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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의 확실성 (고전 15:12-23, 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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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영무 목사

유명한 무디 목사님이 장례식 설교를 준비하고 계실 때의 일입니다.
  그 날 따라 성경에서 예수님은 어떤 장례식 설교를 하셨나 도움을 받고 싶어서 성경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장례식 설교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장례를 당한 가정에도 예수님이 가시면 그 장례집이 잔칫집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나사로라는 사람은 이미 죽어서 무덤에 묻히고 나흘이 지나 썩은 냄새가 났지만, 예수께서 가셔서 돌문을 치우게 하시고 “나사로야, 나오너라!”하고 말씀하실 때 그가 수족을 동인채로 걸어 나오는 장면을 우리는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이 죽어서 상여에 실려 나가는데 예수님이 지나가시다 보니 너무 안되어서 상여를 멈추게 하시고 “젊은이야,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실 때, 죽었던 젊은이가 눈을 뜨고 일어나 대화하게 되었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어서 모두가 깊은 슬픔에 빠져있을 때 예수님은 가셔서 “달리다쿰! 소녀야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실 때 죽었던 소녀가 일어나서 음식을 먹고 즐거워하며 대화하게 된 것을 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가셨던 곳 마다 예수님이 계신 곳마다 죽음의 권세는 사라지고 생명과 부활로 승리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함께 고난주간의 사건들을 기억해 봅시다.
  예수님은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나와 길가에 옷가지를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열렬하게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그 환영도 잠시 뿐 저들은 이내 바나바 대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군중들로 변하게 됩니다.
  결국 예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제사장들에 의해 체포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예수님은 그 고통 속에서 “내가 목마르다. 내가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이다”라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셨을 때 원수들은 쾌재를 부르고 즐거워했습니다. 마치 앓던 이가 쑥 빠져버린 것처럼 그들은 좋아했을 것입니다. 마치 그 시간은 어둠이 지배하는 시간 같았습니다. 불의가 정의에게 승리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미움이 사랑을 무색케 만들었습니다. 어둠이 광명의 빛을 통째로 삼켜 버렸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원수들과는 정 반대로 낙심과 절망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들은 실망했습니다. 능력 있으신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이렇게 무기력하게 죽을 수 있는지 그들은 상심에 빠졌습니다. 다락방에 올라가서 문을 걸어 잠근 채 두문불출하고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일부는 엠마오라는 고향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을 어찌 어둠의 세력이 오래 지배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 가운데 다시 일으키셔서 저로 하여금 생명과 부활의 주가 되게 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낙심하고 상심하여 슬픔 가운데 눈물 흘리는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평강을 선물해주시고 그들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 자리에 없던 제자, 도마는 “내가 직접 예수님을 보거나 만져보지 않으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마를 찾아오셔서 직접 너의 손으로 내 상처를 만져보고 믿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도마는 그 때 무척 감동해서 “나의 주시여,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 때 주님은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 것으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더 복되도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오늘날도 일부의 교우들은 도마처럼 예수님의 역사적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시도입니다. 부활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신비의 능력이고 초자연적인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너무 사모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육체로 부활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마음속에 부활했다고 실존적인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혹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와서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도난설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엔 십자가에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잠깐 기절했다가 장례를 치른 다음에 깨어나서 무덤 안에서 나오셨다는 기절설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육신적인 부활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입니다. 이 부활장에서는 부활에 대한 사도바울의 강력한 고백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을 잡아서 옥에 가두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하늘의 환한 빛이 그의 눈을 어둡게 만들었습니다. 눈이 멀어져 버렸습니다 그는 말에서 굴러 떨어졌습니다. 그 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서 아나니아라는 선지자에 의해서 안수를 받고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인생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핍박하는 인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는 구약성경에 기록된 것을 기초로 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오늘 성경 속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 3절부터 8절까지 읽겠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아멘!

  오늘 사도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500여명의 형제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먼저 게바 베드로에게, 열 두 제자들에게, 500여 형제에게, 야고보에게, 모든 사도에게, 마지막에는 만삭되어 나지 못한 사도바울 자신에게도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이 증인들 가운데 여자는 한명도 없습니다. 사실 복음서에 보면 최초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여인들이었습니다. 새벽 미명 아직 어둠이 가시기 전에 막달라 마리아와 마리아, 살로메는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녀들은 최초로 예수님을 만났던 인물들 입니다. 그러나 여인들의 이름이 여기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당시 문화에는 숫자에 남자들만 넣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어떤 면에서는 부활의 목격자로 남자들만으로 충분한 증인이 있기에 그랬을 것입니다. 

  신명기 19장 15절,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에서 드러나듯이 구약에서는 어떤 사건이 성립되려면 두 명 내지는 세 명의 증언이 있어야 사건이 성립됩니다.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사건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무려 5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증인으로 남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많은 증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부활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매년 같은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마음의 감격과 감동을 잃어버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부활은 부활이고 나는 나다”라는 식입니다.
  여러분들이 매년 부활절을 맞이할 때 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고난  당하시고, 생명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구속의 은총과 영광을 마음깊이 간직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죽했으면 이런 이야기가 있답니다. 고난주간에 교회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로마 병정에 체포당하시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붉은 피를 흘리며 운명하셨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때 초등학교 2학년 꼬마가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울더랍니다. 그러고는 “선생님, 예수님이 너무 불쌍해요! 얼마나 아프셨겠어요?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는데 너무 불쌍해요...”하더랍니다. 우는 아이 때문에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워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아이의 형이 옆에 있다가 이렇게 얘기하더랍니다. “선생님, 내버려 두세요. 얘가 아직 어려서 그래요. 예수님이 고난 받은 이야기를 진짜로 아나봐요!”

