부활하신 주님이 항상 함께 하는 사람답게 살고, 주님이 주시는 사명을 앞장서서 감당하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