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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이 변하면 인생이 변한다.(딤 2: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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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오주철 목사

어떤 목사님이 토요일 오후에 열심히 설교 준비를 하는데 막내아들이 서재실에 들어와서는 "아빠, 놀아주세요. 놀아주세요."라고 칭얼대면서 방해를 하는 겁니다. 이 목사님이 참다가 화가 나서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임마! 아빠 설교 준비하잖아. 나가!" 그랬더니 이 막내아들이 문을 쾅 닫으면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에이씨, 설교도 되게 못하는 게." 정말 그날 설교를 되게 못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는 말에는 예언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죄수들을 위해서 사역하는 빌 그래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교도소 안에서 집회를 열고서 죄수들에게 이렇게 물어 보았다고 합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아버지나 어머니로부터 '이 놈아! 언젠가 네 놈은 철창 속에서 인생을 끝내게 될 거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들어본 사람이 있습니까?" 빌이 그런 질문을 던질 때마다 번번이 대부분의 죄수들이 손을 들었다고 합니다. 무심결에 내 뱉은 말이지만 그 말 그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솔직히 내 아들이, 내 딸이 철창 속에서 인생을 끝내기를 바라는 부모는 이 세상 천지에 없습니다. 다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욱하는 심정으로 그냥 쉽게 내 뱉은 말이 그 아이의 평생을 결정짓는 예언적인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말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말 조심해라고 할 때 말 조심하십시오. 나중에 가슴 뼈저리게 후회하기 전에 말입니다. 우리는 말도 가려서 해야 합니다. 보십시오. 간혹 보면, "그 놈은 죽어도 안 된다"라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놈이 되게 하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 놈이 죽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출판사 한울림에서 발행한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101가지 말과 행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인터넷 사이버 상담소 'Childpia'의 김주희 소장이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부모님에게 제일 듣기 싫은 말을 직접 설문 조사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쓴 책입니다. 이 책에는 부모님들이 일상 생활에서 무심코 내뱉는 말과 행동 101가지를 통해서 부모들이 무심코 하는 말과 행동으로 아이들이 어떤 상처를 받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이 책에서 아이들이 상처를 받는 중요한 열 가지 말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공부 좀 해라. 둘째, 동생이 너를 통해 뭘 배우겠니? 셋째, 넌 왜 매일 그 모양이니? 다섯째, 한번만 더 그러면 가만 두지 않겠어. 여섯째, 옆집 아이는 이번에도 일등을 했다더라. 일곱째, 내가 못살아 못 살아. 여덟째, 왜 그렇게 버릇없이 구니? 아홉째, 어디서 말대꾸야. 열번째, 넌 아이가 매일 돈타령이니?"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이들은 속이 상한다고 합니다.

성경에 보면,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라고 했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잠언 10장 11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그러니까 사람의 입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샘이 되기도 하고 죽음과 파괴와 신음소리를 내는 독이 되기도 합니다. 죽음의 언어는 사람의 마음을 파괴시켜 고통과 절망을 줍니다. 그러나 생명의 언어는 기쁨과 소망과 행복을 줍니다. 다윗은 시편 64편 3절에서 "저희가 칼같이 자기 혀를 연마하여 독한 말로 겨누었다"면서 자기를 향한 독한 말들을 괴로워했습니다. 옛 속담에 보면 "말 한마디가 천냥 빛을 갚는다"고 했습니다. 모로코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더 깊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가 하면 사람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이 쉽게 내 뱉는 이 말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말로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말이 자기와 다른 사람의 앞길을 망치기도 하고 열기도 합니다. 말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기능만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말로써 인격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으로 인해서 말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기도 합니다. 이 말에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짧은 말 한 마디가 희망으로 남기도 하고, 혹은 절망으로 남게 되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는 내적 치유를 원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고 병들어서 내적 치유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마음의 병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사람들이 쏟아내는 말에서 나옵니다. 솔직히 여러분, 사람들이 말 때문에 병들지 가난해서 병들지 않습니다. 마음에 상처를 받는 것도 환경 때문이 아니라 한 마디의 말 때문입니다. 무심코 내 뱉은 말 한마디가 못이 되고, 아픔이 되어 절망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 말 때문에 받는 상처는 다른 사람들이 아닌 가족이나 부부로부터 받는 상처가 더 깊다고 합니다.