  초보적인 신앙의 단계를 가질 때는 있는 그대로 믿고 확신했는데 신앙의 연륜이 쌓여가면서 마음의 감격이 사라지고,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피 흘리신 그 놀라운 감격 앞에서도 남의 일 보듯이 생각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우리의 완악함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6장에 보면, 최초로 무덤을 찾은 여인, 막달라 마리아가 소개됩니다. 그녀는 빈 무덤을 발견했으나 그 무덤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슬퍼서 울고 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마리아는 기쁘고 감격스러워서 단숨에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소리 쳤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음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은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오늘도 부활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마음은 주님에게 책망과 질책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분명한 부활신앙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활신앙은 절망의 삶, 패배자의 삶, 염려하고 근심하는 삶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누군가 우리 주님을 훔쳐갔다고 걱정하며 근심했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내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내가 주님을 보았습니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달려가는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부활에 대한 애매모호한 태도와 불신앙과 염려의 태도를 던져버리고 확고한 부활의 신앙으로 무장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첫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승리”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원한 승리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김”이란 “승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바로 승리의 사건입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린 것만이 아니라 이세상의 모든 삶에 승리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냥 끝나버리셨다면, 이 땅은 어둠이 지배하는 죄악과 저주와 거짓과 절망의 세상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부활은 거짓에 대한 진리의 승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불의에 대한 정의의 승리이며, 미움과 저주와 분노에 대한 사랑의 승리이고,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인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세상의 권세 앞에서 우리를 무릎 꿇지 않게 하실 수 있습니다. 죄악을 정복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부활의 승리를 우리의 삶에 실현시켜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부활절 예배에 참석할 때엔 “예수 부활 하셨다.” “우리 주님 승리 하셨다.”라고 하다가 교회 문 밖에 나가면 패배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작은 시련 앞에 좌절하고 절망하고 무릎 꿇습니다. 낙심하고 절망에 빠져 버립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삶에 영원한 승리요 이김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인 삶 속에,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직장에, 우리 교회 공동체 속에 영원한 승리의 사건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의 부활은 “영생의 희망”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서는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첫 열매가 열리면,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열매가 열리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에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도 그의 뒤를 이어서 부활할 것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23절에 보니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에게 붙은 자”는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바로 우리 성도들을 이야기합니다. 주님을 내 구주로 영접하고, 그를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할 것이라는 증언입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52절에서는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 증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들의 인생은 이 세상의 삶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첫 열매가 되시므로 우리도 부활할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그렇기에 크리스천은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보다 더 좋은 천국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 덜햄(Durham) 지방의 석탄광이 무너지면서 164명의 광부들이 생매장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며칠동안의 구조 작업 끝에 결국 시신들로 발견되었는데, 그 시신들은 부둥켜안고, 혹은 기도하다가, 혹은 손을 모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발견된 시신들 옆의 푯말에 이런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주여 축복하소서. 우리들은 은혜로운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모든 사람은 영원한 영광을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화요일 오후 2시!”
  지하에 매몰된 광부들은 자신들이 있는 곳의 산소가 부족해서,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직면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죽음을 준비하는 기도회를 가졌던 것입니다. 이들은 부활과 영생을 믿었기 때문에, 기쁨으로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영생의 증거요, 희망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오늘의 삶 속에 시련과 역경이 있지만, 지금보다 더 좋은 천국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동네에 꽃을 파는 할머니가 계셨는데, 이 할머니는 늘 행복했습니다. 늘 남에게 미소를 선물하고 웃음과 즐거움을 주는 할머니였습니다.
  지나가는 마을 사람이 하도 궁금해서 “할머니, 오늘도 무슨 좋은 일이 있으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어찌 나에게 늘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고통당할 때에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 하셨습니다. 저는 고난이 올 때마다 사흘만 더 기다리자, 사흘만 더 기다리자, 그러면 부활의 새벽이 올 거야! 라고 생각하면 늘 하루하루를 행복하고 감사하게 살수 있습니다.” 라고 고백 했다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인생에 어떤 시련과 역경이 있습니까? 사흘만 더 기다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고 사흘지난 뒤에 저한테 항의하시면 안 됩니다. 그 사흘이라는 것은 시간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고난의 시간이 지나가면 부활의 새벽이 동터 올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고통의 시간 후에는 반드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새벽 승리의 여명이 다가 올 것을 확신하고 살아갈 때에 우리는 날마다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로 하여금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엔 우리를 흔들만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유혹이 있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우리를 공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견고하게 서고 흔들리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실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은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기록합니다. 그분은 이제 하늘의 왕권을 가지고, 세상적으로 말하면 제일 강한 분이요, 제일 높은 분인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그분이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마지막 절의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말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우리의 백그라운드는 든든한 것입니다.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봉사하실 때, 전도하실 때, 충성하실 때, 자신의 삶을 살아가실 때 부활하신 주님으로 인해서 흔들리지 마시고 견고히 서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의 확신과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불안의 삶이 아니라 담대하게 살아야 합니다. 슬픔의 삶이 아니라 기쁨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원망의 삶이 아니라 감사하고 찬양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 안에서 승리자의 삶, 영생의 희망, 흔들리지 않는 삶을 통해서 날마다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시고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 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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