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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정관념을 벗으라 (막 2: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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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명섭 목사

  제가 어린 시절 저희 집에서 모시던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제사 문제로 외삼촌과 어머님과의 논쟁이 있었습니다. 외삼촌은 李씨 집안의 전통이라고 하시면서 제사를 고집하셨고 어머님은 저의 집에서 모셨던 분이시고 더군다나 생전에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교회를 다니셨던 분인데 기독교식으로 추도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외가의 어느 어른은 그러면 유교식으로 상을 차려놓고 절할 사람은 절을 하고 예배를 드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어머니의 확고한 믿음에 의해 계속해서 추도예배로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율법시대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 천 조각과 낡은 부대가 서로 화합하지 않는 균형과 보존의 원리를 제시하셨습니다. 생베란 아무 옷감으로 가공되지 않은 상태이며 또한 낡은 옷은 옷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어떤 것이 서로 합하려 한다면 어떤 조건이 충족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미 낡은 옷에다 새 천을 깁는 시대는 지났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낡은 옷은 새 옷이 없을 때 입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15장에 보면 이방선교의 전초지인 안디옥교회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어느 날 예루살렘에서 온 믿는 유대인들이 안디옥교회에 와서 모세의 “할례를 받지 못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고 주장했습니다. 오랜 세월 모세의 율법의 옷을 입고 살던 유대인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의 옷으로 갈아입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해진 옷을 새 천 조각으로 기우려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새 천 조각은 조수 밀도가 약해진 헌옷을 잡아당겨 옷을 망가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새 포도주는 낡은 가죽부대에 넣는 자는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트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니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고 했습니다.

  낡은 가죽부대는 유대교의 낡은 전통과 의식을 의미합니다. 유대교의 낡은 전통과 의식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말씀했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팔레스틴에는 주로 염소가죽으로 부대를 만들어서 물이나 포도주를 담는 용기로 사용하였는데 낡은 가죽부대에 새로 담근 포도주를 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포도주가 발효하면서 생기는 가스의 압력으로 가죽부대가 터지면 둘 다 쓰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가죽부대는 생명력을 잃고 의식화된 율법종교를 상징하고 새 포도주는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요원처럼 번져나가는 복음종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율법종교는 육체이지만 복음종교는 영혼입니다. 전자는 행위라면 후자는 믿음입니다. 전자는 문자이지만 후자는 영으로 된 생명의 법입니다. 전자는 인간의 의를 강조하나 후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인식의 틀 안에서 고정관념의 성을 쌓고 안주하려고 합니다. .  누가복음5:39에 “묵은 포도주는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 이니라”고 했습니다.

  독실하게 예수를 잘 믿는 어떤 목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믿음으로만 구원받기에는 무엇인가 미흡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기는 하지만 기도도 열심히 하고 전도도 잘 하고 헌금도 많이 해야 구원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사님에게 확실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위에 공로와 선한 행위가 따라야 할 것이 아니냐고 말씀했습니다. 목사님은 에베소서2:8~9 말씀을 읽어주었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는 말씀을 제시하면서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대해서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래도 목수교인은 어쩐지 믿음으로만 구원받기는 하나님께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습니다. 목사님이 교회출입문을 그 목수에게 부탁했습니다. 목수는 하나님의 집에서 쓸 성물이라 정성을 다하여 만들었습니다. 목사님은 문이 다 되었다는 전갈을 받고 목수를 찾아갔습니다. 완성된 문짝을 한참 바라 본 목사님은 목수의 솜씨를 칭찬하더니 사과궤짝을 덧 붙여 못을 잘 박아달라고 했습니다. 목수는 이상하다는 듯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렇게 잘 만들어 드렸는데 문짝에 왜 사과궤짝 나무판을 붙인단 말입니까?” 이때 목사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는 구원을 위한 완전한 걸작품입니다. 거기에다 인간이 더하거나 감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십자가만 믿으면 인간의 구원은 이루어집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인간의 몫은 없습니다. 그 누구도 결정적인 인간구원에 있어서 아무런 역할도 수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이루신 예수그리스도의 공로를 믿기만 하면 구원이 이루어 질 줄로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인간은 새롭게 변화하려는 마음이 있는가하면 또 한 편으로는 아무 경험하지 못한 일이나 알지 못하는 것에 혐오의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인식의 모순이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의식에 빠져서 예배의 본질을 상실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이 아니라 종교인으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날의 교회가 날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고 성도들은 그 일에 매어서 일의 노예가 됩니다. 이제는 우리를 묶고 있는 사슬을 훌훌 벗어버리고 성령 안에서 말씀 안에서 주를 만나고 성도들의 교제 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을 막고 있는 고정관념을 벗어버리고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날마다 만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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