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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를 전파하는 사람들 (막 16: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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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성 홍모 목사

  지난 주일은 우리 주님이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부활주일로 지켰습니다.  우리 기독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날부터 출발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에는 모든 제자들이 흩어졌고, 예수님이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 운동이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제자들이 모이게 되었고, 초대교회는 120명이 전혀 기도에 힘쓰는 중에 성령을 받게 되었고, 오늘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우리 주님이 부활하신 후 제8일에 해당합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제8일인 부활절 두 번째 주일은 도마 주일(Thomas sunday)로 지켰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고 있었던 도마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도마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이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오셨다, 우리가 주님을 보았노라"고 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도마가 말합니다.  "내가 그의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제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어느 한 사람도 의심하지 않고 믿었다고 하면 모든 제자들이 짜고 하는 말 같지 않겠습니까? 

  오늘 제 8일이 되었습니다.  도마를 포함한 11명의 모든 제자들이 함께 있었고 문들을 굳게 닫고 있었습니다.  이들 제자들은 아직도 살기가 등등한 유대 교권자들을 두려워하여 바깥출입을 삼가면서 한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 때에 우리 주님이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하시면서 인사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의심 많은 도마를 향하여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만져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도마는 이제 모든 의심을 떨쳐버리고, 주님이 부활하신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믿거나 믿지 않을 수 있는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이었고,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가 경험한 생생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죄와 사망권세를 깨치시고 부활하셨다고 하면 그 분, 예수님은 누구란 말입니까?  그래서 도마는 고백하였습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8)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때 우리 주님은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나가서 복음을 전하실 때에 당시의 모든 성도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본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으리라"(벧전1:8-9)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들이 4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디.    마태복음에서는 마28:16-20에 기록하고 있는데, 19절의 말씀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9-20)고 하셨습니다.  핵심적인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마가복음에서는 16:15-16의 말씀도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핵심적인 말씀이 무엇입니까?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누가복음에서는 누가복음24:47-49의 말씀이 중요합니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에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 모든 일에 증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에서도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요20장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요20:23)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누구의 죄를 사한다고 하면 사해지고, 어떤 사람의 죄는 용서받지 못하고, 그대로 두어지는 것입니까? 
이 말씀은 우리의 전도하는 것으로 인하여 한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고, 어떤 영혼은 복음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구원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으로 전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핵심적이고 가장 중요한 명령이 무엇입니까?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의 마지막 명령은 승천하시면서 남기신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 모든 일에 증인이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부탁하시고 명령하신 말씀들이 모두다 "제자를 삼으라, 복음을 전파하라, 증인이 되라, 나도 너를 보내노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은 유언이라고 하며, 이 유언은 법적인 효력을 가지는 것이 관례인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를 전파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다양한 성경공부, 제자 훈련과 양육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자칫 잘못하면 순수한 복음 전도와 전도에 대한 동력을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전도에 대한 다양한 방법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생활 속에서 전도자로서 살아야 하고, 나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중에 아직도 교회를 다니지 못하는 사람을 찾아 전도하고, 지역 사회를 봉사하면서 전도 대상자를 계속하여 찾아 전도에 힘써야겠습니다. 

  조셉 알드리치라는 분이 쓰시고 오정현 목사님이 번역하신 [생활전도]라는 책이 있습니다.  "당신의 아름다운 삶, 그것이 최상의 전도입니다."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아주 의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의 모든 사역을 마치고 하늘나라에 승천하여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계시면서도 세상에서 겪으셨던 험악한 십자가와 치욕스러운 죽음의 흔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주님께 다가와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주님, 주님은 세상에 계실 때 사람들을 위하여 심한 고난을 받으셨군요"  예수님은 그렇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하셨고, 또 그들을 위해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사람들이 다 잘 알고 있습니까?"  "아닐세, 아직은 팔레스타인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을 뿐이야." 

  천사 가브리엘은 당황하여 "그래요 그러면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그리고 몇 명의 제자들에게 부탁해 놓았다네.  그들에게서 나의 사랑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또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고, 그렇게 해서 세상 끝까지 내 이야기가 전파될 것이네.  결국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의 생애와 사역에 대해 듣게 될 것일세" 그러나 가브리엘천사는 여전히 눈살을 찌푸리며 의아한 듯이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사람이 연약한 존재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그렇지만 만약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지쳐 쓰러지면 어떻게 하지요? 그들 이후의 사람들이 그것을 잊어버린다면요?  그리고 후세 사람들이 당신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밖의 다른 계획은 없습니까?"  "아니, 그 외의 어떠한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네.  나는 그들을 믿고 있다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물론 전도의 귀중함을 말하기 위하여 누가 은혜롭게 만든 이야기일 것입니다.  주님은 영혼을 구원하는데, 주님은 20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다른 계획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주님은 옛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믿고 있으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을 믿고 있습니다.  옛날 베드로가 감당하였고, 야고보와 요한이 감당하였다고 하면 오늘 저와 여러분도 최선을 다하여 감당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현대 사회를 살펴보면 삶의 속도가 따라 잡을 수 없을만큼 너무나 빨라졌습니다.  기술 혁신의 가속화는 현대인의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제는 핸드폰으로 TV를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되고, 세계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직업이 바뀌고, 이사를 하고, 차량이 늘어나고, 교통체증은 심해지고 전화벨이 울려대고 핸드폰으로 들어오는 문자메시지를 확인해야 하고, 이메일을 열어보아야 하고, 세상이 하도 빨리 변하고 있기 때문에 달려가는 속도를 늦출 수가 없고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마치 모든 사람들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경주와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라도 속도를 낮추고 천천히 달리면 더 많은 사고가 날 것 같습니다.  모든 차량이 달려가고 또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멈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세계질서와 하루가 다르게 변하기 때문에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워야지, 정보에 있어 조금만 뒤쳐지면 낙오자가 되는 것 같고, 바보 멍청이가 되는 것 같습니다.  하루에 해야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스케줄을 점검하고, 시간을 잘 활용하지 않으면 문명의 낙오자로 살아갈 것만 같습니다. 
그러면서 현대인들은 다른 사람의 생활에 대하여 신경 쓰려고 하지 않으며,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생각만 하고 있어 너와 나의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아파트 윗층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예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가족과 개인 이기주의가 팽배합니다.

