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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교의 전초기지 (행 11:19-26, 행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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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임경택 목사

4월은 선교의 달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하나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회를 구성하는 본질적 요소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가 자기 정체성을 유지할 때 참 교회가 된다. 만약에 그 본질일 잃어 버리게 되면 교회가 아닙니다. 친목단체일 뿐입니다.
언제나 교회는 선교와 함께 존재 해 왔습니다. 선교하는 때에는 교회가 뜨겁고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이 선교를 통해서 교회는 미래를 향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름답듯이, 아침일찍 일어나 출근 하는 사람들이 아름답듯이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교회라는 말은 ‘카할(회중)’ ‘에클레시아’ 불러냄을 받은 공동체라는 뜻을 가집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악 된 세상 속에서 불러내셔서 거룩한 공동체, 거룩한 백성들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왜 불러 내셨습니까? 그냥 부름을 받고 불려나와 모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목적을 향해 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목적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과는 다른 백성,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셔서’입니다. 하나님은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19:2)고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왜! 거룩해야 하는 것입니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원이 되는 우리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은 날마다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어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일을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모이면 훈련받고 나가면 빛을 비춰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가 공장이 되어야 합니다. 모일 때마다 등잔을 만드는 것입니다. 뚝딱거리고 . . . 대장간입니다. 우리가 등불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자신을 쳐서 . . . . 또 모일 때마다 소금을 만드는 것입니다. 부패한 곳에 우리가 있으면 부패를 는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순수한 짜디 짠, 소금되는 훈련을 받는 곳입니다. 한마디로 교회는 공장입니다. 교회는 일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일하는 소리가 나야 합니다.

다른 말로 전투적 군대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구호에 맞춰 구보를 하고 훈련을 받는 훈련장이 되어야 합니다. 훈련된 사람만이 세상을 향해 대포를 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영적인 훈련을 가리킵니다. 그 전초기지입니다. 훈련이 있고 작전이 일어나고 목숨을 건 병사들이 있는 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를 위하여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써야” 합니다(엡6:18).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 할 때만이 세상의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라틴어로 목사를 ‘폰티팩스’라 합니다. 다리를 놓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생명의 사리를 놓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폰티팩스’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 기다리고 줄을 서 있습니다. 거기에 다리를 만드는 자들입니다. 얼마나 못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선교하는 교회는 얼마나 멋있는 교회입니까? 하나님이 그런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겠어요?

짐 엘리엇이라는 선교사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1927년 미국의 오리건 포틀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엘리엇은 글을 잘 썼고, 재능 있는 연설가이자 교사였다. 휘튼대학 재학 시절 그는 지도력 있는 학생이었는데, 레슬링부의 챔피언이자 스타이기도 했습니다. 1956년 ‘짐 엘리엇’이라는 학생이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 대학인 wheaton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였습니다. 그의 친구들 중 많은 이들은 엘리엇이 그의 탁월한 영적 은사를 미국에서 교회 개척 사역에 집중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휫튼대학에서는 그에게 교수직을 주었는데 그 자리를 마다했습니다.

어떤 책을 읽다가 남미의 ‘에콰도르’의 ‘아우카족’은 식인종인데 너무나 잔인해서 아무도 그들에게 접근해서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오랫동안 혼자 기도한 뒤 그는 이국땅, 남아메리카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곳으로 달려가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엘리엇은 사람의 뜻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아우카족은 외부인들을 용납하지 않는 부족입니다. 1955년 가을, 비행선교사 네이트 세인트는 아우카 마을을 발견합니다. 그 다음달부터 엘리엇과 여러 동료선교사들은 호전적인 부족민들과 친구가 될 목적으로 비행기에서 선물을 떨어뜨렸습니다. 1956년 1월, 짐 엘리옷과 4명의 선교사들이 에콰도르 동쪽에 있는 쿠라라이 강가에 착륙했다. 그들은 이전에 쉘 석유회사 직원들을 여러 명 살해했던 사나운 종족입니다만 그들 중에 몇 명의 호의적인 연락책이 있었습니다.

