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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배의 유혹 세가지 (출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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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오창우 목사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오늘 이 아침에도 높으신 은혜로 예배하는 여러분에게 허락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자아시죠? 저희 어머니는 피자를 보고 서양빈대떡이라고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젊은 사람들이 참 좋아하죠!! 그런데 세계에 3대 피자회사하면 피자헛, 도미노, 리틀시저스라고합니다. 저마다 특징이 있는데 피자헛은 “다양한 메뉴”, 도미노는 “남보다 빠른 배달”, 리틀 씨저스는 “싼가격”이라고 합니다. 이런 특징이 세계 1, 2, 3위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파파존스라고하는 피자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36세의 젊은 사장 슈네트라는 사람이 파파존스라고하는 피자집을 만들었는데 그 매출이 매년 2배이상 오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파파존스가 기존 피자회사의 기대 이상으로 세계적인 피자회사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파파존스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가 무엇인가 했더니 파파존스는 “피자의 본질에 도전한다”는 것입니다. 피자의 본질이 무엇인가? 두말 할 것없이 맛입니다. 맛으로 승부를 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재료, 최고의 맛, 최고의 영양가, 재료나 맛이나 영양가에 있어서 최고를 외치는 것입니다. 피자의 본질의 승부가 소비자들을 감동시키고 미래의 소망이 있다고 얘기를 했어요. 저는 이 글을 보면서 생각해보았어요. 우리의 신앙생활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신앙생활의 본질이 과연 무엇일까? 이제는 다양한 메뉴라던가 빠른 배달, 싼값이라는 것은 다 기본이 된거에요.

마찬가지로 우리교회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일이 많이 있지만은 그 주변 것을 다 정리하고 한마디로 정리를 하면 무엇일까? 예배다. 예배는 하나님과 우리의 만남을 지칭하는데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은 높고 사람은 낮습니다.’ 고백하는 것이 예배 아닙니까? 여러분 예배가 교회의 본질이고 신앙생활의 기본이라는거 아십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이유도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거에요. 이사야서 43장 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예배드리게 하려고 우리 사람을 만드셨어요. 이 예배에 대한 거부가 죄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만남을 거부한 이유가 마귀의 유혹, 그리고 “너 자신이 하나님이 되라”고하는 그래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를 거부한 겁니다. 이 유혹을 받아서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드리잖아요. 이 자체가 죽음입니다. 지옥입니다. 반대로 구원은 뭡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에게 천국을 주시고 생명을 주신 이유가 뭐냐 말이에요. 여러분 천국은 죽음도 없고 슬픔도 없고 고통도 없는데 있는 건 단하나 하나님을 믿게 하는 거에요. 천국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저 천국!! 그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거에요. 지옥은 예배가 없어요. 거기에 생명이 있고 거기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4장에 수가성 여인과의 대화 중에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누구를 찾으시느냐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예배는 창조의 회복이고 바로 천국의 역사다」라고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생활의 본질은 예배다. 하나님을 높이고 우리는 낮아지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도 마귀는 우리에게 하나님보다 우리가 높아지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 반대로 하나님을 낮추는 것 바로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에 바로 예배에 대한 도전과 유혹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의 말씀은 출애굽의 상황인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고통소리와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애굽의 노예에서 이스라엘을 구출하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됐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바로를 찾습니다. “내 백성을 애굽에서 보내달라.” 그 이유가 뭡니까? 자유를 달라! 빵을 달라! 아닙니다. 휴식을 달라 그것도 아닙니다. 뭡니까? 예배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셨다는 겁니다. “내 백성들로 광야로 가서 예배하라.”예배하러 가는 것이 출애굽의 목적이었다는 거에요. 여러분 모세의 제안에 대해서 바로가 순순히 응하지를 않습니다. 그리고는 타협안을 내놓습니다. 유혹입니다. 오늘 본문 이후에 세마디를 합니다.

