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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생활의 원형 (창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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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박봉수 목사

  오늘 지구상에 셀 수 없이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만도 약 6만 여의 교회가 있습니다. 이 많은 교회들이 저마다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배드리는 모습도 다르고, 교회 형태도 다르고, 교회 제도도 다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런 교회들도 기독교라 할 수 있을까 싶은 곳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교회들도 따지고 보면 그 뿌리는 하나입니다. 바로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되어있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여기서 지구상의 모든 교회가 파생되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모든 교회의 어머니 교회이고 또한 교회의 원형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이냐를 가늠해 보는 기준은 이 교회의 원형이 초대교회가 보여주는 교회의 본질을 이어가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냐 입니다. 그 교회가 초대교회처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느냐?(예전) 그 교회가 초대교회처럼 말씀을 가르치고 있느냐?(교육) 그 교회가 초대교회처럼 복음을 전하고 있느냐?(전도와 선교) 그 교회가 초대교회처럼 성도의 교제를 이루고 있느냐?(친교) 그 교회가 초대교회처럼 구제와 봉사를 하고 있느냐?(봉사)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원형이 있듯이 우리 신앙에도 원형이 있습니다. 모든 신앙인의 조상이요 우리 모든 신앙의 원형이 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신앙을 토대로 우리의 신앙이 올바른 것인가 그렇지 못한 것인가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으로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신앙생활의 기본을 아브라함의 신앙생활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신앙에서 찾을 수 있는 신앙의 원형은 무엇일까요?

1. 부르심과 응답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1-11장이고 다른 하나는 12-50장입니다. 앞의 1-11장은 인류의 태고 역사를 다루고 있고, 12-50장은 믿음의 조상인 족장들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창 1-11장은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네 가지 내용입니다. 1-2장에 창조에 관한 내용, 3-5장은 타락에 관한 내용, 6-9장은 홍수에 관한 내용, 그리고 10-11장은 바벨탑 사건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도록 창조하셨는데 아담 하와의 타락으로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그 죄를 일차 심판하셨습니다. 그런데 노아 이후 또 다시 죄가 나타나 하나님을 반역하는 저 바벨탑 사건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창 1-11장의 인류의 태고사는 한 마디로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와 퍼지는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운 간섭 없이는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마치 죄악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점점 깊이 빠져가는 상황입니다. 자기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오늘 본문 창 12장은 바로 이런 상황 가운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됨을 말해줍니다. 대단한 극적인 반전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죄악의 역사에 개입하십니다. 죄악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 아브라함을 주목하셨습니다. 그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아브라함에게 부르심을 받아야 할 조건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꼭 아브라함을 부르시지 않으시면 안 되는 조건이 있어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그도 죄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도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택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까? 이것은 우리가 모르는 신비입니다. 은혜의 신비입니다. 사랑의 신비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 은혜의 신비, 사랑의 신비로 선택받을 자격도 조건도 갖추지 못하고 있었지만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찬 410장를 작사한 웹스터 휘틀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 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왜 네게 굳센 믿음과 또 복음 주셔서 내 맘이 항상 편한지 난 알 수 없도다. 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맘을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 아무런 부르심을 받아야 할 자격이 없지만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아 예수 믿게 됐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의 부르심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이제 우리는 이 부르심에 감격으로 응답해야 하겠습니다.

  본문 4절을 보면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소중히 들었고 전심으로 응답했다는 말씀입니다.

  마 22장을 보면 우리가 유의해야 할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3절을 보면 임금이 혼인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청했더니 오기를 싫어했다는 것입니다. 잔치를 배설하고 종들을 보내 사람들을 청했더니 돌아보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는 자기 밭으로 다른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갔다는 것입니다.