언어가 아름다워야 행복한 사회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너무 거칠고 험악합니다. 독이 들어 있습니다. 상상도 못하는 욕설들이 생활화되어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내 입에서 죽음의 언어를 제거하십시오. 파괴의 언어를 제거하십시오. 독설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언어가 되도록 하십시오. 위로의 말이 되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주님 안에서 말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성령께서 내 입술을 주장하여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말이 변하면 인생도 변합니다.

교육 심리학에 보면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하여 능률이 오르고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가령, 교사가 어떤 학생에 대해서 "이 아이는 우수하고 모범적인 학생이 될 것이다"라는 기대를 가지고 가르치면 정말로 그 아이는 우수한 학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말로 '자성적 예언'라고 합니다. "저 놈은 싹이 노랗다"라고 말하면 그 아이는 결국 노란 인생이 되고 맙니다. "너는 훌륭한 아이가 될 것이다. 너는 할 수 있다."라고 말하면 결국 그 아이는 훌륭한 아이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매일 같이 자신에게 "나는 좋은 사람이다"라고 말을 하면 반드시 좋은 사람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생각이 바뀌면 인생이 바뀝니다. 그런데 생각이 바뀐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가 말하는 것을 보면 압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바뀌면 인생이 바뀝니다. 그런데 믿음이 바뀐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압니다. 믿음이 바뀌면 제일 먼저 우리의 언어가 바뀝니다. 전에는 세상적인 언어가 나옵니다. 그런데 믿음이 바뀌면 믿음의 언어가 튀어나오게끔 되어 있습니다. 결국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하십시오. 말이 변하면 인생도 변합니다. 달리 말하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변하기를 원한다면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바꾸어보십시오. 인생이 변하기를 원한다면 말이 변해야 합니다.

부메랑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부메랑이라는 것은 본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 사용하던 사냥 기구입니다. 이것을 던지면 멀리 날아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도구입니다. 언어도 부메랑과 같은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아름다운 언어를 던지면 그것은 어김없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부메랑과 같은 것이 언어입니다. 간혹 보면, 사람들이 내게는 좋은 말을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먼저 언어의 부메랑 법칙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다른 사람에게 아름다운 생명의 말을 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말은 다시 내게로 돌아올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말을 하지 않으면 결국 내게 돌아오는 것은 파괴와 아픔의 말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좋은 말을 하십시오. 믿음의 언어를 사용하십시오. 이유 없이 상대방에게 위로와 사랑이 담긴 말을 해 보십시오. 이유 없이 상대방에게 칭찬과 용기의 말을 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에게 희망과 용기와 사랑이 가득 담긴 말로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내 입에서 나간 말이 이웃에게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그 말이 나 자신에게 돌아와서 나 자신에게 동일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누에고치가 입에서 실을 풀어 자신의 집을 짓듯이 사람은 자신의 입으로 하는 말에 의해서 자신의 인생 집을 짓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믿음의 말은 믿음의 집을 짓습니다. 사랑의 말은 사랑의 집을 짓습니다. 소망의 말은 소망의 집을 짓습니다. 긍정적인 말은 긍정적인 집을 짓습니다. 향기로운 말은 향기로운 집을 짓습니다. 땅콩빵을 붕어빵으로 바꾸려면 빵 틀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바꾸려면 말을 바꾸십시오. 말을 바꾸어야 인생이 바뀌어집니다.

시편 81편에서 말씀합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그렇습니다. 입을 크게 열어야 크게 채워주십니다. 입을 크게 열라는 말은 불신의 말을 버리고 믿음의 말을 하라는 겁니다. 제발 부정적인 이야기는 하지 말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라는 겁니다.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지 말고 칭찬과 격려를 하라는 겁니다. 소원을 말해도 큰 소원을 말하라는 겁니다. 옛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고 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내가 말한 그대로 환경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부정적인 파장이 일어나서 부정적인 사람들이 내 곁에 모입니다. 그래서 내 삶은 부정적인 인생이 되고 맙니다. 비판적인 말을 하면 비판적인 파장이 일어나서 비판적 사람들이 내 곁에 모입니다. 그래서 비판적인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행복한 말을 하면 행복한 파장이 일어나서 내 곁에 행복한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말이 변하면 인생이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을 바꾸기를 원하신다면 말을 바꾸십시오. 말을 바꾸면 인생이 바뀌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말투가 변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인생은 언제나 그렇고 그런 생활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나님은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생명이 없는 죽음의 말을 하는 사람을 정말로 싫어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싫어하는 사람, 하나님이 싫어하는 말들이 나옵니다. 열 두 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을 때에 열 명의 정탐꾼은 부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들어갈 수 없다." 우리는 그들과 비교해 보니까 메뚜기 같다고 아주 절망적인 말을 했습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똑똑하고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어쩌면 이들의 판단은 가장 보편적인 판단이었을 것입니다. 가장 이성적인 판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의 말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악평이었다고 말합니다. 원망의 말이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민수기 14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한 마디로 너희들이 내 뱉은 말 그대로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말도 가려서 하십시오. 함부로 할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들으시는 대로, 여러분이 내 뱉는 말 그대로 행하십니다.

