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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을 제게 주시겠습니까? (창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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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 충웅 목사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로라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때 “너는 무서워 말라 내가 너의 방패가 되어 너를 지켜 주며 매우 큰 상을 내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람은 “하나님 나는 자식이 없는 몸입니다. 가문의 대를 이를 사람이라고는 종 밖에 없습니다. 나에게 무엇을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저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자식 하나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저의 대를 이을 사람이라고는 저의 집에 이 종 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여쭙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대를 이를 사람은 그가 아니다. 장차 네 몸에서 날 네 친아들이 네 대를 이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십니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네 자신이 저렇게 많이 불어날 것이다.”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너무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친구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들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약속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의 책입니다. 구약은 구세주를 보내주시겠다고 한 약속의 책입니다. 신약은 오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약속의 책입니다.

기독교가 때로는 품위를 잃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늘 소망의 약속을 믿고 살았습니다. 이를 짓밟는 정권도 있었습니다. 기독교가 역사의 사기꾼이라고 외친 사람도 있었습니다. 고상하다는 철학이 기독교를 비웃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없애겠다는 운동은 끊임없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인생 모두를 던져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해 대단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시골 할아버지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내가 너의 방패가 되어 너를 지켜 주며 매우 큰 상을 내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저는 대를 이을 자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아브람의 삶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일본 니트 족이 85만 명이 넘는답니다. 니트 족이란 뜻은 일할 생각도, 공부할 생각도, 없는 15~34세의 젊은이를 가리키는 이른 바 (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이 일본에서 2002년 현재 85만 명에 달한다고 일본 내각부가 3월 22일 발표했습니다. 언젠가는 취직할 생각이지만 지금은 취직할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희망의 사람입니다. 그는 늘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늘 아브람에게 희망의 빛을 보여 주셨습니다. 희망을 잃는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없습니다. 꿈을 잃는 것은 모두를 잃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희망의 사람입니다. 그는 늘 꿈을 지니고 삽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후손과 물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도 늘 이러한 하나님을 향해 살아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 제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Ⅰ. 두려워 마십시오.

사람은 다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초등학생이 외국 유학 간 숫자가 대단합니다. 아마 우리나라 교육 환경이 좋지 않아서겠지요. 약속에 대한 기대가 기분 좋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 “너의 큰 상급”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주 여호와여 무엇을 제게 주시렵니까?”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다 욕구가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제게 많은 재산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 재산은 저의 청지기의 것입니다. 그는 성실한 종입니다. 그러나 제 아들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증거 하신 것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동안 별들은 점점 더 많이 떠올라 하늘을 온통 뒤덮었습니다. 수백만 개의 은빛 별들이 무리지어 위에서 빛나거나 먼 산언덕 위에서 반짝였습니다. 정말 아브람에게는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선뜻 거창한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의 방패”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브람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영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철두철미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의 방패’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가난도 두렵습니다. 병도 두렵습니다. 고통도 두렵습니다. 어느 하나도 손쉬운 것이 없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에서 강도 8.5의 강한 지진이 또 일어났습니다. 2,000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작년 12월 26일 강도 9와 함께 해일로 30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미 영국의 과학자의 논문에 정확하게 이런 지진이 일어난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몇 년 사이에 강도 5의 지진이 일어난다고 이미 전문가가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두렵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내가 너의 방패”라고 하셨습니다. 방패는 상대방의 공격을 막는 무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이십니다. 안심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무섭긴 하지요. 잔혹합니다. 힘 있는 원수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더 강하십니다. “나는 너의 방패”라 하셨습니다. 방패는 몸 전체를 보호하기엔 너무 작습니다.

고대 헬라의 유명한 전사 아킬레스(Achilles)가 있었습니다. 그의 신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보호 받고 있었습니다. 발뒤꿈치를 제외 하고는 그에게 상처 입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쟁터에서 하필 적군이 쏜 독화살이 아킬레스의 발뒤꿈치에 꽂힙니다. 그는 결국 죽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아킬레스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의 결정적인 약점을 아킬레스건이라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싸고 막아도 안 됩니다. 저마다 약점은 다 있습니다. 완전하지 않습니다. 허점이 보입니다. 자기는 잘 모릅니다. 장기와 바둑도 그렇습니다. 옆에서 보는 훈수꾼이 더 잘 봅니다. 나는 그럴 듯 하다고 큰 소리 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보면 웃음이 나옵니다. 콧방귀를 뀝니다. 이것이 바로 “나 ”입니다. 이게 나의 아킬레스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완전합니까? 허술한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시겠다고 자청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 멋쟁이시지요.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방패이십니다. 사람은 사람을 지키기에는 힘이 모자랍니다.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은 자기를 포기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워 말라’ 하셨습니다. ‘나는 너의 방패’라고 하셨습니다. 교통사고, 환경오염, 무서운 병, 학원폭력 어느 하나 마음 놓을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걱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방패가 되셨습니다.