  14절에 무서운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성실히 응답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아멘!”하고 응답하고 나오는 일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모두 그 부르심에 감격하여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2. 명령과 순종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시기를 그동안 살던 고향을 떠나고 가까운 친지들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지 못하는 미지의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명령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이 명령은 아브라함에게 그동안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명령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의 나이는 75세입니다. 인생을 정리하는 노년기입니다. 하나님께서 평생 쌓아놓은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노년기는 평생 이루어 놓은 것을 되돌아보면서 인생을 추억하고 보람의 열매를 먹는 시기입니다. 그가 모아 놓은 재산들, 그가 이루어 놓은 업적들, 그가 쌓아 온 명예들... 노년기는 이것들을 의지하며 사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 명령은 아브라함에게 그동안 맺어온 모든 관계들 사람들 사이의 연대감을 다 포기하라는 명령입니다.
  당시 아브라함이 살던 사회는 유목을 중심으로 한 부족사회였습니다.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 부족을 이루고 그 부족의 연대감 속에서 살던 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부족의 연대감을 던져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를 지켜주고 그를 보호해 주던 그 부족 안에서의 삶을 내 던지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명령은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도전에 나서라는 명령입니다.
  전혀 가보지 않은 땅을 향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이제 나이 75세 된 노인에게 머나먼 땅으로 이민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패기도 열정도 능력도 다 사라진 나이에 새롭게 인생을 걸고 무엇인가를 시작하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명령은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만을 전폭적으로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나아가라는 명령입니다.

  저는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는 분을 보면 대단하게 생각이 됩니다. 저 높은 창공에서 그 낙하산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뛰어내리는 것입니다. 낙하산이 펴지지 않거나 문제가 생기면 끝장입니다. 낙하산을 절대 의지하고, 낙하산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뛰어 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다른 것 의지하던 것 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이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순종했습니다. 4절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75세였더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요구에 액면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철저하게 따랐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요구에 철저하게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을 의지하던 마음, 부동산과 가진 재산을 의지하던 마음, 재능과 능력 의지하던 마음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3. 약속과 성취

  오늘 본문 2-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이 약속은 아브라함 이야기에 계속해서 다시 나타납니다. 그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 주신 약속 그리고 손자 야곱에게 주신 약속에도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이 약속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세 가지 약속입니다. 하나는 자손이고, 둘은 땅이고 그리고 셋은 복입니다.
  우리가 이 약속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자손입니다. 아브라함은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 대가로 그에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땅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머물던 땅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 대가로 그에게 원하는 것 이상의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복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동안 맺었던 모든 관계를 끊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 대가로 복을 주시마 약속하셨습니다. 그 복은 다름 아닌 하나님과의 아주 특별한 관계를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포기한 것을 주목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몇 배로 되갚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바치고 드린 것을 주목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몇 배로 되갚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신학교 다닐 때 중창단 활동을 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연습해야죠, 동료들 결혼식에 참석해 축가해야죠, 여러 교회 부흥회나 집회에 찬양해야죠... 공부할 시간을 많이 빼앗겼습니다. 시간을 쪼개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박사과정 입시 때 특별한 방법으로 제게 되갚아 주셨습니다. 문제가 제게 유리하게 나왔습니다. 독일어 시험을 치르는데 신학생들이 알기 힘든 문제가 나왔습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학에서 공부했던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만 제대로 쓸 수 있었습니다. 기도 중에 주께서 감동을 주셨습니다. 제가 주께 시간 드린 것을 열납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정확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작은 것 드리면 큰 것으로 우리에게 갚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철저하게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철저하게 갚으셨습니다.

  우선 자손의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출 1:7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성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지키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창성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땅의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다윗 시대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 땅을 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차지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면 아주 특별한 관계를 이루어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맺은 약속을 지키십니다. 아주 철저하게 지키십니다. 그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의 성취를 체험하며 사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신앙에서 신앙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출발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있습니다. 그 부르심을 듣고 철저하게 응답하며 나아가는 것 이것이 신앙의 핵심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요구 즉 하나님의 명령을 철저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요구는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하고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그 요구에 철저히 부응하며 오직 여호와만 믿는 것 이것이 신앙의 핵심 가운데 또 하나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약속을 성취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를 체험하며 사는 것 이것이 신앙의 핵심 가운데 또 다른 하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신앙의 원형이 여러분의 신앙생활 안에 활짝 꽃 피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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