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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복의 기회 (왕상 1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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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오재현 목사

1. 세계적인 신앙 잡지 <Pulpit>을 발행한 스피노스 조디아티 목사님은 살아 있는 교회와 죽어가는 교회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교실, 주차장 등 공간이 늘 모자라지만,
죽어가는 교회는 공간을 염려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교회는 항상 변화하지만,
죽어가는 교회는 늘 똑같다.
살아있는 교회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떠들고 재잘거리는 소리로 늘 시끄럽지만,
죽어가는 교회는 죽은 듯이 조용하다.
살아있는 교회는 언제나 일이 많아 일꾼이 부족하지만,
죽어가는 교회는 일이 없기에 일꾼을 찾을 필요가 없다.
살아있는 교회는 언제나 예산을 초과해서 쓰지만,
죽어가는 교회는 은행에 잔고가 많다.
살아있는 교회는 새 얼굴의 사람이 많아 이름을 알기가 어려워 애먹지만,
죽어가는 교회는 해를 거듭해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살아있는 교회는 선교사업이 활발하지만,
죽어가는 교회는 교회 안에서만 움직인다.
살아있는 교회는 드리는 자로 가득차 있고,
죽어가는 교회는 티내는 자로 가득 차 있다.
살아있는 교회는 믿음으로 운영되고,
죽어가는 교회는 인간적 판단에 의해 운행된다.
살아있는 교회는 배우고 봉사하기 위하여 바쁘고,
죽어가는 교회는 지내기가 편안하다.
살아있는 교회는 활발하게 전도하고,
죽어가는 교회는 점점 굳어져 화석화되어 간다.”

사랑하는 청산 가족 여러분, 이런 기준에서 볼 때, 우리 교회는 분명히 살아있는 교회, 건강한 교회인줄 믿습니다. 이렇게 살아있는 교회인 우리교회는 지금 21세기에 걸맞는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고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짓고자 하는 새 성전은 단순히 예배만 드리는 공간이 아닙니다. 젊은이들이 세계를 가슴에 품고 세계를 위하여 일하는 월드 크리스챤으로서의 꿈을 키울 수 있는 비전센타입니다. 대구를 복음화하는데 쓰임받는 선교센타입니다. 지역주민들의 복지 및 문화센터로서의 성전입니다.
우리가 건축하는 성전은 대구시에 또 다른 새 성전 하나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성전, 세상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성전, 세계 지도자를 키워내는 성전이 될 것입니다. 이런 성전이 대구에 세워진다는 것은 대구의 축복이요, 전 세계의 축복이 될 것입니다. 성전을 건축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크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런 면에서, 성전 건축은 하나님의 축복의 기회입니다.

2. 지금부터 약 2800여년 전,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왕 때의 일입니다. 이 때는, 영적으로 몹시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도리어 이방신인 바알을 섬기곤 했습니다. 바알은 비를 내려주시는 신, 풍요와 다산의 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풍작을 가져다주시는데도 불구하고, 아합은 바알신이 축복의 신이요, 풍작의 신으로 믿고 섬겼던 것입니다. 이런 암흑의 시대에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아합에게 보내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섬깁니다.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내가 다시 명령하기까지 앞으로 몇 년 동안, 비나 이슬이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요단강 근처 그릿 시냇가로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보내어 빵과 고기를 가져다 주어 먹게 했습니다. 거기 시냇물을 마셨습니다. 가뭄이 계속 되니까, 시냇물도 말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서 시돈 땅 사르밧으로 가라. 그곳의 한 과부에게 너를 돌보아 주라고 명령했다.”
엘리야는 이방인의 땅인 시돈 땅 사르밧으로 갔습니다. 성문에 들어설 때, 한 과부가 땔감을 줍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외아들과 함께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조금 남아있는 밀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먹으려고 땔감을 준비하러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마지막 남아 있는 밀가루와 기름으로 먼저 내게 떡 하나 만들어 오시오. 그리고나서 당신과 당신 아들이 먹을 것을 준비하시오.” 그러면서 약속하기를 “나 여호와가 이 땅에 비를 내리기까지 그 항아리에 밀가루가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병의 기름도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했습니다.
가뭄이 이스라엘에만 내린 것이 아니라, 주변 나라 시돈 땅에도 온 것입니다.
논밭이 쩍쩍 갈라지고 물 한방울 구하기 힘든 때, 마지막 남은 밀가루를 갖고 떡을 만들어오라고 요청하는 것은 상식 이하의 말입니다. 이런 잔인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이 과부는 선지자 엘리야의 말에 순종합니다. 그리하였더니, 그 집안에 3년 6개월 동안 가뭄이 끝나고 비가 다시 오는 그 날까지 항아리에 밀가루가 계속 생겨났고, 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3. 먼저, 축복의 기회를 놓치지 말자는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의 과부에게 온 것은 축복의 기회였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과부가 보기에 엘리야는 연상 거지모습을 했을 것입니다.
“안 그래도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인데. 거지가. 뭐라고? 떡 한 조각 만들어 달라고? 내 가족도 먹을 게 없어 죽게 생겼는데, 이걸 갖고 당신을 위해 떡을 만들어 달라고.”
이런 생각을 했을 법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자신에게 온 축복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에게 떡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하는 이 사람이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란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11절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이란 것을 알아보는 눈이 그녀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순종한 것입니다.
엘리야가 그녀의 집에 온 것 자체가 그녀에겐 축복의 기회인 것입니다. 엘리야가 이 여인에게 옴으로 여인이 받은 축복이 무엇입니까? 3년 6개월간 기근시에 생활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뒤에 나오지만 아들이 갑작스럽게 죽었는데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주셨습니다. 자신은 몰랐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이 여인에게 축복하시기 위하여 엘리야를 그녀에게 보내기로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산 가족 여러분, 우리 인생에 기회가 여러 번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번 지나간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젊음의 기회는 그 시기가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무언가 봉사할 기회도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누구를 도와줄 기회, 섬길 기회도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연세드신 장로님들, 권사님들 말씀을 들어보면, 이제 연세가 드셔서 글을 읽기가 힘드시다고 합니다. 돋보기로도 보기 힘들다고요. 여러분, 성경 읽을 기회도 지나가면 오지 않습니다. 연세드시면 오래 앉아 기도하지 못합니다. 젊었을 때, 많이 기도하십시오. 눈 좋을 때 성경 많이 읽으십시오.