첫 번째는 '이 땅에서 제사하라’ 순종에 대한 유혹입니다.
두 번째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마라’ 신앙계승의 유혹입니다.
세 번째는 '제물없이 제사하라’ 헌신에 대한 유혹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속에는 순종과 신앙계승과 헌신 이렇게 세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겁니다. 이것을 하나라도 뺄려고 하는 바로의 마음이었다는 겁니다. 오늘 바로가 예배를 예배답지 못하게 하는 그런 유혹 세 가지를 생각하면서 오늘 우리 예배에 이 세 가지를 다시 한번 정립시키고 하나님 앞에 바로설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는 순종의 유혹입니다.
출애굽기 8장 25절로 27절까지 있는 말씀을 우리 같이 찾아보겠습니다.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 모세가 가로되 그리함은 불가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는 것은 애굽사람의 미워하는 바이온즉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되 우리에게 명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아멘
여러분! 바로가 유혹합니다.
“제사를 꼭 광야에 가서 드려야 하냐 사흘길을 가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냥 여기서 제사를 드려라.”
바로는 바로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아니다. 그 말은 부당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했습니다. 광야에 가서 제사 드리라 했습니다. 여러분 예배 속에는 순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 있습니다.
미국 이민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집사님이 예배당은 안오고 골프장에만 가요. 그래서 목사님이 그랬데요.
“왜 주일에 집사님이 예배당 안오고 골프장에 가시냐고 ”그랬더니 이 집사님이 말하길
“내가요. 예배당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 골프장이 머릿속에서 그냥 왔다갔다하는데요, 볼을 치는 것, 퍼팅하는 것이 머리속을 왔다갔다해서 도저히 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몸은 예배당에 와있지만은 마음은 골프장에 가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내가 골프장에 가니까 몸은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있지만은 이 마음은 계속 예배당에 예배드리는 모습이 자꾸 상상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가 깨달은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그래서 나는 골프장 가기로 했습니다. ”
말이 됩니까? 안됩니다. 얼마나 성경도 잘 들이 대는지..예배는 순종입니다. 힘들고 어렵습니다만 순종이 예배속에 있습니다. 이미 순종에서 승리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사울과 다윗, 이 두 임금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디에서 하나님이 복주시고 어디에서 하나님이 벌주셨어요? 예배입니다.
사울임금이 많은 이스라엘 가운데 높임을 받았어요. 왕이 됐어요. 얼마나 대단한 영광입니다. 그런데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제사를 드려야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은혜받고 전쟁터에 나가야하는데 제사장이 안와요. 사무엘이 빨리안와요. 그러니까 사울임금이 그럽니다.
“자! 기다려도 안오니까 내가 제사드린다. 번제와 화목제 가져와”
자기가 제사장의 몫을 대신해서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를 분명히 드렸습니다. 사무엘이 이 사실을 알고는 책망을 합니다.
“이건 당신일이 아닙니다. 그건 내게 맡겨진 일입니다. 당신은 나라를 다스리고 나는 제사를 드리는 것이 사명입니다. 근데 어떻게 그것을 빼앗을 수 있습니까?”
그 후에 아말렛과의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시험하신다고 하셨어요. 순종하나 안하나.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이기게 하는데 조건이 있다. 전리품을 절대로 가지고 오지 말라. 사울이 전쟁을 하다보니까 아말렛에 너무 좋은 제물들이 있어요. 아깝거든요. 그래가지고 좋은 소와 양을 가지고 왔어요. 그때 사무엘이 얘기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하기를 전리품을 가지고 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가져왔습니까?”
라고 하니 하는 말이
“이것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려고 한다”
그때 사무엘이 얘기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하나님이 무슨 제물이 없어서 배고파하십니까? 아니라는 거에요. 하나님은 예배속에 순종을 보십니다. 순종을 보신다는 겁니다.
반면에 다윗은 어떻습니까? 다윗!! 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살인죄를 범한사람입니다. 그전에는 간음죄도 범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말년에는 자기 아들에게까지 배척을 당해가지고 쫓겨나 피난갔습니다. 사람들이 돌을 던지면서 조롱을 합니다
“아이고 자식에게 쫓겨나고는 이 나쁜놈, 나쁜놈”
그중에 시무이라고 하는 얼마나 욕을 해 대는지...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나 성실한 사람인지..잘못을 지적하면 “예! 잘못했습니다.” 밤을 세워가면서 회개를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남이 돌을 던지면 그 돌을 던지는 것에 대해서 원수 삼을 수 있지만은
‘아니야!! 하나님이 저로 하여금 나에게 돌을 던지게 하시는 구나’
자기가 회개하고 자기의 부족함을 내놓고
‘아니 자식도 나를 버리는 데 남이 나한테 이럴 수도 있지...’