  우리들이 전도한다고 할 때에 가장 힘든 것의 하나는 꼭 전도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먼저 전도자답지 못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자녀답지 못한 생활 때문에 고민합니다.  우리가 복음 전파하려면 내가 먼저 복음이 되어야하고, 먼저 생활로서 증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나와 같이 더디 믿고, 열심도 없고,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전도할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자기를 얽어매고 있습니다.  나와 내 가정이 구원받은 것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개 전도란 특별한 훈련을 받아야 하고, 은사가 있어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래 예수를 믿다보니 불신자들과 교제가 끊어지고 보니, 불신자들 중에 알고 교제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전도라는 것이 중요한 지는 알지만,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복음을 꿰는 것은 바늘에 실 꿰는 것보다 확실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해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많이 들어본 말입니다.  세상의 많은 일 중에 간단하고 쉬운 것들은 가치가 적은 것들이고, 세상에서 가치 있는 일들이란 힘들고 시간도 걸기고 물질도 투자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가치 있는 일에 매달리기를 원하십니까?  가치 없는 일에 소중한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실 것입니까?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피 흘려주셨습니다. 

  시104:12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더럽고 추한 모든 죄는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우리의 죄과를 멀리 옮겨버렸습니다. 

  사44:22에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 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우리의 허물과 죄는 구름이 걷히듯이 안개가 사라지는 것처럼 깨끗하게 도말하시고 없이 하시고 지워주셨습니다.

  미7:19에 보면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고 독생 성자를 보내주셨으며, 우리 주님이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발아래 밟아버리시고, 깊은 바다에 던져버리고 다시는 위로 떠오르지 않도록 수장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들이 이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사38:17에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로 던지셨나이다." 우리의 모든 죄는 하나님의 등 뒤로 던져버리시고 다시는 쳐다보지도 아니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사43:25에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도말하시고, 우리의 죄는 기억하지도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고, 우리가 들어가서 살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억만 죄악에서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여야 합니다.  세상 중심으로 총알같이 달려가는 우리의 관심을 좀더 하나님 편으로 향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인생의 과제 중에 아주 중요한 과제의 하나가 하나님 앞에 가서 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돈을 벌고, 가정을 이루고, 사업을 벌이고, 건전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은 힘쓰지 말라고 해도 할 수밖에 없고, 지금까지 열심히 감당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이라고 하면 전도해야 합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나만의 세상을 구축하기 위하여 살고 있습니까? 

  눅24:47-48에 "또 그(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에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의 이름을 들으면 구원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요엘서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믿지 아니하는 이름을 어떻게 부르겠습니까?  듣지도 못하였는데 어떻게 믿을 것입니까?  그러면 전파하는 자가 없는데 어떻게 믿을 것입니까?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떻게 전파하겠습니까?  여러분,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도의 선교사로 선교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신 스탠리 존스 목사님이 인도에 가서 복음 전하는 일에 평생을 바치셨습니다.  그가 89세 때에 뇌일혈로 반신불수가 되어 강제로 미국 보스턴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치료를 받으면서 자기 병실에 들어오는 모든 의사들에게 의사 선생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세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스탠리야 일어나 걸어라"고 명령하여 달라고 말했습니다.  여러 번 거듭하여 부탁하자.  할 수 없이 의사들이 목사님의 말을 반복하여 외치고 나갔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스탠리야 일어나 걸어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스탠리 목사님은 "아멘"이라고 화답하였습니다.  간호사님들에게도 부탁을 드렸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스탠리야 일어나 걸어라"  "아멘" 그는 6개월만에 다시 건강을 회복하여 90세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인도로 떠났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한 심령을 건강하게 치료하는 것만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만 불러도 구원받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구원받았습니다.  날마다 승리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90세나 나신 분도 다시 선교 현장으로 돌아가고 복음전도자로 마지막 생을 살아가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문학가인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C.S 루이스 교수는 이런 말을 합니다.  "하늘을 겨냥하라.  그러면 땅은 덤으로 얻게 될 것이다.  땅을 겨냥하라. 그러면 어느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을 소유한 사람이요, 구원받은 사람이요, 구원의 길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죽어가는 사람들은 구원의 길을 몰라서 죽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한 영혼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냥 지나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제사를 집행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나가고 도망치는 것을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나는 전도보다는 봉사가 우선이요, 내가 맡은 일을 잘 감당하기 때문에 전도는 은사가 있는 사람들이나 하라고 하면서 지나갑니다.  전도는 초대교회의 모든 사도와 직분자들과 모든 성도들의 가장 기본적인 신앙이었습니다.  그 위에 설교도 봉사도 교사도 더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차례가 되었다는 생각을 가져야겠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한 영혼을 살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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