2005년 3월 30일자 중앙일보에 특집기사입니다. 2001~2004년까지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2,684명이랍니다. 그 중에 교수가 된 사람은 8.5%인 229명 뿐이랍니다. 교수로 있으면서 학위를 딴 사람 28명을 빼면 실제로는 201명 뿐이랍니다. 그 이외는 모두 비정규직으로 시간강사랍니다. 어떤 이는 학원 강사, 신문배달, 번역으로 살아간다지요. 그들이 박사 과정에서 평균 5.8년, 인문대는 8.2년이 걸려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이젠 서울대 학위가 통하던 시대는 끝이 난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태어나면 박사 안 해!”랍니다. 박사공장 서울대가 미국 하버드의 1.6배랍니다. 모두 외국 박사를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교수되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고 합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미래가 불확실합니다. 어느 누구도 다음 시간에 대해 장담할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의 내일은 안개 속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늘 불안합니다. 그래서 철학자는 인생을 불안과 공포라 했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말 불나비입니다. 불확실한 삶입니다. 누가 우리를 보증해 주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아브람도 무척 외로운 사람입니다. 쓸쓸한 사람입니다. 아들이 없습니다. 유대인은 아들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늘 어깨가 쳐져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너의 방패다” “두려워 말라”는 말씀에 눈이 뜨인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지요. 무엇 때문에 잠 못 이룬 적 많이 있으시지요. 돈 때문이었습니까? 자녀 때문입니까? 부모님 걱정입니까? 취직, 결혼, 만 가지가 다 걱정이지요. 사실 우리는 스트레스 많이 받습니다. 건강 문제도 그렇습니다. 아마 저 때문에도 스트레스 꾀나 받으실 것입니다. 주일 잘 지켜라. 헌금 많이 해라. 봉사해라. 성경 좀 많이 읽어라. 기도 많이 해라. 잔소리 많지요. 이게 제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이해 해 주세요. 물론 하나님이 저의 방패이십니다. 우리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 교인들이 제 방패이십니다. 저는 늘 우리 교회가 자랑스럽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십니다. 우리의 자랑입니다. 하나님 없으시면 우리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입니다. 지금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라 하십니다.

Ⅱ. 하나님 제게 무엇을 해 주시겠습니까?

아브람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이것을 주세요”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투정 같은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복 주셔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재산 물려받을 아들이 없습니다. 기껏 종에게 줄 수 밖에 없습니다’라 합니다. 퍽 측은한 그늘이 보입니다. 나이는 점점 많아집니다. 기력이 떨어집니다. 아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저에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의 방패”라고 하셨는데, 저는 이렇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뭘 해주시겠습니까? 그렇다고 불평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자기표현입니다. 혹시 백지수표를 받아보신 적 있으십니까? 거기에다 자기가 원하는 액수를 마음대로 적어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얼마를 쓸 용기와 배짱이 있습니까? 아브람은 돈을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명예를 탐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세상적인 욕심은 별로 없습니다. 사람은 끊임없는 바람이 있습니다.

2005년 4월 1일 중앙일보에 우리나라 회사 직원의 평균 연봉이 삼성전자 7,130만원(6.8년), 에스오일 6,590만원(13.1년), SK 6,430(12년), 신한은행 6,400만원(10년), 임원은 삼성전자 89억7,000만원(6.8년), 삼성 SDI 13억 9,000만원(8.5년), 현대자동차 11억7,000만원(13.6년), 신세계 10억5,000만원(3.9년), 대단하지요.

아브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이런 것 보다 그는 아들을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다음 말씀을 들어 봅시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밖으로 데리고 가십니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헤아릴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네 자손이 저렇게 많이 불어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람은 그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갸륵하게 여기시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 땅을 다 너에게 주겠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다른 점이 많습니다.

충북대 천문학과 김용기 교수님은 두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답니다. 초등학교 때는 5Km 길을 아버지가 자전거로 통학시켰습니다. 아버지는 장애자가 앉아서 할 수 있는 시계수리공이라도 시키려 했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마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절뚝발이”라고 놀렸습니다. 어른들은 “병신은 성질이 모나고 다루기 힘들다.”고 이상한 눈으로 봅니다. 그때가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그는 ‘아! 살아남으려면 내가 변해야 된다.’고 다짐했습니다. 놀리는 아이들에게 가까이 했습니다. 그는 전주 신흥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어느 대학 야간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그러나 장애자라고 입학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입학, 졸업 했습니다. 그는 장애를 극복했습니다. 그는 설악산, 지리산, 전국의 이름 난 산을 등산했습니다. 그는 독일에 유학해서 20대 후반에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제 자기를 “병신, 절뚝발이”라고 비웃던 사람을 용서 했습니다. 그는 교회 안수집사랍니다. 교회를 뜨겁게 봉사하는 일꾼이랍니다. 오히려 지금은 “절뚝거림은 특별배려”라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나이가 많기까지 아들이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냥 있었겠습니까? 하나님 믿는다고 하더니 꼴 좋다. 대를 이을 아들 하나도 없는 주제에……. 아브람은 하나님이 아들 주신다는 자랑을 늘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1년이 가고, 2년이 가도 감감 무소식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아브람을 어리석은 바보 정도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제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전보다 더 확실한 축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지요. 우리는 어때요? 이런 빈정거림을 받으신 적 없으십니까? 기다리는 것도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아픔을 잘 압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잘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축복을 재확인 하신 것입니다.

맺는 말 :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에 김익두 부흥 목사님을 잘 아시지요. 달성군 현풍면 현풍동에 박수진이란 거지가 있었답니다. 애래 턱이 빠져 입을 다물 수가 없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는 물과 함께 부어 마셨습니다. 늘 턱받이를 하고 다녔답니다. 막대기를 짚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그를 막대거지라 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이 이 거지를 위해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이 곶감을 주면서 먹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는 곶감을 다 먹었습니다. 10년 고통이 싹없어진 것입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그에게 박수은(은혜를 받은 자)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답니다. 아브람은 이 보다 더 큰 기적 같은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라 하셨습니다. 때에 아브람은 하나님 저는 이 재산을 누구에게 물려줄 아들이 없습니다. 이 청지가 받을 것이라 합니다. 하나님 제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라 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별 수 보다 더 많이 자녀가 번성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런 약속과 함께 주 안에서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5.4.10-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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