여러분 기독교의 영성 가운데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를 깨닫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높이는 거에요. 어떠한 상황이 내게 주어진다고 할지라도 그 상황속에서 내가 낮아지는 겁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겁니다. 이게 예배에요. 순종이라는 거에요. 다윗이 그렇습니다. 성전건축 하겠다 할 때에 하나님께서 “안된다. 피를 많이 흘려서.. ” 내가 헌신하겠다는데 하나님의 거절 앞에도 “예!! 알았습니다.”순종할 줄 압니다. 성전건축이 했다 안했다가 문제가 아니에요. 순종하는 마음이 있느냐...예배 속에는 순종이 있어요.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고 행할 때에 어떻게 합니까? 원수를 갚을 기회가 있다고 원수를 갚습니까? 왜? 부하들에게도 말합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종은 내가 어찌하랴.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과 나와의 예배의 관계, 그중에서 순종이냐 아니냐로 구분을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 마음을 보고 외모를 보지 않고 마음 중심을 보는 것은 다윗 때문에 나온겁니다. 다윗의 마음은 언제나 순종하는 마음이 있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복 받을 증거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복과 은혜를 주시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는 일요일을 일요일이라 하지 않고 주일이라고 하고 성일이라고 합니다. 성일이 뭡니까? 거룩한 날입니다. 거룩은 뭡니까? 하나님의 날입니다. 이날은 공휴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날이다. 하나님의 날에 순종 할 줄 알면
“내가 성일에는 하나님 앞에 가야지..”
순종입니다. 이것을 가르켜서 성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물건입니다. 하나님의 것!! 귀하죠. 귀하게 써야지요.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도 귀한 것 드려야 해요. 아주 좋은 것으로 말입니다. 왜? 하나님의 것이니까요. 순종이 그 마음에 있는 거에요. 하나님으로부터 직분을 받았습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교회학교 교사, 찬양대, 구역장, 권찰 하나님의 교회가 주신 직분은 성직이다. 왜? 하나님의 것이니까. 이거 귀하게 잘 감당해야죠. 순종하는 마음이 그 안에 있는지 하나님이 보시는 거에요.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귀하게 여길 줄 압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성’자만 들어갔으면 귀하게 여기는 마음 그게 순종이에요. 하나님의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말입니다. 하나님의 날, 하나님의 직분- 하나님이 맡긴 직분 말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물건들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것은 순종을 잘 했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의 기적의 첫 번째는 물이 포도주로 변화된 것도 순종하는 일꾼들이 있어서 그랬어요. 오병이어의 기적도 판단하는 빌립이 아니라 순종하는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었던 거에요. 예배속에는 순종이 있어요. 주일날 되면 성일이라. 하나님 전으로 찾으러 온 여러분에게 하나님 큰 은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승리함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면 귀함 받고,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면 존귀함을 받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 하나님이 경멸하시고 주의 날 귀하게 성일로 여기고 하나님 앞에 나온 여러분 다시 한번 큰 은혜가 임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는 신앙 계승의 유혹입니다
신앙계승의 유혹!! 바로는 말입니다.
“뭐 얘들까지 제사 하는데 데리고 가냐. 장정만, 어른들만 하나님한테 제사 드리게 하지 ”
이렇게 요구를 합니다. 그러면서요 참 재밌는 얘기는 어린애들까지 같이 가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니까 안된다고 그러는 거에요. 출애굽기 10장 8절부터 11절까지 함께 보겠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로 다시 데려오니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갈 자는 누구뇨 모세가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노소와 우양을 데리고 가겠나이다.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와 너희 어린것들을 보내면 여호와를 너희와 함께 하게 함과 일반이니라 삼갈찌어다 너희 경영이 악하니라 그는 불가하니 너희 남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의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 아 멘