악평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 내 뱉는 저주의 말입니다. 악평하는 사람은 자기의 악한 생각대로 부정적인 말을 과장합니다. 좋은 것을 보지 못하고 나쁜 것만 보고 나쁘게 말합니다.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원망과 불평은 이웃에게 전염되는 전염병과 같다는 사실입니다. 나도 망하고 이웃도 망하게 합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 열 명의 정탐꾼은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을 했던 백성들은 그들의 말대로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들어갈 수 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외쳤던 갈렙과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을 밥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원망하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누구에게든지 원망하지 마십시오. 내 삶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죽겠다고 포기하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살아 온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 속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살아갈 것입니다. 내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고 살아간다면 어떤 시험과 어려움 속에서도 힘차게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후원자가 되신다면 결코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어떤 경우에라도 절망적인 말을 하지 마십시오. 죽었다고, 안 된다고, 힘들다고 포기하는 말을 하면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희망을 노래하십시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오히려 감사하십시오. 내가 희망을 노래한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내게 희망을 주실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고백한대로 하나님은 나에게 구원을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들의 주변을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절망적인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소망 있는 삶을 사는 이들이 있는지를 말입니다. 말이 거친 사람이 부드러운 삶을 누리고 있는 이들이 있던가요? 더러운 말이 가득한 사람이 깨끗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던가요?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긍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있던가요? 비방을 일삼는 사람이 칭찬을 받으며 사는 이가 있던가요?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존경을 받고 사는 사람이 있던가요?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람은 그 입술의 열매를 먹고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내 입술에서 부정적인 말을 닫으십시오. 비난하고 상처를 주는 거친 말들이 내 입에서 떠나가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주변에 있는 부정적인 사람들이 변하든지 떠나가게 될 것입니다. 부정적인 환경이 좋은 환경으로 바뀌어질 것입니다. 절망적인 환경이 소망이 넘치는 환경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이 어려울수록 희망의 말을 해야 합니다. 절망적일수록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삶의 환경이 힘들수록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시대가 악할수록 선한 말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가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말이 변해야 인생이 변합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 우리의 인생이 변하기를 원한다면 말이 변해야 합니다. 말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말투를 고쳐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언어생활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혹 우리 주변에 믿음이 좋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말이 거칠고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경우를 봅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그런 사람은 교회생활, 종교생활을 잘 했을는지 모르겠지만 믿음이 좋은 사람은 아닙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반드시 좋은 말을 합니다. 믿음의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 마음에 품은 것을 말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6절에 보면 참으로 교훈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6절을 다같이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현대어 성경에서는 좀더 직설적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속된 말이나 헛된 말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시오. 그런 것은 사람들을 점점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할뿐이며, 불같이 번져 나가서 오랫동안 상처를 주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하는 말에는 속된 말이나 헛된 말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본문 17절에 보면 "독한 창질의 썩어져 감과 같은"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악성 종기처럼 퍼져 나가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말이라고 해서 다 말이 아닙니다. 말에도 사람을 살리는 말이 있고, 죽이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왕이면 믿음의 사람들인 저와 여러분은 사람을 살리는 말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말씀을 마음에 많이 품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암송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서 입을 열면 그 말씀이 튀어나오게 하십시오. 생각이 그러하면 말도 그러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입술에서도 꿀송이 같은 하나님의 말씀만 나오게 될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입술을 주장하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에는 권세가 있기 때문에 그 말은 관리되고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말을 성령께서 다스릴 때에 우리의 언어 생활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늘 성령께 민감해야 합니다. 성령의 다스림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 입에서는 내 가족, 내 자녀, 내 이웃, 내 교회를 살리는 생명의 언어가 나오게 됩니다. 그럴 때에 입을 열면 축복의 말이 나오게 됩니다. 사랑의 말이 나오게 됩니다. 자고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보다 은혜로운 말을 해야 합니다. 혹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무심결에 내뱉은 말 한마디가 무슨 인생을 지배한다는 말인가? 