몇 달간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미국 정부는 짐 엘리엇을 찾기 위하여 수색대를 조직해서 아우카족 있는 곳으로 파송하였습니다. 이틀 뒤인 1956년 1월 8일 다섯명 모두 아우카족 전사들에게 창과 도끼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미국 정부는 수색대를 파견했습니다. 여러날 수색 끝에 수색대들은 참혹하게 찢겨져 죽은 짐 엘리엇의 시체와 유품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참혹한 사진이 세계적인 잡지 라이프 잡지에 실렸습니다. 이들의 사역과 죽음에 대한 10장에 달하는 특집기사가 미국, 온세계에 전해졌습니다.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경악을 했습니다.

유품 중에 있던 ‘짐 엘리엇’의 마지막 일기장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붙잡아도 붙잡을 수 없는 것을 위하여 투자하는 것보다 영원히 빼앗기지 않는 영광을 위하여 투자하는 삶을 미련하다고 하지 말라.” 1960년대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안일과 나태에 빠져 히피족(탈사회적 행동을 하는 사람들)으로 대변되던 때입니다.
그 사건 이후에 나태와 안일에 빠져있던 미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붙였습니다. 세계의 수많은 학생들이 가슴을 깨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짐 엘리엇’이 죽은지 1년 후에 그의 부인 여인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간호원 훈련을 받고 남편을 잡아먹은 아우카족에게로 갔습니다. 남편이 못 다한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아우카족은 남자는 잡아먹지만 여자는 결코 죽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짐 엘리엇’의 부인 여인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물론 이 사실을 모르고 들어갔습니다.
5년 동안 아우카족을 위하여 온갖 사랑을 다 쏟았습니다. 그래서 아우카족 사이에서 그녀를 부를 때는 ‘하얀 천사’라고 하였습니다. 피곤에 지친 ‘짐 엘리엇’의 부인이 안식년을 보내기 위하여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아우카족의 추장이 온 부족식구를 다 모아놓고 송별 파티를 베풀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도대체 당신이 누구이기에 이 정글에 들어와서 그 모진 고난을 겪으면서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거십니까?’ 하얀 천사 여인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당신들이 지금으로부터 6년전에 처참하게 죽여 잡아먹은 사람의 아내입니다. 그 사람이 제 남편입니다. 그 분이 당신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온 것입니다. 그 분과 제가 섬기는 예수님이 계시는데 그 예수님이 당신들을 사랑하십니다. 제 남편보다 더 사랑하십니다. 그 분의 그 사랑 때문에 제가 여기 와서 여러분을 사랑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모든 아우카족이 방성대곡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추장이 말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믿자.’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이 마을에서 모두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에콰도르의 아우카족은 일천명에 이르는 전 부족원을 복음화하고, 남편 살해자 중 4명은 목사로 헌신 . . . 모두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모두 다 ‘선교’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선교는 헌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영혼구원을 위해 헌신하는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선교하는 교회와 성도를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선교에 대한 비젼을 마음에 담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2005년에 우리교회에 중국선교의 비젼을 주셨습니다. 중국 남방(K지역)에 그런 사명을 주셨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모든 국가들이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지만 중국은 그 동안에도 매년 7-10% 이상의 성장을 보이면서 세계의 중심국가로 부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국 광동성에 도시선교 공단선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비선교사를 보내주시고 훈련의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성도들의 끊임없는 기도입니다.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이제 우리교회가 이 선교의 배후에서 후원하는 물질과 기도의 전사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제 카운트다운에 들어갑니다. 늘 기도를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선교의 원조 안디옥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환난 중에 태어난 교회였습니다. 행11:19에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예루살렘 교회에서 박해가 일어나 스데반이라는 평신도가 돌에 맞아 죽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하면서 유대파 기독교인들이 안디옥에 가서 그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면서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탄생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태어나는 것은 산모가 해산하는 것과 꼭 같습니다. 해산의 고통이 얼마나 큽니까?