어린아이들은 가지 말고 어른들만 가라는 것이 바로의 유혹이고 그것이 신앙의 도전입니다. 여러분 아이들도 예수믿고 아이들도 예배드리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들 하시죠? 꼭 그렇게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미래를 불안하게 느끼는 몇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 첫째가 노령사회의 증거입니다. 사람나아 65세이상이 되면 노인이라고 일컸는데 노령화 사회는 전인구의 7%는 노령화사회입니다. 그런데 인구의 14%가 되면 노령사회로 진입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2000년도에 이미 노령화사회가 됐고 2020년에 가면 노령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급속하게 노령사회로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입니다. 프랑스는 115년, 스웨덴은 85년, 미국은 71년이 걸렸는데 우리나라는 20년이 안되는 시간안에 노령사회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럼 노령사회가 무슨 문제가 있느냐 소수의 생산인구가 엄청난 노인들의 생계문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겁니다. 연금문제 가지고 한참 얘기가 있잖아요. 그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렇습니다. 앞으로 연급 지급 불능이라는 문제가 올거라는 겁니다. 불안하지요. 경제 생산성이 떨어지고 살길이 막막하다는 그러는 거에요.
대안이 뭐가 있냐?? 노인들의 사회의존도를 낮춰라 다시 말하면 연금, 이런 혜택같은 것들을 낮추라는 말입니다. 미국은 이런 것에 대한 대안을 연금으로 풀지 않고 스스로 해결해라 그렇게 방향으로 나간다고 그러지 않아요. 두 번째는 더 많은 생산성 인구를 세대를 길러내라는 겁니다. 세 번째는 자식의 의무를 강조해라. 이게 대안입니다. 과연 이게 가능하겠습니까? 현실이 그렇지 못합니다. 미래의 불안은 기러기 아빠를 양성해서 조기유학을 시킵니다. 기러기는 암컷이 자식을 떠나면 수컷이 자식을 키웁니다. 그런 동물입니다. 우리나라에 엄마와 아이들은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고 아빠는 자취생활을 하면서 유학비 생활비대고 보통 힘든게 아닙니다. 그런니까 자살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뿐만 아니라 결혼 기피현상과 출산률 저하, 대안으로 내놓은 모든 것들이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이 나라를 자꾸 떠나잖아요. 젊은이들이 말이에요. 농촌을 떠나듯이 나라를 계속 떠납니다. 여기는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그러니까 여기에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애국자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어저께 조선일보를 보는데 책을 소개하는 코너가 토요일에는 꼭 있습니다. 그런데 책소개하는 곳에「인간은 기후를 지배 할 수 있는가 」윌리암 스티븐슨이라는 사람이 쓴 책을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지구가 가뭄과 홍수와 폭설과 폭풍과 쓰나미 이런 모든 것들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이 기후를 지배해야만 한다. 기후협약하는 교토협약사가 발간이 됐습니다만 이 책은 이겁니다. 인간이 기후를 지배할 수 있느냐 “없다”는 거에요. 대안이 뭐냐? 대안도 “없다”는 거에요. 이게 우리의 대안이냐? 없는게 우리의 대안이에요.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어요? 누가 이 나라의 삶을, 우리의 삶을 누가 이 지구의 기후를 책임지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봐도 대안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대안을 내 놓아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안은 딱하나뿐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합니다. 유럽이 한창 세계적으로 가장 잘 사는 나라, 아주 사회 복지가 참 잘되고 그러던 때가 있었습니다. 몇십년전 일이죠. 오슬로에서 청년대회가 열렸습니다. 정말 잘 먹고 잘 사는 나라의 청년들은 무슨 고민이 있겠나. 그런데 이곳에 청년들도 고민이 있었어요. 너무 잘 먹고 잘 사니까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절망을 하는 거에요. 그래서 자살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복지정책이 잘된 나라일수록 그렇다는 거에요. 사람은 일을 성취하지 못해서도 절망을 하지만 성취하고 난 다음에도 절망하는게 우리 인간입니다. 우리의 젊은이들도 예외가 없습니다. 잘 먹으니까 잘 입느니까 이들의 관심이 어디 가있습니까? 얼마나 잘 입고 얼마나 잘 먹겠어요? 더 이상 관심이 없습니다. 자라면서 굶고 자란 세대속에는 지금은 젊은이들이 천국같겠지만 좀더 살기 힘들다는 거에요. 왜? 꿈이 없어요. 소망이 없어요. 대안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소망이 생깁니다. 하늘나라, 하나님 나라 건설에 소망입니다. 그런면 살수 있습니다.

여러분 에드워드 모추라고하는 케비넷 제조공이 있습니다.35살입니다. ‘내가 이 나이가 들도록 뭐했나’
공장에서 일하면서 원망, 불평하면서 망치나 두들겼다고 그래요. 그런다가 이분이 예수를 믿었어요. 과거에는 세상만 보고 살았는데 지금은 하나님의 세계,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사니까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얼마나 마음이 기쁜지 케비넷을 만드는 망치소리가 달라졌다고 그래요. 뭘 만들었느냐? 과거에는 사람이 쓰는 물건을 만들었었는데 지금은 하나님이 물건을 만들었어요.
“주여! 이 케비넷이 만들어져 쓰는 사람마다 예수 믿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사랑받게 해주소서.”
예수를 믿으니까 사람이 달라져요. 인생의 목표. 내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냐
“예수님처럼 되야지 ”
과거에는 잘 먹고 잘 입는 것이 목표였지만은 이제는 예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게 목표가 됩니다. 과거에는
“언제쯤 저렇게 큰 집사나” “언제쯤 대우받나”
이것이 목표였지만 이제는 그게 아니에요. 하나님나라 언제쯤 건설해야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가정이 하나님 나라가 되고 내 직장이 하나님 나라가 되는거에요. 그래서 이분이 찬송가도 짓고 하나님의 교회도 건축해서 하나님께 바쳤어요. 예수 믿으니까 달라지더라는 거에요. 찬송을 지어서 불렀어요.