하찮은 말 한마디가 인생을 어떻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할 수 없다는 병에 걸린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맛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런 사람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에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천지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시는데 왜 할 수 없다고 말하십니까?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질병과 저주를 청산하신 예수님이 계시는데 왜 할 수 없다고 말하십니까? 여러분을 떠나지 않는 보혜사 성령이 여러분의 형편과 처지를 지켜주시는데 왜 할 수 없다고 말하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역사는 내가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주의 성령께서 일으키십니다. 나는 다만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구로 쓰임을 받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만나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말을 선포하십시오. 내 아이들에게, 내 가족들에게 축복의 말을 선포하십시오. 큰 믿음과 좋은 생각을 품었으면 믿음의 말을 토하는 겁니다. 우리의 삶에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나 어려움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변화되기를 원하는 그 목표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이미 이루어졌다고 믿고 선포하십시오. 꿈을 꾸었으면 그 소원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믿고 말하십시오. 그러지 못하고 꿈도 없이 열망도 없이, 믿음의 말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어느새 나는 운명과 환경의 노예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씨를 심는 농부처럼 믿음을 가지고 믿음의 말을 심으십시요.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난다"고 했습니다. 긍정적인 말을 심으면 내 환경은 긍정적 환경으로 바뀔 것입니다. 축복의 말을 심으면 내 아이는 축복의 아이로 자라갈 것입니다. 믿음의 말을 심으면 내 교회는 믿음으로 부흥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능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듣고 행하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듣고 행하는 그에게 능력이 생깁니다. 이 말씀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말을 바꾸십시오. 말투를 바꾸십시오. 말이 변하면 인생이 변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말을 입으로 내보낼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고 말을 해야 합니다. 짧은 인생, 짧은 세상을 살면서 고통과 절망을 만드는 죽음의 언어를 내 뱉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그렇게 살면 불행합니다. 본인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남까지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온 세상에 기쁨과 행복을 만드는 행복의 언어를 내 놓아야 합니다.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사람은 생명의 메시지를 내놓는 사람입니다. 말로 성공할 수 있습니다. 말로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말로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습니다. 말로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말의 권세가 더 크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가능성을 찾아 믿음의 말을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말은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구조적으로 기능적으로 말할 수 있도록 인간을 창조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내 뱉는 말에는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환경을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생명을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로서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말로서 용기와 기쁨을 주기도 합니다. 반면에 이 말에는 독이 있어서 사람을 넘어지게 합니다. 문제 가운데 빠지게 합니다. 상처받게도 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낙심하게도 하며 죽이기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성경에서 아주 많이 언급하셨습니다. 말에 대해서 구약에서는 1,750번을, 신약에서는 582번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은 아주 특별한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가 운명을 바꾸어 놓을 때가 훨씬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좋은 말만 하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말만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말만 하시기 바랍니다. 희망의 말만 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좋은 일만 주실 것입니다. 아름다운 말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일만 주실 것입니다. 희망의 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희망의 일만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말 한마디로 인생을 바꾼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권세가 저와 여러분에게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듣기를 원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저는 여러분의 상황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가 너의 인생의 마지막은 아니야, 너는 사랑 받는 존재야, 나는 너를 버리지 않아. 너는 나의 자녀이고 너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런 희망적이고 사랑이 가득한 말을 듣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동일하게 우리의 입술로 한 영혼을 살릴 수 있는 큰 권세를 하나님께서 맡겨 주셨습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귀하고 보석 같은 말을 하십시오. 잠언 20장 15절에 보면, 세상에는 금도 있고 진주도 있지만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좌우를 돌아보시면서 이렇게 축복의 말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평소에 말하는 것을 조심하십시오. 여러분이 시인하는 대로 하나님은 그대로 삶 속에서 이루어주시도록 하겠다고 하십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이 순간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믿고 그 믿음 위에서 말하고, 그 믿음 위에서 결정하고, 믿음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제발 내 안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과 같은 말을 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그리고 내가 말한 그대로 행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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