1. 선교하는 교회는 협력하는 교회입니다.

안디옥교회는 핍박은 있었지만 협력하는 교회였습니다.
안디옥교회를 구성원이 참으로 다양하였습니다. 왕족, 천민계급,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백인과 흑인이, 선지자, 교사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행13:1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그럼에도 안디옥교회는 서로 의좋게 협력하여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교회는 다양성 속의 일치가 일어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니다. 요즈음 동질성을 강조해서 연예인들, 지식인들 . . 등등의 부류들이 모이는 교회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안디옥교회는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흑인, 백인, 잘 사는 사람, 가난한 사람, 천민 출신, 귀족 . . 본토 사람뿐만 아니라 외부의 사람들도 있었고, 유대인뿐만 아니라, 헬라사람들도 .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들, 매우 진보적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하나가 되는 일에 힘썼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안디옥교회의 힘입니다.

그들은 인종이나 빈부나 신분이나 출신이나 사고방식이나 그 밖의 그 어떤 인간적인 죄악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신분이 다른 사람이지만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 주면서 그들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힘썼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피차 사랑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질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성숙한 교회로 하나님이 사명을 맡길 만한 교회로 하나님 앞에 쓰임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참으로 기도하는 교회는 하나되는 교회입니다. 하나되는 교회는 기적이 있습니다.
출17장 아말렉이라는 군대가 쳐들어왔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 기도를 합니다. 아론과 훌이 돕습니다. 한마음이 됩니다. 모세의 손이 올라가는 한 여호수아의 군대가 승리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 기도의 손이 내려가니까 밀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합심기도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마18:19 “두 사람이 땅에서 무엇을 합심하여 구하면 하늘에서 들으시리라.”고 약속 . . 합심기도의 힘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시고 중보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요17장 21절을 보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성경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시간부터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한 지체요 한 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12:12-13절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여러분 성령으로 거듭났습니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식구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식구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그 사실을 믿습니까?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된 것 보다 더 좋으신 것이 없습니다. 시133: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기와 질투 미움과 교만과 위선은 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아버지가 기뻐하는 하나님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 될 수 없어 보이는데 하나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데 반대로 하나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 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것입니까?

베드로 사도는 벧전3: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라고 했습니다. 서로 불쌍히 여길 때 하나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할 때, 서로 겸손할 때,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길 때 하나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낫다고 생각 할 때에는 하나 될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가 하나되었더니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하나님이 구원받는 사람의 수를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 되고 한 마음 되면 하나님께서 부흥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 이런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2. 좋은 일꾼은 만들어집니다.

안디옥 교회 안에 좋은 일꾼들이 있었습니다. 좋은 일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훈련을 통해서 순종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해 보십시오. 다 훌륭한 일꾼이 됩니다.
다섯명의 일꾼들이 나옵니다. 특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라고 . . . 바나바는 구브로 출신의 레위인으로서 권위자라는 이름을 가진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 외에도 시므온과 루기오, 마나엘이 있었습니다. 시므온은 아프리카 출신 그리스도인이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구레네 사람 시몬과 동일인으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루기오는 빛이라는 뜻의 이름이며 아프리카 구레네 사람입니다. 그리고 마나엔은 히브리어로 마나헴이란 말의 헬라 식으로 위로자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도의 3대 의무는 출석, 헌금, 순종입니다.
공중예배에 빠지지 않는 성도가 좋은 일꾼이 됩니다.
감사의 의무를 다 하는 사람이 좋은 일꾼이 됩니다.
순종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이 좋은 일꾼이 됩니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습니다. 순종은 어떤 명예보다도 낫습니다. 어떤 복 보다도 낫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영적으로 충만하였습니다. 바른 가르침과 훈련이 있었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하는 기도가 살아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랬더니 성령이 역사했고 성령의 역사에 민감해서 성령이 그들에게 무엇을 말씀하는가를 항상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성령의 지시를 받았을 때, 그들은 그것을 실천하였습니다(13:2).
바나바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나바에게는 성령충만의 열매가 있습니다. 바나바는 재산을 팔아 그 판 값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본래 좋은 교회라서, 구성원이 좋아서 입니까? 아닙니다. 안디옥교회가 크기 때문에 그렇게 선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훌륭한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모든 구성원이 다 좋은 일꾼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령께서 누구를 지명하시든지 다 순종하고 갈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교회 모두가 다 일꾼이 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3. 선교하는 교회는 세상에서도 인정받은 교회입니다.