지난 주간에,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김종기 장립집사님 부친께 다녀왔습니다. 이제 다시 일어나시기 힘든 상태에 계시는데, 환히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회복되면, 교회 일만 열심히 해야지. 교회 일만 열심히 해야지. 교회 일만 열심히 해야지.”
몇 번이나 반복하시는 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시 회복되시기 힘든 상태입니다. 다시 교회 일을 하시기 힘드는게 사실입니다.
모든 게 때가 있습니다. 기회가 올 때, 놓치지 마십시오. 붙잡으십시오.
기회가 지나가고 나서 땅을 치고 통곡을 한들 지나간 기회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일생 단 한 번 주어지는 성전건축의 기회가 왔습니다.
성전건축의 기회는 축복의 기회입니다. 축복의 기회를 결코 놓치지 마십시오.
다윗이 솔로몬을 후계자로 세운 뒤에 아들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소의 전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찌니라.”(역대상28:10)
성전건축의 기회가 왔으니, 힘써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힘써 행할찌니라.”
이번 축복의 기회를 꼭 붙잡아 힘써 행하십시오. 크나큰 축복이 여러분의 가정에 임할 것입니다.

4. 저는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당시 궁내대신으로 믿음이 좋은 오바댜같은 부잣집에 보내지 않으시고 가난한 과부의 집에 보내셨을까?
시돈 땅 사르밧의 과부는 하나님의 축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그는 이방인입니다. 자신도 먹고살기 힘든 가난한 과부입니다.
객관적으로 축복과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이 가정을 축복하심으로 축복은 하나님에게서만 온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바알이 축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3년6개월간의 가뭄을 통하여 보여준 것입니다. 비를 내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축복은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아무리 가난하여도 하나님께서 복 주시면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왜 나같이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에게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온 천하에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가난한 자를 부하게 하시는 하나님,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 겸손한 자를 존귀하게 하시는 하나님, 어리석은 사람을 지혜롭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5병2어의 기적,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는 기적을 우리로 경험하게 하기 위하여 이렇게 힘든 시기에, 나같이 가난한 사람을 통해 성전을 건축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려 할 때, 성전 문 앞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 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3:6)
‘내 손에 없다’ 하지말고, 내게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믿음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믿음으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합니다.

있다고 다 하는게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는 부족함이 전혀 없는 낙원인 에덴동산에서 살았습니다. 모든 게 풍족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낙원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영원한 축복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부족해서가 결코 아닙니다. 믿음의 문제입니다. 불신앙이 낙원을 상실하게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불신앙은 하나님의 축복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가난하지만, 가진 것 없지만, 배운 게 없지만,
믿음으로 기회를 붙잡는 성도, 축복받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5. 마지막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를 요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과부와 외아들에게는 밀가루 한 웅큼과 기름 조금이 그들이 가진 전부였습니다.
왜 전부를 요구하실까요?
하나님의 나라에 쓸만한 인재인가, 아닌가 판단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전부를 드릴 줄 아는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100세 때 낳은 외아들 이삭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전부였습니다. 이삭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의 전부인 이삭을 바쳤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나님의 모든 것이 자신의 것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거꾸로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기에,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기꺼이 바칩니다. 우리 손에 아무 것도 없어도,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들에게 맡겨주실 것입니다.
서울 양화진에 있는 선교사 묘역에 우리나라에서 30년간 간호 선교사로 헌신한 Mable이란 여선교사 묘지가 있습니다. 그의 묘비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She hath done what she could.)
주님을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인생, 이보다 더 아름답고 존귀한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미국의 청교도들은 서로 만날 때마다 이런 말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단 한 번 밖에 없는 인생, 그것은 곧 지나가리.
오직 그리스도만을 위해서 행한 모든 것만이 영원히 남을 수 있나니!”
그렇습니다. 주님만을 위해 하는 모든 것만 영원합니다.

6. 우리 인생은 지금도 카운트 다운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지금이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일 수 있습니다. 축복의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두 강도가 예수님 좌우편에 달렸습니다.
같은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마지막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선택은 전혀 달랐습니다. 오른편 강도는 주님께 낙원을 부탁했습니다. “주여, 당신의 나라가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그러나, 왼편 강도는 도리어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른편 강도에게 축복하셨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영원한 축복을 받은 오른편 강도, 영원히 저주받은 왼편 강도.
우리는 지금 같은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성전건축의 기회, 축복의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시렵니까? 축복의 기회를 붙잡으십시오. 영원한 축복을 선택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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