이몸에 소망 무엔가 우리주 예수 뿐일세
우리주 예수 밖에는 믿을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 이시니 그위에 내가 서리라
그위에 내가 서리라
할렐루야!
아 멘

하나님의 꿈을 갖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본받습니다. 그러니까 기쁨이 있고 능력이 나타나는 겁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꿈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에 참석하게 하고 우리 모두에게 희망이 있을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헌신에 대한 유혹입니다.
재물 없이 제사하라는 겁니다. 출애굽기 10장 24절을 보겠습니다.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 양과 소는 머룰러 두고 너희 어린 것은 너희와 함께 갈찌니라 모세가 가로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화와께 드릴 희생과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우리의 생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취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면 또 우리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 아멘

여러분 바로가 우리게게 요구하는 것은 제물없는 제사입니다. 헌신없는 예배입니다. 여러분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기차 여행중에 같이 앉은 사람들끼리 얘기를 하다보니까 서로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아아구 어느교회 나가느냐고 서로 인사를 하고 가는데 점심시간이 되가지고 한사람은 도시락을 준비해가지고 와서 먹고 있고 다른 한사람은 도시락을 준비를 못했어요. 도시락 갖은 사람이 도시락뚜껑을 여니까 그 안에 샌드위치가 있어요. 얼마나 맛있게 생겼는지... 정말 맛있게 먹더래요. 옆에서 보고 있던 다른 그리스도인이 혹시 샌드위치하나 안주나 기다리고 있는데 안주는 거에요. 그래서 머리를 썼어요.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도 잘 아시는 것처럼 성경에 보니까 「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그랬다고 그러네요” 그랬어요. 그랬으면 하나 줘야 할 것 아니에요. 무슨뜻인줄 알고 정색을 하면서 하는말이
“선생님! 성경에 보면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라고 하더라구요”

행함이 없은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주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들이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럼므로 헌신을 해야 합니다. 크래머신학자는 교회의 본질은 봉사에 있으며 봉사하지 않으면 아웃사이더가 된다고 했습니다.
무디목사님은 설교를 했는데 배움이 적었기 때문에 언제나 문법이 많이 틀렸습니다. 하루는 문법학자가 찾아와서는 많은 사람이 있는데 말을 합니다.
“목사님! 다음부터는 설교하지 마세요. 그게 무슨 연설입니까? 문법하나 제대로 맞지 않는 그런 연설 듣기 거북합니다.”무디 목사님이 그러셨습니다.
“ 예, 저는 배움이 적기 때문에 말 한마디를 해도 실수가 많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은요 어떻게 해서라고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려고 하는 헌신하는 마음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용서하세요. 그런데 박사님에게 교수님에게 한마디 묻습니다. 박사님은 그렇게 좋은 능력을 가지고 얼마나 하나님께 헌신하십니까? ”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를 가지고 얼마나 주를 위해 헌신을 하느냐 하나님이 우리 예배속에서 보고 계십니다. 한국교회가 이만큼 부흥한데에는 교인들의 헌신이 있었음을 빼놓을 수가 없어요. 오늘보다 과거의 교회들이 얼마나 믿음생활하고 헌신생활하기가 힘들었겠습니까? 갖은것도 적도 배운것도 적었어요. 그러나 어떠한 모습이라든지 헌신하려고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사렛다과부의 마음, 과부의 동정이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그걸 사랑하셔서 이 나라, 이교회를 이렇게 축복하신게 아닙니까. 저는 이 얘기를 듣고 이런게 있었구나. 헌금을 못하니까 우리는 헌일을 하겠습니다. 날일 자에요. 무언가 자세히 봤더니“나는 돈이 없어서 하나님께 바칠게 없습니다. 대신 나는 시간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시간내서 전도하고 시간내서 교회와서 청소라도하고, 시간내서 심방을 하고, 시간내서 교회참석 못하는 사람 찾아가서 교회나오라고 하고..
여러분 한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예배당 나오실 때에 여러분 이외에 다른 사람한테 연락을 해서 같이 예배당가자고 말 한사람이 있습니까? 결혼식 할 때나 찾지 말고 주일마다 여러분들 구역에 있는 식구마다, 남선교회, 여선교회식구들한테 다 연락을 해가지고 예배당가자고 하세요. 그건 누가 하는 일입니까? 따지지지 말란 말입니다. 내가 헌신하는 만큼 하나님이 은혜주시고 하나님이 승리케 하실 줄로 믿습니다.

예배드리는 것은 복입니다. 그 속에는 순종이 있습니다. 신앙의 계승이 있습니다. 미래가 그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헌신이 있습니다. 이런 진실된 예배속에 하나님께서 큰 은혜로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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