행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그리스도를 높이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Christian(크리스챤)이라는 말에 ian은 누구누구에게 속해 있다라는 뜻입니다. 곧 크리스챤은 그리스도에게 속해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안디옥에서 이 이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불린 것은 그 사회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그것은 신앙의 승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선교하는 교회는 인정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세상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교회, 힘 있는 교회 영향력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들도 세상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 세계 선교한다는 것은 모순이 있는 말입니다.

믿지 않는 세상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그리스도인, 인정받는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안디옥교회는 주는 것을 기뻐하는 교회였습니다. 해외선교만 한 것이 아닙니다. 구제와 봉사에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행11:29-30절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안디옥교회가 왕성하여 갈 때 유대 지역은 흉년과 기근으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유대 지역에 있는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힘대로 헌금하여 도왔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교회만이 아니라 그 지역에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있다면 힘을 다해 도왔던 교회입니다. 물질만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여 복음까지 나눈 교회였습니다.
이웃의 고난에 동참하는 교회, 예수님의 손발 노릇을 하는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는 교회였습니다.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주는 교회가 될려면 마음이 넓어야 합니다. 큰 가슴을 지녀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주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생각을 넓혀야 합니다. 안주면 모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나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흐르는 물이 살아있는 물입니다. 우리의 피도 심장에서부터 돌아야 합니다. 피의흐름이 멈추면 생명도 뭠춰버립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복음도 계속 돌아야 합니다. 안돌면 교회가 시험듭니다. 병듭니다.

4. 안디옥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였습니다.

민들레꽃이 하얗게 씨를 품었을 때 탁 치면 민들레 꽃씨는 사방으로 날아가 자기의 종자를 번식시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닥치는 환란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만난 그 환난은 복음이라고 하는 종자를 가지고 세계 곳곳으로 흩어 복음의 씨앗을 심게 했던 것입니다. 핍박과 환난을 피하여 예루살렘을 떠났으나 그들은 가는 곳마다 주 예수 전파하였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수 백리 떨어진 안디옥까지 가게 되었고 거기서도 그리스도를 전하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핍박은 있었지만 주님의 손의 특별한 간섭에 의하여 성장한 교회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간섭을 느끼면 살았기에 성령님께 대단히 민감했습니다. 성령께서 툭 치시면서 바울과 바나바를 보내라고 할 때, 참으로 갑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만 믿었던 것입니다.
조용히 하나님께 금식기도 한 후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그 두 사람을 따로 세워 안수하여 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철저하게 성령의 음성에 순종한 교회였습니다. 참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행11장 21절에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닿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성령이 언제나 간섭하시고 터치해 주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행13장 3절에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고 하였습니다.
안디옥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을 안디옥교회를 대표해서 파송하고 뒷짐을 지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선교사역은 바울과 바나바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는 안디옥 교회 모든 성도가 기도로 도우며 선교 사역에 동참하였던 것입니다.

선교의 비젼을 품으십시오. 우리교회에 이 비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선교하는 교회의 성숙이 따르도록 살아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전초기지로서의 교회가 될려면 어린아이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협력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선교하는 교회는 순종하는 교회입니다. 오늘도 우리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영적인 귀를 가지고 철저하게 순종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섬기는 교회입니다. 봉사하는 교회입니다. 영향력을 발휘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물질적인 후원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기도의 후원이 철저하게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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